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아이들

책나무 동아리 아이들과 연극을 보았어요.

착한재벌샘정 2008. 11. 27. 23:25

집에 오니 밤 10시가 다 되었더군요.

택시 창밖으로 보이는 비에 젖은 도로와 그 위에 떨어진 낙엽들. 오후에 내린 비로 인해 도시의 풍경은 마치 손을 대면 손바닥이 촉촉이 젖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은 수업 끝나고 책나무 동아리 아이들의 수업이 있었고 아이들과 같이 저녁을 먹고 하모니아아트홀에서 연극 <칠수와 만수>를 보았답니다.

아이들과 학교 부근에서 저녁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공연장으로 갔는데 그렇게 아이들과 같이 걷고 지하철을 타고 가는 시간이 너무 좋았습니다. 열 명이 넘는 저희들이 길거리를 다 막고 걸었지 뭡니까.ㅋㅋㅋ

 

아이들은 학교 안에서의 동아리 수업도 좋아하지만 학교 밖에서 교사와 같이 하는 시간을 아주 좋아한답니다. 연극도 너무 좋았어요. 2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였답니다. 아이들은 처음으로 간 공연장도 신기해하고 공연에도 어찌나 몰입을 하던지요. 배우들과 호흡을 같이 하여 대답도 하고 박수도 치고 슬픔에 겨워 울기도 하고 깔깔 웃기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예뻤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과 기념사진도 찍고 첫 연극 공연 티켓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모습에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더군요.

 

아, 그리고 공연장에서 15년 전 경상여상 시절 제자를 만났답니다. 솔직히 저는 알아보지 못했는데 그 친구가 인사를 하더군요.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알아봐 주는 그 친구가 아주 고마웠습니다. 아이들은 15년 전 제자라는 말에 입을 다물지 못하더군요. 자신들의 나이가 열일곱, 열여덟 살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어요.ㅎㅎㅎ

 

12월에는 뮤지컬을 볼까 점프 공연을 볼까 고민을 하고 있답니다. 책나무 동아리 아이들 중 2학년들은 올해 가장 큰 작업으로 ‘자서전’쓰기를 하고 있는데 아이들의 자서전에 쓰여 질 이야기 거리를 많이 만들어 주고 싶거든요. 12월에 아이들이 어떤 자서전을 출간(?)하게 될 지 아주 기대를 하고 있답니다.

 

이번 주에는 2학년들과 따로 하는 1학년들 동아리 수업을 월요일과 오늘, 이틀을 했더니 조금 숨이 더 찹니다.^^ 보통 2시간에서 3시간 가까이 수업을 하는데다 에너지 소모가 많거든요. 이번 주에는 외부 강의가 없어 욕심을 냈더니만.... 그래도 아이들이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들을 하는 것을 보면서... 오늘은 한 아이가 참 많이도 울었어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응어리들을 쏟아내며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감당하지 못하는 아이를 보면서 제 마음도 찡~~~ 했답니다.

 

같이 하는 선생님이 연극 시작하기 전에 한 말이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진짜 힘들지만 이것을 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아버렸기에, 그 다음에 보일 아이들의 반응과 변화를 알기에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니 이제는 꼭 해야 할 일이라는 것.”

2주 전부터 2학년 수업을 맡아서 혼자 해내고 있는 후배가 얼마나 고맙고 힘이 되는지요.

그 후배에게 그랬습니다.

“쉽지 않은, 어렵고 힘든 일을 하자고 하면서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해 미안해요. 하지만 아이들과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거, 저렇게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는 거, 그게 선생님께 드릴 수 있는 보상이고 수고비라고 생각해줘요. 힘들지만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요. 바로 그것이 오랜 시간 저를 지금까지 이끌어주고 지탱해준 힘이랍니다.”

 

아이들을 보내고 물에 젖은 도시를 바라보며 아주 맛있는 커피라도 한 잔 같이 하고 싶었지만 내일까지 완성해서 제출해야 하는 아주 분량이 많고 중요한 일이 있어 아쉽게 헤어져야 했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남편이 끓여 놓은 보이차 한 잔을 하고 옷도 갈아입지 않고 노트북을 켰는데, 아뿔싸.

바쁘게 정리를 하느라고 오후 내내 잡아 놓은 초안이 든 파일을 학교 컴퓨터에만 저장을 하고 이동식 디스크에 담아 오지 않았지 뭐예요. 잡혀 진 초안을 가지고도 오늘 밤을 꼴딱 샐 작정을 하고 있었는데... 어찌나 당황스럽고 충격이던 지 잠시 생각이 멈추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방바닥에 쓰려졌지요. 그렇게 쓰러져 아무 생각도 못 한 채 있었어요. 한동안. 그리고는 이렇게 생각하며 다시 일어났지요.  열이 오른 머리를 잠시 식힐 겸 블로그에 오랜만에 소식이나 전하자 하는 마음으로요. 일은 흘러가는 대로 해야 한다며, 없는 파일에 연연해 보았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면서요.

이번 주말까지 대구시 교육청 추천도서 10권에 대한 서평도 마무리해줘야 하고 다음 주 목요일에 있을 전국 교육청 생활지도 담당 장학사들 워크숍 특강 준비를 해야 하고 그 다음 주는 5시간이나 걸린다는 울진교육청으로 특강을 가야하기에 1박 2일 출장이 계획되어 있기 때문에 여전히 블로그에는 당분간은 자주 소식 전하지 못 할 것 같으니 오늘 이 일은 잠시 멈추고 블로글 찾으라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한 것이다, 뭐 이런 아주 비과학적인 생각을 하는 과학 선생입니다요. 

 

아, 또 한 가지. 자랑하고 싶어 안달을 하고 있는 선물 받은 명함도.

과학자가 꿈인 중학생 아들을 둔 아버지께서 아들이 <요리로 만나는 과학 교과서>를 너무 좋아해서 고맙다며 명함을 300장 만들어 선물해주셨답니다. 작년 우수 블로그로 선정되어 Daum에서 만들어 준 명함이 제 생애 첫 명함이었고 이번이 두 번째랍니다. 명함이 너무 예뻐 얼른 자랑하고 싶었었는데 아마도 그런 제 마음이 파일 저장 오류로 이어져 지금의 황당(?)한 상황을 가져오게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여전히 비과학적인 생각의 연속입니다.

 

 

 

 


진짜 너무 예쁘지 않으세요? 이렇게 늘 저는 더 많이 받는 것 같아 너무 고맙답니다.

이제 서서히 마음도 가라앉고 있으니 일을 시작해야 할까 봐요. 다행이 내일은 학교 사정 상 출장 가는 선생님 때문에 시간표가 바뀌어 미리 수업을 해 놓은 지라 수업에는 지장이 없겠지만 요즘은 솔직히 일이 좀 겁나요.ㅋㅋ 그래도 파이팅을 외치면서 오늘은 그만 물러갑니다. 모두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