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왜 이렇게 감사한 게 많죠?

착한재벌샘정 2007. 2. 5. 01:02

오늘 저와 정빈이는 개학입니다.

아이들 늘 그렇듯 토요일부터 밀린 방학숙제를 하느라 정빈이는 조금(?) 바빴습니다. 이번 방학을 시작하면서 학교 특기적성 두개에 미술학원까지 다니게 되느라 아마 태어나고 제일 바쁜 방학을 보낸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와 노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어 몇 번 제가

 ‘엉엉엉 엄마랑 놀아주지도 않고 엉엉엉’

하며 엄살 아닌 엄살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그거 한편으로 좋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지 서운하기도 하고.... 그렇더군요.

 

그리고 이제는 다 컸다고 요리를 할 때도 저의 도움을 별로 청하지도 않습니다. 2월 3일이 친구 윤정이의 생일이라고 자신이 직접 만든 쿠키를 선물하고 싶다면서 금요일 학교 출근을 한 저에게 퇴근하면서 베이킹파우더를 사오라고 전화를 했었어요. 저녁 먹고 같이 만들자는데 그날은 학교에서 일이 너무 많았던 까닭에 도저히 피곤해서 안 되니 토요일 아침 일찍 만들어 갔다 주자고 하고  억지로 꼬셨(?)답니다. 윤정이는 2학기가 되면서 전학을 온 아이에요. 저와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선배님의 딸인데 마침 저희 앞 동으로 이사를 오게 되어서 정빈이와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되었어요. 같은 반은 아니고요. 윤정이가 전학 온 날 정빈이가 윤정이 반으로 찾아 갔었대요. 윤정이를 불러 먼저 인사를 했다는군요.

“나는 윤정빈이야. 우리 친하게 지내자.”

엄마들을 통해 서로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던 사이였지만 정빈이의 이런 적극적인 행동에 윤정이와 선배님은 좀 놀랐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해서 친구가 된 정빈이와 윤정이는 아주 친하게 잘 지낸답니다. 윤정이를 만나 처음 맞이한 생일이라 특별한 것을 선물해주고 싶어 하던 정빈이가 생각해낸 것이 직접 구운 쿠키였습니다. 정빈이는 요리책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 자주 보는 책입니다.

 

인터넷교보에서 가져왔습니다.

 

<귀여운 빵 & 쿠키>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만들기 쉬운 것들이 많아 저도 좋아하는 책이랍니다.

토요일 아침, 부엌에서 들려오는 분주한 소리들은 정빈이가 쿠키를 구울 재료들을 준비하는 소리였습니다. 재료가 다 준비가 되면 나를 부르겠지, 하며 비몽사몽 상태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는 거예요.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그저 기다리고만 있었는데....

한참 후에 제 방으로 들어 온 정빈이.

“반죽 덩어리 냉장고에 넣어 두었는데 36분에 꺼내서 밀어야 해요.”

이러는 게 아닙니까? 혼자서 다 했냐니까 언니가 좀 도와줬다면서 다음에는 완전히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거예요. 순간 어찌나 서운하던지..... 참 말로 표현하기 어렵더군요.

‘하긴 예슬이도 이만할 때부터 혼자 하곤 했으니... 그럴 때도 됐지....’

하면서도 서운한 마음이 가시지를 않아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부엌으로 갔습니다. 혼자 할 수 있다는 아이 곁에서 얼쩡거리기라도 해야겠다 싶어서요.

 

   

      

 

혼자 힘으로 친구를 위해 열심인 정빈이 옆에서 그저 이렇게 사진이나 찍고 있었습니다. 아, 아닙니다. 보탠 것은 있어요. 하트 모양으로 큰 쿠키를 만든 것에 ‘축하’라는 글씨를 만들어 붙이고 가스 오븐을 켜준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초콜릿을 녹여 살짝 발라주는 아이디어까지. 초콜릿을 전자렌지에 녹이다가 시간을 너무 많이 해서 홀라당 태우는 실수까지도 보탰네요. 남편은 그런 저를 보고 제대로 좀 잘하지, 하면서 도와준다면서 제대로 못한다고 핀잔까지 주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윤정이의 생일 선물입니다.

