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칼럼 가족 여러분? 추석 연휴는 잘 지내셨는지요? 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는 없는지요? 저희는 추석 전날 시댁에 가서 일요일인 어제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 중간에 잠시 외출(?)이 있었지만요. 추석 전 날은 제가 아침 방송이 있었던 탓에 제일 꼴찌로 시댁에 갔더니 형님께서 약간 뼈있는 말씀 한 마디를 하시더군요. ㅎㅎㅎ 새로 생긴 조선일보 '여성칼럼'에 필진으로 참여를 하게 되었는데 제가 그 출발을 하게 되었답니다. 추석에 관한 글이라 방송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신문을 사서 남편에게 보여 주었더니
‘며느리 패키지’란 말을 들어봤는지? 두통약을 비롯해 소화제·변비약·파스·피로회복제 등이 들어 있는 약통을 뜻한다. 특히 명절 때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욱신거리지 않는 데가 없는 이 나라의 힘겨운 며느리들을 위해 생겨났으므로 그 이름이 ‘며느리 패키지’다. 뿐인가. 집안 청소에 음식 준비에, 매달리는 아이까지 달래가며 종종걸음 치고 있는 게 빤히 보일 텐데도 왕처럼 소파에 드러누워서는 잔심부름을 시킨다. 남편들이여, 명절 증후군으로 사랑하는 아내 골병 들지 않게 하려면 올 추석 ‘남편패키지’를 준비하는 게 현명하다. 패키지를 위한 처방전은 아주 간단하다. 애정이 담긴 말 한마디, 그리고 간단한 실천! 한쪽이 불행하다고 느끼게 만들면 다른 한쪽은 진정으로 행복할까? ‘시댁’ ‘명절’이란 말만 들어도 짜증부터 내는 아내를 보며 웃을 수 있는 남편이 있을까? 명절만 되면 냉기가 흐르는 엄마 아빠를 바라보며 자란 아이들에게 명절은 어떤 의미일까? 여성학자 박혜란은 ‘나이 듦에 대하여’란 책에서 “어렸을 때 집안에서 노인을 못 보고 자랐기 때문에 나는 책을 통해 노인의 이미지를 그려왔다”고 적고 있다. 어른들이 좀더 배려하고 노력하면 학교에서도, 고액 과외로도, 유명 학원에서도 배울 수 없는 ‘함께 하는, 그래서 즐거운 명절’이라는 생생한 수업을 아이들에게 경험하게 해줄 수 있다. ‘남편 패키지’를 잘만 구성한다면 암보다 무섭다는 ‘고부간의 갈등’도 뿌리째 뽑을 수 있다. 마주 보며 웃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모습을 보면서 고부간 갈등이란 것도 책 속에서나 존재하는 이미지로 바꿔버리자. 원래 계획은 토요일까지 계속 있을 작정이었는데 성묘 갔다 온 남편 하는 말이 남편은 형님네 식구들과 다 같이 있는 것보다는 혼자 계시는 어머니이니 하루라도 오래 어머니 곁에 나누어서 있어드리자며 형님네 식구들 계시는 동안 처갓집으로 하루 외출(?) 갔다가 일요일까지 어머니와 함께 있자더군요. 집으로 돌아와서는 한숨 푹 자려던 계획을 수정하여 산에 가는 남편을 따라 나섰습니다. 산에서 내려와 막내 동생 내외가 와 있다는 소식에 친정으로 가 하루 밤 자고 태풍 매미로 인해 쏟아지는 빗속을 헤치고 다시 시댁으로 갔답니다. 혹시 기다리실까봐 전화를 드렸더니 비 오고 바람 부니 오지 말라 하셨지만 남편 , 매미의 위력 정말 대단하더군요. 저의 빨간 마티즈 강풍에 날려갈 뻔했답니다. 밤에 자는데 바람은 또 어찌나 세게 불던지 정말 무섭더군요. 바람소리 사이사이 남편이 어머니께 무슨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남편의 목소리와 어머니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데 제 입가에 저절로 웃음이 지어지더군요. 팔순이 훨씬 넘으신 어머니가 사십 중반의 막내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소녀처럼 웃으시는 모습. 상상만으로도 어머니는 참 행복하시겠구나,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는 남편도 행복하겠지, 싶은 게 말입니다. 무섭다고 제 품을 파고드는 정빈이를 꼬옥 보듬어 안으며 딸 많은 친정 집의 아직 장가 안 간 하나뿐인 남동생도 나중에 친정어머니께 저렇게 해주려나 싶은 생각도 들고, 정빈이도 나 늙으면 저렇게 해주려나 …. 왜 그리 생각이 많아지던지요. 그 사이 매미는 더욱 위력을 발휘하여 정전이 되었고 바람 소리도 더 거칠어져 잠 안 오는 밤을 결국 꼴딱 새우게 만들었답니다. 어머니를 위해 해드리는 일은 하나도 없건만 그저 저희 식구가 한 지붕 아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으신 지 괜히 남편과 예슬이, 정빈이 얼굴을 한 번씩 번갈아 보시며 흐뭇해하시더군요. 일요일, 집을 떠나오면서 정빈이 보고 할머니께 뽀뽀해 드리라고 했더니 싫다는 겁니다. 이럴 때마다 제가 하는 말 대문 앞에서 저희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계시던 어머니는 다시 당신 곁으로 걸어 오는 정빈이를 의아하게 바라보시다가 뺨에 "쪽!" 소리가 나게 뽀뽀를 해드리자 어찌나 좋아하시던지요. 쭈뼛거리며 등 떠밀려 뽀뽀를 하러 갔던 정빈이도 할머니의 큰 웃음소리에 배시시 웃으며 저를 쳐다보는데, 자기가 한 작은 행동이 할머니를 많이 기쁘게 해드린 것에 기쁘기도 하고 안 하려 고집을 부리던 것이 조금 미안하기도 한 모양이었습니다. 새벽 잠 없으신 어머니 밥 해놓으시고 명절 음식 많이 있으니 반찬 걱정 없는데다가 설거지는 예슬이 시키니, 밥하기 싫어 오래 있자는 거지? 라던 남편, 점쟁이라 불러도 될 것 같아요. 제가 뮤직 비디오를 너무 좋아하는데 정빈이는 들과 논으로 남편 뒤를 따라 다니니 예슬이와 둘이서 음악 전문 채널 틀어 놓고 종알종알거리며 최신 가요에 뮤직비디오에, 정말 원 없이 보았으니, 연휴 길어서, 시댁에 오래 있어 힘들었다는 말은 절대 못한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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