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초등1년생 정빈이 첫 숙제 하던 날

착한재벌샘정 2003. 6. 9. 11:22
주말 잘 보내셨는지요?

저희 가족은 모처럼 시내 나들이를 갔었습니다.
정빈이가 학교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게 되어 악기점으로, 백화점(식품매장에서 먹을 것만 잔뜩 삼), 교보문고를 거쳐 집으로 왔답니다.

예슬이도 초등학교 1학년 때 바이올린을 학교에서 배웠었는데 자신과는 잘 맞지 않는다며 플릇으로 바꾸었는데 정빈이는 어떨지 모르겠어요. 피아노를 배워보자니 아직 그것은 싫다네요. 하지만 피아노 치기는 무지무지 좋아한답니다. 제 기분에 취해서 말입니다.
예슬이도 피아노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그만 두었었는데 플릇을 다시 시작하니까 저절로 피아노 앞에 다시 앉게 되더군요. 스스로가 필요성을 느끼게 되나 봐요.

지난주에 정빈이가 처음으로 학교 숙제를 했었답니다.
학교에 있는데 전화가 왔더군요.
학교 숙제가 있는데 엄마가 있어야 한다며 빨리 집으로 오라는 전화였어요. 나중에 퇴근해서 가서 해도 된다는데도 빨리 오라고 성화를 부리지 뭡니까.

저녁 먹고 식탁에 마주 앉아 숙제를 할 때였습니다. 선생님이 정성껏 써오라고 했다면 쓴 글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지우개로 지우던 아이는 지우개가 공책에 부딪쳐 내는 소리에 귀를 쫑긋하더니 그 날 음악시간에 배웠던 소리가 비슷하다며 지우개로 공책을 툭툭치는 겁니다.

'숙제하다 말고 무슨 짓이야?'라는 말이 목으로 쑤욱 올라오는 것을 참고
"재밌니? 음악 시간에 들었던 소리와 같아?"했더니 아이는 얼굴에 환한 웃음을 담고는
"똑같지는 않은데 비슷해요."하더군요.

그러더니
"우리도 음악 시간 해볼래요? 제가 선생님이 될테니까 어머니가 학생이 되세요. 어떻게 하느냐 하면요…."
하며 음악 시간에 했던 것을 아주 자세히 설명을 하는 겁니다.

선생님이 북을 치면 그 소리에 맞춰 손뼉을 치는 것이었어요. 북소리가 커지면 손뼉을 세게 치면서 손을 올리고 북소리가 작아지면 손뼉을 약하게 치면서 손을 점점 내리라고 하더군요. 강약과 빠르기를 변화시키면서 한 놀이였는데 아주 재미있더라나요.
지우개가 공책이 부딪히는 소리가 북소리와 비슷해서 갑자기 그 생각이 났다고 하더군요.

정빈이의 지우개 두드리는 소리에 맞춰 손뼉을 치며 신나게 둘이 놀았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놀던 아이는 마침 틀어 놓은 CD에서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오자 손뼉 대신 바이올린 켜는 폼으로 해보라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춤추는 동작으로, 또 그 다음에는….

그렇게 공책에 글자 몇 자 쓰고는 지우개를 두드리고 글자 몇 자 쓰고는 지우개를 두드리는 통에 5칸 짜리 공책 반쪽 정도 쓰는 숙제에 걸린 시간이 1시간도 훨씬 넘었지 뭡니까.

'지금은 숙제하는 시간이야. 얼른 숙제 다 해놓고 음악시간 놀이하자.' 라고 해야하나? 를 두고 잠시 고민했었습니다. 정확하게 무엇을 해야하는 시간인지에 대한 인식을 갖게 해주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숙제를 하고 난 아이는 숙제하는 시간이 매우 즐거운 시간으로 기억이 되었나 봅니다. 그 다음 날도 숙제가 있다며 아주 좋아하더군요. 그러면서 자신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물어 보라고 그러면 아주 자세히 이야기 해주겠다며 안 물으면 안 가르쳐 줄 수도 있다며 엄포(?)까지 놓더군요.

그 후로 정빈이는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아주 유세(?)스럽게 해줍니다. 자기 이야기는 엄마를 아주 즐겁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하나봐요.

이제 학교 생활의 출발점에 서 있는 아이들에게 숙제에 대한 인식도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숙제 시간이 즐거워 질 수 있도록 옆에서 조금만 도와주기로 해요.

어떻게 풀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하는 거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전에 늘 아이들의 생각을 물어주세요.
"이 숙제는 어떻게 해오라는 걸까? 이 문제는 무엇을 하라는 거지?"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이야기하도록 여유를 가지며 기다려 주시고 그 다음에는 잘 한 것을 먼저 칭찬해 주세요.
"그래, 그렇구나. 네 말을 들으니 공책에 써 오라는 거였구나. 엄마는 연습장에 쓰는 걸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엄마에게 설명을 잘 해줘서 고마워."
그 다음에는 은근 슬쩍 틀린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교정을 해주면 되겠죠?

그리고 알림장에 적어오는 경우에는 잘 써왔다는 칭찬의 말을 적어 주세요. 틀린 글자를 지적하거나 하지 말고요. 아이들은 아는 글자도, 그것도 선생님이 적어 주시는 것을 그대로 베껴오는데도 매일 다르게 적어온답니다.

하루는 '엄마가 매겨서 오기', 그 다음 날은 '어머니가 메겨오기', '정성꺼 쓰기', '정섞 스기' 등등으로 말입니다.

