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과 점심을 먹다가 참으로 모순된 두 이야기를 한 자리에서 들었습니다.
“이번에 **병원 딸내미 모대학 사범대 수시에 합격했다며?”
“그러게. 얼마나 좋겠어? 우리 애도 내년에 척 붙어 줘야 할 텐데...”
그렇게 한 참을 아이들 대학에 관해 이야기 하더니 갑자기
“근데, 우리 애 이제 고2 올라가는데 걱정이야. 학교는 뭐 하나 해주는 건 없고. 학원 알아보고 과외 팀 다시 짜야 하는데 마음에 차는 애들이 잘 없네.”
“그러게 말이야. 이건 학교에 안 보낼 수도 없고....”
이렇게 또 한 참을 학교와 선생에 대해 격분하며 요즘 선생들 도대체 뭐 하는 건 지 알 수가 없다며 비난의 수위가 절정을 향해 치닫더니, 또 갑자기
“근데 자기애는 어디 보낼 거야?”
“우리 애? 자기는 간호학과 가고 싶다는데 그거 너무 힘들잖아. 하루 종일 아픈 사람 돌봐야 하고 의사들 옆에서 보조나 하고 지시나 받는 거 뭐가 좋겠어. 나는 그냥 사범대학가서 편하게 선생했으면 좋겠는데... 모르지 뭐. 일단 성적이 문제니까.”
어떠신가요?
제가 얼굴도 무지 크지만 귀가 참 큽니다. 제 귀를 보고 놀라지 않은 사람을 본 적이 없을 정도랍니다.^^ 귀가 커서인지 소리도 교무실에 있으면 다른 사람들의 사적인 이야기가 너무 잘 들려, 본의 아니게 자꾸 듣게 되는 것이 미안해서 헤드폰을 끼고 있는 경우가 많을 정도거든요. 아이들과 수업 할 때는 소곤거리는 소리까지 잘 들려서, 지금 두 사람 하는 이야기 다 들려요. 이런이런 이야기 하고 있는 중이죠?, 라는 제 말에 아이들이 기겁을 할 때도 종종 있고요.^^ 아이들은 선생 말고 비밀첩보원을 했어야 한다며 깔깔거리기도 하고요. 그러다보니 오늘처럼 정말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아이들 대학 이야기에 관해 <기다리는 부모가 아이를 꿈꾼다>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묻는다.
“큰 애 어느 대학 다녀요?”
나는 대답한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어요.”
사람들은 다시 묻는다.
“디자인 전공요? 그런데 무슨 대학 다녀요?”
“집요하지. 끝끝내 대학 이름을 알아내야, 그래야, 나가떨어진다니까.”라던 지인의 말이 참으로 아프게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사범대학에 수시 합격한 아이를 둔 친구가 부럽고
학교와 선생들은 싫고 미덥지 못하고
우리 아이는 사범대학에 갔으면 좋겠고. 편하게 선생하기를 바라는 마음....
지난 번 올린 <학교폭력 해결 방안을 위한 치열한 고민>이라는 글에 이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나. 교사를 비난하면서 아이에게는 교사가 되라고 권하는 부모
부모님들이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입시위주의 교육이, 학교에서 성적순으로 줄 세우기가 우리 청소년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그로 인한 커다란 스트레스가 청소년 폭력의 한 원인이라고 말하며 학교를 비난합니다.
하지만 학교로 하여금 입시위주의의 교육을 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누구일까요?
중학교는 각 교과별로만 석차가 나옵니다. 국어 몇 등 영어 몇 등. 하지만 부모님들은 그 석차를 원하지 않습니다. 내 아이가 반에서 몇 등, 전교에서 몇 등인지를, 그 석차를 꼭 알고 싶어 합니다.
학기 초에 아이들의 선수 학습 정도와 관계 형성 등의 이유로 교과서 진도를 바로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면 당장 교장실로 전화 옵니다. 수업은 안하고 뭐하느냐고? 저는 분명 수업을 하고 있는데 수업은 왜 안하느냐고 묻습니다.
저는 과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과학은 계절적인 요인이 매우 중요합니다. 계절에 맞추어 교과서 진도를 바꾸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다시 교장실로 전화 옵니다. 학원진도와 맞지 않으니 그 선생보고 교과서 순서대로, 학원 진도와 발맞추어 진도 나가게 하라고 말입니다.
종례 후 훈화가 길어지면 난리 납니다. 학원차가 기다리고 있는데 무슨 담임 잔소리가 그리 많으냐고. 꼭 해야겠으면 우리 아이만이라도 중간에 나와서 학원 차 타게 해달라고 합니다.
학부모님들은 오로지 공부를 열심히 가르치고 좋은 성적 받도록 학교와 교사들에게 요구합니다. 그런 간곡한(?) 부탁을 해놓고 성적위주의 학교라서 석차만 따지는 담임이라서 아이들이 불행하니 당신들이 책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훈화도 하지마라 수업시간에 다른 이야기 하지 말고 진도 열심히 나가라고 해놓고 학교에서 인성교육을 안 해서 이렇다고 또 책임지라고 합니다.
