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사랑에는 이렇게 힘든 책임도 따르는 거지

착한재벌샘정 2003. 6. 9. 11:22
주말 어떻게 보내셨어요?
저희는 어제 온 가족이 함께 산에 갔다와서 늦은 아침을 먹었습니다.
이사한 동네가 앞산 바로 아래라 꼬불꼬불 논둑 길을 따라 걷는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예슬이는 2박3일 설악산으로 현장학습을 다녀 온 뒤라 산에 가는 것이 조금은 속이 상한 듯 했어요. 보통 때 같으면 좀 더 자라고 했겠지만 어제는 제가 뜻한 바(?)가 있어 굳이 데리고 나섰습니다.

다리 아프다는 정빈이와 저는 산의 입구쯤에 있고 남편과 예슬이는 약수터까지 갔다 왔어요.
남편은 이사 온 후로 거의 하루도 빠지 않고 아침마다 약수터에서 물을 떠오고 있습니다. 15년이나 된 낡은 아파트로 이사를 온 탓에 수도관이 노후 되었을 거라며 참으로 열심이지요.
남편이 하루에 떠오는 물의 질량은 12kg이 넘습니다.

여기서 잠깐, 물의 질량에 관한 과학적 증거를 대자면(과학선생 티를 내느라^_^) 물은 질량과 부피가 같아요. 즉 생수통에 2ℓ라고 적혀있다면 그 물의 질량은 2kg이 된다는 거죠.

물질의 밀도는 질량 
 부피 
로 나타내는데 물의 밀도는 1(단위는 생략)이거든요.

즉 부피와 질량이 같아야 분자와 분모 약분해서 1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되겠지요.
남편은 2ℓ짜리 생수 병 6개에 물을 떠오거든요. 플라스틱 소재 배낭의 질량을 무시하더라도 남편이 매일 등에 지고 오는 물의 질량은 12kg이 되는 것이죠.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곳까지 오자 제가 남편 대신 그 배낭을 메었습니다. 정말 무겁더군요. 남편은 정말 멜 수 있겠느냐고 눈을 크게 떴지만 제가 기운하나는 장사 아닙니까? 그런데 너무 웃기는 것은 남편에게 저는 늘 너무나 연약한(?)존재로 인식이 되어 있다는 겁니다. 제가 몸무게도 훨씬(?) 많이 나가는데도 말입니다.

"가족이라는 게 뭐겠어요? 이렇게 서로 무거운 짐이 있다면 나누면서 가는 거잖아요."

이 말은 어제 저의 뜻한 바의 첫 번째였습니다. 남편에게는 고맙다는 말을, 예슬이에게는 가족의 의미를 한 번 생각해 보게 하고 싶다는 의도였어요.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남편은 힘들다며 배낭을 달라고 하더군요. 저는 그 배낭을 예슬이에게 메어보라고 주었습니다.

"이제까지 늘 아버지 혼자서 이 배낭을 지고 산을 내려왔어. 이게 얼마나 무거운지 네가 직접 한 번 짊어져 봐. 아버지가 이렇게 하는 것은 가족에 대한 사랑 때문일 거야. 사랑에는 이렇게 힘든 책임도 따르는 거지."

이 말은 저의 뜻한 바의 두 번째이자 핵심이었습니다.

예슬이가 배낭을 메자 남편은 안쓰러워 어쩔 줄 몰라하더니 그리 많이 가지도 않았는데 급기야는 배낭을 빼앗다 시피 하더군요.

제가 예슬이를 굳이 산에 데리고 가고 배낭을 들에 메게 한 것은 지난 주 학교 아이들과 남자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한 것과 인터넷을 통해 잠깐 본 어떤 연예인에 관한 기사 때문입니다.
'22살의 신세대 연예인이 3살 된 딸아이를 자신의 동생으로 호적에 올려 키우고 있다'는 기사였어요.
그 기사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슬이가 한창 이성에 눈을 뜨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고 며칠 전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한 이야기 때문이기도 했어요.

수업 시간에 '남자 친구'이야기가 나왔었습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선생님은 남자 친구가 있다, 라고 한 뒤의 대화입니다.

"선생님 남편도 알고 계세요?"
"네."
"그런데 허락해주셨어요?"
"네."
"첫 키스는 언제 하셨어요?"
"엉?"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이 생각하는 '남자친구', 어떻게 생각되십니까?
"그럼 여러분들은 그런 남자 친구를 원한단 말입니까? 키스하고 육체적인 관계를 가지는?"
많은 아이들이 서스럼 없이 '네'라고 대답하더군요.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이는 겁니다.
"손잡고 싶고 만지고 싶고 그런 거 당연하잖아요."

이런 날은 저의 과학 수업은 삼천포로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몇 년 전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을 했었던, 이제는 졸업해 고등학생이 된 제자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아이에게는 개인적으로는 몹시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한 편으로 이해해줄거라 믿으면서요.

