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참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다이어리’입니다. 다이어리를 참 열심히 쓰는 편인데 2003년에 사서 속지만 갈면서 지금까지 제 곁에 있는 다이어리입니다.
참 이쁜 밝은 분홍색이었는데 손때가 묻어 색이 모호해졌습니다. 한 해가 가기 전에 새로운 해에 쓸 다이어리를 새로 살까 해서 참으로 열심히 찾아다니는데 제가 ‘파~~~악!’하고 ‘피~~일’이 꽂이지 않으면 좀처럼 새로운 물건을 사지 못하는 성격이라 아직 제 곁에 있습니다. 물론 멀쩡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색에 대단히 민감한 편이라 새 다이어리들을 유심히 살피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나의 단번에 사로 잡는 다이어리가 어디 없을까?'하면서요.
매년 속지와 펜은 새로 삽니다. 4가지 색과 샤프펜슬이 같이 있는 좀 굵은 펜은 처음 잡을 때는 굵기 때문에 조금 부담스럽지만 아주 요긴하게 쓰인답니다. 다양한 색으로 글을 쓰는 것도 재미있고 학창시절처럼 밑줄도 긋고 별표도 하고.
며칠 전, 일 때문에 처음 만난 기자아가씨가 다이어리를 꺼내 제가 일정 체크를 하는 것을 보고 하도 구경 좀 하자 졸라대서 진땀을 뺐답니다. 40대가 이렇게 다이어리를 쓰는 것은 처음보았다면서요..... 아, 그 사람 진짜 끈질기더군요. 결국 보여주었는데 그 때 다이어리에 관해 글을 한 번 써야겠다 생각했어요.ㅋㅋ 이러면서요.'이 아가씨 웃기네. 40대는 다이어리 쓰면 안 되나?'
저의 다이어리는 가계부와 일기장, 낙서장, 그리고 저의 미래에 대한 희망이 담겨져 있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해 주는 것은 저를 끊임없이 되돌아보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다이어리에 글을 쓰면서, 그리고 며칠 전에 썼던 글들을 보면서 저를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볼 수 있어 좋습니다.
다이어리를 쓰면서 좋은 점이 많아 여러분들께 소개를 할까 합니다. 자, 함께 하실까요?
맨 앞에 올해 제가 이루고 싶은 일들을 굵은 펜으로 적어 둔 것이 보입니다.
다이어리를 매일 펼치기 때문에 늘 이 글을 보게 되고 제가 무엇을 향해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어 좋습니다.
얼만 전에 예슬이, 정빈이와 함께 재미있게 읽은 ‘프린세스 마법의 주문’이라는 책에도 지갑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적은 위즈덤 카드를 꽂아두고 될 수 있으면 자주 그것을 보라고 되어 있더군요.
예슬이와 정빈이는 그 책을 읽으면서 마치 어머니가 쓴 책인 착각이 들 정도라면서, 제가 참으로 자주 하는 이야기들이 적혀 있어서 놀랍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고 하더군요. 저도 재미있어서 두 번이나 읽었답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빌려주었어요.
그 책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자신이 살고 싶은 멋진 궁전을 마음속으로 그려라. 그리고 그 궁전에서부터 시작하여 길고 긴 계단을 그려 내려오고 그 계단 끝에 너를 세워라. 네가 살고 싶은 궁전에 가기 위해서는 그 길고 긴 계단을 네가 직접 한 계단 한 계단 밝고 올라가야만 한다. 그 어떤 일도 노력 없이는 안 된다는 이야기.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선택이라는 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를 고르는 것이라는 이야기.
저를 보고 친구는 학습효과가 아주 확실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책에서 뭘 배우면 그것을 꼭 해본다면서. 자신은 책을 읽을 때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책을 덮고 나면 책은 책이고 나는 나라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살아간다면서.
저는 제가 올해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보고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적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적어 보았습니다. 그 과정은 참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막연히 시간이 부족하다, 왜 마음먹은 대로 안 되지, 했던 것들의 원인들을 찾을 수 있었거든요. 이제까지 해오던 것들을 당연히 다 하면서 새로운 것도 하려고 했던 거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무엇을 포기해야 할 것인가를 고르는 작업도 쉽지가 않았지만 그 과정을 겪어보니 길이 조금 더 밝게 보이는 것 같아 행복했습니다.
그 다음 장부터는 노란색의 속지를 끼워두었습니다. 여기는 제가 수업을 할 때 필요한 아이디어들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를 해둡니다.
교사로서 제게 수업만큼 중요한 것은 없잖아요. 아, 그 부분은 이렇게 설명하면 되겠다는 반짝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만 메모를 해두지 않으면.... 그러다 보니 그림으로 또는 휘갈겨 쓰기도 해서 제일 지저분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 다음은 신문이나 인터넷 서점 등을 통해 알게 된 책 정보를 적어 둡니다. 왼쪽 것 반쯤 적었을 때입니다. 오른쪽은 그렇게 알게 된 책들을 어떤 경로로 구할까에 대해 메모를 한 뒤입니다.
