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 고등학교가 중간고사 시험 기간이라 아이들이 많이 힘들 겁니다.
친구 아들은 4일, 6일, 8일, 이렇게 3일 시험을 친다면서 학교가 우릴 놀리는 게 아닐까요? 라고 묻더랍니다.
예슬이는 1일부터 4일까지 시험을 친 터라 후련한 마음으로 어린이날 휴일을 푸욱 쉬었을 겁니다. 예슬이 말을 그대로 빌자면 ‘죽을 만큼’ 한 까닭에 입안은 어른 새끼손톱 만하게 헐은 자국이 수두룩하답니다. 예슬이는 시험 기간 동안 정말 열심히 했답니다. 시험 기간이 저희 학교와 같고 마지막 날이 마침 제가 근무조가 아닌지라 같이 점심을 먹고 그동안 많이 자란 앞머리도 자를 겸 미장원에도 가고 빵 재료 상에 들러 머핀 재료도 사고 미장원 근처 옷 가게를 기웃거리면서 쇼핑도 하며 시험 끝난 것을 만끽(?)하며 보냈습니다.
시험 공부하면서 셀카 한 예슬이 사진입니다. 공부하다 갑자기 공부에 지친 자기 모습이 궁금했던 지…한 밤중에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찍은 거라네요. 휴대폰으로, 작은 사진으로 찍은 거라 너무 작아 아쉽지만...
진짜 예쁘죠? 아, 저는 역시 팔불출입니다. ㅎㅎ 겨울방학 때 예슬이가 앞머리를 자르고 나니 저희 모녀 헤어스타일이 똑같아졌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남편이 중간고사 열심히 공부한 선물로 준비해준 오페라 ‘나비 부인’을 보러 갔었어요. 지난 주 토요일 발레 돈키호테를 보았는데 뜻밖의 깜짝 선물에 저도 예슬이도 많이 놀랐답니다. 예슬이는 그런 아버지의 선물에 너무 기뻐했고 공연도 정말 좋았답니다. 정작 남편은 대학원 수업이 있는 날이라 같이 가질 못해 아쉬웠어요. 시험 치는 동안의 피로로 인해 많이 힘들었을 텐데도 3시간에 가까운 공연 시간동안 예슬이는 정말 오페라에 푸욱 빠져 참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휴일의 느긋한 늦잠과 자신의 홈페이지 꾸미기로 오전을 보내고 오후에는 미셸 위가 출전한 골프 대회를 같이 보았습니다. 같은 1989년생이라 더 관심을 보이는 것도 같고. 텔레비전을 보는 동안 남편이 참으로 열심인 ‘다도’ 덕분에 여러 가지 차를 얻어(?) 마시며 소파에 비스듬히 얽혀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느긋한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휴일이라 저녁을 먹은 후 뉴스를 보려고 텔레비전을 켰는데 중학생 자살에 관한 뉴스가 나왔고 그 뉴스를 보던 예슬이가 이렇게 혼잣말을 했습니다.
“이제 중학교인데…뭔 중학생이 벌써 성적 때문에…”
그 말에 예슬이의 중학교 시절의 일들이 생각 나더군요. 중학교 1학년이 되던 해에 ‘기다리는 부모’가 나왔고 그로 인해 조선일보 한 면 전체에 기사가 났었는데 그 때 예슬이의 55점 수학 성적이 그대로 실렸던 일이 제일 먼저 떠올랐습니다. 신문을 읽는 순간 이렇게 까지 썼어야 하는 지 화가 났고 예슬이에게 너무 미안했지만 퇴근해 만난 예슬이는 ‘뭐, 사실인데요. 괜찮아요.’하며 씨익 웃어주었었답니다. 지금도 이해해 줄 거라 믿기에 이렇게 또 이야기 하고 있는 중입니다.
예슬이 몇 등 하느냐는 말에 13등 한다고 했더니
동생 : 전교에서?
나 : 아니, 반에서.
동생 :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 쉰 뒤)언니, 정말 대단해. 그걸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이야기 할 수 있어. 전교도 아니고 반에서 라면서? 나 같음 숨이 넘어가도 몇 번은 넘어갔겠구만… 정말 괜찮은 거야?
