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사랑, 결혼하면 끝일까?

<연재 25>사랑, 결혼하면 끝일까?

착한재벌샘정 2009. 8. 16. 23:33

 

여우짓 그녀의 이야기 5

         - 제 남편 말고 어머니 남편에게 해달라고 하세요.

 

남편은 외동아들이에요. 그래도 우리 나이는 외동이 지금처럼 많지는 않거든요. 시부모님들의 정성이 극진했다는 건 알만하죠? 게다가 시할머니까지 계시고. 게다가 경찰대학을 나와서 첫 발령으로 파출소 소장이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늘 지시만 할 줄 알지 자기가 할 줄 아는 일이 없는 거예요. 우린 중매결혼을 했는데 만나서 두 달 만에 결혼을 했어요. 그 사람도 나도 나이가 만만치 않은지라. 솔직히 몇 번 만나지도 못하고 결혼을 했으니 자상함을 느끼고 말고 할 것도 없었죠. 그런데 이게 장난이 아닌 거예요.

직장 때문에 결혼과 함께 분가를 했는데 진짜 아무것도 안 하는 거예요. 심지어 과일도 자기 손으로 안 먹어요. 냉장고에서 꺼내 먹는 건 상상도 못하고 다 깎아 놓은 사과도 손도 안대는 거예요.

“사과 안 먹어요?”

“응? 사과? 좀 찝어 줘.”

바로 코앞에 있는 다 깎여진 사과를 손만 움직여 포크로 찍어 들면 될 것을, 그것을 안 하는 거예요. 나보고 해달라는 거예요. 어찌나 기가 막히던지요. 어쩌기는요. 그냥 나 혼자 다 먹어버렸죠. 그랬더니 난리를 치는 거예요. 그거 하나 해주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려우냐고. 더 기가 차잖아요. 그렇게 쉬운 일을 왜 자기는 안하고 나보고 하라는 건지. 한바탕 싸움은 당연한 거고요. 솔직히 저도 서른 넘어까지 엄마가 해주는 밥 얻어먹으며 직장 다닌 것뿐이니 살림이 서툴렀지만 이 사람은 진짜... 집안일은 고사하고 먹는 것 까지 거의 떠먹여야 하는 상황이니 기가 차는 거예요.

그래서 이리저리 직장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죠. 한 선배가 그러더군요.

“시부모님을 한 번 잘 살펴 봐. 시아버지가 시어머니를 어떻게 대하는 지. 또 시어머니는 남편, 그러니까 자기 시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그리고 자기 남편은 하는 일이 그래서 더 할 거야. 누구 밑에서 일해 본 적이 없으니. 그럴 때는 살살 달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어. 그리고 중요한 것은 천천히 인내심을 가지고.”

주말마다 시댁에 가는데 정말 시어머니 혼자서 하루 종일 앉을 시간도 없이 일하는 거예요. 시할머니는 연로하시는 그렇다치고 아버님과 남편은 정말 손도 꼼짝을 안하고 해주는 것만 받고, 게다가 그걸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거예요. 점심 먹고 난 뒤 과일을 준비한 어머니는 정말 손이 바빠요. 할머니, 아버님, 아들의 포크를 혼자 관리하느라.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이러는 겁니다.

“아가, 넌 왜 그러고 있니? 남편 과일 좀 먹여라.”

하며 포크에 사과를 찍어 나에게 주는 거예요. 날보고 당신 아들에게 주라고. 이런 말까지 덧붙이면서.

“얘가 이렇게 안 해주면 도통 먹지를 않아서 말이야. 너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겠지? 밖에서 얼마나 고생하겠니? 집에 있는 사람이 잘 챙겨 줘야지. 네가 신경 좀 써라.”

당신 입으로는 한 조각의 과일도 가져가지 않는 어머니를 보면서 앞이 캄캄 하더라니까요. 빙긋이 웃는 남편의 얼굴이 악마가 따로 없고.

몇날 며칠을 고민을 하다가 나름 방법을 생각해냈어요. 시아버지를 공략하자. 퇴근길에 아버님께 데이트 신청을 했어요.

“아버님, 이런 말씀드린다고 버릇없다 혼내지 마세요. 아버니~임, 어머니 사랑하시죠?”

무슨 뜬금없는 말인가 싶어 저를 바라보는 아버님께 그랬어요.

“솔직히 저 어머니 너무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할머니까지 계신 살림을 그 연세에 혼자서 다 하시잖아요.”

