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한파가 준 빙하가옥(?) 체험 학습^^

착한재벌샘정 2011. 1. 24. 11:36

여러분의 집은 한파에 괜찮으셨는지요?

저희는 16일인 지지난 일요일부터 지난 금요일까지 한파로 인하여 본의아니게 전가족이 특별한 체험학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청학동에서의 시간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남편과 저는 아이들에게 '청학동 체험학습' 온거라 생각하라 이야기를 했지요.^^ 시골집은 거의 이 정도의 외풍은 있는데 견딜만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저희의 생각이었습니다. 사실 고생은 제가 가장 많이 했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은 크게 추위를 타지 않는데 저는 유난히 추위를 타는 사람이거든요. 대한민국 최고의 내복 애용자인 저인지라..ㅋㅋㅋ 

이번 한파로 인해 큰 경험을 했답니다.

친정부모님을 모시고 1박2일 여행을 다녀온 일요일 저녁, 집에 도착하니 허걱.....물도 난방도 그 어떤 것도 안되는 겁니다.

방은 냉방이고 당장 화장실이 제일 문제더군요. 그 와중에 예슬이는 화장을 어떻게 지우느냐 걱정을 하고. 20년이 넘은 아파트인지라 가끔 물이 어는 경우는 있었지만 드라이기로 조금만 녹이면 금방 녹곤했기 때문에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이번 한파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나 봐요.^^ 1시간 넘게 드라이기를 들고 녹여도 전혀 반응이 없는 겁니다. 전기 매트가 있으니 그래도 잠을 자는데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당장 내일 아침 6시 기차를 타고 출장을 가야하는데 세수할 물이 문제더군요.

9층에 사는 친구에서 전화를 해서 새벽 5시에 씼으러 가겠다 부탁을 했지요. 남편은 목욕탕을 가라고 했지만 저 혼자 씼는게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 화장실 물을 해결해줘야 하니 친구에게 신세를 지기로 했습니다.^^ 다음 날 새벽 5시에 친구 집 현관앞에 가니 친구는 발소리만 듣고 얼른 문을 열어주더군요. 아마 저를 위해 알람까지 맞춰두고 잔 모양이었어요. 얼마나 고맙던지요. 그래서 친구가 좋은 건가봐요.ㅎㅎㅎ 샤워를 하고는 들고 간 찜통에 물을 가득 받아 낑낑대며 들고 집으로 갔답니다. 그런 저의 등뒤로 친구는

"아이들 화장실은 우리 집에 와서 보라고 해. 씻는 것도 그렇고. 어쩌니 어른들은 나간다치지만 아이들은 하루종일 집에 있어야 하는데.... 춥고 불편해서...."

그 친구네는 수리를 싸악 한 집이라 그런 지 한파에도 끄덕이 없더군요.ㅎㅎ

남편은 출근길에 사우나 가서 씻고 가겠다고 하고 아이들은 동네 목욕탕에 가서 씻으면 된다며 걱정 말라더군요.

9시쯤 집에 전화를 하니 아이들은 목욕탕 가서 씼고 왔고 화장실 물은 찜통으로 날라다 해결을 하면 되니 제발 그런 걱정 말라고, 자기들은 더 이상 아가들이 아니라고.ㅋㅋㅋ

저녁 9시 출장에서 돌아와 보니 아침에 먹고 물이 없어 하지 못했던 설겆이가 깨끗하게 되어 있는겁니다. 물도 안나오고 난방도 안되는 집에서 하루종일 지낸 정빈이가 힘든 출장에서 돌아 온 엄마 서글플까봐, 저를 위한 마음에서 해놓았다 하더군요. 어찌나 큰 감동이 밀려오던지요. 눈물이 다 고여오더이다. 

그렇게 저희 가족의 일명 '빙하 가옥 체험'기는 시작이 되었지요.

그래도 다행인 것이 그 다음날에는 집안을 통과하여 앞베란다에 있는 수도로 이어진 관이 녹아 찬물이 나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비록 찜통에 물을 데워 예전처럼 고무통에다 물을 담아 그릇을 씻고 헹구는 설겆이를 해야하고 세수물도 일일이 데워써야 했지만 물이 나온다는 사실이 그렇게 고마울수가 없었어요. 남편과 저는 예전 생각난다며 추억(?)에 젖고 아이들은 부모의 어린시절을 엿보는 것 같다고 하고. 사실 예전에는 다들 그렇게 살았었는데, 그쵸? 변기에 일일이 물을 채워야 하는 수고를 해야하면서 아이들은 물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느겼다고 합니다.

제가 출근을 하고 난 뒤 물을 데워 쓰는 것이 귀찮아 9층 지원이네 집에 샤워를 하러 간 정빈이에게 지원이 엄마가 그랬다네요.

"어떻게 사니?"

정빈이의 대답은 이랬다고...

"그냥 사는데요?"

그런 정빈이를 보고 그 친구

"하여튼 너희 가족은 여러모로 대단하다, 대단해."

수요일, 출근해 있으니 친구가 또 전화가 왔습니다.

"정빈이라도 우리 집에 내려가라고 해. 남편도 조금 불편해도 우리 집에 와서 며칠 녹을 때까지 같이 지내라고 하는데.... 내가 얼마나 걱정이 되면 꿈에 정빈이가 감기가 들어가지고.... 당장 안 녹는다는데 정말 걱정이다."

이웃이 얼마나 따듯하고 고마운가를 저희 가족 모두 감사한 마음으로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목요일이 되니 드디어 수도관이 녹았는지 집안의 모든 수도에서 물이 나오는 겁니다. 거의 유전 발견만큼 기쁘더이다. 이제 앞베란다에서 일일이 물을 받아오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니 어찌나 편하던지요.ㅎㅎㅎ그렇게 하기 싫던 목욕탕 청소도 콧노래가 저절로 나오지 뭡니까.

그리고 드디어 금요일 오후 5시 27분. 보일러가 돌아가기 시작했고 저희의 '빙하 가옥 체험'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온수가 나오고 방이 따듯해지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더군요. 정말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는거예요.

"행복이라는 것은 참 상대적이야, 그치? 아마 이번 며칠동안 매일 조금씩 조금씩 행복해지는 경험을 했을 거야. 물이 하나도 안나오던 첫날에 비해 찬물, 그것도 앞베란다 한 곳에라도 나올 때 그게 어디야, 그치? 그러다 찬물이지만 화장실에도 물이 나오니 더 행복하고, 보일러 돌아가니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잖아, 맞지맞지?"

이러는 저를 아이들은 빙굿이 웃으며 바라보더군요.

앞에서는 추위 타는 제가 가장 고생했다했지만 가장 고생한 것은 하루종일 집에 있었던 정빈이입니다.^^

보일러 될때까지 친정에라도 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이런 기회도 그렇게 흔하지 않다는 생각에 온몸으로 체험해 보기로 했었습니다. 언제든 수도꼭지만 열면 나오는 물, 보일러 스위치만 누르면 따듯해지는 방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어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저희 가족 모두 감기 걸리지 않고 체험학습을 끝낸 거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의 뜻을 알고 춥고 힘든 시간을 잘 견뎌 준 예슬이와 정빈이가 너무 기특하고 고맙고요.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런 경험은 하지 않고 살아가면 더 없이 좋겠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잖아요. 가족이 함께 있을 때, 가족이 같이 해 본 이 경험들이, 춥지만 서로에게 기대어 체온을 나누던 기억이 아이들에게 삶의 힘을 조금은 키워주었으리라 믿어 봅니다.  

그리고 이웃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은 시간들이었기에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마음도 커지리라 생각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