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아이들

선생님이 학생들 몰래 카메라를?

착한재벌샘정 2006. 12. 6. 03:28

과학수업시간에 아이들이 점자 모형으로 시각장애인 체험을 했습니다.

스티로폼에 구슬이 달린 핀을 꽂아 글자와 그림을 만들어 점자 모형을 만듭니다. 글자는 한 음절씩으로 두 개를 만들고 그림은 정형화되어 있는 것에서 조금씩 변형시켜 일부분으로 전체를 상상할 수 없도록 만들도록 합니다. 진도가 가장 빠른 반의 아이들이 각자 1개씩 만들어 제가 수업을 하는 6반 학생들이 그것으로 수업을 합니다.

작년부터 <자극과 반응>이라는 단원의 수업을 이 점자 모형을 이용하여 시작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은 과학 수업시간에 이런 체험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굉장히 신기해하기도 하고 자신이 경험한 것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나타냅니다. 

아이들은 눈을 감은 채 작업대 끝에 쌓여 있는 점자 모형을 하나씩 자신의 앞으로 가지고 가 시험지에 점자 모형에 있는 것들을 옮겨 그리는 작업을 합니다. 작업을 하는 동안은 눈을 뜨지 않고 모든 것을 하도록 합니다. 손가락으로 점자모형의 글자와 그림이 무엇인 지 알아내는 일, 연필이나 지우개를 찾는 일, 틀린 것 같아 수정하는 일, 간혹 시험지를 과학실 바닥에 떨어뜨린 경우에도 눈을 감은 채 찾아야 합니다. 시간은 길어야 10분에서 15분 정도이지만 아이들은 그 시간동안 눈을 감고 있는 것에 대해 정말 많이 힘들어한답니다. 점자 모형을 앞에 두고 손을 대어 본 순간 아이들의 입에서는 수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오지요.

“이거 도대체 뭔데?”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등등

“지금 눈뜨고 있는 친구는 한명도 없는데 이게 도대체 뭐냐고 묻는 건 아무 의미가 없죠? 혹시 선생님에게 묻는 건가요? 눈 뜨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니까, 그런 거예요? 반말하지 마세요.”

와르르 쏟아지는 아이들의 웃음.

이 작업을 해보면 아이들마다 반응이 참 다양해요. 얼굴이, 심지어는 목까지 터질 듯이 빨개지는 아이도 있고, 무엇인 지 너무 궁금한 나머지 핀의 구슬을 마구 흔들어 결국에는 몇 개를 뽑아버리는 아이도 있고, 간혹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르겠다며 포기해버리고 엎드려 버리는 아이들도 있지요. 

아이들이 작업을 하는 모습입니다. 한 반에게 사진을 찍을 거니 작업을 하는 동안 카메라폰의 소리가 들려도 이해 해 달라 부탁하고 찍은 것입니다. 아이들의 얼굴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 골랐습니다. ㅎㅎ

 

 

 

아이들이 작업을 하는 동안 저는 아이들 몰래 캠코더를 이용하여 아이들의 작업하는 모습을 촬영을 합니다. 수업을 한 모든 반 아이들의 작업 과정을 캠코더에 몰래 담았습니다. 이 수업이 있는 날에는 신발에 신경을 씁니다.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 신발을 신고 평소 제가 참 좋아하는 향수도 이날만큼은 뿌리지 않고 출근합니다. 물론 캠코더도 아이들이 눈을 감고 작업을 시작한 후에 꺼내지요.

줌으로 당겨서 찍는 것이 아니고 아이들이 앉아 있는 작업대 사이를 일일이 다니면서 아이들의 손에 최대한 캠코더를 가까이 하여 촬영을 합니다. 그러면 뭐가 몰래가 되느냐 하시겠지만 아직까지 작년부터 열 두 반의 모습을 캠코더에 담는 동안 눈치를 챈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답니다.

