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아이들

때리던 교사를 변하게 해준 선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착한재벌샘정 2009. 5. 13. 22:51

오늘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오니 부재중 전화가 5통이 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자 한 통.

“선생님, 경상여중 어떠세요? 저와 같이 한 시간처럼 좋으신가요? 회사 쉬는 토요일에 대구가면 학교 한 번 갈게요. 이번에 옮긴 회사가 한 달에 한 번 밖에 안 놀아 쌤 보러 자주 못가서 너무 속상해요. 보고 싶어요, 쌤.”

1999년 경상여중에서 1학년 담임을 했었는데 그 때 저희 반 아이가 보낸 것이었어요. 열네 살 중 1이던 아이는 이제는 20대 회사원이 되었답니다.

담임을 한 지 2주 정도 밖에 안 되었는데 선생님 집에 가보고 싶다며 퇴근하는 저를 기다리고 있던 아이. 담임의 집을 구경하고 싶어 따라가는 내내 어찌나 그렇게 수다를 떨던지요. 그리고 도착한 집. 집에 들어서자마자 어디서 자느냐고 묻던 아이. 안방으로 데리고 가면서 물었어요.

“왜 그렇게 우리 집에 오고 싶었어?”

“따뜻하고 포근할 것 같아서요. 엄마처럼요. 여기 누워 봐도 되요? 선생님은 어디에 누워요?”

“그럼 되지. 선생님은 안쪽에 누워. 벽 쪽에.”

“선생님도 같이 누워요. 제 옆에 누우세요.”

그렇게 한 참을 둘이서 침대에 누워있었어요. 아이가 저를 향해 돌아누우면서 그러더군요.

“엄마랑 이렇게 침대에 누워 이야기 하는 거 진짜 상상 많이 했었어요. 엄마가 돌아오면, 그래서 같이 살게 되면 나도 꼭 해보고 싶다고.”

한참을 말없이 그렇게 있던 아이.

“근데 이제 그런 상상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해 봤으니까.”

그리고 아이의 눈에 고여 오던 눈물.

할머니와 둘이서 살았던 아이는 이제 할머니마저 세상을 뜨고 세상에 혼자 남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누구보다 열심히, 그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이쁘고 고마운, 그리고 멋진 숙녀가 되었답니다. 아이의 문자에 답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 때 제가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예전의 저였더라면 그러고도 남았을 거예요.

“집은 무슨. 그냥 할 이야기 있으면 교무실에서 하던 지, 아님 분식집은 어때? 그리고 이렇게 불쑥 남의 집에 가겠다는 건 실례야.”

이렇게요. 아니, 이것보다 더 쌀쌀맞게 이야기 했을 지도 몰라요. 저는 분명 그러고도 남는 사람이었을 겁니다. 침대에 누워보겠다는 아이의 말에 어떻게 행동했을까 싶은 생각은 지금도 종종해요. 하지만 선뜻 집에 가자, 침대에 누워라, 할 수 있었던 건 많은 선배 선생님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저는 무슨 큰 교육철학이 있는 사람은 아니에요. 저의 교사로서의 바람은 지금 아이들과의 시간이 후회가 적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 아이들에게 지금 제가 해 줄 수 있는 것을 후회 없이 해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지요.

그래서 조금 더 따뜻한 교사이고 싶습니다.

가끔 아이들을 체벌하는 교사의 이야기를 접하게 됩니다. 그럴 때 마다 속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변할 수 있어서.... 이렇게 변하게 도와주신 많은 선배님들이 계셔서 정말 너무도 감사합니다.’

뒤돌아보면 마음 아프게 기억해야 하는 시간들이 적지 않습니다.

저는 한 때 아이들에게 고함을 지르고 벌을 세우고 아이들의 손바닥을 때리기도 하는 교사였습니다. 그 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지요. 그 모든 것이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고요. 그랬던 저를 더 이상 때리지 않는 교사, 벌세우지 않는 교사로 변할 수 있게 도와주신 많은 선배님들이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소통하고 싶고 아이들과 같이 행복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참 많은 선생님들을 찾아 다녔었습니다. 어느 학교에 어떤 선생님이 인기가 있다,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염치불구하고 찾아가기도 하고 편지를 써서 물어보기도 하고.

