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오페라하우스에 갔더니

착한재벌샘정 2003. 8. 28. 12:51
오늘은 제가 일직이라 지금 학교에 있습니다.
학교에 오니 이렇게 여유 있게 컴퓨터 앞에 앉을 수도 있네요.^_^

어제는 아이들과 함께 얼마 전에 개관한 오페라 하우스에 오페라 갈라 콘서트 관람을 갔었습니다.
정말 너무 좋은 공연이었는데 아쉬운 점이 있어 오늘 신문 독자란에다 글을 올렸답니다.
저는 집의 아이들이나 학교의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정당한 목소리는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가끔 합니다.

오페라하우스 가신 분들 허리 괜찮으신가요?

어제 오페라하우스에서 오페라 갈라 콘서트를 갔었다.
음악을 너무 좋아하기에 며칠동안 그 설렘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아이 셋과 나, 2만 원짜리 자리를 예매해 3층 맨 앞줄에 앉게 되었는데 키가 167cm인 내가 앉아서 무대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뒤에 쳐진 암막만 보이는 게 아닌가.
초등학교 1학년 막내는 서서 보아야 할 판이었다. 고3, 중2인 큰 아이들도 앉아서는 무대가 보이지 않아 앞으로 숙여 난간에 팔을 짚고 보아야 할 판이었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앞줄에 앉은 모든 사람들이 무대를 보기 위해 허리의 고통을 참아야 할 판국이었다.

두시간의 공연을 그렇게 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어 공연장 관리자를 찾으니 세상에나 하는 말씀이 이랬다.
"우리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오늘은 그냥 보시고 앞으로 개선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고 있었다니. 그럼, 적어도 맨 앞줄은 좌석을 팔지 말았어야 하지않느냐고 했더니 앞줄이 잘 안보이기도 하지만 무대가 평소보다 앞으로 당겨져서 오늘은 특히 그렇다고 공연 기획자에게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공연기획자에게 물으니 자기들은 공연을 기획만 했지 시설이 이런 것에 대해서는 모른다며 그 문제는 오페라하우스 쪽에 물어보라고 했다.

앞줄이 잘 안 보이는 것을 알고 있었고, 다른 때보다 무대가 앞으로 당겨졌다면, 정말 의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자리에 한 번 앉아보기라도 했어야하지 않았으냐고, 이렇게 관객을 생각지 않은 처사가 어디 있느냐고 항의하자 그러면 자리를 옮겨주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앞줄에 앉은 사람들 모두가 불편하다고 이야기를 하자 다른 자리가 남았으니 1부가 끝나고 난 뒤 앞줄에 앉은 사람들을 빈자리의 다른 곳으로 옮겨 주겠다기에 3층 자리로 갔다.
조금 있으니 2번째 줄이 비었으니 그곳으로 옮기라기에 옮겨 보았으나 경사가 워낙 완만해 안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허리를 숙인 채 1시간을 참고 공연을 보았고, 1부가 끝난 후 1층으로 내려가니 1층에 자리를 마련해 주는데, 자리에 앉고 3층을 보니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허리를 숙여 목을 빼고 무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 넷만 자리를 마련해주고 그냥 참고 있는 앞줄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던 것이었다.

2시간 30분 가까이 진행 된 공연은 너무 좋았다.
너무 멋져서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고까지 했으니 그 감동을 어찌 글로 다 옮길까만은 그 오랜 시간의 공연을 몸을 앞으로 숙이고 보았던 3층의 맨 앞줄의 관객들.
1층으로 자리를 옮겨 앉아 있으면서 그 시간이 결코 편안하지 않았다.

내가 별난 것이었을까?
많은 분들이 그 불편함을 끝까지 참고 있는 것을 보며 오페라하우스 관계자들이 더더욱 야속했다.

앞줄의 사람들 모두의 자리를 옮겨주겠다고 했었던 약속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물론 자리에 따라 가격이 다르니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분명 자기들이 먼저 그렇게 약속을 했었으면서.

내 자리만이라도 바꾸었으면 됐지, 2만원 주고 5반원 짜리에 앉아 봤으면 고맙다고 할 일이지 무슨 말이 많으냐고 하겠지만 도저히 그냥 넘어 갈 일이 아니라 생각하기에 여기에 글을 적는다.

바뀐 자리를 보고 엄마가 돈을 더 주었느냐고, 자기들 허리 안 아프게 하려고 돈을 너무 많이 쓴 게 아니냐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불편하지만 참고 있을 거야. 하지만 참는 것만이 수는 아니라고 생각해. 분명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면 그것을 지적하고 고쳐지도록 건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불편하고 기분 나쁘니 다시 안 오면 된다, 그런 생각도 너무 소극적인 거야. 여긴 많은 비용을 들여 지은 우리 대구 시민을 위한 문화 공간이야. 그런 곳이 시민들을 불편하고 결국 시민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게 되면 얼마나 큰 손실이야.
엄마처럼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아야 여기 있는 사람들도 조금씩이나 고치려 노력을 할거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비단 여기뿐만 아니라 너희들도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그저 참고만 있지는 마. 너희들 개개인이 비록 작은 목소리지만 그 목소리를 낼 때만이 세상은 조금씩 변하게 될 거야.
엄마는 돈을 더 주고 이 자리로 옮겨 온 게 아니야. 내가 얼마나 불편한지, 여기 일하는 사람들이 관객을 얼마나 소홀히 생각했는가를 당당히 이야기하고 자리를 바꿔달라고 한 거야."