그렇게 촬영한 것을 아이들이 작업을 다 하고 눈을 뜨면 보여준답니다. (올해는 6반 중 한 반만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교과서 수업 말고 이런 식의 수업을 많이 하느라 진도가 조금 늦은 까닭에....작년에는 반마다 다 보여주면서 다른 반의 수업을 위해 몰래카메라 사실을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아이들이 정말 어찌나 굳게 그 약속을 지켜 주었는지 모든 반의 몰래 카메라가 성공했답니다.)

 

 

아이들은 깜짝 놀라지요. 몰래 카메라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텔레비전 화면 속의 너무나 다양한 자신들의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우스워 배를 잡고 깔깔거리기도 하고.

화면을 직접 보여주지 못한 반도 아이들에게 몰래 카메라를 찍은 사실을 그 다음 시간에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몹시 당황스러워하고, 자신들의 모습을 궁금해 하지요.

 

“그렇게 가까이 가서 촬영을 해도 여러분들이 몰랐던 이유는 뭘까요? 선생님이 몰래 그런 일을 할 거라는 것을 상상도 못했기 때문 일겁니다. 그리고 손끝에 모든 것을 집중하느라 다른 것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을 테고요. 그럼 선생님은 왜 여러분 몰래 촬영을 했을까요? 자, 교과서 한 번 볼까요? 집안에 불이 났는데 집안에 있는 사람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라고 단원이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가.... 그렇죠.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불이 나는 것을 보거나 뜨거운 열기를 느끼거나, 타는 냄새가 나거나, 타닥타닥 물건이 타는 소리를 듣거나, 이렇게 우리가 가진 감각을 이용하여 우리의 소중한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우리에게 감각기관이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겁니다. 선생님이 여러분 몰래 여러분들의 모습을 촬영을 한 이유도 바로 이 점을 이야기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몰래 촬영한 것을 이야기 하지 않고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는 일도 가능하겠지요. 어느 날 여러분들은 자신도 모르게 찍힌 여러분들의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되고 여러 사람들의 홈피로 옮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렇게 단지 눈만 감고 있었을 뿐인데, 그것도 잠시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참으로 많은 위험에 무방비 상태가 되어버린다는 거지요. 만약 눈을 뜨고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대부분 고개를 숙이거나 카메라를 피했겠지요. 그것이 바로 시각이라는 감각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판단에 따른 반응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 행동은 생명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고요.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잠깐 장애 체험을 했지만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무심히 던진 말과 행동이지만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는 그들에게는 정말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혹여 그들이 우리의 말과 행동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래서 상처고 뭐고 될게 뭐가 있느냐 싶을지 모르지만 그런 것은 그들에 대한 인간으로서 우리의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자극과 반응에 대한 수업은 시작이 되지요.

 

아이들은 그 잠시지만 볼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건강함에 너무너무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그리고 엘리베이터 버튼의 점자가 그렇게 단순해야하는 지도 이해를 했다고도 합니다. 이렇게 두 눈이 잘 보이는데도 책 읽고 공부하는 것이 힘든데 점자로 된 책으로 모든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상상하기도 어렵다고.... 그래서 그들이 자신보다 더 위대 해 보인다고,, 이런 생각은 처음이라며 시험지 뒤에 자신들의 생각들을 쓴 아이들의 글을 읽으면서 열심히 해주고 많은 것을 생각해준 아이들이 많이 고마웠습니다.

 

<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친구가 있습니다. 여고시절 참으로 열심히 붙어 다녔던 친구는 눈이 정말 작았습니다. 아직까지 그 친구보다 눈이 작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상상이 되실 듯합니다. 솔직히 저는 제 눈이 참 예쁘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크기도 이만하면 됐고, 속눈썹도 숱도 많고 길이도 길고, 쌍꺼풀도 크지는 않지만 그나마 있고. 비록 안경에 가려 있어 그 진가를 다 발휘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내 눈은 참 이뻐, 뭐 이러고 살았더랬습니다. 그 친구로부터 그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어느 날 빵집에 마주 앉은 저와 친구. 문득 제가 평소 무척 궁금했었는데..... 하며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너 세상이 다 보이기는 하는 거니?”