 

‘애들이잖아요. 나는 어른이고. 그럼 아이들과 싸우지는 말아야지 않겠어요?’라고 해주셨던 선생님.

 

‘아이들에게 매를 드는 그 순간을 잘 생각해 봐요. 그건 바로 교사의 인생이에요. 누군가를 향해 폭력을, 몽둥이를 휘두르는 인생을 살고 싶은가? 나는 그러기 싫어요. 아이들에게 고함지르고 아이들에게 비난을 퍼붓는 그 모든 순간이 나의 삶의 소중한 시간들인데 내가 왜 그런 인생을 살어? 이기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내 인생이 소중하기 때문에 그 아이들과의 시간을 좋은 것으로 채우고 싶어요. 잊지 마시게. 학생들에게 하는 그 모든 것이 결국은 내 인생이라는 것을.’라며 제 등을 다독여주시던 선생님.

 

‘학생들을 위해서 산다고? 글쎄... 나는 그저 나를 위해 사는 걸요. 내가 좋은 선생이라고? 그것도 글쎄.... 나는 그저 학생들과 같이 웃고 싶을 뿐이에요.’라며 껄껄 웃으시던 선생님.

 

‘우리 반 학생들이 내가 꽤 괜찮은 담임이라고 했단 말이죠? 그거 기분 좋은데요. 비결이 뭐냐고요? 내 비결은 다수를 보는 것이지요. 56명 학생들 중 지각 하지 않고 제 시간에 오는 애들이 지각하는 애들 보다 많잖아요. 말 안 듣는 애보다는 말 잘 듣는 애들이 분명 더 많거든요.’하시며 미소를 짓던 선생님.

 

‘요즘 애들이 말을 안 듣는다? 그건 맞아요. 그런데 예전 애들도 말 안 듣기는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난 지독히 선생 말을 안 듣는 아이였거든요. 특히 담임은 왜 그렇게 싫던 지. 그래서 늘 생각하죠. 내가 예전에 어떤 요즘 애들이었던 가, 하고 말이에요. 이 선생은 어떤 중학생, 어떤 고등학생이었을까요?’하시며 제 어깨를 툭 치시던 선생님.

 

‘학생들에게 많이 웃어주죠. 이것 말고는 없는데.’하시며 머리를 긁적이시며 멋쩍어 하시던 선생님.

 

‘그거 생각보다 쉬워요. 학생이 나다,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면 답이 보인다니까요. 나는 다른 사람에게 기분 나쁜 소리 듣기 싫어요. 그럼 학생들도 당연히 그렇겠지요. 나는 시험을 잘 치고 싶고 좋은 점수 받고 싶어요. 학생도 당연하겠죠. 그걸 아는데 어떻게 학생을 때려요. 시험 점수 나쁘다고 나무랄 수 있겠어요. 그거 그러면 안 되는 거죠.’하시며 목청을 돋우시던 선생님.

 

‘수업시간에 학생이 꾸벅꾸벅 조는 걸 볼 때 그런 생각하죠. 내가 얼마나 졸리게 만들었음 저럴까, 하고. 화가 나기보다는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걸요. 우리도 연수 가서 재미없음 졸리잖아요. 강사가 잘 가르치고 재미있음 자라고 부탁해도 눈 초롱초롱하게 뜨고 듣게 되고. 누굴 탓하겠어요. 다 내 탓이오 내 탓이로소이다, 하는 거죠.’하며 함박 웃음을 짓던 선생님.

 

‘때려봤어요. 나도 사십이 되기 전까지는 엄청 팼지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지금은 그 때 때리고 고함지르고 했던 거 다 갚는다는 생각으로 학생들을 대합니다. 근데 희안한 것은 내가 몽둥이를 휘두를 때보다 학생들이 훨씬 말을 잘 듣는다는 겁니다. 거참, 혼란스럽기까지 하드만요. 하지만 지금은 자신 있게 이야기 하죠. 몽둥이로는 애 눈을 내리 깔게 할 수는 있어도 결코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다는 것을요.’하시며 회한의 눈빛으로 하시던 선생님.