또 한 가지는 좌석간의 간격이 너무 좁아 보통 키의 우리가 앉아도 불편한데 대부분 우리보다 키가 큰 외국 관객들이 앉았을 때는 어떨까 싶은 것이 왜 그리 아쉬운 것이 많던지.

게다가 화장실 갈 때에도 표를 들고 나갔다가 들어 올 때마다 표 검사를 받아야 하는 그 기분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묻고 싶다. 어제 3층 맨 앞줄에 앉았던 분들, 그 긴 공연 시간동안 무대를 보기 위해 앞으로 숙였던 탓에 다들 허리는 괜찮으신 지?

그리고 그 불편함을 왜 참고만 있으셨는지? 2만원이 결코 적은 돈이 아닐진대 그 돈을 내고 들어가서 불편함을 그렇게 참고 있어도 억울하지 않으시던 지?

공연이 너무 좋아 그 모든 것을 다 잊을 수 있었다고 한다면 그 말에는 동의를 하고 싶다. 너무 좋은 공연이었으므로.
하지만 그 만큼 더 아쉬웠다는 것도.

처음에는 별로 관심을 나타내지 않던 정빈이도 '너무 좋아요'를 연발하더니 자기도 나중에 저런 무대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음악을 무지 좋아하고 다양한 공연을 혼자서도 잘 찾아다니는 예슬이는 집에 돌아와서도 몇 번이나 '진짜 멋있었어요'를 연발했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개관 축하 무료행사인 줄 알았다가 유료라는 사실에 망설이기는 했지만 워낙 문화 공연이 적은 대구인지라 반가운 마음에 큰맘을 먹었던 겁니다.
남편도 좋았냐며 새벽부터 전화가 왔더군요. 대구에 함께 있었으면 같이 가고 좋았을 텐데 많이 아쉬웠어요.

저와 예슬이는 오페라와 뮤지컬을 굉장히 좋아해요. 남편은 가끔 그런 공연에 돈을 쓰느냐며 투덜거리기도 하고, 우리 형편에 무리이니 참으라고 할 때도 있답니다.
사실 '우리 형편에 무리'라는 말은 맞아요.

눈이 빠지게 기다린 '캣츠' 공연이 드디어 10월에 대구에 온다는데 R석이 12만원이더군요.
물론 제일 싼 2만원 하는 자리도 다시 한 번 심호흡하고 큰맘을 먹어야하는 게 우리 형편이니 어제 같은 상황 이해해야 할까요?
비싼 자리의 고객 몇이 싸구려 고객 여럿보다는 공연장 입장에서 보면 나을거라 이해해야하나요?

얼만 전에 대구 시민들의 오페라하우스를 찾는 자세에 대해 방송에도 나고 신문에도 났었다고 하더군요. 시민들의 문화 의식이 너무 낮다고.
그런데 어제 제가 느낀 것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더 낮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3, 4층의 싸구려(?) 관객은 내 알 바 아니라는 것인지?

오페라 하우스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보니 그런 대목이 있더군요. 한 아주머니께서 아이들 데리고 자주 올 거라 했더니 이러더라는 겁니다.

관계자 왈 "뭐, 보시기 힘들 겁니다. 5만원 10만원 하거든요."

맞지요. 우리 같은 서민들은 잘 보지 못할 거라는 거 틀린 말은 아니지요.

어제 3층에 있다가 1층으로 오니 예슬이가 정말 왜 돈을 많이 주고 그 자리를 가고 싶어하는지 알겠다고 하더군요.
피아노 소리부터 다르고 노래하는 사람들의 미세한 얼굴 표정, 손가락의 떨림까지 느껴진다면서 말입니다.
솔직히 정빈이가 무대에 빨려들 듯이 관심을 가진 것도 1층으로 오고 부터였으니 그 차이가 적지 않음을 아이들도 직접 느꼈을 겁니다.

하지만 3층에서나마 망원경까지 들고, 녹음기로 듣는 것보다는 나을거라는 목마름으로 앉아 있는 우리들이 로얄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 비해 음악을 덜 사랑하지도 음악에 대한 애정이 적은 것도 아닐진대 그들은 왜 그렇게 우리를 푸대접하는 걸까요?
제일 싼 표를 샀다고 해서 우리들의 영혼마저도 싸구려는 아닐진대. 단지 우리는 돈이 그들보다 조금 없을 뿐인데 말입니다.

이런 글을 쓰는 저는 없는 것이 서러워 심사가 배배 꼬인 사람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