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사랑, 결혼하면 끝일까?

<연재 30>사랑, 결혼하면 끝일까?

착한재벌샘정 2009. 9. 7. 21:48

 

 

여우짓 그녀의 이야기 10

      - 장미꽃다발은 받기만 하는 걸까?

 

남편은 최수종이 지구를 떠났으면 한댔어요. 아내를 위한 이벤트로 유명하잖아요. 자신은 조금이라도 따라해 볼 생각을 않고 최수종을 지구에서 떠나게 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남자, 처음에는 진짜 너무 한다 싶은 거예요. 남편은 정말 무심한 사람이였어요. 생일도 결혼기념일도 다 여유 있는 사람들 이야기라나요. 그런 것에 쓸 돈이 어디 있느냐고, 설사 돈이 있다 하더라도 자기는 낯간지러워 못한다나요. 간지러우면 좀 긁어가면서 하면 되지, 뭐 이런 생각까지 들었지만.... 가만 보면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저희 시댁은... 시어른들이 매우 검소해서 외식도 거의 안하고 무슨 날이라고 해도 선물을 하거나 하지는 않더라고요. 그냥 미역국 한 그릇이면 된다는 식이라.... 선물을 주고받는 것도 그렇고 카드 한 장 쓰는 것도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그러면서 핑계까지 대는 거예요. 그런 이벤트를 많이 하는 사람은 평소에 잘 못할거라는... 참나. 그러는 자기는 뭐 평소에 뭘 그렇게 잘 한다고....

결국 결혼해서 맞은 내 첫 생일에 이벤트는커녕, 하긴 대단한 이벤트라고 할 수도 있죠. 부부싸움을 했고 대판 했으니. 그런데 더 기가 찬 것은 자기도 좀 미안했던 지 차나 한 잔 하러 가자더군요. 그럴 경우 어떤 상상을 하겠어요? 나만 그런 건 아닐걸요. 적어도 분위가 좋은 까페에서 바리스타가 갓 뽑은 맛있는 커피를 상상하는 게 말이에요. 그런데 남편이 데리고 간 곳이 어딘 줄 아세요? 우리 동네가 내려다 보이는 뒷산이었어요. 구민운동장 한 귀퉁이에 있는 커피 자판기 앞이었다니까요.

“어때? 여기 경치 좋지. 우리 동네가 한 눈에 보이고... 야경이 끝내주잖아. 자, 당신 좋아하는 블랙커피.”

하면서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내미는 거예요. 하도 기가 차서 가만있었더니 내가 감동 먹은 줄 착각했는지 한 술 더 뜨는 거예요.

“이런 곳에 데리고 오는 남편은 아마 나 밖에 없을 거다. 400원에 이런 멋진 야경이라니. 자기도 좋지? 난 몇 천원씩 주고 커피 마시는 인간들 그렇게 한심해 보일 수가 없더라고. 나는 세상에서 자판기 커피, 그것도 밀크 커피가 제일 맛있던데. 이렇게 동전 몇 개면되는 것을 무엇 하러 그 돈을 써대는 지. 하여튼 세상에는 정신 나간 놈들 많다니까. 너 정말 시집 잘 온 줄 알아라. 분위기 알지, 알뜰하지.”

지금 생각하면 틀린 말 아니라는 거 알지만 그날은 어찌나 눈물이나던지. 세상에 내가 제일 불쌍한 것 같더라니까요. 쪼잔한 남편 만나 평생 이러고 살아야 하는 가 싶은 생각도 들고. 생일에 구민운동장 귀퉁이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여자가 세상에 또 있을까 싶은 것이. 그날 이후 휴대폰에 남편은 이렇게 저장이 되었어요. 쫀쫀대장이라고. 여자들이 가지는 환상 같은 것이 있잖아요. 그게 한 방에 무참히 깨져버리는 것 같았죠.

남편이 출장을 갔다 오는 날이었어요. 기차역으로 마중을 가기로 했는데 우연히... 진짜 별 생각 없이 시선을 준 곳에 꽃집이 보이고 빨간 장미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어요. 출장 갔다 오는 남편이 한 아름 제게 그런 장미를 안겨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보고 싶었어, 하는 한 마디와 함께. 그런 상상을 하다 문득 내가 받고 싶은 것을 남편에게 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기차역으로 가면서 꽃다발을 안고 갔죠. 남편의 반응요? 당연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이 휘둥그레졌죠.

대합실까지 들고 간 장미꽃을 남편에게 내밀며 말했죠.

“고생했죠? 수고한 당신에게 주는 선물이에요.”

어안이 벙벙해 있는 남편에게 장미 다발을 안겨주면서 귀에 대고 속삭였죠.

“그리고... 보고 싶었어요. 많이.”

그날 저 무 지 고생했습니다. 장기 출장이라 짐이 꽤 됐었는데 꽃다발을 받아 든 남편이 그 많은 짐을 저에게 몽땅 떠넘기고 자기는 달랑 그것만 들고 가는 거예요. 아파트 주차장에 내려서도 짐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장미 다발만 들고 가지 뭐예요. 

“이게 뭐야? 서류 가방이라도 하나 들어요.”

