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오랫만에 정빈이 이야기입니다.

착한재벌샘정 2007. 12. 3. 22:35
 바람소리가 어찌나 큰 지 무서운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남편은 대학원 수업을 갔고 예슬이는 놀러 갔고 정빈이는 잠이 들어서 저 혼자만의 시간입니다.

남편과 예슬이는 아마도 늦을 모양입니다. 남편은 그렇다 치고 슬이는 무엇을 하고 노는 건지.^^

오늘은 오랜만에 정빈이 이야기를 좀 하려고요.

집에서 저녁을 먹고 수업을 가는 남편인지라 오늘 저녁은 남편과 제가 마주 앉아 먹고 피아노 학원에 갔다 온 정빈이는 혼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정빈이는 고기를 아주 좋아하는데 12월 6일 기말고사를 앞두고는 수험생이랍시고 어찌나 생색을 내는지 거의 매일을 고기반찬을 먹으려고 합니다. 시골에서 가져온 배추에 고기를 얹어 두 그릇이나 먹은 정빈이가 오늘은 열심히 공부를 하겠다고 하더군요. 그 때가 아마 7시 반쯤 되었을 겁니다. 평소와는 달리 자기 방에서 하지 않고 제가 일하고 있는 서재로 와서는 제 노트북 맞은편에 앉지 뭡니까. 그러더니 제 노트북 뚜껑에 무엇인가를 붙이더군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열심히 공부를 하더군요. 정빈이는 수학을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데 시험공부를 한다고 하면 일단 수학부터 폅니다. 그리고 수학만 하고 그만 둘 때가 대부분이에요.^^

 

 

사진 속의 정빈이는 수학문제집을 펴서는 내일 현장학습 갈 때 들고 갈 수첩에 정리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갑자기 너무 열심인 거 같죠? 근데 저는 그 마음 이해가 가요. 왜 있잖아요. 괜히 그럴 때 더 공부하고 싶은 거, 더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요. 근데 솔직히 내일 현장학습 갈 때는 그렇게 수첩에 정리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간식 사둔 것 만 들고 들뜬 마음으로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거요.ㅎㅎㅎ   

기말고사가 얼마 안 남았는데 현장 학습을 두 군데나 간다고 투덜거리던 정빈이입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스케이트장을 갔는데 가기 전에는 공부도 해야 하고 감기 기운도 좀 있고 해서 그냥 벤치에 앉아 있다가 올 거라더니.... 웬걸요. 어찌나 열심히 탔는지 다리가 아파 제대로 걷기가 힘든 상태가 되어서 왔지 뭡니까. 노는데 빠질 정빈이가 아니지요.^^

토요일은 다리가 아파서 일찍 잤고 일요일 오전에는 저와 도서관에 다녀왔어요. 그리고는 오후 내내 시험공부를 위한 준비를 하면서 보냈답니다. 그 준비가 바로 노트북 뚜껑에 붙인 ‘열공’하자는 글과 그림이었답니다. 너무 지쳤다며 저녁을 먹자마자 잠자리에 드러누워 버리더군요.

“여보시오, 아가씨. 에너지를 어디에 쏟아야 하는 지를 잘 판단해야지. 열공 포스터 만드느라 기운 다 빼버리고.”

“그러게요. 저도 후회하고 있어요. 그러니 이제 그마안~~~~”

그리고 오늘. 잠시 제 앞에 앉아 몇 장 적는 것 같더니

“아함~~~ 공부가 어려운 것은 아닌데 잠이 왜 이렇게 오는 건지.”

하면서 슬그머니 책을 덮더니 방을 나가는 겁니다. 그러더니 한참 만에 서재로 돌아오기에 한 마디 했는데 제 입에서 말이 잘못 나왔어요.   

“이쁜 아가씨, 얼른 자야지요.”

허걱! 진짜 제가 하려던 말은 자라는 것이 아니라 공부 좀 하지라는 것이었는데.....

그런데 그 말이 떨어지자 말자 팔짝 팔짝 뛰면서 좋아라 하는 정빈이. 손뼉까지 치면서

“어머나, 어머니. 지금 어서 자라고 하셨나요? 네에~~ 어머니 말씀을 잘 들어야죠.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자러 갑니다.”

이러고는 얼른 자기 방으로 가버리는 겁니다. 그리고는 그 길로 꿈나라로 가버렸지요.

요즘 정빈이가 가장 몰입하는 것은 기말고사가 끝나고 있을 장기자랑 준비랍니다. 친구들과 댄스 그룹을 만들어 춤을 출거라고 하네요. 소녀시대라는 그룹을 흉내 낼 모양이에요. 어찌나 열심인 지 이러다가 곧 가수 데뷔해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리고는 모자에 열광하고 있는 중입니다. 저를 닮은 모양이에요.