험험 헛기침을 하시며 아무 말씀도 안하시는 아버님.

“사실 며느리가 생겼다고 해도 저희들 따로 사니 어머니 도와드릴 수도 없고. 제가 결혼해 살아보니.... 저 준수씨 많이 좋아해요. 그래서 준수씨 낳아주신 아버님 어머님이 참 많이 고맙고요. 특히 어머님이 준수씨 생각하는 것은 말로 표현이 안될 정도라는 거 저 얼마 안 되지만 충분히 알겠거든요. 그러니 어머니는 더더욱 제게는 고마운 분이시고요. 아버님 서운하다 하시지 마세요.”

“그... 그거... 그거야... 맞는 말이지. 그 사람한테는 준수 그 자식이 전부인거나 마찬가지니까.”

이 때다 싶었어요.

“아버님 솔직히 그 부분 많이 서운하시죠? 어머님이 아버님보다 준수씨 더 챙기는 거.”

“그... 그거야....”

“저 같으면 진짜 많이 서운 할 것 같아요. 그래선데요, 아버님이 준수씨보다 어머니께 더 사랑받을 수 있는 방법 있는데 어떠세요?”

솔직히 그러는 제가 스스로 더 황당했다니까요. 하지만 어떡하겠어요. 너무나 심각한 문제 앞에서.

“아버님이 어머니께 과일 한 번 드려 보세요. 그러니까 무슨 말씀인가 하면요, 밥상 물리고 과일 먹을 때요 어머니 혼자 너무 바쁘세요. 할머니와 아버님 드리랴 준수씨 챙기랴. 하긴 준수씨는 이제 저보고 챙기라고 하시긴 하지만. 그러니까 그런 어머니께 아버님이 받으시지만 말고 한 번 드려보시라는 거예요. 감동하시지 않을까요? 이런 말씀 그렇지만 여자들이 그렇거든요. 별거 아닌 아주 작은 것에 무지 감동 먹거든요.”

흠흠 헛기침만 계속하고 계시는 아버님이 진짜 하실 지는 장담할 수 없었지만 거기에 기대를 거는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제 바람이 간절해서였는지 며칠 후 안부 전화를 드렸더니 이러는 겁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니 시아버지 말이다. 뭘 잘못 먹었는지... 결혼하고 처음이지 싶다. 어제 수박을 먹는데 불쑥 내 앞에 내미는 거야. 말도 한 마디 없이 손에 든 수박만 자꾸 내미는데... 이거 나 먹으라는 거냐 물으니... 퉁명스레 한 마디 한다는 게 먹기 싫음 말라는 거야. 별일이지 않냐?”

앗싸, 효과 만점이구나 싶었죠.

“어머니, 너무 행복하셨겠어요. 아버님 너무 자상하세요.”

“자상은 뭐.... 생전 처음이라니까.... 다 늙어서 뭔 일인 지.....”

하지만 전화기로 전해오는 느낌이란 게 있잖아요.

“어머니, 제가 책에서 읽었는데요 이럴 때 어머님의 태도가 아주 중요하대요. 주책이라고 핀잔주거나 하면 절대 안 되고요 단 한 마디만 해야 한 대요.”

“벌써 주책이라도 다 말했다. 평소 안 하던 짓을 하니까 그런 말 안하게 생겼냐?”

“그래도 어머니 싫지는 않으셨죠? 솔직히 말씀해보세요. 아버님이 어머니 챙기니까 기분 좋으셨잖아요?”

“그거야.... 뭐....”

“그러니까 다음에 한 번 더 그러시면 고맙다고, 아니 그런 말씀이 안 나오시면 그냥 예쁘게 웃으세요. 어머니는 웃는 모습이 참 고우시거든요. 아셨죠?”

“별 이야기가 다 나온다. 그만 끊자.”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으시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머니는 딸이 있었으면 딸과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거라고. 다음 작전 개시.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퇴근 후 본가에서 저녁을 먹자고 했죠. 주중에 시댁에 가는 걸 싫어하더니 웬일이냐 묻는 남편에게 꼭 와야 한다고, 아버님께도 전화 드려서 우리가 가니 같이 저녁먹자고 하라고 부탁을 했죠.

다 같이 저녁을 먹고 준비해간 와인으로 간단한 파티 분위기를 만들었죠. 모두들 무슨 일이냐 궁금해 하더군요. 두 개의 잔에 와인을 따르고 할머니를 보고 말씀 드렸어요.