일단 꼭 사야할 책과 빌려 봐도 될 책으로 구분한 뒤 사야할 책은 언제쯤 살 것인가를 메모해둡니다. 그리고 빌려 볼 책은 먼저 대구시내 공공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책이 있는 지 알아보고 있는 책은 빌리러 갔을 때를 위해 분류 번호를 적어 둡니다. 그 다음은 동네 대여점에서 빌려 볼 수 있는 지를 알아봅니다. 빌려봐도 되는 책인데 도서관과 대여점에도 없다면 잠시 갈등을 합니다. 될 수 있으면 빨리 읽어야 할 전공 책이라면 구입을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도서관의 희망 도서란에 신청을 해두고 기다립니다.
그 다음을 볼까요?
제가 쓰는 속지는 하루에 두 쪽을 쓸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왼쪽에는 하루의 일정과 그날 해야 할 일에 대해 적어두고 그 결과를 일일이 점검 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그날 쓴 돈에 대해 적을 수 있는 곳도 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은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어 있고요.
사진처럼 왼쪽에는 그날 쓴 돈에 대해 적으면서 영수증을 같이 붙여 둡니다. 신용카드를 쓴 경우는 어느 곳에서 썼는지 한 분에 알 수 있도록 가게 이름에 펜으로 동그라미를 해서 표시를 해두고 그것을 사용할 때 기억해 두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메모를 남겨둡니다.
그 어떤 영수증도 꼭 붙여둡니다. 공영주차장의 몇 천원 영수증도 붙여두고, 재래시장에서도 될 수 있으면 간이 영수증이라도 달라고 해 붙여둡니다. 영수증뿐만 아니라 그날 지출 내역을 빠뜨리지 않고 기록을 하지요. 이렇게 한 뒤 일주일 단위로 은행에서 제공하는 인터넷 가계부에 정리를 합니다. 미뤄서 한달에 한두 번 할 때도 있고요.ㅎㅎ
간혹 계획에 없던 충동구매를 하거나 예산보다 많은 돈을 썼을 때는 영수증 붙이지 말아버릴까 싶은 유혹을 느낄 때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렇게 영수증을 붙여두니 제가 돈을 어떻게 쓰는지를 알 수 있어 저를 다스리고 조절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어 주고 있답니다.
이걸 본 친구는 한 마디 합니다.
“너 이 다이어리 펼칠 때마다 억수로 찔리겠다. 돈 쓴 거 이렇게 한 눈에 다 보이도록 해두었으니 말이야. 나는 영수증만 모아두는데 화장대 열다가 그 뭉치만 봐도 한숨이 나오던데. 이걸 뭐 이렇게 붙여 두냐? 이거 보면서 돈 쓸 생각이 나겠냐?”
이렇게 영수증을 붙여 두고 하루 동안 쓴 돈에 대해 파악을 해 두는 것은 참 중요한 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이런 모습을 보고는 아이들도 용돈 기입장을 참 꼼꼼하게 열심히 잘 쓰고 있답니다.
오른쪽은 보통 일기장으로 쓰입니다. 일기장이라고 하지만 저녁에 쓰기 보다는 하루 동안 그때 그 때 기록을 해야겠다 싶으면 쓰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입고 싶은 옷을 그려보기도 하고, 유학 떠났다는 친구 소식에 부러워 몇 장을 주절주절 쓰기도 하고요.
아, 제가 해놓고도 재미있는 것이 있어 소개할게요.
저는 옷을 참 좋아합니다. 그러다 보니 새 옷에 대한 욕심도 많지만 옷값이 장난이 아니지요. 물론 저는 재래시장인 대신동 시장에서 대부분의 옷을 사는데 솔직히 시장이라도 마음만큼 옷을 살 수는 없잖아요. 저 스스로 쇼핑 욕구를 제어하는 방법입니다. 다이어리에 적혀 있는 것을 그대로 옮겨 볼게요. 맨 앞에 브랜드 명이 나오는데 시장에는 유명 브랜드 카피 제품이 대부분이라 가게 주인들이 이야기한 것으로 적은 것입니다. 2월 5일, 겨울방학을 끝내고 개학을 한 날, 대신동에 갔었고 사진속의 다이어리는 2월 8일에 쓴 것입니다.
다시 물어볼게. 대신동 가서 뭘 사고 싶은데?
시** 블라우스 70000
YK*** 조끼 70000
신** 땡땡이 바바리 150000
코데**** 검은색 치마 50000
또?
검은색 스키니 바지
이 돈이 어디 있지? 통장에? 여유가 없잖아.
벌써 쓴 돈이 얼마지?
바바리 238000
벨트외 83000
여기서 더 쓴단 말이야? 그건 안돼.
시** × (안 된다는 표시 ㅎㅎ)
조끼 ×
바바리 ×
코데*** ×
모두 안됨.
이번 달에는 0으로 만들자고 했으면서?
하지 마. 돈은 더 이상 쓰면 안돼.