“못 들어. 당신이 다 들고 와.”

“뭐요? 꽃다발 까지 줬구만.”

“꽃다발을 줬으니 그러는 거야. 내가 이 장미다발을 들고 그런 서류 가방, 여행 가방을 들어야 겠어? 이렇게 장미 다발만 들고 있어야 폼이 나지. 그러니 당신이 다 들고 와.”

그러면서 장미 다발에 얼굴을 갖다대고 향기를 깊이 들어 마시고 고개를 드는데.... 혼자 보기 아까운 장면이었어요, 정말. 장미꽃 위에 뿌려놓은 금박이 남편의 코끝에 묻어 반짝이는 거예요. 빨간코 사슴 루돌프가 아니라 금색코를 가진 남편은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띠고 있는데 어찌 된 일인 지 제 코끝이 찡해지는 거예요. 결국 빨간코는 내가 된 거죠. 마누라 짐 들게 하고 저 혼자 꽃다발 들고 아파트 주차장을 지나 현관을 통과 엘리베이터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남편. 엘리베이터 앞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살짝 놀라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는 거울을 통해 슬쩍 내 눈치를 보더군요. 거실 소파에 앉아서도 꽃다발을 한 동안 들고 있던 남편.

“고마워.”

“뭐가요?”

“장미꽃다발. 진짜 상상도 못했어.”

“아,...... 그냥 당신이 출장에서 돌아 올 때 나에게 해주었으면 하는 것을 당신에게 해 준 거예요. 당신이 기차역에서 내게 그걸 내미는 상상을 하니까.... 좋더라고요. 그래서.....”

남편은 한동안 아무 말을 못하고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었어요.

“미안해..... 그러고 보니 한 번도 당신에게 사 준 적이 없네. 난... 난 말이야 장미 한 다발보다는 삼겹살 한 근이 더.... 그게 더....”

“당신 말 틀리지 않아요. 그런데 어떨 때는 삼겹살 안 먹고 쫄쫄 굶으면서도 장미다발이.... 다발이 아니라 한 송이라도.... 그게 더 좋을 때도.....”

거기까지 말을 하고는 쏟아지는 눈물에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는 거예요. 혼자 많이 서러웠던 것이 터져 나오면서. 

자판기 커피를 내 밀던 남편 옆에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여자들이 원하는 것을 남자들은 왜 모를까? 그렇게 큰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닌데.... 알사탕만한 다이아 반지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 사람들이 다 부러워하는 특별한 이벤트를 원하는 것도 아닌데.... 그저 자기 여자가 원하는.... 소박한 바람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것이 너무 서운했어요. 그 일은 늘 내 마음에 결코 녹을 수 없는 앙금이 되어 박혀 버린 것 같았어요. 그리고 가장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남들은 안 그런데 내 남편만, 이 사람만 그런 것 같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친구를 만나 남편 험담을 하며 수다를 떨어 보았지만 그것도 별로였죠. 결국 내가 멋진 남자를 고르지 못한 것이라는 결론이니까. 다들 그러잖아요. 누구를 탓하느냐고. 내 눈 내가 찌른 것이라고. 남편 험담, 그거 누워 침 뱉기와 다름없다는 걸 알았죠. 후련하기는커녕 뭔가 하나가 더 덕지덕지 붙은 것 같은 느낌. 그리고 그 때 깨달은 것이 말이라는 것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이죠. 친구에게 남편의 이야기를 하면 속이 후련할 줄 알았는데 어찌 된 일인 지 이야기를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자꾸만 할수록 괘씸하고 서운한 것이 희석되기는커녕 점점 더 생생해지는 것이, 처음보다 더 서운하고 더 괘씸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가만, 말을 하다 보니 더 속상하네. 생각할수록 더 괘씸하네.’

싶은 것이요. 그러다가 우연히 잡지책의 기사가 눈에 확 들어오는 거예요. 어쩜 그렇게 내 맘을 그대로 표현을 해 두었는지..... 말은 할수록 더 강화가 되니 서운하고 속상했던 것은 최대한 빨리 잊어버리고 말로 문장을 만들어 이야기 하지 말라는 거였어요. 꼭 나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 같았죠. 대신 작은 일이라도 자꾸 칭찬하고 자랑을 하라고. 그러다보면 그 당시에는 그렇게 크게 고마운 것도 아니고 감격할 일도 아닌데 곱씹을수록 고맙고 자랑스러워지는 것을 느끼게 될 거라고. 솔직히 속상한 일은 열 받으니 저절로 입이 열리고 술술 이야기하기 쉽지만 자랑, 별로 없기도 하지만 그걸 이야기 한다는 게 쉽지가 않잖아요. 근데 그게 마법과 같은 효과를 가져다 줄 거라는 말에 혹시나 싶은 게 마음이 끌리는 거예요. 그래서 자랑할 게 있나 싶어 찾아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 거예요. 자판기 사건 이후 남편의 모든 것이 내 맘에 들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어디 한 군데 이쁘다 싶은 구석을 찾기가 힘들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스스로 알게 되었냐고요? 아니요. 잡지책에 그렇게 써 있더군요. 똑같은 사람이지만 어느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평소에 연예인들 사생활이나 적혀 있다는 편견을 가지고 봤던 잡지책이 그렇게 도움이 되기는 처음이었어요. 나는 내 마음에서 남편을 아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남편은 좋은 점도 많은데 나는 애써 그것은 보지 않으려 외면하거나 인정하지 않고 내 마음의 잣대로 그것도 엄청 비딱한 잣대로 남편에 대한 판정을 내려놓고 있었던 걸 알게 되었죠. 남편은 아내인 나를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을까를 묻는 대목에서는.... 내가 어때서? 나 같은 마누라가 어디 있다고? 하면서 애써 스스로를 변명해보았지만.....

