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이 책의 추천글을 부탁받은 지인 중에 끝내 쓰지 못하겠다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의 공통 의견은 이랬다.
“이 시기에 교사가 목소리를 크게 내서 좋은 소리 들을 줄 압니까? 거기다가 행복한 교사라니요?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을 겁니다. 교사들은 나는 힘들어 죽겠는데 어떻게 행복하다는 말을 하느냐고, 당신이나 계속 주욱~~ 행복하시지요, 라며 비난의 말들을 쏟아낼지 몰라요. 두렵지 않으세요?”
이 책의 출발은 아주 소소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두 해전 겨울방학에 아이들에게 도서관에서 빌려 온 시집의 시를 읽어주었다. 그 중 이런 시가 있었다.
키 큰 선생님이 제일 싫다
뒷자리에 앉아도
구석에 앉아도
교과서로 가려도
꾸벅꾸벅 조는 거 다 들킨다고 투덜대는 동호
돌아다니며 수업하는 선생님이 제일 싫다
(중략)
광 스피드로 진도 나가는 선생님이 제일 싫다
(중략)
- 안오일 ‘그래도 괜찮아’중 -
빨강머리 앤이 내 인생에 미친 영향이 너무 큰 탓에 나는 시를 소리 내어 읽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내가 읽어 준 시를 듣고 난 두 아이, 나이차가 일곱 살이나 되는 두 아이의 반응은 약속이나 한 듯 똑같았다.
“선생은 다 싫은 거 아닌가?”
그 순간 나의 가슴은 쿵, 하고 내려앉았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엄마가 선생님인데 너희들 너무 하는 거 아냐? 선생은 다 싫다니.....?”
아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는 나를 향하더니 또 똑같이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마음은 모르겠고, 싫은 건 싫은 거죠.”
그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왜 선생은 싫은 존재가 되어 버렸을까?’라는 안타까움에서 시작된 많은 생각들.
‘선생으로 살아 온, 지금도 살고 있는 엄마의 삶이 이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보여질까? 선생은 다 싫다고 말하는 그 속에는 선생으로 살고 있는 자신의 엄마의 삶이 포함된다는 것을 이 아이들은 알까? 나는 선생이라는 직업인으로서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까?’
그러면서 한 가지 바람을 가지게 되었다.
“어머니 학교에 가보고 싶어요. 어머니 수업하는 거 한 번 보고 싶어요.”라고 했던 아이들의 말이 생각나면서 교사로 살아 온 나의 시간들을 두 아이에게 ‘제대로’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바람.
그 일이 있은 며칠 후, 대학교 4학년 올라가는 큰 아이의 졸업 후의 진로에 관해 가족들이 모여 이야기 하던 중 미술 교사는 어떠냐는 이야기가 나오자 큰 아이는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선생은 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따라 나온 말이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어요. 선생은 너무 답답하잖아요.” 었다. 아이의 그 말에
‘왜 교사같이 창의적이고 변화무쌍한 직업을 답답하다고 할까?’하는 생각과 함께 시를 읽어준 날 가졌던 바람이 더 간절해졌다. 아이들에게 ‘선생’으로서의 삶을 제대로 이야기 해주어야겠다는 간절함을 넘어선 절실한 바람이 생겼다. 그렇게 시작한 글이 결실은 엉뚱(?)하게 맺게 되었다.
나는 늘 말한다.
‘나는 시행착오가 너무도 많았던 교사’였다고.
나는 사범대학을 나왔지만 한 번도 어떤 교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 없이, 졸업하고 며칠 후에 첫 출근을 했고 첫 수업을 했었다. 처음에는 고민도 없었다.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 조차도 모른 채 정신없는 시간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조금씩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원인을 학생들과 열악한 교육 환경과 불합리하고 경직된 교육 행정의 탓으로 돌리고 불만만 쏟아내는 시절을 보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은 가장 큰 원인은 너무 준비가 되지 못한 상태에서 열정하나로 정말 딱 하나 “열심히 하겠습니다”만으로 시작했던 나에게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변해야 하는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침밥을 먹기 위해 식탁에 앉으면 바로 보이는 벽에 첫 담임을 했던 아이들과 가을 소풍가서 함께 찍었던 사진이 붙여져 있다. 열정은 하늘을 찔렀으나 그들을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 미안한 마음만 가득한, 그래서 볼 때마다 그리움보다 미안한 마음이 가장 앞서는 55명의 아이들이 그곳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사진을 보면서 교사로서 나의 하루에 대한 바람을 스스로에게 말한다.
‘저 아이들에게 했던 시행착오는 오늘 만나는 아이들에게는 하지 말기를... 저 아이들에게 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오늘 만나는 아이들에게는 해주고 집으로 돌아오기를...’
20년도 넘게 아침마다 그 사진을 보며 이 바람을 이야기 하며 출근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이 고맙다. 내 인생 최고의 멘토가 그 아이들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러기에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나는 대한민국의 행복한 교사라고.
내 삶의 가장 큰 가치는 행복이고, 그 다음은 나눔이다. 나는 내가 찾은 교사로서의 행복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이 책은 내가 세상을 향해 내미는 선물이라 생각한다. 교사를 꿈꾸는 우리 아이들과 지금 교사라는 직업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동료들에게, 더불어 같이 행복하자며 내미는 이 책을 따듯하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 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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