“왜”

“눈이 너무 작으니까..... 다 보이기는 하는 걸까 싶어서....”

그 친구는 빵을 집으려고 가져 온 포크로 제 안경을 툭툭 치더니 혀까지 끌끌 차며 그러더군요.

자신의 눈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자기는 아직까지 자기 눈보다 아름다운 눈을 본 적이 없다고 말입니다. 지금은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친구의 이야기는 대충 이런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아름다움의 기준은 ‘본질’이다. 본질에 가장 충실할 때 제일 아름다운 거라고. 눈의 본질은 크기도 아니고 쌍꺼풀도 아니고 속눈썹의 길이도 아닌, 바로 얼마나 잘 볼 수 있느냐는 거다. 자신은 눈은 시력이 1,5와 2.0이라면서 이렇게 잘 보이는, 본질에 가장 충실한 눈인데 어찌 아름답다 하지 않겠느냐.그러니 너의 눈은 비록 자신의 몇 배(?)나 되는 크기에도 불구하고 안경이라는 보조 도구의 도움 없이는 가장 본질적인 <본다>의 기능을 해내지 못하니 자신의 눈과는 비교조차도 거부하겠다.

그 친구의 너무도 당당한 아름다움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 친구는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답니다.

 

오랜만에 책 소개도 할게요. 오늘의 주제와 어울리는 책 두 권을 골랐습니다.

먼저 <손가락 끝으로 꿈꾸는 우주인>입니다.

<책 표지 출처-인터넷 교보>

 

읽은 지는 좀 되었지만 참 다른 세상을 저에게 보여 준 책이었습니다. 시청각장애인이라면 헬렌 켈러가 떠오르죠? 이 책의 저자 후쿠시마 사토시는 후천적으로 시청각장애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홉 살 때 시력을, 열여덟 살 때 청각을. 이 책에서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뜻밖에도 <여유>였습니다.  시력을 잃고도 그리 충격을 받지 않고 ‘소리’라는 친구가 있어 음악, 텔레비전, 라디오를 즐길 수 있었고, 자유로운 대화,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를 이용해 혼자 걷기 등등 즐길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도 많았다는 저자. 청력까지 잃고는 상심도 많이 했지만 손가락 점자라는 새로운 대화 도구를 통해 다시 세상과 더불어 살게 되었다는 저자는 시청각장애인으로는 일본 최초의 대학에도 성공을 하고 1987년 대학 졸업 후 도쿄도립대 대학원에서 장애아 교육을 전공하고, 도쿄도립대학 조교, 가나자와 대학 조교수를 거쳐 2001년 봄부터 도쿄대학교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 barrierfree(장애 해소)부문 조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니 놀랍기 그지없었습니다. 그의 힘의 원천은 바로 삶에 대한 열정과 여유라는 것을 책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지만 손으로 세상과 대화하며 살아가는 사람. 우리에게는 그들의 내민 손을 잡을 마음의 여유가 있으리라 믿어봅니다.


또 다른 한 권은 <소나기 30분>입니다.

   

책 표지의 일명 ‘ET 할아버지’와 그 옆에 미소를 짓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한동안 표지를 넘기지 못하고 한달 정도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제가 아주 비과학적인 사람이라는 건 다 아시죠?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는 법이라며, 이 책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이럴 거야, 이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까지 그냥 있어보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나고 나서 표지를 넘기고 몇 장 읽어 내려가니 조금 속이 상했습니다.

‘이렇게 시련을 잘 견디는 사람은 뭐야?’

뭐... 이딴 시비를 혼자서 마구마구 걸어가면서 몇 장을 더 읽어 가는데.....

이 두 권의 책에는 세상을 향한 열린, 아름다운 마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