 

오늘 예전에 찾아가 귀찮게 하면서 좋은 교사의 비결을 캐묻던 시절 적어 놓았던 것을 펼쳐 보았습니다. 오랜만에 찾으니 작은 수첩 하나말고는 어디 있는 지 찾을 수가 없지만 그 때 그 시절을 떠올리니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들.

저를 더 이상 아이들을 때리지 않는 교사로, 아이들에게 화를 아주 적게 내려 노력하는 교사로, 조금이라도 더 친절하고 다정한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교사로 변할 수 있게 해주셔서.

스승의 날이 다가오네요. 제게는 너무나 큰 스승님들이신데 제대로 감사하다는 인사도 못 드렸어요.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제가 강의를 가서 하는 대부분의 말들이 그렇게 만났던 많은 선생님들에게서 듣고 적었던 말들이네요.^^ 다 제 것인 줄 알았던 분들께는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ㅠㅠ 

아직도 여전히 부족하지만 선생님들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음을, 그리고 그 가르침 따르려고 부단히도 노력하고 있음으로 선물을 대신한다면 너무 염치가 없는 걸까요?

 

제게 도움을 주셨던 많은 선생님들, 이렇게 글을 쓰니 더더욱 감사한 마음입니다. 저에게 따뜻한 교사가 되도록 이끌어 주시기도 하지만 엄마로서 살아가는데도 참으로 많은 도움을 주셨거든요.

어제 저희 작은 아이가 중학교 들어가서 처음으로 치른 시험 성적을 받아왔어요. 어제 성적표를 주면서  자기가 잠이 든 다음에 보라고 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오늘 퇴근 후 아이와 마주 앉아 1시간 넘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었다기 보다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 맞겠습니다.

이 시험을 준비하면서 세운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시험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 지, 결과의 원인을 어떻게 해석하는 지, 그로 인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지 등등.

난생처음으로 시험 성적을 가지고 나눈 저희 모녀의 진지한 시간이었답니다. 아이가 95점을 맞은 과목과 60점을 맞은 과목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할 때 참 기특하다 생각했습니다.

이 번 시험에서 가장 아쉬운 점수가 60점이 아닌 95점이라고 하더군요. 그 과목은 정말 자신이 잘 하고 열심히 했기 때문에 당연히 100점을 맞을 거라 자신했었기 때문이라고. 60점을 맞은 과목은 원래 그 과목을 잘 못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공부를 미루다가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험을 쳐서 노력 대비 95점보다는 맘 상하는 성적은 아니라고.

성적은 그 누구보다 아이에게 큰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 것도, 그래서 성적으로 인해 자존감을 상처받지 않고 스스로 조금 더 노력할 수 있도록 힘이 되고 격려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게 해준 것도 전부 선생님들 덕분이잖아요.

물론 저희 학교 아이들의 시험 결과에 관한 것도 저희 아이에게와 같은 마음이고요.

 

저는 희망을 믿는 교사입니다. 그 희망의 중심에는 바로 아이들이 있고요. 그리고 많은 따뜻한 선생님들.

이렇게 저를 많이 변하게 만들어 주신 많은 선배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그 마음, 그 행동을 이어받아 늘 노력하는 교사가 되겠습니다. 지금보다 조금 더 따뜻한 교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몇몇 선생님들께 부탁을 드립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책 제목처럼 그 어떤 경우에도 우리 아이들 때리지 말기로 해요. 아이들이 많이 화나게 하고 많이 힘들게 할 때가 있다는 거, 저 또한 잘 압니다. 제가 20년 넘게 현장에 있는 교사인걸요. 그렇지만 그 아이들, 따뜻함과 배려와 사랑을 경험하면서 자라야 하는 아이들이잖아요. 교육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젖어드는 것이라는 말이 있어요. 아이들은 우리를 보면서 우리를 배우면서 자란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그 아이들에게 무엇을 보게 해야 할 지 무엇을 배우게 해야 할 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