그 아이는 몇 번의 가출을 했었어요. 이유는 좋아하는 남자 친구와 함께 살기 위해서였죠. 남자 친구도 그 아이와 함께 있기를 원했고 둘은 여관방을 전전하며 다른 아이들과 혼숙을 하기도 하고 결국은 양쪽 집에서 가져 온 돈으로 단칸방을 얻어 살림을 차리기까지 했었어요.
어렵게 찾아 간 저에게 그 아이는 '둘이 너무나 사랑하니 이렇게 살고 싶다. 학교로도 집으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하지만 두 아이의 생활은 결코 오래가지 못했고 둘은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상처를 안고 학교로 돌아 온 아이는 정말 힘든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회인이 될 준비를 하고 있는 아이에게 제가 좋은 사람이 생기면 인사시키라고 하자 그 아이가 이렇게 말을 하더군요.
"한 동안 남자 없는 삶을 살고 싶어요."
한창 이성에 대해 관심이 있을 나이의 아이의 입을 통해 그 말을 들으면서 그 상처가 너무나 크다는 것을 느끼면서 마음이 아팠지요.

그 아이는 두려워하고 있어요. 자신의 그 아픈 상처들까지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자신의 어린 날의 그 행동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에 대해 엄청난 두려움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면서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책임이 얼마나 큰 무게인가를 새삼 절감을 하지요.

아이들의 성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호기심과 무지와 무절제로 인한 결과가 생각보다 많은 상처가 된다는 것에, 그리고 이 사회가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에게 너무나 매정한 시선을 보내고 있음에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많은 미혼모가 생겨나고 버려지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은 '어디 한 군데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도움(?)을 청하여 행동하는 결과는 대부분 불법 낙태이고요.

결과만으로 그들을 탓하기 전에 우리의 아이들이 예쁜, 가슴 설레는 사랑을 경험하고 그 사랑을 기반으로 하여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는 성숙한 성인이 되도록 도와주어야 하겠지요.

그 연예인의 기사를 보면서 저는 그 사람과 그의 가족들이 얼마나 용기 있는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 자식을 보듬어 감싸안을 수 있는 가족들의 사랑에.
하지만 한 편으로 아버지를 오빠라 부르며 자라고 있는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착찹해집니다. 너무 사랑하니 몇 년 후에 결혼을 하겠다고 하지만 그 때쯤이면 그 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 갈 정도가 될텐데 오빠를 아빠로 부르게 될까요? 아니면 영원히 오빠라 부르게 될까요?

사람이 살아가는데 사랑이라는 감정만큼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 어디있겠습니까만은 이렇듯 그 사랑에 대한 책임 또한 크다는 것을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알려주어야 할 것 같았어요.

산에서 내려 와 식탁에 마주 앉아 그 기사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어머니는 네가 남자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지. 하지만 그것이 어떤 친구여야 한다는 것은 딱 못박아 이야기 할 수 없어. 순수한 친구? 가슴 설레는 사랑? 어머니는 너만 할 때 옆 집 남학생을 좋아했었으니까. 밥도 안 넘어갈 정도의 열병을 앓은 적도 있었어.
그것말고도 나의 남학생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끊임없었어. 어쩌면 그런 과정들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해. 그런데 그 때마다 손을 잡고 입을 맞추고 하는 사이였다면 어땠을까?
그 연예인 오빠는 자신의 사랑에 대해 책임 질 수 없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자신과 가족들, 여자친구, 그리고 태어난 아기에게까지 많은 고통을 주었던 거야. 그래도 그 오빠는 아이를 받아주고 격려해주는 가족들이 있지만 그렇지 못한 가족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야.
예쁜 사랑은 좋은 추억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와 고통을 주게 된다면 너무 슬픈 일이잖니.
물 한 통 떠오는 것도 사랑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이야. 깨끗한 물을 가족들에게 먹이고 싶다는 그 마음이 힘든 것을 참을 수 있게 해주는 거야.
눈앞의 쾌락, 편안함만을 추구한다면,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 사랑이 너무나 큰 상처로 우리의 인생을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거지."

여기서 어제 예슬이에게 미처 다 하지 못했던 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가족이라는 것은 서로가 힘든 짐을 나누어 가져줄 때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이라 생각해. 이제 가족보다는 친구가 더 좋아지고 언젠가는 우리로부터 독립 해 자신의 길을 가게 될 너이지만 우린 언제나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널 지켜본다는 것을 잊지마.
살다보면 어느 길로 가야할지 몰라 방황 할 때가 있을 거야. 그럴 때 혼자라는 생각에 두려움에 떨게 되곤 하지. 하지만 기억해주기 바래. 너에게는 널 사랑하고 믿고 기다려주는 우리, 바로 가족이 있다는 것을 말이야. 우리에게 의논하고 기대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줘. 때론 길이 아닌 곳으로 갈 때도 있을 거야. 그 때도 우린 널 사랑하며 안아줄 거라는 것을.
하지만 가장 큰 믿음은 네가 네 자신의 인생을 가장 소중히 여긴다면 넌 아름다운 인생을 살게 될 거라는 거야.
난 네가 멋진 사랑을 했으면 좋겠어. 어머니가 참 많은 남학생들에게 가슴 설레는 연정을 품었었지만 그건 지금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어. 그런 과정을 잘 거쳐왔기에 아버지를 만나 사랑을 하고 이렇게 너에게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성숙한 어른들의 사랑을 너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걸 거야. 그리고 그 동안 내가 만났던 남학생들이 나를 소중히 아껴준 것에 대해 감사하고. 그들이 지금 너희 세대보다 미성숙하거나 해서 뭘 잘 몰라서는 결코 아닐 거야.
사랑하는 딸, 자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소중히 여길 줄 알거라 믿어. 서로가 성장에 자극이 되는 친구들과 어른으로 자라는 과정인 10대의 터널을 현명하게 잘 지나기를 부탁하고 또 믿을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