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11월 25일에 대구광역시 교육청 주최 중학생 학업성취도 평가가 있습니다. 오늘 예슬이가 이 시험을 위한 예상 문제집이 있나를 묻는데 제가 한 대답이었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저희 학교 학부모님이 계시면 자격 없는 선생이라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교사로서 저는 그 시험 준비를 따로 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 시험 준비를 위해 따로 시간을 내는 것 보다는 아이들에게 좀 더 많은 실험을 할 기회를 주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에서 지난 주 내내 전류와 전압을 측정하는 실험을 하였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전류계와 전압계를 주고는 전혀 설명을 해 주지 않은 채 학생들이 책과 제가 준 참고 자료를 이용해 스스로 전류계와 전압계의 사용법을 알아내어 직접 전류와 전압을 측정할 수 있도록 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가르쳐주지도 않은 채 아이들 스스로 알아내라는 과제를 주는 이유가 있답니다. 새로운 가전제품을 샀을 때 사용설명서를 읽고 새로 들어 온 그 기계의 사용법을 모두 파악을 하시는지요? 많은 사람들이 사용설명서를 읽기 싫어한다고 합니다. 그저 판매원이 이야기 해준 기본적인 한 두 가지 기능만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고, 사용설명서를 읽고 기능을 파악하려 해보지만 읽어보아도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해 결국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학생들에게 전류계와 전압계의 사용법을 가르쳐 주지 않고 스스로 탐색을 해 알아내라고 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상황에 대비한 실용 과학적인 측면이라 이해하시면 될 겁니다. 저는 이런 과정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정말 배워야 할 것은 그런 것이라 생각하니까요. 그런 경험을 많이 해 본 아이들은 나중에 새로 산 기계의 설명서를 그냥 서랍 속에 넣어두기 보다는 꼼꼼히 읽어보면서 그 기계의 기능을 100% 알아내고 잘 활용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직접 해야 하는 것들이 많고 수업도 교과서의 여기저기로 이동을 하며 나가기도 합니다. 진도는 느릴 수밖에 없지요. 저는 교과서를 다 떼야(?)한다고는 생각지 않는 사람입니다. 2학년 교과서에 약물 복용에 관한 부분이 있습니다. 비록 교과서는 2쪽에 불과하지만 저는 이 부분을 아주 크게 다루고 싶어 진도를 기말고사 이후로 미루어 두었습니다. 더 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좋은 수업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요. 어쩌면 성취도 검사에 그것에 관한 문제가 나온다면 저희 학교 아이들은 다 틀릴지도 모릅니다. 저는 큰 곤욕(?)을 치를지도 모르지만 25일 치는 시험의 범위를 두 주 정도 남겨두고 전달받은 현실에서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수업을 하는 것이기에 아직 준비가 덜 된 수업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성취도 검사에 대한 준비는 학생들의 몫이라 생각하기에 아이들이 직접 OHP 자료를 제작하고 학습 자료로서 사용 될 수 있도록 만들어졌는가를 스스로 평가 해 보기도 해 보고 건전지를 들고 몇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의 성적에 신경을 쓰지 않는 나쁜 선생인지도 모릅니다. 학교의 관리자들도 학교의 서열이 정해지는 중요한 시험 준비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는 저를 질책할지도 모릅니다. 학부모님들도 실력 없고 무성의한 교사라 저를 탓 하실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들과 함께 한 그 시간들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제가 해주어야 할 것이 예상 문제집을 풀어 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 같은 교사 때문에 학생들의 실력이 낮아진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에게 사용설명서를 읽어보겠다는 마음이 들도록 하는 게 무슨 필요냐, 당장 대학이 문제인데 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중학교는 고등학교와 같은 건물을 쓰고 있습니다. 6층 건물의 5, 6층을 중학교가 쓰고 있는데 며칠 전 출근길에 학교 현관에 전자 알림판이 반짝이고 있더군요. 『서울대 1차 수시 합격 8명』이라는 글자가 뜨는 순간 왜 그리 마음이 싸아∼하던지요. 아이들의 성취도 검사를 앞 둔 오늘, 지난 2월 6일 KBS네티즌 리포트에 썼던 <서울대 합격이 우리 교육의 목표는 아니건만>이라는 글을 읽어봅니다. 학교 오는 길에 고등학교 교문에 걸린 "서울대 최종 합격 6명"이라는 글이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그걸 보는 순간 곧 비가 올 듯한 날씨가 왜 그리 내 맘같이 느껴지는지. 출근길에 급하게 찍은 사진도 내 맘 같은지 흐리게 나오고. 서울대를 나오지 못한 지방대 출신의 자격지심일까? 아마도 고등학교마다 올해 서울대에 몇 명이 합격을 했는가를 자랑하는 현수막들이 교문 위에서 휘날리고 있을 것이다. 지나가다 그걸 보는 많은 사람들도 아이들은 그 현수막을 보며 자신이 다니는 학교가 명문고임에 은근히 자부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 라는 희망을 가지기도 하고. 현수막에 적힌 서울대 및 몇몇 명문대라 불리어지는 학교의 합격자의 수에 따라 그 학교의 가치가 정해지는 현실. "봉사활동을 200시간 넘게 한 ○○○" 나는 아직까지 이렇게 적힌 현수막이 교문에 걸린 적을 본 적이 없다. 방학동안 학교가 시설현대화 공사로 먼지투성이인지라 학교 앞 문방구에서 장갑과 마스크를 사려는데 문방구 주인 아주머니 혼자 말처럼 하시는 말씀이 그 말을 받은 아저씨 모든 아이들에 대학에 가야만 할 것 같은 강박감. 개학하여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이 모인 자리에서의 토론 주제도 결국은 그것이었다. 학교마다 명문대에 몇 명의 학생을 보냈느냐 로 울고 웃는다고. 아이들과 상담하면서 가장 쉽게 나오는 말이 두 살에 한글을 떼었다, 네 살에 영어로 미국인과 대화가 자유롭다는 몇 몇 영재라 불리어지는 아이들이 TV의 아침프로그램에 단골처럼 등장을 하고 아나운서를 비롯해 방청객까지 아이의 영민함에 감탄을 해댐으로서 전국의 대부분의 멀쩡한 아이들을 열등아로 만들고 자신의 아이들을 영재로 만들지 못한, 자식에 대한 애정과 교육열에 불타는 엄마들을 우울증에 빠지게 하는 현실. 그들의 육아법을 적은 책들이 집집의 엄마 손에 들려지고 대부분 보통 부모에 뭐 특별한 교육을 하지도 않았건만 아이는 내 아이와 달리 분명 영재인 현실에 한 번 더 절망감을 맛보아야 하고. 아이가 마음이 따뜻하다고 하여, 어른에게 예의바르다 하여, 친구를 잘 도와준다 하여 아침 프로그램에 엄마 손을 잡고 나온 적은 없었다. 우리 큰 아이는 한글을 다 떼지 못하고 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둘째는 일곱 살인 지금 한글을 얼추 다 아는데 그걸 자랑한다면 아마 나를 무슨 정신나간 아줌마라 하지 싶다. 왜 우리나라 방송과 신문, 여성 잡지들은 영재만을, 천재만을 신동만을 그렇게 기를 쓰고 찾아내는 것일까? 얼마 전 명문대 불문과 졸업반인 제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서울대 합격자 수를 알리는 현수막을 올려다보며 과연 자식을 잘 키운다는 것, 선생으로서 학생을 잘 가르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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