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즐겁고 맛(?)있는 크리스마스였습니다.

착한재벌샘정 2007. 12. 25. 21:42
 여러분 모두 메리크리스마스!!!!

오늘 하루 잘 보내셨어요?

저희 가족은 크리스마스를 시골에 계신 어머님과 같이 보냈습니다. 즐겁고 맛(?)있는 하루였답니다.

휴일이 저는 아침밥 대신 늦잠을 선택했고 그래서 아침은 남편과 아이들만 먹었습니다. 아마도 남편이 제게 준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닌가 합니다. ㅎㅎㅎ

9시 반쯤 출발하여 가는 도중 철물점에 들러 석쇠도 사고 농수산물 시장에 들러서는 간고등어와 꽁치, 고구마도 샀습니다. 아참, 케이크도 가지고 갔습니다. 어제 24일이 19번째 맞이하는 저희 부부 결혼기념일이라 선물로 받은 케이크도 어머니와 함께 먹으려고 촛불만 켜고 아껴 두었거든요.

시골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를 모시고 온천 목욕을 갔습니다. 연세가 여든여덟이시라 혼자서는 대중탕에 가지 못하시거든요. 점심때를 위해 밥솥에 밥만 앉혀두고 온천으로 향했지요. 시댁 가까운 곳에 꽤 큰 온천이 있거든요. 윗집에 살고 계시는 큰댁 형님도 같이 모시고 갔습니다. 어머니와 비슷한 연배시라 차가 있을 때 같이 가고 싶어 하실 거라는 어머님의 말씀에 남편이 모시고 오셨어요.

솔직히 제가 대중탕을 가는 일은 어머님과 같이 갈 때뿐입니다. 앗, 저를 너무 지저분한 사람으로 보지마세요.ㅎㅎㅎ 제가 성질이 조금 까칠한 탓에 대중탕이나 수영장에 가는 것을 싫어하거든요. 그걸 아는 남편에게 무지 생색을 내면서 갔답니다.

“이런 효부 봤어요? 어머님을 위해 이렇게 크리스마스 하루를 통째로 어머님과 같이 하는데다가 그렇게 싫어하는 목욕탕까지 모시고 가잖아요. 맞죠, 맞죠?”

남편은 조금 기가 막힌 듯 입을 삐죽거리더군요. 그래도 저의 생색은 쭈욱~~ 이어졌답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어머님은 소녀 같았어요. 등 밀어 드리는데 때가 조금만 나와도 엄청 부끄러우신  듯 바가지로 물을 끼얹는 모습도, 탕 속에서는 마치 아이가 되신 것처럼 물놀이(?)도 하시고.

집으로 돌아온 어머님과 큰댁 형님은 따뜻하게 데운 막걸리를 한 잔씩 하시면서 저희가 가져간 케이크도 멋있게 드셨어요. 아이들도 케이크와 김치를 같이 먹으면서 별미라며 신기해하고요. 모두 방안에 있는데 남편은 사랑채에 연결되어 있는 아궁이 앞에서 혼자 분주하더군요. 고등어를 구워내고 고구마를 재에 묻고 꽁치를 구워내고 하느라고 말입니다.

 

 

보이시죠? 고구마와 석쇠로 굽고 있는 꽁치.

정빈이는 고등어를 예슬이는 꽁치를 좋아하거든요. 저야 둘 다 좋아하고요. 큰댁 형님이 돌아가시고 아이들은 남편 곁에서 즐거운 모양이었습니다. 막걸리 잔을 씻고 점심상을 차리려는 제 뒤를 따라 주방에 오신 어머님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대구탕을 끓이시느라고요. 제가 한다고 해도 어머님은 당신 손으로 끓인 신 것을 저희들에게 먹이고 싶다면서.... 그런 어머니 곁에서 참 행복했습니다. 오늘 제가 받은 가장 큰 크리스마스 선물이 그 순간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어머니와 둘이 있던 그 시간이 제게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차려진 밥상.

밥상에는 장작불에 구운 고등어와 꽁치 구이, 어머님이 담그신 김치와 물김치, 그리고 대구탕이 차려졌고 온 식구가 어찌나 맛있게 먹었는지 몰라요. 고등어와 꽁치, 대구. 온통 생선만으로 차려진 밥상이었지만 진짜 너무 맛있었답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너무 맛있는 크리스마스라는 제 말 이제 이해가 가시죠?

점심을 먹은 후에는 저희 네 식구 시아버님의 산소를 찾았습니다. 원서를 낸 예슬이를 위해 남편이 마음을 보태주고 싶었던 모양이에요. 늘 이렇게 남편은 제가 생각지 못한 것으로 아이들을 챙겨준답니다. 산소를 다녀와 앞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마당에 앉아 아궁이 넣어 놓았던 고구마를 꺼내 먹었답니다. 이글을 쓰는 옆에  정빈이가 있는데 저에게 받아쓰기를 시키고 있습니다.

