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마저 출근하지 않는 토요일. 오늘 하루의 시작도 여전히 남편이 산에 가는 시간인 5시 30분, 남편 휴대폰의 닭울음소리로 시작했습니다. 제가 그 닭소리가 너무 듣기 싫다는데도 산골 출신 남편은 그래도 고향의 향취를 느낄 수 있다며 절대 안 바꾼다고 합니다. 저도 촌사람인데, 저는 휴대폰의 닭 울음소리는 왜 그리 싫은지요. 저의 휴대폰은 고장이 난지 일주일이 되었습니다. 고치지 않고 있는 중입니다. 출근도 안 하는데 굳이 휴대폰이 필요할까 싶어 한 동안 그냥 지내려고 합니다. 이기적인 마음 때문일 겁니다. 급하게 연락할 일이 있는 사람 중 폰 번호만 알고 있는 사람도 있을테니까요. 예슬이가 강하게 이 점을 지적하더군요. 자기 중심적이라고요. 맞는 말이라 인정할 수 밖에요. 또 하나의 문제는 휴대폰에 입력해 두었다는 이유만으로 외워두거나 수첩에 따로 메모해 두지 않은 전화번호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자기 집 전화 번호도 수첩에 적어 다녔다고 하더군요. 그런 사소한 것은, 단지 몇 줄로 메모해두면 그만인 것을 굳이 외울 필요가 있느냐, 더 중요한 것을 기억하고 사고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다는데 물론 저와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지요. 저와 두 아이는 어제 서점에 갔다가 수첩을 하나씩 샀습니다. ![]() 수첩의 표지만으로도 취향이 보이더군요. "엄마 선배님이 언젠가 이런 말씀을 해주셨는데 아주 가슴에 남았었어. 그 분도 책에서 읽었다는데 어떤 사람의 아버지는 저녁 식사를 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물으셨대. 그렇게 마음에 드는 수첩 하나씩을 골라 온 저희들은 어제 밤에 자신이 한 일들을 적어 보고 가장 잘한 일을 골라 보았습니다. ![]() 정빈이는 열 세 가지의 일을 했다고 적었고 그 중에서 저금통의 돈을 세어 보았는데 돈이 많아서 아주 기뻤다고 합니다. 예슬이는 열 네 가지의 일을 적었고 수첩에 하루를 정리 해 본 일과 일기 쓴 일, 그리고 저를 도와 집안 일을 한 것, 이 세 가지를 잘 한 일이라고 하더군요. 비록 어제 처음 해 본 일이지만, 어떤 일을 했지? 라는 물음에 하루를 돌아보며 자신이 한 일들을 생각해 내고 그 일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 아이들이 참 좋아하더군요. 정빈이는 그림 일기 쓰는 것을 무지 좋아해 오늘도 점심도 안 먹고 그림 일기를 쓰느라 열심이었지요. 그림 일기를 쓰고 있는 정빈이 입니다. ![]() 그런데 오늘 정빈이 때문에 저희 집에는 아침부터 한바탕 웃음과 혼돈이 지나갔습니다. 어제 퇴근 한 남편이 이러더군요. 그냥 간단하게 적어 보았다는 제 말에 이렇게 하여 만든 정빈이의 계획표입니다. ![]() 이렇게 계획표를 만든 정빈이는 갑자기 아버지를 위한 계획표를 만들어 주겠다며 도화지에 일필휘지(?)로 날려 쓴 이것을 만들어 남편 앞에 내밀었습니다. ![]() 건강이 좋지 못한 상태라 많이 피우지는 않지만 담배를 완전히 끊은 상태가 아닌지라 남편은 정빈이가 써 준 것을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두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아침 먹으면서 남편이 엄마 일해야 되니 밥 먹고 우방랜드로 놀러가자고 했더니 정빈이가 이러는 겁니다. 바로 이런 사태를 미리 짐작했었기에 동그라미 계획표를 만들지 않았었는데 남편은 그때서야 사태 파악을 한 거지요. 옆에서 예슬이가 끼어 들더군요. 정빈이는 아주 혼란한 얼굴로 식구들을 바라보더군요. 남편은 계획표를 만들자고 한 장본인인지라 열심히 나름대로의 생각을 설명하느라 열심이었습니다. 초등 1년생이 처음 만들어 본 동그라미 계획표와 혼란. '방학 계획표는 역시 동그라미 계획표야'를 외치던 남편은 어쩌면 제대로 지킨 적 없이 방학 내내 벽에 붙어 있던 자신의 소년시절의 계획표를 까맣게 잊어버렸던 것에 못내 멋쩍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쨌거나 남편이 두 아이를 데리고 외출을 해 주어 저는 오전 내내 저만의 시간이 생겨 행복(?)