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예슬이 엄마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어요.

착한재벌샘정 2003. 6. 9. 11:22
비가 여름 장마 때 같이 내리는 하루였습니다.
오늘 퇴근해서 집에 오니 예슬이가 왜 칼럼에 글을 올리지 않느냐고 묻더군요.
너무 바빠서 그렇다니까 자기가 대신 '저희 어머니가 너무 바빠 글을 올릴 수 없답니다'라고 쓸까를 묻더군요.
정말 오랜만에 인사를 드리는 것 같습니다. 다들 잘 지내셨죠?

오늘은 퇴근 후에 아이들과 함께 '한국청년연합회(KYC)대구지부'의 총회에 다녀왔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은 저 밖에 없더군요. 남편이 회사에서 1박 2일로 어딜 가는 바람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게 되었지 뭡니까.

대구KYC는 제가 <작은 친절>에서 '조금 낯선 봉사활동'으로 좋은 친구 만들기 '멘터'라는 것을 소개하면서 인연을 가지게 된 곳입니다.

이 멘터 프로그램은 대학생과 일반인들의 자원봉사자들과 범죄를 저지른 후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2년이라는 기간동안 보호관찰 중에 있는 청소년들로 구분된다. 멘터와 멘티들은 1:1 결연을 맺고 6개월 이상 지속적이고 인간적인 만남을 통해, 자원 봉사자들은 삶의 보람을 찾고 청소년들은 올바른 가치관 형성과 새로운 삶의 목적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중략)

청소년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그들의 책임보다는 어른들의 책임이 더 크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들을 인내와 사랑으로 도와주고, 언젠가는 올바른 자신의 길을 행복해하며 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실행되고 있다.

- 작은 친절 중에서 -

책에 소개를 하면서 저도 꼭 한 번 멘터로서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이번에 대구 KYC에서 멘터 활동을 시작했어요. <작은 친절>에 '봉사활동에도 교육은 필수'라는 글을 쓰기도 했는데 멘터가 되기 위해서도 교육을 만만찮게(?) 받았답니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 대구 보호관찰소에서 멘티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저와 친구가 될 아이는 그 자리에 나오지를 않았어요. 시작부터 참 기운이 빠지더군요.

혹시 저와 만나는 것을 거부하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걱정과는 달리 전화 연락이 되어 수요일 퇴근 후에 시내 교보문고에서 만났습니다.

열 아홉의 잘생긴 청년이 제 친구더군요. 아마 그 친구는 다른 아이들처럼 대학생 누나나 형이 아니라 많이 실망했을 겁니다. 좋은 친구 만들기 프로그램인데 저는 사실 너무 늙은 친구잖아요. 이번에 함께 활동을 시작한 멘터중에는 제가 담임을 했었던 제자를 비롯해 제게 배웠다는 사람이 셋이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아부가 어찌나 심한지 제가 스물 여섯 정도로 보인다네요. 세상에나. 저 그 날 좋아서 까무러치는 줄 알았답니다.^_^

집에도 딸, 학교에도 딸, 제가 딸 부자 아닙니까. 드디어 아들이 생겼답니다.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어떻게 되느냐고 묻길래 우리 아들이라고 했지요. 대학교 3학년에 결혼을 한 제 친구에게 꼭 그 나이의 아들이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이제 첫발을 내딛고 있는 중이지만, 그리고 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도 적지 않지만 저는 좋은 친구 만들기의 멘터 활동을 내년에도 후 내년에도 그 다음에도 기회가 닿는다면 계속하고 싶습니다. 우리 그런 말 종종하잖아요. 아이를 키우다보니 부모가 자란다는 말.

학교에서도 가끔 저를 힘들게 하는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면 갑자기 제 자신이 훌쩍 커 있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그날 제 친구에게도 그랬습니다.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되자고. 그 친구는 언젠가는 저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리라 믿습니다. 좋은 친구 만들기 프로그램을 한마디로 말하라고 한다면 저는 '서로가 함께 성장하는 것'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제가 1년 동안 직접 활동을 해 본 후 제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정확하게 잘 전달을 해 많은 분들이 함께 동참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년에는 멘터 활동을 시작하려는 후배 멘터들에게 제 경험담을 전해주는 봉사활동에 필요한 교육 강사로도 일해 보고 싶다는 욕심을 내봅니다. 모든 봉사활동이 그렇지만 특히 이 멘터 활동은 저와 제 친구가 함께 성장해간다는 점에서 너무나 큰 매력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그랬지요.