이제 와서는 성적도 좋고 인성도 잘 갖추도록, 둘 다를 잘 할 수 있는 학교와 교사여야 하는데 그런 능력이 안 되는 교사들은 다들 그만두라고 합니다.
아이들만 남게 되는 학교는...... 문을 닫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내 아이는 교사가 되기를 바라고 권합니다.
얼마 전 신문기사에서 고교생 선호도 1위 직업 교사, 부모 선호도 2위 직업 교사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 사회는 학교폭력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이들로 인해 학교와 교사가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도움을 주지 못해 아이들을 죽음으로 가지 몰고 갔다고 교사들을 아프게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인터뷰에서도 아이들이 학교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 교사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왜? 무엇 때문에 교사가 되려고 할까요?
기사에 난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싶다는 한 학생의 이유는 이랬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요. 정년퇴임 그 전까지는 일단 심각한 일이 아닌 이상은 안정적으로 계속 직업을 유지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학부모들은 교사가 도대체 뭘 하느냐, 제대로 하는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비난을 하면서 내 아이는 교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안정적이고 편할 것 같아서라는 이유와 함께.
지금 저희 교사들을 맹비난하시는 분들 중에서도 분명 내 아이는 교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계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 분은 당신의 아이가 어떤 교사가 되기를 바라는 것일까요? 안정적이고 편안하다면서 권하는 교사라는 직업.... 어느 정도로 하면 편안한 직업이 되는 걸까요? 편안하지만 큰 문제는 없어서 정년까지 할 수 있도록 하라고 가르치실 것인지.....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 하고 싶은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싫은 학교와 교사를 자신들의 힘으로 변화시켜보고자, 학생이 아닌 교사가 되어서 현장에 오고 싶어 한다고... 그래서 저는 그 아이들에게 희망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교사가 되기를 권하시는 부모님들도 당신 자녀들이 가진 세상을 보듬을 수 있는 따듯함을 다음 세대 아이들을 위해 힘들지만 풀어내며, 실천하며 살기 바라는 마음에서, 힘든 길인 줄 알지만 소명감을 가지고 걸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일 거라 믿고 싶습니다.
저는 학창시절 학교가 참 싫었던 학생입니다. 가난한 집 오남매의 맏이로 중학교 1학년까지 시골에서 다니다가 대구라는 거대한 도시로 전학 온 시골뜨기 아이였던 저에게 학교는 결코 좋은 기억을 남겨주지 못했었지요. 시골에서 1년 내내 영어 알파벳만 배우다가 갑자기 영어 문장을 줄줄 읽는 영어시간은 정말 너무 힘들고 힘들었고요. 한 때 제 인터넷상의 대표 아이디중 하나가 juice입니다. 칠판에 적힌 juice를 읽어보라는 영어 선생님의 말씀에 파닉스를 베운 적이 없던 저는 ju -주, i-이, ce-쎄, 라고 읽었어요. 교실은 온통 웃음바다가 되었고 영어선생님은 분노하셨지요.
“주이쎄? 주이쎄? 뭘 달란 말이야? 넌 주스도 먹어 본적이 없냐? 어떻게 이걸 읽지 못한단 말이야?”
그 일로 인해 저의 영어에 대한 열정은 완전히 말라버렸고, 소심한 시골뜨기 전학생이 영어선생님에게 복수한답시고 선택한 방법이
“씨이~~~이제부터 내가 영어 공부하나 봐라.”
였었지요. 그 이후는 상상이 가실 것입니다.
영어선생이 미워 영어공부를 포기하는 선택을 한 것인 저인데 그 후 바닥을 치는 영어 점수를 받을 때마다 저는 그 영어 선생님을 원망했었지요. 저에게 모욕과 상처를 준 선생님을 향해 이런 복수를 할 수도 있었는데...
‘내가 영어, 당신보다 더 잘해버린다. 그래서 당신 코를 납작하게 해 줄 거야.’
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요? 결국은 제 선택이었는데도 저는 오랫동안 그 선생님 탓 만하며 상처에 또 상처를 제가 덕지덕지 입히고 있었던 거지요.
일명 자타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저에게 학교는 너무 많은 규제와 통제, 획일화를 요구했고 숨통이 막히는 것 같은 시간들이었지요. 아마도 미성연자관람불가 영화를 저희 학교에서 가장 많이 본 아이도 저였을 겁니다. 저에게 학생부장의 ‘하지마’는 ‘해. 해. 꼭 해봐’라는 말처럼 들리곤 했었거든요. 학교와 교사가 싫었던 저였기에 단 한 번도 선생을 꿈꾸지 않았는데... 그런데 저는 선생이 되었습니다.