했었습니다. 남편이 오늘 아침 산에서 꺾어다 준 패랭이꽃을 컵에 꽂아 옆에 두고 작업을 했습니다. 쌓인 책 위에 얹혀져 있는 꽃. ![]() 남편은 가끔 제게 꽃을 가져다 줍니다. 지난 번 칼럼에서 연애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글을 올렸더니 어떤 분이 이런 메일을 주셨어요. 겨우 잡문을 끄적이는 것으로 재주자랑이 지나치지 않느냐고. 보자보자 하니 너무 척하는 거 아니냐고. 몇 줄 글 쓰는 잔재주로 문학을 모욕하지 말라고요. 맞는 말이지요. 제가 인정하는 부분이잖아요. 잘난 척 하고 떠벌리는 사람. 아마 그 분이 이 글을 읽는다면 몹시 불쾌하게 생각하실 겁니다. 이런 거까지 공개하냐고? 그리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이거 맘 놓고 내 생각을 이야기하지도 못하겠구만.'하실 분도 계실 겁니다. 그 분을 탓하거나 원망해서가 절대 아니랍니다. 그 어떤 의견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아닌 척 눈감아주시는 것 보다는 솔직한 느낌을 전해주시니 오히려 고맙지요. 그런 메일이 있었으니 아,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계시는구나. 다시 한 번 저를 돌아보게 되고요. 너무 드러냄으로서 겪게 되는 힘겨움도 적잖아 있음에 솔직히 간혹 '칼럼 문을 닫아?'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고, 될 수 있으면 조금만 드러낼까? 이런 거 까지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답니다. 하지만 저에게 이 칼럼을 통해 만나는 여러분들은 너무나 소중한 친구들입니다. 친구란 그런 것 아니겠어요? 있는 그대로를 봐 줄 수 있는, 가끔은 따가운 충고도 해 줄 수 있는 존재. 그러기에 저는 이 칼럼에 많은 애정을 쏟고 있습니다. 저의 치부까지 보여드리면서도 부끄럽지 않은, 여러분들은 제게 그런 친구니까요. 언젠가 '작가'란 어떤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냐는 물음에 저는 이렇게 대답했었습니다. "타인과 공유하는 사람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공유할 수 있을까요? 그로 인해 받을 수 밖에 없는 여러 시선들 또한 결국 공유를 위한 것이 아닐까요? 서로 솔직히 드러내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겠지요. 저는 작가이고 싶기에 타인과의 공유를 소중히 여깁니다. 제가 그랬었죠? 연애소설을 쓰고 싶은데 그 일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저를 행복하게 한다고. 저는 제 자신의 능력을 조금은 압니다. 제가 행복한 것은 소설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앞으로 소설을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는,치열하게 매달릴 수 있는 일이 생겨 행복하다는 것이지요. 새로운 것을 하기 위한 공부, 그 준비 과정을, 저는 그것을 사랑합니다. 남편이 준 꽃을 보며 저는 용기를 내봅니다. 이 세상 단 한사람의 격려만으로도 제게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는 그렇게 20년이라는 세월을 제 곁에서 제게 생의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 스스로에 물어 봅니다. 오늘 혼자만의 시간이 길어서 일까요? 글이 길어지고 산만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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