나: 잘하지 않았니?
동생 : 잘해? 정말로 그 말이 나와?
나 : 응. 난 기특하기만 한데…. 이제 중학생이야. 그리고 오로지 학교 공부만으로 혼자 해서 얻은 성적이고. 난 정말 자랑스럽기만 하구만.
전 정말 예슬이가 기특하기만 했는데 다들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들이었죠.
중3때는 입시학원에 다녀보고 싶대서 몇 달 다녀보기도 했었어요. 학원 셔틀 버스 타고 가는 기분, 학원에서 친구들과의 시간, 그리고 학원에서의 공부는 어떤 지 궁금하다면서요. 하지만 얼마 안 가 그만두었지요. 도움이 별로 안 된다는 이유로. 인문계, 예고, 실업계를 두고 참으로 많은 고민을 했던 시간들도 새삼 제 머릿속을 지나가더군요.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예슬이는 정말 남편과 저의 입에서 고맙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답니다. 남들이 들으면 대뜸 1등 하느냐고 물을지도, 그리고 1등 아니라는 말에 그럼 도대체 뭔데, 라며 반문할 지 모를일이지만 저희는 예슬이가 참으로 기특하고 고마운 게 진심이랍니다.
시험 준비 기간 동안 잠시 쉬자면서 같이 만화방에 가서 만화 빌려 와 읽으면서
“너 잘해야 돼.”
“(어깨를 으쓱하며) 뭔 말씀?”
“아까 재만이 엄마 전화 왔을 때 엄마가 큰 소리 뻥뻥 쳤잖아. 너무 공부공부 안 해도 된다고. 엄마는 너 믿고 이렇게 큰 소리 치고 있는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너 어쩌나 지켜보는 눈이 많은데 너 잘 해야 한다는 거지. 엄마 일명 자녀교육서로 불리는 책을 쓴 사람이잖아. 너 실패하면 엄마 사기꾼 되는 거잖니, 호호호”
“그렇게 되면 어머니가 뻥 친 게 된단 말씀이시네요. 호호호”
“그런 셈이지. 꼭 1등을 하라는 것도 소위 말하는 일류 대학에 가야한다는 것도 아니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즐기면서, 행복하게 살면 돼. 세상의 잣대로 보면 어쩌면 실패일지도 모르는 상황이 될지도 모르지만 엄마는 그런 건 전혀 개의치 않아. 엄마가 바라는 성공은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성공이 아니라 네가 원하는 것을 하느냐는 거야. 엄마가 너 고등학교 들어가고 왜 일을 거의 안하는지 아니?”
“그러게요. 해도 되는데…. 다른 건 몰라도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방송은 하세요.”
“얼마 전에 웅진에서 같이 일을 해보자는 제의가 있었어. 큰 출판사이니 욕심이 없는 것도 아니었어. 하지만 이렇게 답글을 보냈지. 아이가 고등학생이라서 더 이상 일을 늘리는 것은 곤란하다고. 지금 약속한 원고도 완성을 못하고 있는 상태인데 더 이상은 안 된다고.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지. 아이가 고등학생이면 다 컸으니 일 할 시간이 많을 거라고. 어머니 생각은 달라. 네가 학교에서 돌아와 잠시, 하루에 십분, 길면 삼십분 정도 엄마랑 보내지만 그 시간만큼 가장 편안하게 너를 바라봐주고 안아주고 하려면 엄마가 느긋하고 편안하고 여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너에게 그리 큰 힘은 되어주지 못하더라도 가장 편안한 휴식처가 되어줄 준비를 하고 있다가 언제든 너를 기꺼이 안아 줄 수 있었음 하는 게 엄마의 바람이야.
“오늘 처럼요?”
“그래. 너 공부하다 잠시 산책하고 싶달 때 같이 나가고 만화 빌려 와 옆에서 뒹굴며 같이 보고 좋잖아?”
“근데 정말 힘들어요.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시험 때마다 어찌 이리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지…. 책만 덮으면 머리 속이 하얗게 되는 느낌이라니까요. 해야 할 건 또 왜 이리 많은 지. 문학에 화법에 윤리에…몰라몰라 정말 머리가 터질 것 같아요.”