치과의사가 되라던 어머니는 치대가 보통 의대처럼 6년을 공부해야한다는 것을 원서 쓰러 학교에 와서야 처음 알게 되었고 치과의사 딸이 벌어다주는 돈을 기대했던 어머니의 꿈이 무너진 것이 너무 화가 나고 서러워 교무실에서,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목 놓아 울다가, 이 빼는데 무슨 6년이나 공부하느냐며 분노하시다가 또 통곡을 하시고. 그런 어머니 옆에서 부끄러움과 모멸감에, 상처받은 자존심을 어쩌지 못해 얼굴을 들지 못한 채, 바들바들 떨며 서 있던 고 3시절의 저였습니다.
가난한 집의 맏이가 갈 수 있는 대학은 등록금이 싼 국립대 사범대학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딸의 진로를 선택하셨던 어머니. 태어나 그 날까지 딸의 꿈을 모조리 꺾으셨던 어머니는 급기야 아는 사람이 있어 비싼 대학 교재를 얻어 쓸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생물교육과를 선택해주셨고, 저는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생물교육과 학생이 되었습니다. 저는 과학을 잘 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데, 과학 중에서는 물리가 제일 좋고 생물이 제일 싫은데 말입니다. 죽어도 사범대학은 싫다는 딸을 설득하기 위해 점쟁이에게 사주팔자에 선생밖에 없으니 선생이 안 되면 엄마도 죽고 저도 죽고 모두 죽는다고 이야기 해달라는 부탁까지 해가면서. 그렇게 그림을 좋아하던 미대지망생은 미대의 ‘미’자도 입 밖으로 꺼내보지 못하고 어머니로 인해 치대가기 위해 이과 가서 공부하다가 엉뚱한 길을 걷게 되었지요. 과학교사의 길을....
그리고 25년이 시간을 교사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 자신에게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선생님이 수학 선생이 아닌 것을 정말 고마워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아직까지 수학을 못하는 아이를, 수학이 싫은 아이를 이해를 못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는 수학을.... 여러분들 표정이 지금 어떤 지 한 번 보여주고 싶습니다. 밥맛이라 그거죠? 내가 수학 선생 했어 봐요. 여러분들은 다 죽었스~~~어. ggg 그런데 선생님은 과학은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 과학을 가르칩니다. 여러분 마음을 안다는 거지요. 선생님이 힘들게 공부해봤으니까 여러분들이 힘들 거라는 거, 하나도 재미없을 수 있다는 걸 아니까...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학교를 만들까, 어떻게 하면 아침에 눈떠서 학교에 오고 싶도록 만들까, 궁리 무지 하거든요.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수업을 할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쉽게 가르칠까도 매일매일 고민하고요. 만약 선생님이 학교를 싫어해보지 않았다면, 학교와 선생님들로 인한 상처가 없었다면, 그리고 선생님이 좋아하는 미술이나 음악, 국어, 수학 뭐 이런 과목의 선생님이 되었다면 선생님은 지금과는 참 많이 다른 교사가 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요. 여러분들을 정말 많이 힘들게 하는....선생님이 정말 싫어하던 학교를 만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학교와 교사에 관한 기사가 뜨면 수많은 악플이 달리는 이유 중 하나가 학교를 졸업한 20대 이후의 사람들이 그 문제 자체보다는 자신들의 기억에 있는 학교와 교사에 대한 감정들이 이입이 되어 더 강하게, 아프게 표현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 역시 아픈 기억이 훨씬 더 많은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지만 그래도 돌아보면 분명 아름답고 따듯한 기억도 있는데....
학교와 교사가 싫다는 말씀에 저도 공감을 하는 사람입니다. 제 기억 속에도 아픈 기억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하지만 간곡한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잘못하고 있다고, 나쁘다고 비난하고 나무라지만 마시고 저희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주십시오. 여러분들이 간직하고 계시는 학교와 교사에 대한 좋았던 기억, 아름다웠던 추억들을 말씀해주시면서 이런 학교를 만들어 달라고 저희들을 제대로 된 길로 이끌어 주십시오. 몰라서 못하느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저희들도 나름 애는 쓰고 있는데 너무 못한다고 몰아세우시니 점점 더 방향을 잃어가는 느낌입니다. 저희들을 조금 더 잘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정말 그런 것이 단 한 가지도 없는 학교와 교사들뿐이었는지요?
좋은 피드백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학교에 관해, 교사에 관해 나는 이런 추억이 있다, 나는 이런 따듯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내게도 이런 깔깔 웃던 순간이 있었다, 이러니 좋았더라, 그러니 이런 건 듣고 배우고 닮으려고 노력해라, 라고.
욕이 입술을 뚫고 나오려고 해도, 한 번만 참아주시고, 잠시 심호흡을 하고 눈을 감은 채 기억을 샅샅이 뒤져, 정말 좁쌀만한 것이라도 좋으니 좋았던, 행복했던 시간을, 순간을 떠올려주십시오. 이 게시판을 여러분들의 그 기억들로 채워주십시오. 겸허히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배우고 닮으려 노력하겠습니다.
오늘은 유쾌하고 따듯한 수다의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음 아고라 수다방에 함께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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