 

   

 

 

접시에 담은 채 윤정이에게 직접 가져다주고 온 정빈이는 아마도 참 행복했을 겁니다. 반죽의 절반으로는 선물을 만들고 남은 반으로는 자신과 친구 지원이의 간식을 만든 정빈이는 토요일 오전을 부엌에서 분주하면서도 즐거워했습니다. 직접 만든 간식을 먹으며 둘이서 같이 하니 밀린 숙제도 재미있는 모양이었습니다.

 

   

 

바빠서 요리할 시간도 잘 없다는 정빈이. 이제는 자신만의 힘으로 누군가에게 마음을 담은 요리를 하게 되는 가 봅니다.

 

정빈이가 요리책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월간 잡지인 ‘과학쟁이’입니다. 매달 배달되어 오는 잡지를 얼마나 기다리는지.... 책에 나오는 퀴즈도 꼼꼼히 풀어 독자카드도 매달 보내고 솜씨 자랑에 그림을 그려 보내기도 합니다. 정빈이의 그림이 뽑혀 책에 실리고 예쁜 선물도 받은 적이 있는데 이번 달에도 여전히 그림을 그려 보냈답니다.

 

 

  

받고 싶은 선물도 잊지 않고 적어서요.

이러고 노니 저와 같이 놀 시간이 없을 수밖에요.

아이들이 너무 빨리 크는 것 같아 서운한 거 있죠? 이러다 금방 남편과 둘이서 밥 먹고 둘이서 산책하는 날이 오겠지요. 서서히 품에서 떠나보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건만 너무 욕심인가요? 예슬이가 가끔 그럽니다. 아직 어머니랑 영화보고 어머니 아버지랑 같이 쇼핑하고 가족여행에 꼬박꼬박 참석하는 아이 드물다고, 효도하는 줄 알라고요.ㅎㅎ

 

저는 ‘우리 집 애기들’이라는 말이 입에 붙었는데 한 선배가 그러더군요.

“그 집 애기? 애기이~~~ 엄마보다 한 뼘은 더 큰 애기 말이지?”

저는 왜 늘 아기로 보이죠? 학교 아이들도 그렇고 자원봉사하며 만나는 아이들도 모두 아가로만 보이니.... 이제 스물이 훨 넘은 청년이 된 아이들도 저의 ‘야아, 무슨 아가들이....’라는 말에 기가 차다면서 제발 자기들이 다 컸다는 것을 좀 알아 달라지만 제게는 늘 그렇게 보이니....

 

아이들이 크는 것을 지켜볼 수 있는 이것도 참 감사한 일이에요. 며칠 전 제가 아는 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고2가 된 아들을 세상에 남겨두고. 아프다는 말을 들은 지 채 두 달이 되지 않아서요.....엄마가 곧 자신의 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것도 모른 채 엄마가 빨리 낫기만을 기다리던 아이를 남겨두고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 아니, 지금의 이 모든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희들에게는 아직 ‘지금’이라는 ‘기회’가 있으니까요. 아이들에게, 아니 곁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마음을 주면서 살기로 해요. 언젠가는 주고 싶어도 못 주게 되는 날이 올 거잖아요. 내일이 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가장 중요한 오늘이 우리에게 있음을 감사하면서 살기로 해요.

그러면서 생각해 보니 감사한 게 너무 많아요.

겨울 내내 네식구 감기 한 번 안 걸린 것도 감사하니 얼마나 감사할 게 많아요, 그죠?

입춘도 지난 2월, 여러분들 마음이 따뜻한 나날이 되길 바래요. 이제 곧 봄이잖아요. 따뜻한 봄을 우리들 마음에서 먼저 만끽해보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