일일이 지적을 하면 바르게 쓸지는 모르지만 글자를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질 겁니다. 잘못 쓰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이 아이를 움츠러들게 하고 쓰기에 재미를 떨어뜨릴 수도 있으니까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부터 아이가 숙제를 다 하고 난 뒤에 살짝 알림장을 펼쳐 틀린 글자를 옆에 교정해 주는 것도 좋아요.

한겨레21에 올린 글 하나를 덧붙입니다.

아이와 도서관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는 8살 된 둘째 아이가 얼마 전 서울에 있는 한 병원에 입원을 했다. 아이는 병원에 가지고 갈 것이라며 열 권도 넘는 책을 들고나섰다. 몇 권만 가져가자는 말에 아이는 한참을 고민했다. 하지만 아이는 그토록 고민해 골라 간 책을 한번씩 밖에 읽지 않았다. 병원에 있는 작은 도서관 덕분이었다. 옆 침대의 5살 아이도 연신 엄마에게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졸라댔고 아이 엄마도 책이 많아 좋다며 힘겨운 얼굴에 잠시 웃음이 번졌다.

가장 큰 선물은 나누는 마음

5월을 앞둔 부모들에게 ‘어린이날 선물’은 큰 숙제로 다가온다. 그런 부모들에게 이런 귀띔을 해 주고 싶다. 아이에게 ‘나누는 마음’을 알게 해주는 것은 어떨까 하고.

3월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아이에게 여러 사람들이 선물을 해줬다. 그 중 몇 분은 “예쁜 책가방 하나 사주라”는 말과 함께 현금을 주기도 했다. 나는 아이에게 새 가방보다 좀더 값진 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러던 중 텔레비전 프로그램 <느낌표>에서 어린이도서관 짓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사는 대구에도 ‘새벗도서관’이라는 곳이 기적의 도서관으로 선정되었다기에 그곳을 찾아가 보기도 했다.

나는 아이의 입학 선물로 세 가지를 준비했다. 가방 살 돈을 어린이도서관 건립 후원금으로 내는 것, 새벗도서관이 어린이도서관으로 바뀌면 우리 집에 있는 책들 중 일부를 기증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정기적으로 일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둘째 아이는 언니가 쓰던 가방을 메고 학교에 다니고 있다. 언니의 가방을 깨끗이 씻어주자 약간은 서운했던 모양이다.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새로 사면 안 되죠. 나중에 이거 다 떨어지면 그 때는 새것으로 꼭 사주세요, 꼭.”

아이에게 가방 살 돈을 어디에 썼는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 아이가 ‘돈이 잘 있느냐’고 물을 때마다 그렇다고만 대답했었는데 입원한 병원 복도에 있는 책장을 보고 이 때다 싶어 말을 꺼냈다.

“여기 책들이 많으니까 좋지 그런데 이 책들을 누가 갖다 놓았을까”

“병원에서 사다 놓았겠지요.”

“그렇지만은 않아. 이 책들은 병원에 왔던 사람들이 선물로 갖다 놓은 거야.”

“누구한테 선물한 거예요”

“아파서 여기에 입원하는 아이들한테. 정빈이도 포함해서.”

“그 사람들이 절 알아요”

“모르지.”

“모르는데 왜 선물해요”

“비록 아는 아이는 아니지만 빨리 나으라고, 이 책 읽으면서 병원에 있는 동안 심심하지 말라고 선물로 보내준 거야.”

“그 사람 착하네요. 돈도 많나 봐요.”

“꼭 부자라서 그런 건 아니야. 착해서 그렇지. 정빈이도 착한 사람이 되어볼까.”

“어떻게요 저는 돈도 없는데.”

“왜 없어 저번에 입학 선물로 받은 돈 있잖아. 그걸로 이렇게 책을 사서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면 어때”

“… 여긴 서울인데. 여기 있는 책을 저는 못 읽잖아요. 아참, 다음에 또 병원에 올거니까 그 때 읽으면 되겠다, 그쵸”

“아니, 이곳에 말고. 대구에 정빈이 같은 아이들을 위해 어린이도서관이 생긴대. 그 돈을 도서관에 주면 어떨까 해서. 그러면 정말 많은 친구들이 같이 책을 볼 수 있을 거야.”

아이와 도서관에 가보자

이번 주말에는 아이의 손을 잡고 도서관을 찾아가 보자. 그곳에 있는 많은 책들을 보여주고, 어린이날 선물로 아이가 자신이 즐겨 찾는 도서관에 책을 선물할 것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그 일이 지구를 살리는 일이라는 것도 알게 해주면 어떨까.

생활 속의 환경운동을 강조해온 미국의 존 라이언은 자전거, 콘돔, 천장 선풍기, 빨랫줄, 타이국수, 공공도서관, 무당벌레를, 자원을 덜 소비하고 오염물질을 줄이는 ‘지구를 살리는 7가지 불가사의한 물건들’이라고 말했다. 이 중 나의 관심을 가장 끈 게 ‘공공도서관’이다.

“북미의 한 도서관은 평균 1년에 10만 권의 책을 대출해주고 5천 권 가량의 책을 구입한다. 도서관 하나가 1년에 50t의 종이를 절약할 수 있으며 종이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250t의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할 수 있다. 한마디로 생태계가 파괴되고 오염됨으로써 수많은 생물종이 멸종되는 것을 도서관이 막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존 라이언)




가슴 속 사랑을
당신의
바로 곁에 있는
사람에게
지금
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