(옆에 돈 합계 해 놓은 것은 옮길 수가 없네요.ㅎㅎ)
여기까지 쓰고 다시 위로 올라가 옷과 가격이 적혀 있는 것에 줄을 좍좍 그어 지워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이상하게 마음속에서 스르르 쇼핑의 욕구가 사라진답니다. 예슬이가 살이 더 많이 빠져 예슬이 옷을 사는데 이미 지출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이게 먹히지 않을 때도 있답니다.
‘다 해봐야 백화점 가서 재킷 하나 사는 것도 안 되는데....’하는 마음이 들면 잘 안 먹혀요. ㅎㅎㅎ
그럴 때는 조금 더 강한 처방이 필요하지요. 그럴 때는 이런 방법을 씁니다. 이번에 약발이 잘 안받아서 2월 10일에 이런 글을 썼었네요.
대신동을 가면 안 되는 이유
①28일 정빈이 옷과 운동화 사야함
②신학기에 예슬이 교재비 엄청 필요함. 모두 현금으로
③저축해야지.
④이건 없어도 되지만 미래 준비는 해야지.
⑤여기서 무너지면 나 스스로가 미워질지도 몰라.
⑥옷은 이미 많잖아.
⑦있는 옷으로 최대한 멋진 봄을 보낼 수 있어.
⑧여름에 멋진 원피스 하나 사자.
⑨적은 돈 같지만 몇 개 모이면, 개념 없이 쓰다보면 결국 적지 않은 지출이 되는 거야.
하나 값에 여러 개? 하지만 그것도 적지 않는 돈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백화점 옷과 비교해서 싸다고 생각하고 사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야.
이런 것들을 생각만 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글로 쓰다보면 훨씬 더 차분하게 현실을 인식하게 되고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답니다. 그리고 입을 옷이 없다고 생각이 들면 옷장을 열어 어떤 옷들이 있는 지 한 번 적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랍니다. 이 때는 아주 고급 옷 집의 매장 매니저가 된 듯 다이어리를 들고 폼을 내면서 하면 기분이 아주 좋아져요. 생각보다 잘 입지 않은 옷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더군요. 솔직히 자주 손이 가는 옷은 몇 벌이잖아요.
올해는 친구들 유학 소식이 자꾸 전해지는 지라 그것에 관한 글들이 많아요. 올 2월에 3명이나 유학을 갔거든요. 미국, 영국, 중국으로. 언젠가 꼭 저도 좀 더 공부를 해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그 친구들의 용기에 감탄과 부러움을 갖게 되네요. 저와 같은 교사 생활 20년을 해 온 친구는 더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재충전이 필요하다며 미국으로, 영문학을 전공한 뒤 기자 생활을 하던 친구는 더 이상 미루면 자신이 공부한 영어를 제대로 써보지 못할 것 같다며 영국으로, 출판사 편집장이던 친구는 우연히 귀에 들려 온 중국어가 그렇게 좋을 수 없다며 중국으로. 모두들 용기가 대단해요, 정말.
제 다이어리의 맨 마지막에는 저의 미래에 대한 준비가 들어 있습니다. 줄이 없는 속지를 꽂아 쓰고 있습니다. 저는 디자인 공부를 해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거든요. 한 때 가구 디자인을 했었던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제대로 공부를 해보고 싶어요. 가구와 옷은 언뜻 먼 것 같지만 저는 늘 함께 묶어 생각하곤 한답니다.
서점에 가거나 책대여점에서 빌려보는 잡지 책 중에서 얻은 정보들을 적어두기도 하고 저만의 생각들을 적어두고 있답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조금씩 활용해보기도 하고요.
대신동에서 옷가게를 하는 친구가 있는데 단골인 제게 가끔 공짜 선물을 주기도 합니다. 그 중 하나가 이 조끼였는데 너무 아이 옷 같아 입지 않고 있다가 얼마 전 옷장 점검에서 제 눈을 반짝이게 했습니다.
삼천원 주고 비즈 가게에서 사온 비즈들을 달았더니 모두들 감탄을 한답니다. 크기와 모양이 다른 보라, 노랑, 투명, 세 가지를 섞어서 달았어요. 올 봄에 회색 스키니 진과 아주 잘 입을 것 같아요.
40대.
어떤 나이일까요? 젊지도 그렇다고 늙은 것도 아닌.....
하지만 저는 이 나이를 열심히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꿈을 꿉니다. 턱을 괴고 앉아 다이어리를 쓰면서 이런 저런 아주 많은 꿈들을 말입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평균수명까지 산다면 지금까지 살아 온 시간만큼 더 살아야 하는데.... 그럼 오늘 태어났다 생각하자. 그러면 내게 얼마나 많은 것들이 남아 있는가?’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머리핀 대신 받은 남편의 마음 (0) | 2007.03.23 |
---|---|
초등학교 입학하는 아이와 부모님께 권하는 책 몇 권 (0) | 2007.03.05 |
명절 덕분에 '밥맛'이라는 핀잔, 엄청 들었네요 (0) | 2007.02.21 |
왜 이렇게 감사한 게 많죠? (0) | 2007.02.05 |
공부 <잘하지?> 대신 <열심히 해> (0) | 2007.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