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계획표 대로 해야해요!!!

착한재벌샘정 2003. 7. 27. 09:57
남편마저 출근하지 않는 토요일.
오늘 하루의 시작도 여전히 남편이 산에 가는 시간인 5시 30분, 남편 휴대폰의 닭울음소리로 시작했습니다.
제가 그 닭소리가 너무 듣기 싫다는데도 산골 출신 남편은 그래도 고향의 향취를 느낄 수 있다며 절대 안 바꾼다고 합니다.
저도 촌사람인데, 저는 휴대폰의 닭 울음소리는 왜 그리 싫은지요.

저의 휴대폰은 고장이 난지 일주일이 되었습니다. 고치지 않고 있는 중입니다. 출근도 안 하는데 굳이 휴대폰이 필요할까 싶어 한 동안 그냥 지내려고 합니다.
집에만 있으니 집 전화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해서요.

이기적인 마음 때문일 겁니다. 급하게 연락할 일이 있는 사람 중 폰 번호만 알고 있는 사람도 있을테니까요. 예슬이가 강하게 이 점을 지적하더군요. 자기 중심적이라고요. 맞는 말이라 인정할 수 밖에요.

또 하나의 문제는 휴대폰에 입력해 두었다는 이유만으로 외워두거나 수첩에 따로 메모해 두지 않은 전화번호입니다.
기계에 의존하다보니 정말 뇌를 쓰는 일이 줄어 든 것 같습니다.
머릿속에 기억나는 번호가 이렇게 없을 줄은 미처 몰랐답니다.

아인슈타인은 자기 집 전화 번호도 수첩에 적어 다녔다고 하더군요. 그런 사소한 것은, 단지 몇 줄로 메모해두면 그만인 것을 굳이 외울 필요가 있느냐, 더 중요한 것을 기억하고 사고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다는데 물론 저와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지요.
저에게는 친구의 전화번호만큼 절실한 것이 없을 때가 많은 그저 그저 평범한 아줌마니까요.

저와 두 아이는 어제 서점에 갔다가 수첩을 하나씩 샀습니다.

수첩의 표지만으로도 취향이 보이더군요.
왼쪽 분홍색의 큰 수첩의 주인은 정빈이, 가운데 브라운의 단순한 캐릭터그림은 예슬이, 오른쪽의 보라색 테두리의 꽃 그림이 있는 것은 제 것입니다. 왜 수첩을 하나씩 샀느냐고요?

"엄마 선배님이 언젠가 이런 말씀을 해주셨는데 아주 가슴에 남았었어. 그 분도 책에서 읽었다는데 어떤 사람의 아버지는 저녁 식사를 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물으셨대.
너는 오늘 무엇을 배웠느냐?
그러면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자신이 그 날 배운 것들을 이야기하면 그 아버지는 아주 진지하게 들어주시고는 잘 했다는 칭찬을 해주시곤했다는 거지.
그러니 그 글을 쓴 사람은 아버지의 뭘 배웠느냐는 물음과 그 뒤에 따르는 칭찬을 들으려고 매일 매일 무엇인가를 배우려고 애를 썼다는 거지.
엄마는 방학 동안 너희들과 매일 매일 우리가 무엇을 했는가를 한 번 적어 보려고 해.
지금 사는 이 수첩을 펼쳐두고 매일 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우리는 오늘 뭘 하고 살았을까?
그리고는 너희들이 적은 것들을 보며 이렇게 말 해 줄 거야.
그래, 참 많은 일들을 하면서 살았구나. 정말 열심히 산 하루였구나.
네가 한 일들 중에서 가장 좋았거나 잘 한 일은 어떤 거지?
그래, 넌 그 일을 한 것이 가장 자랑스럽단 말이지.
나도 네가 그 일을 해서 참 자랑스러워."

그렇게 마음에 드는 수첩 하나씩을 골라 온 저희들은 어제 밤에 자신이 한 일들을 적어 보고 가장 잘한 일을 골라 보았습니다.

정빈이는 열 세 가지의 일을 했다고 적었고 그 중에서 저금통의 돈을 세어 보았는데 돈이 많아서 아주 기뻤다고 합니다.

