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나를 위한 청소였습니다.

착한재벌샘정 2004. 4. 1. 13:23

오늘 1교시 수업을 하러 과학실에 갔는데 저희 학교의 사정상 특별 교실 청소를 월요일 아침에 한 번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인데다 요즘 과학 신문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 과학실이 너무 지저분했습니다.

 

상황이 많이 심각하다 판단이 되었습니다. 1교시 수업을 하러 온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좀 할까 하다가 열반이 함께 쓰고 있는 과학실이니 그 반만의 책임도 아니라는 생각과 좀 더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는 생각에서 입을 다물었습니다.


마침 수업 시간이 조금 바뀌는 바람에 2, 3교시 수업이 없게 되어 저는 혼자서 과학실 청소를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빗자루로 쓸고 밀대로 바닥 닦고 손 걸레로 여기 저기 닦는데 2시간이 꼬박 걸렸습니다. 땀이 나 재킷을 벗어 던지고 남이 보면 민망할 민 소매 차림으로 청소를 하는데 기분은 참 좋았습니다.


한 참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는데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청소하고 있다는 제 말에 남편 속으로 그랬을 겁니다. '집 청소나 잘 하지….'
남편과 통화하면서 아침에 본 기사가 마음에 걸려 이렇게 말을 하는데 목이 꺼걱하고 막히더군요. 
"이렇게 혼자 땀 뻘뻘 흘리며 청소하는 선생도 있는데 이런 선생은 왜 동영상으로 찍어 올려 주지 않는 거야."


제가 과학실 청소를 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 였습니다.
아이들에게 더러운 상황을 보여주며
"이것 보세요. 너무 더럽죠? 그러니 이러면 되겠어요?"
대신
"어때요? 깨끗하니까 좋죠? 그러니 이런 깨끗한 교실이 되도록 노력해줘요."
라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는 과학실을 쓰는 사람은 학생들만이 아니라 교사인 저도 포함되기 때문에 과학실을 더럽히는(?) 사람이 학생들만이 아니라 저도 포함이 되고 그러니 청소가 학생들만의 일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는 자기 반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함께 쓰는 교실이니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더러워진 과학실에 대한 책임을 선생님도 함께 지고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교실 바닥에 쓰레기들을 버리는 행동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볼 기회를 주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직접 청소를 하거나 휴지를 주워 본 적은 있겠지만 자기들이 더럽혀 놓은 교실을 선생님이 청소 해 준 것을 보면 '깨끗한 교실'에 대해 잠시라도 생각을 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지요.

 

청소를 해보니 정말 아이들 책상 주변뿐만이 아니라 제 책상 주위도 만만찮게 먼지와 작은 쓰레기들이 나오더군요.


생각했던 것 보다 과학실 청소는 힘들었었어요. 그러면서 잠시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이거 장난이 아닌데? 괜히 시작한 거 아냐? 그냥 4교시에 아이들 수업하러 오면 몇 명 시켜서 청소하라할까?'


하지만 그 마음을 얼른 없애고 열심히 청소를 했지요. 어차피 시작한 청소 구석구석 아이들이 할 때 놓칠 수 있는 것까지 해보자는 생각에 두 시간 동안 혼자 무척 분주했습니다.

 

오늘 따라 두꺼운 재킷을 입고 안에 티셔츠를 민 소매로 입고 온 지라 처음에는 땀이 나도 혹여 누가 볼까 싶어 재킷을 벗지 못하고 참았는데 등뒤로 줄줄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 없어 결국 열어 둔 창문과 출입문을 닫고 과감히 재킷을 벗었지요. 옷이 가뿐(?)해지니 청소에 가속도가 붙어 신나게 청소를 했습니다.


3교시 마치는 종이 칠 때가 되어서야 청소가 끝이 났는데 정말 깨끗해진 과학실을 둘러보니 저 혼자 어찌나 뿌듯하고 기분이 좋던지요.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잘해보려 노력한다고 티를 내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4교시 수업을 위해 과학실에 온 아이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어, 오늘 과학실 무지 깨끗한 것 같다?"
아직 바닥의 물기가 덜 마른 상태이니 아이들은 누가 청소를 했나하는 표정들이었어요.

 

수업 시작 후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른 때 보다 훨씬 깨끗해진 과학실을 보니 어때요? 기분 좋죠? 선생님이 청소했습니다. 두 시간이나 걸렸고 많이 힘들었어요. 과학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리는 쓰레기들이 얼마나 많은 지 놀랐어요. 버리지 않으면 청소할 것도 없을 테니 지금처럼 깨끗하게 쓰도록 노력해주기 바랍니다. 지금과 오늘 수업이 끝났을 때를 비교해 보기로 하고 수업 시작하겠습니다."


의도한 바가 아무리 커도 그 결과는 참으로 미약할 때가 많습니다. 아마 오늘 제가 한 청소도 그럴지 모릅니다.

아이들은 그저 '어, 샘이 청소를 했단 말이가? 별 선생 다 봤네.' 하고 말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저는 오늘 무척 기분이 좋습니다. 그 어떤 것을 떠나 제가 깨끗한 교실에서 수업을 했으니까요. 여기를 봐도 '깨끗', 저기를 봐도 '깨끗'.


그러면서 제가 청소를 한 이유 모두가 무색해져 버렸습니다. 그건 저를 위한 청소였으니까요.  


그러니 결과가 미약할 지도 모른다느니 하는 말도 필요 없는 말이 되어 버렸습니다만 이제까지 쓴 것이 아까워 굳이 변명을 해댑니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 과정은 이야기 할 필요가 있잖아, 하면서 말입니다.


깨끗한 과학실에서 글을 쓰고 있으려니 갑자기 배가 고파옵니다. 오늘 점심은 생식 대신 학교 앞 분식 집에서 저를 위한 만찬을 먹어야 할까 봅니다. 청소하느라 기운을 너무 뺐다는 이유를 만들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