 

 

집에 있는 저의 모자를 다 꺼내서 써보고는 학교에 갈 때에도 거의 매일 모자를 쓰고 간답니다. 특히 사진속의 회색 모자를 좋아해서 집에서 쓰고 있어요. 조금만 더워도 못 참는 아이인지라 속옷차림을 하고 있을 때가 많은데 그 때도 모자는 쓰고 있지 뭡니까. 그런데 정빈이 볼이 어디에 얹혀져 있는 지 아십니까? 바로 제 머리입니다. 제 머리 위에 자기 얼굴을 얹고는 얼굴 크기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 지 사진으로 찍어서 비교해본다나요. 너무 비교가 되어 사진을 잘랐습니다. ㅎㅎㅎ

 

 

이 사진속의 정빈이는 영어 받아쓰기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하루에 10문장씩 테이프를 들으면서 영어로 받아쓰고 그것이 정확한 단어인지 영어사전으로 찾고 문장을 해석하고 있는데 솔직히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건너 뛸 때가 더 많답니다. 그래도 받아쓰기 한 것을 보면 신통할 정도랍니다.

그런데 참 편안하게 하고 있죠? 저 자세에서 거실을 몇 바퀴 구르는 것은 기본이랍니다. 이 때에도 모자는 여전히 쓰고 있고요.

요리도 정빈이의 꾸준한 관심사입니다. 요즘은 호떡 굽는데 재미를 붙여 저희 가족 간식을 제공해 주곤해요. 정빈이의 호떡은 정말 맛이 일품이랍니다.

 

 

그리고 열광하는 것이 또 있는데 만화책 보기. 어제 도서관에 갔다 나오는데 도서관 바로 앞에 만화방이 가게 정리를 하는 겁니다. 그곳에 들어 간 정빈이는 흥분의 도가니 그 자체였답니다. 결국 저를 졸라 9권의 만화책을 샀는데 한권에 오백 원씩 해서 사천 오백 원. 물론 그 돈은 정빈이의 용돈에서 조금씩 감해가려고요.

“얼마 하지도 않아요. 한 권에 오백 원요.”

“그래? 얼마하지 않으니 네가 스스로 지불할 능력이 되겠구나.”

“그런 게 어딨어요?”

“여기. 네가 말한 대로 얼마 안 되는 그 정도는 네가 알아서 해결할 수 있어야지, 안 그래?”

“아~~ 말도 안돼요. 내 용돈이 얼마 된다고? 저한테는 얼마나 큰 돈인데.”

“거참 이상하다. 처음하고 말이 다르잖아? 얼마 안 되는 돈이라면서?”

“그거야 엄마한테 얼마 안 되는 돈이라는 거죠.”

“물론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그 만화책은 어머니한테는 전혀 쓸모가 없거든. 단지 네가 가지고 싶다는 것에 의미가 있을 뿐. 그러기에는 결코 적지 않은 돈이야. 그 만화 사가지고 가면 며칠동안 너 만화책에 코를 박고 살 텐데 솔직히 어머니는 그것도 좀 그래.”

“이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네 용돈에서 제할 거야. 그렇게 해서라도 꼭 사고 싶으면 사.”

“..... 알겠어요. 살 거예요.”

그렇게 산 만화책을 열공 포스터 만드느라 기운을 너무 빼서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하고 잠이 들어버렸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요리하는 거 좋아하고 춤 연습하느라 바빠서, 그리고 시험공부 준비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버려 공부할 기운이 별로 없다는 정빈이지만 그래도 제법 달라진 것이 있답니다.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같이 공부하기도 하고(춤 연습할 때가 더 많지만요^^) 이번 시험에는 어느 정도 점수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하고 늘 올백을 맞는 반 친구를 이겨보고 싶다고도 하고. 자기는 머리는 좋은데 몇 프로 부족한 것이 있는 데 그게 바로 노력이라네요. 그리고 쏟아지는 잠. 정빈이를 보고 있으면 늘 그렇지만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걸 보면 전 역시 팔불출 엄마입니다.  

 

아참, 정빈이가 좋아하는 것 하나 더. 바로 예슬이나 저의 옷을 입기를 좋아한다는 겁니다.

조오기~~ 위의 공부하는 정빈이가 입고 있는 줄무늬 스웨터도 제 옷이랍니다. 소매가 길어 보이죠? 자신이 부쩍 컸다는 것 때문인 지 얼른 어른이 되고 싶은 건지, 하여튼 정빈이가 아침마다 옷장을 뒤지는 통에 안 그래도 정리 안 된 옷장 안이 더 엉망이랍니다. 안에 입고 있는 티셔츠도 제 것이다 보니 목 부분이 커서 축 쳐진 것이 느껴지시죠?

정빈이 이야기를 자주 올리지 못하는 것은 지난번에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정빈이가 사춘기를 지나고 있어 자기 이야기를 엄마 마음대로 하는 것을 그리 내켜하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오늘도 모처럼 정빈이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리고 싶다고 하면서 공부하는 사진을 찍으니 순간 멈칫 하는 것이 진짜 예전하고는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이렇게 아이는 커가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