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독자님들 모두 잘 지내셨는지요? 너무 오랜만이죠? 정빈이와 저는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정빈 : 서울에 왜 가요? 이렇게 정빈이는 엉덩이가 너무 커서(진찰 받는 이유가 조금 요상하죠? 달리 핑계를 댈 것이 없어서요.)병원에 가는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 서울로 가게 되었지요. 13일 서울에 도착을 해 <작은 친절>과 관련 해 엉겹결에 다음 날인 14일에 SBS 라디오의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했는데 세상에나 그 시간이 정빈이 병원 진료 시간 바로 전이지 뭡니까? 정신이 어찌나 없었는지 제가 왜 서울에 갔는지 조차 잊어버린 거지요. 뒤늦게 깨닫고는 연락을 했지만 아침 방송이라 다른 분을 섭외 할 시간이 없어서 안 된다는 겁니다.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동생의 차를 타고 병원에 도착 해 아이에게 이모와 함께 다른 곳에 가 있으라고 엄마가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해놓고는 서울 대 병원 주차장에서 전화로 인터뷰를 했지요. 저 정말 엄청난 거짓말쟁이죠? 그러고 난 뒤 정빈이에게 보호자로 따라 온 아이의 진료를 해야한다더라고 했더니 약속은 약속이니까 괜찮다고 씩씩하게 병원으로 들어가더군요. 결론만 말씀드릴게요. 정빈이는 4월 1일에 다시 입원을 합니다. 다시 수술이 필요한 상태인가를 알아보기 위한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나왔어요. 기대하고 있던 대로 좋아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왼쪽 허파가 너무 작고 기능도 많이 저하되어 있는 상태라고 하더군요. 솔직히 처음 아이의 상태를 알게 되었던 7년 전 보다 더 힘든 시간이었어요.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더 두려웠던 겁니다. 아이도 그 때보다 더 힘들어 할테니까요. 육체적인 고통도 크겠지만 정신적인 것이 더 아이를 힘들게 하겠지요. 2월에는 도저히 스케줄이 나지를 않고 3월에는 입학을 해야하는데 입학해서 바로 병원으로 갈 수도 없는 일이고 해서 남편과 의논을 해 4월 1일로 입원 날짜를 잡았어요. 정빈이가 입원한다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기에 엄마가 입원을 하는 거라고 했더니 엉덩이가 그렇게 심각한 상태냐고, 입원을 해야할 정도냐고 웃긴다고 깔깔거리더군요. 진작에 운동을 좀 열심히 하지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 아이에게 언제 어떻게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나, 또 얼나 울며 병원 안 간다고 할까, 정직해야 한다고 했으면서 엄마는 거짓말쟁이라고 얼마나 원망을 할까…등등 생각도 많고 마음은 찢어지고. 21일에는 하루 종일 울면서 보냈어요. 정빈이에게는 눈병이 나서 그런다고 했더니 자기는 아픈 거 정말 싫다며 눈병 난 엄마는 저 쪽으로 가 있으라고 하더군요. 정말 너무 속이 상했어요. 이제까지 괜찮아 그래도 우린 다행이잖아, 하던 제 모습은 다 거짓이었던 것처럼 느껴지며 하염없이 눈물만 흐르더군요. 아이가 너무 잘 놀고 건강하게 느껴졌기에, 이 번에는 참 많은 기대를 하고 갔었던 저였기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경상대 병원에 있는 제부가 그런 저를 위로하더군요. 아이가 건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 급속히 나빠질지 모르는데 지금처럼 아이가 괜찮은 상태에서 알게 되어 검사든 수술이든 덜 힘들지 않겠느냐고요. 맞아요. 제부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정빈이는 늘 운이 따라주었으니까요. 지난번 검사 때 판막이 없는 걸 걱정하는 저에게 의사가 그러더군요. 그까짓 판막 하나 없는 게 무에 그리 큰 문제냐고요. 아이가 살아 있지 않느냐고 그러면 됐지 뭘 더 바라느냐고요. 이번에도 정빈이는 운이 좋은 건지도 몰라요. 제 눈에는 너무 건강하게 보이거든요. 그렇게 체력이 좀 있을 때에 알게 되어 덜 힘들지도. 그렇게 기운 없어 하고 있던 저를 벌떡 일어나게 만든 전화가 한 통 왔어요.<작은 친절>에서 조금 낯선 봉사활동이라고 소개를 했었던 '멘터'활동을 신청을 해 놓았었는데 멘터들의 모임이 있다는 연락이 왔더군요. 그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 것 같더군요. 제가 그렇게 눈물이나 흘리고 있어서야 되겠느냐는 생각이 든 거죠. 우리 아이는 의사의 수술이라는 도움을 받을 수 있잖아요. 그렇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저도 누군가에게 작지만 도움이 되어 주어야 하지 않겠어요? 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데 잠시 제 슬픔에 겨워 잊고 있었던 거죠. 눈이 와서 길이 얼어붙으면 더 힘들 것 같아 부랴 부랴 대구로 내려왔어요. 남편도 아이 소식을 듣고 한시라도 빨리 아이를 보고 싶어 하고 해서요. 내려오는 차안에서 정빈이가 그러더군요. 