“할머니, 할아버지 계셨으면 좋을 텐데 서운해서 어떡해요?”

“갑자기 본적도 없는 할아버지는 왜 찾고 난리야? 오늘 진짜 왜 이래?”

못 들은 척하고 계속 이야기를 했어요.

“할머니 이거 와인이라는 술이에요. 할머니는 막걸리로 준비했는데 와인 한 번 드셔 보실래요?”

“싫다. 나는 막걸리가 좋아.”

“이 와인은 먹는 방법이 있어요. 한 번 보실래요? 준수씨 이 잔 들고.... 조금 더 가까이 와 봐요. 할머니 이렇게 팔을, (목소리 낮춰 준수씨 러브샷) 이렇게 하고는... 말도 해야 해요. 목소리 이쁘게 해서 사랑해 여보하고.”

남편을 포함해 모두들 몹시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더군요. 그동안의 집안 분위기로는 당연한 일이었지요. 제일 먼저 할머니께서 말씀을 하셨어요.

“사랑? 사랑이.... 그게 뭐냐?”

이왕 시작한 거 끝을 보자는 생각으로 시어른 두 분을 향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두 분도 해보세요. 네, 어머니 아버님? 이거 텔레비전에서 종종 보시잖아요.”

두 분은 얼굴까지 벌겋게 변하셨고 남편은 옆구리를 쿡쿡 찔렀지만 계속 이야기를 했죠.

“어머니, 어머니께서 준수씨 많이 사랑하시는 거 알아요. 하지만 이렇게 러브샷을 하며 여보, 사랑해는 준수씨와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건 아버님과 하셔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아버님이 안 해주시면요? 이건 혼자서 할 수는 없는 거거든요. 아버님이 하고 싶어도 어머님이 싫다면요. 그래도 할 수 없는 거잖아요. 저 아까 어머니 전화 받고 그런 생각했어요. 아버님은 분명 어머니와 하고 싶으실 거다. 어머니께 과일 챙겨 드렸다는 말씀 듣고 확신했다니까요. 이제까지 한 번도 시도를 안 해본 것뿐이잖아요. 얼른 두 분 한 번 해보세요. 네? 아버님이 하자고 해보세요, 네?”

그제서야 남편도 거들더군요.

“그래, 엄마 한 번 해봐요. 아버지는 하고 싶은 눈치신데?”

“야들이 이 무슨 망측한 말을? 할머니도 계신데?”

“그럼 할머니 안 보는 데서는 할 수도 있다 그런 말씀이시구나. 우리 엄마 은근 바라시는 눈치신데?”

“이것들이! 어른 놀리면 못써. 얼른 치우고 너희 집에 가. 정말 보자보자 하니 이것들이.”

“어머니, 화내시지 마세요. 저 이러는 거 솔직히 버릇없다는 거 알아요. 그런데 어머니, 만약에 어머니께 딸이 있었다면 이런 자리 가끔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아까 그 전화도 며느리인 저 아닌 딸에게 하셨을 텐데 싶은 것이. 그러면 어머니 속마음 더 깊이 이야기 하실 텐데 싶은 것이. 어머니 이제 해주시지기만 하지 말고 좀 받으세요. 그런데 그거요 제 남편 말고 어머니 남편에게 해달라고 하세요, 아셨죠? 과일도 달라고 하고 가끔은 목욕탕 청소도 해달라고 하고 라면이라도 끓여 달라고 하시고요.”

결혼하고 바빠 못했던 집들이를 방학이 되어서 하게 되었어요. 친척들 오신다는데 혼자 뭘 제대로 하겠냐며 어머님이 일찍 현관에 들어섰을 때 남편이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어요.

“너 청소도 하냐?”

못마땅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어머니를  향해 남편이 말하더군요.

“네. 그렇게 됐어요. 엄마도 아버지한테 청소해 달라고 하세요.”

그러면서 어머님 뒤에 서 있는 아버님을 향해서도 정중히 부탁을 하더라구요.

“청소기 돌리는 거 이거 생각보다 쉬워요, 아버지.”

남편은 일일이 챙겨주는 어머니에게 익숙해져 있었던 거죠. 하지만 이제는 우리 두 사람에게 익숙해지고 있는 중이에요. 저에게 익숙해지라고 일방적인 요구를 하면 안 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