예슬이는 열 네 가지의 일을 적었고 수첩에 하루를 정리 해 본 일과 일기 쓴 일, 그리고 저를 도와 집안 일을 한 것, 이 세 가지를 잘 한 일이라고 하더군요.

비록 어제 처음 해 본 일이지만, 어떤 일을 했지? 라는 물음에 하루를 돌아보며 자신이 한 일들을 생각해 내고 그 일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 아이들이 참 좋아하더군요.
일기를 쓰는 것과는 다른 경험이었다고 합니다.

정빈이는 그림 일기 쓰는 것을 무지 좋아해 오늘도 점심도 안 먹고 그림 일기를 쓰느라 열심이었지요. 그림 일기를 쓰고 있는 정빈이 입니다.

그런데 오늘 정빈이 때문에 저희 집에는 아침부터 한바탕 웃음과 혼돈이 지나갔습니다.

어제 퇴근 한 남편이 이러더군요.
"당신, 정빈이랑 방학 생활 계획표 짰어?"

그냥 간단하게 적어 보았다는 제 말에
"계획표는 동그라미 그리고 칸칸이 나누어서 만들어야 제 맛이지. 정빈아,아버지랑 계획표 만들자. 스케치북이랑 컴퍼스 갖고 와라."

이렇게 하여 만든 정빈이의 계획표입니다.

이렇게 계획표를 만든 정빈이는 갑자기 아버지를 위한 계획표를 만들어 주겠다며 도화지에 일필휘지(?)로 날려 쓴 이것을 만들어 남편 앞에 내밀었습니다.

건강이 좋지 못한 상태라 많이 피우지는 않지만 담배를 완전히 끊은 상태가 아닌지라 남편은 정빈이가 써 준 것을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두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일어나자 마자 계획표를 들고 시계 앞으로 달려가는 겁니다. 자신이 일어난 시간과 계획표의 시간이 일치하는 가를 확인하기 위해서죠. 그리고는 계획표의 첫 번째인 '영어 숙제하기-영어책 읽기'를 한 다음 아침 밥을 달라는 겁니다. 계획표에 아침 먹을 시간이라고.

아침 먹으면서 남편이 엄마 일해야 되니 밥 먹고 우방랜드로 놀러가자고 했더니 정빈이가 이러는 겁니다.
"못 가요. 계획표에 밥 먹고 난 다음에는 동화책 읽기로 되어 있단 말이에요. 우방랜드는 자유시간에 가요. 가만있어 봐요. 계획표에 자유시간 언젠지 보고 올게요."

바로 이런 사태를 미리 짐작했었기에 동그라미 계획표를 만들지 않았었는데 남편은 그때서야 사태 파악을 한 거지요.
"계획표를 만들기는 했지만 융통성도 있어야 되는 거야. 가끔 순서가 바뀌어도 괜찮아."
"그런 게 어딨어요? 계획을 했으면 그대로 해야지."
"그럼, 휴가 때는 어쩌지?"

옆에서 예슬이가 끼어 들더군요.
"정빈이는 못 가지요 뭐. 계획표대로 해야하니까 집에 혼자 남아 있어야죠."

정빈이는 아주 혼란한 얼굴로 식구들을 바라보더군요.
계획표를 들여다보고 고개를 갸우뚱해보고 우리들을 한 번 쳐다보고.

남편은 계획표를 만들자고 한 장본인인지라 열심히 나름대로의 생각을 설명하느라 열심이었습니다.
"너 자유시간에 우리가 시간이 없을 수도 있는데 그럴 때는 어쩌지? 이건 계획이야. 될 수 있으면 지키면 좋은 거고 상황에 따라서는 그 순서를 바꾸거나 다른 일을 해도 되는 거야."

