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올린 글과 관련하여 긴 문자를 한 통 받았습니다.
지난 여름방학에 제 강의를 들었던 교사라고 하더군요. 문자가 메일만큼 길었는데 글자가 작아 눈이 급격히 나빠진 터라 읽는데 고생이 많았답니다.^^
강의 때도 들었었던 내용과 비슷하지만 그 때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이 의문이라고.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는, 아이들에게 잔소리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것이 문자의 주제인 것 같았어요. 어떻게 답을 할까 하던 중에 마침 답이 될 만한 일이 생겼고 혹여 그 선생님과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이 혹여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블로그에 글을 씁니다. 오늘은 금요일이라 정빈이와 함께 영화를 보는 날인데 제가 컴퓨터 앞에 있는 지라 지금 정빈이 혼자 영화를 보고 있답니다. 서운하겠지만 이해해주리라 생각해요.^^
오늘 저의 수업은 1교시, 3, 4, 5교시, 점심 먹고 6교시였습니다. 저희 학교는 5교시를 하고 조금 늦은 점심을 먹는답니다. 방과 후 수업이 하루 쉬는 날이라 5시간의 수업이 있었습니다.
5교시를 마치고 교실 컴퓨터에 수업에 사용했던 파일이 들어 있는 이동식디스크를 꽂아 둔 채 교무실로 왔지 뭐예요. 건망증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중이랍니다.^^
점시시간 동안 수업 자료를 만들려고 찾으니 없어 교실에 두고 온 것을 알았어요. 며칠 전에 삐끗한 허리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는 지라 미안한 마음이 컸지만 마침 교무실에 와 있던 정은이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교실에 갔던 아이가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로 들어오는 거예요. 그리고 제게 내미는 손에는..... 이렇게 부서진 것들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어떻게 된 거야? 잘 안 빠지던?”
처음에는 디스크를 가지러 간 아이가 컴퓨터에서 분리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되었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요. 제가 가니까 이렇게 되어 있었어요. 그 반 아이들에게 물어 봐도 누가 그랬는지는 모른다 하고.”
“그래? 어쨌든 고마워.”
아이에게서 건네받아 책상 위에 두고는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제가 받아 들면서 휘어진 부분을 펴서 사진으로는 느껴지지 않을지 모르지만 무리하게 힘을 주면서 빼느라 케이스와 분리만 된 것이 아니라 심하게 휘어져 못쓰게 되었거든요.
과학 시간에 늘 파워포인트나 동영상을 보니 내 것이라는 것을 알 텐데.... 도대체 누가 그랬지?
선생 건지 몰랐다고 하자, 그럼? 친구 것은 그래도 되나? USB 꽂을 수 있는 곳이 4개나 되는데 그냥 두고 다른 것을 사용하지..... 4개 다 사용해야 할 상황이었나? 하긴 컴으로도 엠피쓰리 충전을 하기도 하니 4명이서 하려고 했다면 그럴 수도 있었겠지. 내가 뺄 때는 잘 빠지던데 뭔가에 걸렸었나? 잘 빠지지 않으니까 이렇게 비틀어 빼서 내팽개쳐 놓았을 거 아냐?
아님, 내 것인 줄 알고 나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그랬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잠시 숨을 고르고는 폰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내일 수업시간에 보여주려고요.
내일 2교시에 그 반 수업이 있습니다. 수업 시작하기 전에 이 사진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누가 이렇게 했느냐를 따지기 위해서는 아니에요. 이 일의 시작은 제 물건을 챙겨오지 않은 저로 인해 생긴 것이니까요. 아이들에게 왜 남의 물건을, 선생님 거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렇게 한 게 누구냐, 왜 그랬느냐를 묻는 대신 다른 사람의 물건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내일 이런 이야기들을 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서진 USB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어제 5교시 수업 후에 컴퓨터에 꽂아 두고 갔는데 이렇게 되었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굳이 이렇게 비틀어 휘어지게 하고 분리되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내 것이 아니라고 해서, 누구의 것인지 모른다고 해서, 주인이 없는 물건이라고 해서, 내가 하는 일에 방해가 된다고 해서 이렇게 다른 사람의 물건을 함부로 해도 되는 것인가에 관해 여러분들의 생각을 들어 보고 싶습니다.
제가 과학 시간의 일부를 써가면서 이 이야기를 아이들과 하고 싶은 이유는 아이들이 저에게서 과학만을 배우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이들이 저와의 시간에 삶을 배워가기를 바랍니다.
내 것도 아닌데 뭐 어때, 하는 마음에서 그랬다면 다른 사람의 물건도 소중히 여겨 줄 줄 아는 마음을 가지기를...
빨리 빼고 내 것을 꽂아야겠는데 잘 안 빠지는 상황이었다면, 내가 하는 일에 방해가 되어도, 감정대로 하지 않고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아는 성숙함을 키워가기를.....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ㅋㅋㅋ) 선생님을 골탕 먹이기 위해서 그랬다면 이런 방법 말고 과학 선생의 무엇이 마음에 안 드는지, 고쳐주었으면 하는 게 무엇인지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물건을 부순 것을 나무라는 것, 에 초점을 두지 않고 이 일로 아이들이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것들, 그리고 이 일을 통해 조금이라도 성장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어떠신가요? 아이들에게 목소리 높이지 않고 하루를 보낼 수 있겠죠?
아이들이잖아요. 몰라서 그랬을 수 있잖아요. 그 정도는 기본으로 알아야지, 라는 것은 어쩌면 늘 우리 어른들의 기준이며 기대치일지도 모를 일이잖아요.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그 아이들이 모른다면 모르는 것을 나무라기보다는 알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잘 가르쳐 주는 것이 우리 어른들의 몫이 아닐까 합니다. 선배님에게서 배운 것 중 하나입니다.
“못 배워서 모르는 거, 그것만큼 자존심 상하는 거 없잖아. 그러니 나무라기 전에 측은지심으로 대해. 그리고 몰라서 계속 그렇게 하지 않도록 잘 가르쳐 주도록 해. 물론 많은 노력과 기다림이 필요하겠지만 말이야. 우린 어른이고 게다가 선생이기까지 하잖어.”
아참, 핵심이 빠졌네요. 오늘 같은 일을 이렇게 해결하면 제가 편안하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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