내 마음에 그 사람이 안차듯이 그 사람에게도 내가 반도 안차는 아내라면..... 남편이 소주잔을 마주한 친구들에게 ‘우리 마누라 말이야’하면서 내가 친구에게 한 것처럼 똑같이 하는 모습을 그려보니....

‘내가 뭘? 뭘? 난 남편 생일에 구민운동장에 구석에서 자판기 커피를 사 주지는 않는다 뭐. 내 험담을 할 일이 뭐가 있다고. 나만큼만 하라고 해라. 내가 열 가지 할 말이 있다면 자기는 한 가지, 아니 많아야 두 가지.... ’

하지만 그거 참 공허한 외침이더라고요. 집으로 돌아 와 일요일이라 거실 소파에 뒹굴고 있는 남편을 보는데.... 잡지책에서 본 대로 해야지, 마음은 그런데 리모컨을 쉬지 않고 돌려대느라 마누라 파마 한 것도 모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자 순간 울컥 하는 거예요.

파마 한 거 안 보이느냐고 물으면?

그게 파마 한 거야? 돈을 들였으면 뽀글뽀글 파마한 표라도 나야지, 그게 그거구만, 할 걸.

웨이브 파마도 모르느냐고 받아치면?

그런 파마도 있냐? 여자들은 왜 머리를 가만 안 두고 못 살게 구는 지 알 수가 없어. 그런다고 인물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할 테지.

마누라에게 그렇게 밖에 이야기 못해, 라고 목소리 낮춰 싸늘하게 말하면?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지. 뚫린 입으로 말도 못 하느냐, 할 테고.

리모컨 빼앗아 텔레비전을 꺼버리면?

이 여자가 텔레비전도 마음대로 못 보게 하고, 에이. 이러니 주말에 집에 있으면 안 된다니까, 하면서 얼씨구나 윗도리 들고 현관을 박차고 나가 기원으로 달려 갈 거고.

그러다 까르르 혼자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거예요. 영화 한 편 만들기 쉽더라고요. 혼자 시나리오에 1인 2역 연기까지. 내 마음 속에 어떤 남편을 앉혀 놓고 사는 지 새삼 알겠더라고요. 

지방 출장을 간 남편이 문자를 보내왔어요. 뭐하고 있느냐고. 평소 좀처럼 보내지 않는 문자였기에 처음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회의가 엄청 지루한 가 보네. 지겨우니까 마누라한테 문자를 다 보내고. 내가 뭐 자기 심심풀이 땅콩인줄 아나?’

그러면서 

<뭐하긴 청소하고 있지. 거실 벅벅 기어 다니면서. 이 시간에 내가 뭘 하겠어?>

이렇게 답글을 보내려다가 생각해보니 나라는 여자가 참 재미도 매력도 없다 싶은 거예요. 내가 남편에게 지금 뭐하고 있느냐는 문자를 보냈는데 ‘회의 중이지. 층층시하 눈치 보면서. 이 시간에 내가 뭘 하겠어?’라는 답글이 온다면? 어떻게 이렇게 재미없는 사람이냐고 또 한바탕 혼자서 난리를 치지는 않았을까 싶은 것이.

떨어져 있는 일주일 동안 남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나는 남편을 내가 보고 싶은 눈으로만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편으로 남편은 어떤 눈으로 나를 보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더군요. 그러다가 마중가면서 장미꽃다발을 사간 거죠. 그 후 남편은 최수종만큼 아니더라도 이벤트남이 되었죠. 삼겹살보다 장미가 더 효용가치가 높을 때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나요. 이번 생일요? 남편은 요즘 아이의 바이엘 책을 펴놓고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 중이에요. 독학으로요. 텔레비전에서 아내를 위해 피아노를 치는 남편이 나왔는데 몹시 투덜거리더군요.

“이야, 이제는 별거 다 하는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피아노 학원 다니라고 할 때 열심히 좀 다닐 걸. 두 손 들어가는 거 어려워 그만 뒀는데. 갈수록 남자들 살기 어려워지는구만.”

하고요. 그러면서 왜 연습을 하느냐고요? 내 생일에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멋진 피아노를 연주해 주기 위해서래요. 내 생각에는 아마도 집에서 나비야 나비야 정도 들을 것 같지만..... 하지만 그날의 이벤트가 아니라 그것을 생각해낸 남편의 마음이 그리고 그것을 위해 매일 조금씩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그게 고마운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