초등 1년생이 처음 만들어 본 동그라미 계획표와 혼란.
아이는 계획과 현실의 괴리감을 느꼈을 것이고 또한 융통성이라는 것이 참 다양하게도 적용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고, 어쩌면 계획표는 단지 계획표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채 버려 다음 방학 때는 동그라미를 그리기 위해 컴퍼스를 찾는 일이 없을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학 계획표는 역시 동그라미 계획표야'를 외치던 남편은 어쩌면 제대로 지킨 적 없이 방학 내내 벽에 붙어 있던 자신의 소년시절의 계획표를 까맣게 잊어버렸던 것에 못내 멋쩍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쨌거나 남편이 두 아이를 데리고 외출을 해 주어 저는 오전 내내 저만의 시간이 생겨 행복(?)했었습니다.

남편이 오늘 아침 산에서 꺾어다 준 패랭이꽃을 컵에 꽂아 옆에 두고 작업을 했습니다. 쌓인 책 위에 얹혀져 있는 꽃.

남편은 가끔 제게 꽃을 가져다 줍니다.
아마도 저를 격려하는 마음에서 아닐까 합니다. 삶에 대한 격려.

지난 번 칼럼에서 연애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글을 올렸더니 어떤 분이 이런 메일을 주셨어요.

겨우 잡문을 끄적이는 것으로 재주자랑이 지나치지 않느냐고. 보자보자 하니 너무 척하는 거 아니냐고. 몇 줄 글 쓰는 잔재주로 문학을 모욕하지 말라고요.

맞는 말이지요. 제가 인정하는 부분이잖아요. 잘난 척 하고 떠벌리는 사람.

아마 그 분이 이 글을 읽는다면 몹시 불쾌하게 생각하실 겁니다. 이런 거까지 공개하냐고?

그리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이거 맘 놓고 내 생각을 이야기하지도 못하겠구만.'하실 분도 계실 겁니다.

그 분을 탓하거나 원망해서가 절대 아니랍니다. 그 어떤 의견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아닌 척 눈감아주시는 것 보다는 솔직한 느낌을 전해주시니 오히려 고맙지요.

그런 메일이 있었으니 아,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계시는구나. 다시 한 번 저를 돌아보게 되고요.

너무 드러냄으로서 겪게 되는 힘겨움도 적잖아 있음에 솔직히 간혹 '칼럼 문을 닫아?'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고, 될 수 있으면 조금만 드러낼까? 이런 거 까지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답니다.

하지만 저에게 이 칼럼을 통해 만나는 여러분들은 너무나 소중한 친구들입니다. 친구란 그런 것 아니겠어요? 있는 그대로를 봐 줄 수 있는, 가끔은 따가운 충고도 해 줄 수 있는 존재.

그러기에 저는 이 칼럼에 많은 애정을 쏟고 있습니다. 저의 치부까지 보여드리면서도 부끄럽지 않은, 여러분들은 제게 그런 친구니까요.

언젠가 '작가'란 어떤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냐는 물음에 저는 이렇게 대답했었습니다.

"타인과 공유하는 사람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공유할 수 있을까요? 그로 인해 받을 수 밖에 없는 여러 시선들 또한 결국 공유를 위한 것이 아닐까요? 서로 솔직히 드러내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겠지요. 저는 작가이고 싶기에 타인과의 공유를 소중히 여깁니다.

제가 그랬었죠? 연애소설을 쓰고 싶은데 그 일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저를 행복하게 한다고.

저는 제 자신의 능력을 조금은 압니다. 제가 행복한 것은 소설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앞으로 소설을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는,치열하게 매달릴 수 있는 일이 생겨 행복하다는 것이지요.

새로운 것을 하기 위한 공부, 그 준비 과정을, 저는 그것을 사랑합니다.
문학이라는 또 하나의 '도전하고픈 것'이 생겨 준 것에 행복하다는 것이지요.

남편이 준 꽃을 보며 저는 용기를 내봅니다. 이 세상 단 한사람의 격려만으로도 제게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는 그렇게 20년이라는 세월을 제 곁에서 제게 생의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 스스로에 물어 봅니다.
그럼 나는 그에게 그런 존재인가?
글쎄요? 그건 그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이겠지요. 단지 그런 존재이고 싶은 저의 소망이 있을 뿐.

오늘 혼자만의 시간이 길어서 일까요? 글이 길어지고 산만했습니다.
오늘 저에게는 이 칼럼에 글을 쓰는 것이 큰 휴식이었습니다.
좋은 주말들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