“공부를 너무 많이 하니까 그렇지. 오늘은 그만 자자. 잠을 푸욱 자야 돼. 잠 줄여 공부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얼른 자자 얼른. 아까 서점에 갔을 때 엄마 옆에서 책 고르던 아줌마 말 들었니? 애가 12시 반은 돼야 집에 온다고 책이 틀려도 바꾸러 오지 못한다고 그러는데 깜짝 놀랐다니까.”
“뭘 그걸로 놀라시기까지? 제 친구 중에는 야자 끝나고 학원 갔다 과외 갔다 매일 1시 넘어야 집에 가는 아이도 많아요.”
“그럼 잠은 언제 자?”
“그러게요.”
“안돼안돼. 공부도 좋지만 그건 안 될 말이지. 하루에 여섯 시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야해. 일곱 시간 잘 수 있음 좋은데. 너 시험 끝날 때까지는 아침에 요가 하지 말자. 한 시간 더 자게.”
“아침에 깨우세요. 요가하게요.”
“시험 끝날 때까지는 그냥 한 시간 더 자자니까.”
“그래도 운동 하는 게 더 나아요. 많이 피곤하면 더 잘 테니 일단 깨우세요.”
이렇게 시험 기간 동안 예슬이와 짧지만 같이 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왔답니다.
미장원 원장의 시험 잘 쳤느냐는 말에 너무 선선히 ‘예’라고 대답하자 머리 자르던 손을 멈추고 다시 물어 보지 뭡니까? 정말 잘쳤어, 하고요. 예슬이는 느긋하게 앉아 ‘네, 진짜 잘 쳤어요.’라고 대답을 하자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저를 힐끗 바라보더군요. 예슬이도 시험 치고 온 날은 많이 속상해하고 아쉬워합니다. 윤리 실수한 거, 수학 시간이 부족해 다 풀지 못한 거, 등등. 그렇지만 이미 친 시험이니 받아들이는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늘 그러거든요. 시험 치고 난 뒤에는 잘 쳤다고 생각해라. 다 맞았다고, 백점이라고 생각해라, 성적 나올 때까지 만이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잊어버려라, 이미 친 시험을 뒤돌아보며 끙끙거린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고요.
잘 쳤느냐고 묻는 사람에게 ‘네’라고 대답하는 예슬이를 보면 영락없는 제 딸입니다. ㅎㅎ
저희 어머니 늘 저보고 시험만 치고 나면 제가 잘 쳤다고, 다 맞다고 해서 <올백> 맞을 줄 알았는데 결과가 영 아닐 때도 있어 화를 내시곤 했었거든요.
“다 맞대더니 이게 뭐야?”
“그러게요. 저는 다 백점인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담에는 다 백점 맞아 올게요.”
“말만…. 저번에도 그랬잖어?”
“당연히 저도 다 백점이 맞고 싶으니까 그랬지요. 그래서 열심히 했는데….다음에는…”
그러는 저를 보시며 어처구니가 없다며 혀를 끌끌 차시던 어머니였답니다.
시험 성적…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좋은 성적이 받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늘 석차라는 이름 하에 몇 등인가로 순번이 매겨지는 아이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1등급을 받고 싶지만 9등급을 받는 아이도 있어야 하는 현실. 그러기에 그 아이들을 더더욱 따뜻하게 가슴으로 안아 줄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할 겁니다. 바로 부모인 우리들이지요.
시험치고 오는 아이에게 잘 쳤어, 몇 점이야라고 묻기 전에 사랑을 듬뿍 담은 시선으로, 따뜻한 두 팔로 가슴에 꼬옥 안아주기로 해요. 수고했다고, 그 어떤 결과여도 너를 사랑한다고.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아이가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있는 비결 (0) | 2006.05.28 |
---|---|
부부로 사는 것은 배드민턴 치기와 같다 (0) | 2006.05.21 |
생일 선물을 주었습니다. 제가 저에게! (0) | 2006.04.28 |
아이와의 시간은 갈등의 연속!!!! (0) | 2006.04.17 |
어찌나 낯설고 생소하던지요? (0) | 2006.0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