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앞에 걸어 둔 사진은 지금 고3이 된 아이들이 중학교 2학년 때의 사진입니다. 그 해는 유난히 어려운 아이들이 많은 반의 담임을 맡게 되어 담임으로서 반부모가 아닌 ‘진짜 엄마’가 되어 주어야 했던 아이들이 많았었습니다. 반 아이들의 사진으로 달력을 만들어 그 해 1년 동안 교실에 걸어 두었다가 학년이 바뀐 뒤 집으로 가져와 달력이 있던 밑 부분은 잘라내고 이렇게 제가 글을 쓰고 공부를 하는 위치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었습니다. 35명 중 학비 지원을 받는 아이들이 28명이었으니... 하지만 아이들은 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잘 커주었답니다. 비록 형편은 너무나 어려웠지만 말썽부리는 아이 한 명 없이 잘 커주어 3학년 올려 보내면서 제가 정말 눈이 퉁퉁 붓도록 밤새 울었었지요. 저 아이들을 보면서 혼자 흐뭇해서 웃곤 하는, 제게는 늘 희망이 되어주는 사진이랍니다.
이 글은 2년 전에 제가 블로그에 썼던 글의 일부입니다.
오늘 저 사진 속의 아이 중 두 명과 행복한 데이트를 했답니다. 열다섯에 만났던, 그리고 이제 스물 두 살의 아가씨들은 약속 장소에서 만나자 말자 저의 손을 꼬옥 쥐더군요. 맛있는 것을 먹자며 시내를 돌아다니는 중에도 아이가 잡은 손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어 제 마음이 어찌나 짠~~ 하던지요.
참 힘든 시간을 보낸 온 아이들이었어요. 둘 다 엄마와 떨어져 아버지와 살았고 한 명은 두 명의 동생을 키워야 했었거든요. 제 책 <나에게 행복을 주는 비결>중 깐마늘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데 한 아이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하답니다. 둘 다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자신들이 벌어 학교를 다니고 동생들 키우고 있는 씩씩한 아이들이고요. 자신의 힘으로 대학을 다녀, 한 명은 전문대 졸업을 앞두고 취업 준비 중이고 한 명은 1년 늦게 들어 가 2학년 올라갑니다. 대학 들어가 공부의 재미에 푸욱~~ 빠져 너무 열심이라며 활짝 웃는 두 아이를 보면서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
아이들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자라 있었어요.
자신들을 그렇게 힘들게 했던 부모님을 이해하고 원망도 많이 했던 아버지가 이제는 안 돼 보여 마음이 너무 아프다는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아이들. 텔레비전에서 부모님들께 철없이 구는 자기 또래 아이들을 보면 한심하고 혀를 차게 된다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 마음이 왜 그렇게 아프던지요. 너무 빨리 커버린 아이들이어서였을까요? 그건 제 나이쯤이나 되어서 깨닫게 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엄마와 재혼하신 아저씨가 고맙고 혼자 계시는 아버지께 더 잘해드리고 싶다는 아이, 아버지와 살고 있는 아줌마가 고맙다고 혼자 계시는 엄마가 늘 마음 한 구석을 아프게 하다며 아저씨 아줌마가 자신들의 큰 짐 하나를 덜어 준 것 같아 너무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는 스물 두 살의 아가씨들. 중학교 1학년에 만나 친구가 되고 지금까지 서로의 그 모든 것을 지켜보며 위로하며 힘이 되어주며 온 아이들은 마주보면 너무 공감하다는 고개짓을 하더군요. 그러면서 또 다시 미소 짓던 아이들.
두 시간 동안 아이들은 자신들의 남자 친구 사진을 보여주기도 하고 그 친구 때문에 영어를 아주 잘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며 그동안의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길거리 한 복판에서 아버지 술 때문에 더 이상 견딜 수 없으니 병원에 치료하러 가자며 울며 매달렸던 일, 고등학교 수학여행비 때문에 울고불고 난리를 친 일 등 눈물 나는 이야기도 하고, 동생에게 휴대폰을 사주었다는 이야기, 한참 자라는 시기인데 제대로 챙겨 먹이지 못해 마음 아프다는 안쓰러움과 미안함까지 쏟아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러더군요.
“저희 참 잘 컸죠? 어긋나지도 않고 착하게 잘 컸어요, 그쵸?”
이상하죠? 두 아이는 고등학교도 저희 학교를, 한 명은 주간을, 다른 한 명은 야간을 다녀 학교에서도 자주 보았고 야간에 다니는 아이 친구들 사이에서는 주간 선생님 중에 아이의 엄마가 있다더라는 소문이 나기도 했었어요. 졸업하고도 몇 번 학교로 와 만나기도 했는데 마치 몇 년 만에 만난 것처럼 어찌 그렇게 할 이야기 많던지요. 한 아이는 두 달 전에도 만났었는데 말입니다.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음식을 도통 먹지를 못했어요. 서빙하는 아가씨가 몇 번이나 와서 혹여 음식이 문제가 있는 지 물어 볼 정도였답니다. ㅋㅋㅋ
그렇게 아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쏟아내다가 저에게 마구 마구 질문을 하기도 했어요. 일이 바빠 두시간 정도밖에 시간을 낼 수가 없어 오래 같이 있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근처 서점에 가서 책을 한 권씩 선물했습니다.
“그거 아세요? 시내 나오면 여기 참 자주 와요. 여기 와서 책보고 있는 저 자신을 보면서 선생님 생각 많이 해요. 가끔 친구들이 어디서 뭐 하느냐 전화나 문자오면 서점에서 책보고 있다고 하면 또? 거기 갔냐? 그래요.”
“선생님이 저희한테 책 한 권씩 다 사줬었잖아요. 중학교 때 우리 반 전체한테. 그 책 아직도 읽어요. 솔직히 늘 돈 때문에 고생을 해서 그런 지 돈을 많이 벌어야 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런데 선생님과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꿈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었어요. 아까 선생님께 대학원을 가고 석사가 되고 박사가 되고 해서 대학에 가거나 교사보다 더 큰 것을 하지 왜 아직 거기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러셨잖아요. 그저 작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다고. 박사가 되려고 공부하는 시간에 아이들과 조금 더 이야기 하고 그래서 먼 훗날 아이들이 그 시간을 되돌아보아 따뜻했었다는 기억 한 자락만 있더라도 행복하고 만족한다고. 큰 자리가 아닌 작은 자리에도 그 누군가는 있어야 한다고. 그 말씀 하실 때 아, 이런 거구나, 그런 생각했어요. 왜 저희가 선생님을 기억하고 찾아오는 지. 늘 그 자리에 계셔 주실 것 같은 믿음이랄까요.”
두 아이에게는 되돌아보면, 아니 되돌아보기 조차 힘들 것 같은 시간을 보낸 아이들인데 아이들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복이 없었던 것도 아니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에 담겨 있는 그 의미를 알기에 너무 행복하고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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