학교 아이들

사랑하는 우리 공주들에게(5월 4일 쓴 편지)

착한재벌샘정 2004. 5. 4. 07:06

오늘부터 중간고사가 시작되는구나.
선생님은 우리 공주들에게 선생님의 마음을 담은 선물을 준비하느라 새벽이 다되어가도록 아직 주방에 있단다.


비록 우리 공주들이 받는 것은 작은 머핀 2개이지만 여기에는 우리 공주들을 무지 사랑하는 2학년 9반 엄마의 마음이 듬뿍 들어 있다는 것을 알까?


며칠 전에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었지?
우리 공주들의 생활기록부를 열어 보지 않았다고. 그래서 선생님은 너희들의 성적을 전혀 모른다고. 우리 반에서 누가 공부를 제일 잘하는 지, 누가 공부와 담을 쌓았는지 선생님은 아직 모른다고.


어쩌면 이런 선생님이 너희들 눈에는 게으르거나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선생님은 우리 공주들을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보고 싶어. 공부만이 아닌 다른 많은 것들을 너희들에게서 찾아내고 기뻐하고 싶어. 공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는 거 알지?


우리 공주들에게 시험을 앞두고 몇 가지만 부탁을 하자.
우리 공주들 한 만큼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길, 실수하지 않고 침착하게 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정정당당한 모습으로 시험에 임해주기 바란다. 욕심에 스스로에게,  친구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은 아니었으면 한다. 선생님도 대학 시절 컨닝을 해 본 경험이 있어. 그런 적 없다고 거짓말하지는 않을게.

그 당시에는 스스로에게 변명을 해댔었어.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 나만 하는 게 아니다, 바보같이 손해 볼 이유가 무엇이냐 등등.


하지만 그 일들은 곧 나를 무척 부끄럽게 했고 후회하도록 만들었어. 그리고 내가 선생님이 되고 아이들에게 컨닝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을 해야 하는 입장이 되고 나니 더더욱 나를 많이 힘들게 하더구나.


내가 시험감독을 하다 컨닝하는 아이에게 훈계를 했다는 말에 선생님의 대학 동창이 이렇게 비웃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몇 날을 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했던 적도 있어.
"자기도 대학 때 컨닝했으면서 컨닝하는 애를 혼냈단 말이야? 웃긴다."
컨닝을 해서 남보다 월등한 성적을 받은 것도 아니었거든. 그런데 그것은 내게 있어 큰 상처가 되었지.

 

우리 공주들은 조금 덜 후회하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선생님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야. 하지만 선생님이 우리 공주들에게 선생님의 이런 부끄러운 모습까지 드러내는 이유가 뭘까?

 

우리 공주들이 선생님과 같은 시행착오는 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야.

'선생'이 '먼저 살아본 사람'아니겠니?

너희들 보다 조금 먼저 살면서 너희들이 우리보다는 조금 덜 후회하고 조금 덜 시행착오를 겪고, 조금 덜 아파하며 좀 더 많이 행복하고 좀 더 많이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작은 도움이나마 주고 싶은.


사랑하는 공주들.
스스로의 힘으로 느리지만 차곡차곡, 조금씩 조금씩 진정한 자신의 탑을 쌓아가길 바란단다.
시험 기간동안 건강 해치지 않도록 조심하길...           

 

2004년 5월4일 새벽에 선생님이

 

주영이가 선생님이 준 머핀을 사진으로 찍어 올려 주었어.

주영이가 이곳에 올리고 싶었는데 안된다고 해서 선생님이 대신 올린다.

주영아, 고마워.

 

j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