"나는 딸이 아주 많아. 그리고 그 딸들 덕분에 호강하며 살 것 같아. 나중에 미용사가 되어 파마와 염색은 자기에게 맡기라는 딸도 있고, 네일아티시트가 되어 손톱을 무지개색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딸도 있고, 심지어는 내가 늙고 병들면 똥오줌 받아내 주러 오겠다는 딸도 있는데 오늘 아들이 생겼으니 나중에 이 아들 덕도 좀 봐야겠지? 너 나를 어떻게 호강시켜줄건가 생각 좀 해봐."

처음 만남이었지만 3시간 정도를 함께 하면서 우린 어느새 꽤 괜찮은 친구가 된 것 같았어요. 그 친구가 알았다고, 호강시켜주겠다고 분명히 약속을 했거든요. 그 웃는 모습이 참 멋지더군요.

오늘 총회에 아이들을 데리고 간 가장 큰 이유는 예슬이 때문입니다. 남편이 집에 있었더라도 예슬이는 데리고 갔을 거예요.
엄마가 새로 시작한 멘터 활동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떤 사람들이 함께 하는지도 궁금할 것이고,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아이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줄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KYC의 활동 중 공부방운영이라는 것이 있는데 예슬이에게 고등학교 2학년 정도가 되면 그곳에서 동생들의 공부를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물었더니 대답은 않고 그저 씨익 웃더군요.

"세상에 제일 좋은 공부는 다른 사람을 가르쳐 보는 거야. 내 공부하기도 바쁜데 하는 생각을 할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동생들의 공부를 도와주다 보면 결국 네 실력도 쑥쑥 높아질걸.
남을 돕는 것 같지만 결국 내가 더 도움을 받는 게 된다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알고 있는 것이 많으면 남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도 훨씬 많아져. 그러니 열심히 살아야겠지?"

예슬이도 오늘 모임에 참가를 해보고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잡아가야 할 청소년기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 중에 하나가 되도록 경험의 기회를 주는 것도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하는 봉사활동 또한 그런 취지에서 잘 활용이 될 수 있도록 학교와 부모님들의 관심과 도움이 있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아래 글은 일요일 모든 멘티와 멘터들이 함께 등산을 하기로 했는데 그 전체 프로그램을 앞두고 대구 KYC에서 보내 온 글입니다.

“나도 그랬어”하고 말을 걸어보세요

“아영이라는 중3 소녀의 친구가 돼 주기로 했을 때였어요. 처음부터 내가 맘에 안 들었는 지 입을 삐죽 내밀며 성가신 표정이었어요. 하지만 아영이가 나를 피할수록 끈질기게 연락했죠. 6개월의 짧은 만남 뒤 아영이는 작별인사조차 없이 사라졌어요. 그런데 2년 뒤 어느 날 전화가 왔어요. 취직해 첫 월급을 탔는데 꼭 대접하고 싶다고. 그땐 왜 그랬는지... 후회된다면서요”

“좋은친구만들기 운동”에 참여한 자원봉사자의 회고담이다. 일생의 백분의 일도 안되는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이 아영이에게 어떤 의미로 아로새겨졌기에 2년만에 전화를 걸었던 것일까?

학교폭력, 약물복용, 음주, 절도 등 비행을 저지른 아이들과 친해지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기꺼이 이들의 형, 누나가 되어주겠다며 손을 내민 사람들이 있다. 바로 1999년부터 한국청년연합회(KYC)가 주관해 온 ‘좋은친구만들기 운동’에 관심을 모은 이들이다.

청소년 시기를 막 벗어난 대학생, 청년들이 청소년과 일대 일 결연을 맺고 6개월 동안 만나는 일, 공연을 관람하거나 밀린 공부를 돕고 진로상담, 사회봉사 활동에 같이 참여하는 등 우애를 다져나간다.