“고구마를 꺼내 먹었는데 어찌나 맛있던 지....” 하면서 말입니다.

고구마를 꺼 내준 남편은 어느새 방안으로 들어가 어머니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도 들어가자. 할머니 뵈러 왔는데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야지. 할머니는 우리가 오면 좋아서 그저 뭐라도 챙겨주시려고 어찌나 분주히 돌아다니시는지 정작 우리와 같이 얼굴 마주 보고 있는 시간을 그렇게 많지 않잖아.”

“할머니는 아버지가 아주 재미있게 놀아드리고 계실 텐데요.”

“물론 아버지가 잘 하시지만 할머니는 너희들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많이 좋아하시잖니? 얼른 들어가자.”

네 식구가 이불 하나에 발을 넣고 마주 앉아 보낸 시간도 참 좋았습니다. 어머님이 사투리도 심하시고 가끔은 저희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씀도 하셔서 그것 때문에 웃는 일도 종종 있어요.

“고구마 그거 맛있드나? 나는 그거 먹으니 속이 떼떼한 것이 영 별로두만”

“네? 떼떼하다고요?”

“그래. 속이 떼떼하드만.”

아무도 그 말의 의미를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깨를 으쓱하면 어머니는 혼자 우습다고 넘어가십니다.

“야들이 뭔 말인지 또 못 알아 듣는갑네.”

하시면서요. 선물로 들어 온 식용유를 옆집 혼자 사시는 할머니에게 드렸더니 좋아하시더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덴뿌라지름’이라고 하시는 것을 ‘식용유를 말씀하시는 거야’하며 제가 아이들에게 설명을 할 때도 있고요. 그렇게 겨울의 오후가 저물어 갔습니다.

“간장을 한 통만 가져가서 뭘할라꼬? 서너 통 가져가야제.”

“뭘하긴요. 요리할 때 쓰죠. 한 통만 주세요. 그래야 자주 오죠. 간장 떨어져서라도. 많이 주시면 그거 다 먹을 때까지 안 올지도 몰라요.”

“그래도 한 서너 통 가져가라.”

“싫어요, 어머니. 한 통만 가져갈래요.”

“거참, 많이 줄라 해도 싫다네.”

이것저것 챙겨주시고 싶은 어머니와 즐거운 실랑이를 한 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봐, 할머니 너무 좋아하시지? 나중에 너희들도 아이들 데리고 크리스마스에 엄마 집에 와야 해, 알았지?”

제 말에 정빈이는 고개를 끄덕이는데 예슬이는 이러는 겁니다.

“저는 아이 안 낳을 거예요.”

“아이를 왜 안 낳아? 둘 셋 넷 많이 많이 낳아야지.”

“자신 없어요. 저 같은 아이 낳으면 키울 자신이 없어요.”

“하긴. 너 같은 아이 키우는 거 쉽지 않아. 그래도 걱정 마. 내가 너 잘 키웠으니 너 같은 아이 낳기만 하면 내가 잘 키워줄 테니까. 너 알긴 아는구나. 네가 키우기 힘든 아이라는 거. 너 이번 수능 결과 나오고도 그렇고 엄마나 아버지 많이 힘들게 한 건 맞아.”

“그러니까 겁난다고요.”

“이모 아기 윤형이 봐 바. 얼마나 이뻐?”

“그렇게 누워 있을 때만 이쁘죠. 커 봐요.”

“걱정 마. 난 스무 살이 다 된 너도 지금 무지 이쁘거든. 그러니까 걱정 하지 마. 꼭 너 같은 아이 많이만 낳아.”

“어머니는.....”

예슬이는 말을 잇지 못하고 저를 한참을 바라보더군요. 그런 아이가 어찌나 이쁘던지요. 아, 오늘도 저의 팔불출은 여전합니다. ㅎㅎㅎ 

집으로 돌아 온 예슬이는 밤 외출을 했습니다. 친구들과 약속이 있었지만 가족들의 시간 때문에 혼자 늦게 약속 장소로 달려간 거지요.  남편은 약속이 있어 같이 가지 못하겠다는 말을 안 하고 같이 가고 일찍 가자 보채지도 않는 것이 고맙다면서 너무 늦어 친구들에게 한 소리 들으면 어쩌나 약간 눈치를 보기도 하지만 저는 아니랍니다.  

결혼기념일이기도 한 크리스마스에는 대부분 가족 여행을 갔었습니다. 올해는 여행대신 어머니와 같이 보내고자 한 것은 어머니도 연세가 많으시고 예슬이도 곧 더 넓은 세상으로 가게 되는 이 시점에 어쩌면 이렇게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는 마음에서였습니다.  할머니의 좋아시는 모습이 예슬이 가슴에 따뜻하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