엄마가 입원을 하면 자기가 병원에 노트북이랑 프린터기 갖다 줄 테니 엄마 책은 계속 써야한다고요. 아프다고 포기를 하면 되느냐고. 자기는 가슴이 이렇게 흉터가 생길 정도로 많이 아팠는데도 이겨내고 뭐든 열심히 하는데 엄마가 엉덩이가 좀 아프다고 포기를 하면 안 된다고요. 눈병이 도졌다며 또 한참을 울었어요. 저 이제는 씩씩한 이영미로 되돌아 왔어요. 오늘은 정빈이와 함께 대구 교보문고에 갔었어요. 출판사로부터 <작은 친절>이벤트 행사 코너가 마련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 서울에 있느라 가 보질 못했었거든요. 요즈음 인터넷 서점에서 이벤트를 참 많이 하죠. 저는 이벤트에 매우 매우, 정말 엄청 강하기 때문에 경품 당첨이 정말 잘 된답니다. 특히 책을 사면 저절로 응모가 되는 이벤트 덕분에 보고 싶은 책도 사고 선물도 많이 받는 편이에요. 옆에 동료가 땅을 치며 통곡(?)을 할 정도로 진짜 많이요. 같이 책을 샀는데 저만 선물을 받게 되어 억울해 하는 동료 보기가 민망할 정도지요. (아주 특별한 기부이벤트 작은 친절로 행복 나누기, 한 번 보러 가세요. ) 그리고 대구 교보에서는 또 다른 이벤트를 하고 있었어요. (여기를 눌러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랑의 밥그릇에 대해 알아 보기로 해요.) 이렇게 따로 코너를 마련해 주신 것은 대구 교보 사상 처음이라더군요. 많은 책들이 고가의 선물을 주는데 도리어 내 돈을 들여야 하는 '사랑의 밥그릇'을 준다니 어쩌면 홍보가 아니라 사려던 책도 부담스러워 내려놓겠다는, 자기 같으면 그러겠다는 친구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서점 쪽에서도 그런 부담이 있을텐데도 이렇게 배려를 해 주신 것을 보며 그 분들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사람들의 관심을 확 끌 수 있는 좋은 선물을 주는 책을 위한 코너가 서점에는 더 이득이 될 텐데, 하며 쫑알거리는 제 친구가 그렇게 진실 되어 보일 수 없더군요. 제가 왜 이렇게 씩씩하게 돌아왔는지 여러분들은 아실 겁니다. 바로 많은 분들이 저와 정빈이를 격려해 주시고 계시고 저의 작은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작은 친절>이 많은 분들께 읽혀지는 욕심을 내 봅니다. <기다리는 부모가 아이를 변화시킨다>도 여러분들의 덕분에 정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셨어요. 일등 공신이 여러분이라는 걸 제가 너무나 잘 안답니다. 변변한 광고 한 번 없이, 그렇다고 제가 알려진 사람도 아닌데 그렇게 많은 관심에 출판사에서도 놀랐다고 하더군요. 다 여러분의 덕분이지요. 이제야 이렇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정말 감사 드려요. <작은 친절>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릴게요.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씀드려 기분이 상하신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저는 <작은 친절>이 많은 분들에게 읽혀지기를 바랍니다. 꼭 사서 읽으시라는 이야기 아닌 거 아시죠? 도서관이 있잖아요. 여러분이 가시는 도서관에 없다면 준비 해 달라고 이야기하세요. 그리고 <작은 친절>을 읽으신 느낌을 그대로 많이 많이 다른 분들께 전해주세요. 좋은 이야기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그 어떤 것이든 여러분들의 느낌 그대로를 전해 주세요. 조금만 더 마음을 내신다면 서평도 올려주시고요. 여기, 제 칼럼이나 제 메일로도 좋고 출판사의 홈페이지에도, 여러분이 자주 이용하시는 인터넷 서점에도, 그 어디에도 좋아요. 여러분들의 솔직한 이야기는 저에 대한 좋은 선물이 된답니다. 저는 계속 글을 쓸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들의 이야기는 앞으로 저의 글 쓰기에 가장 좋은 밑거름이 되어 줄 겁니다. 대신 저는 그 <작은 친절>에 소개한 멘터 활동을 직접 해보고, 신문 독자 투고도 계속하고(1월 20일자 매일신문에 저의 투고 글이 또 실렸답니다), 인사도 열심히 하고 잘 웃는, 말만이 아닌 실천하는 사람의 모습을 여러분들께 보여드릴게요. 정빈이를 위해서도 기도 좀 해주세요. 다른 아이들은 학교 입학 준비에 바쁘다는데 정빈이는 밥 많이 먹는 연습을 하고 있답니다. 튼튼해지려고 말입니다. 지금 정빈이가 뭘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의 어깨 위에서 목마를 타고 있습니다. 제 어깨 위에서 책을 읽고 있답니다. 제가 한 덩치 하는, 기운 센 아줌마인데도 이제는 정빈이가 제법 묵직하게 느껴져요. 그 느낌이 저를 눈물나게 기쁘게 해줍니다. 하지만 이제 울지 않아요. 기쁜 일에도요. 왜냐구요? 저는 씩씩한 정빈이 엄마니까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절 팍팍 밀어 주시니까요. 저 지금 행복해요. 1월 27일 경향 신문에 <작은 친절> 관련 인터뷰 기사가 났어요.그 기사로 바로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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