이곳에서는 청년 자원봉사자를 ‘현명하고 성실한 조언자’ 라는 뜻의 ‘멘터(mentor)'라고 부른다. 멘터들은 보호관찰 대상 청소년(멘티, mentee) 가운데 자신이 희망하는 멘티와 짝을 이뤄 수련회를 통해 첫 만남을 갖는다.

절차는 간소해 보이지만 이미 상처받은 청소년의 굳은 마음을 움직이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또, 청소년이 먼저 연락을 끊거나 약속을 번번이 어겨 한번도 만나지 못하기도 하고, 아영이의 경우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를 참고 지켜보지 못해 중도 포기하는 멘터도 많다.

“친동생이라도 늘 말을 잘 듣는 법은 아니잖아요. 편하게 동생처럼 생각하면서 대하기가 수월한텐데 그걸 너무 쉽게 잊더라고요.”
이유란님(24세. 성남지부 운영팀장)이 멘터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초창기 때부터 멘터로 활동한 그녀는 멘터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선도하려 들지 말라’는 것이다. 훈계하려들면 반항심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열 여덟살 멘티와 짝을 이룬 김재윤님(34세)도 “내 짝이 문제아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요”라며 좋은친구사이를 갈라놓는 위험 요소는 ‘편견’임을 강조했다.

“어떤 점에서는 멘티들이 보통 청소년들보다 정신적으로 더 건강한 것 같아요. 대개 아이들은 어른들이 윽박지르면 자기 의지를 굽히는데 이 친구들은 맺고 끊음이 분명하거든요. 싫은건 싫고 좋은건 좋다고 말하고요”
맞는 말이다. 아이들의 생각은 들어보지 않고 ‘하지마라, 가지마라’고 강요하는 세상 속에서 아이들은 갈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이 숨통을 쉴 수 있는 터전이 많아져야 한다고 이유란님은 강조했다. 등반과 요리경연대회, 레크리에이션으로 이루어진 수련회를 자주 여는 까닭도 청소년들의 닫힌 마음을 열고 자기를 드러내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귀찮은 사람들 또 왔다.’며 코웃음치던 아이들은 수련회가 끝나면 태도가 달라진다. “여기도 제가 있던 곳처럼 답답하게 옥죄어 올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아요. 너무 좋아요!”라며.

6개월여의 프로그램이 끝날 때 한 멘티는 이렇게 고백했다. “이거 끝나면 누나 못 만나는 거예요? 그럼 나쁜 짓하면 다시 만날 수 있나요?” 멘티들의 사랑과 관심에 얼마나 목말라 하는지 잘 보여주는 예이다. 그래서 보호관찰기간이 끝나고도 꾸준히 만나는 커플(?)이 늘고 있다. 보호해주고 보호받는 입장이 아닌 일대일. 친구로서의 만남이 새롭게 꽃피는 것이다.

“6개월동안의 추억도 중요하지만 그 뒤 인생이 훨씬 중요해요. 짧은 시간에 아이가 금방 변화되었다고 섣불리 판단하는 것도 조심해야 하고요.”
이제 다 큰 어른이 되어 ‘대접하고 싶다’고 전화하는 아이들. ‘대접’이라니. 처음 만났을 때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삐닥하고 심드렁하던 철부지에서 성숙해진 모습을 볼 때 이들은 가장 기쁘다.

“가장 큰 목표는 멘티가 멘터로 성장하는 거예요. 이 아이들이 훗날 청소년기에 겪었던 어려움을 나누면서 ‘나도 그런 때가 있었어’라고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 학교 선배에게 앵벌이로 끌려 간 두 아이를 어떻게 데려올 것인지 의논하기 위해 모인 멘터들. 경찰의 도움을 받으면 그들을 잡아둔 학생들이나 아이들에게 큰 상처가 될지 몰라 더욱 조심스러워했다.

간절히 소망하면 이루어진다 했던가? 부모의 마음으로 친구의 마음으로 청소년들을 위해 기도하는 이들의 바람이 두 아이에게 전해지면 아이들은 곧 돌아올 것이다.

- 월간 좋은 생각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