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에 걸리지 않았다고 큰소리 치다가 지금 엄청나게 앓고 있는 중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지요? 예슬이는 월요일부터, 저희 학교는 화요일부터 기말고사를 치고 있습니다. 예슬이는 정빈이가 언니와 놀자고 졸라대는 바람에 집에서 집중 할 수가 없다면서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독서실에서 공부를 합니다. 어제는 감기로 인해 운전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퇴근을 했는데 예슬이가 시험을 잘 쳤다며 외식을 하고 싶다더군요. 아이가 시험 기간인데 먹을 것에도 따로 신경을 안 쓴다고, 빵점 엄마라 나무라던 남편은 빨리 퇴근을 할 테니 함께 가자고 했다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안되겠다며 저희들끼리 갔다 오라고 하더군요. 저녁을 먹고 예슬이는 독서실에 가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퇴근 해 오는 남편을 만났어요. 정확하게 몇 시에 집에 올지 모르는 아이를 기다려서 문을 열어 주어야 하는데 남편도 지쳐있고 저 또한 감기로 앉아 있기도 힘이 든 상태였답니다. 남편이 정빈이에게 책을 읽어 주는 동안 잠시 누워 쉬었는데 남편이 다른 날 보다 일찍 잠이 들어버렸어요. 10시 반쯤 되었는데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정빈이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언니가 집에 왔을 때 우리 모두가 잠이 들어서 문을 못 열어주면 안 되거든. 어머니가 지금 감기로 너무 힘들어서 그러는데 어머니가 언니 침대에서 잘 테니 정빈이가 옆에서 책 읽다가 도저히 잠이 와서 안되겠다 싶으면 나를 깨워, 부탁해." "왜 언니 침대에서 자요?" 저희 집이 좀 춥습니다. 아파트가 왜 추우냐고 하겠지만 남편이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는 방법은 춥게 키워야 하고 특히 공부하는 아이가 있는 방은 약간 서늘한 것이 좋다면서 보일러를 최소한으로 틀거든요. 특히 예슬이 방은 순환되는 물이 제일 나중에 들어가서 그런지 다른 방에 비해서도 좀 더 서늘(?)합니다. 그렇게 정빈이에게 책 읽고 있으라 하고는 잠이 들었는데 워낙 잠이 없는 아이인지라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온 언니를 위해 문을 열어 준 사람은 정빈이였어요. 씻고 잠자리에 든 아이는 5시에 일어나야 한다며 시계의 알람을 켜더군요. 오늘 아침 일어나 시계를 보니 6시가 다 되었더군요. 아이 방으로 가 보니 아이는 제 도움 없이도 일어나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남편이 아이가 시험 기간인데 아이가 일어나는 시간에 함께 일어나주면 좋잖아, 하면서 그런 거 하나도 제대로 신경을 써주지 않는다며 저를 나무라더군요. 그러면서 잔소리가 이어졌어요. 다른 때도 아니고 시험 기간인데 교복, 음식, 일어나는 시간 정도는 신경을 써줘야 할 거 아니냐, 어찌 그리 무심하냐면서요. 하지만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아이가 시험을 치는 것은 학교 생활의 일부입니다. 특별히 달라야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거든요. 아이가 자신이 필요하면 알람시계가 울리면 일어나고 일어나지 못하면 그것도 경험을 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언제까지 제가 먼저 일어나 아이를 깨울 수는 없으니까요. 남편은 평소에는 일어나지 않으면 그대로 둬서 지각하게 두라고 하면서 시험 기간에는 신경을 쓰라고 하는 일관적이지 못한 태도를 보이더군요. 제가 아이를 위해 특별히(?) 신경을 쓰는 것은 아침을 먹는 것입니다. 시험 때라고 해서 더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라 늘 아침만큼은 꼭 먹이려고 하지요. 반찬이야 늘 그게 그거지만요. 시험 기간에는 잠을 평소보다 훨씬 적에 자서 그런지 아침을 먹지 않으려는 날도 있습니다. 그럴 때 하는 말이 있어요. "아침을 먹는 것도 시험의 한 전략이야. 지난번에 아침 식사와 문제 해결 능력에 관한 글을 보여 준 적이 있었지. 아무리 내 머리 속에 지식이 많더라도 그것을 적절한 시기에 재구성해내지 못한다면 쓸모가 없잖아. 시험 기간이라고 엄마가 코코아를 보온병에 넣어 주더라는 아이도 있었지? 그것도 좋겠지만 밥이 최고야. 이거 아버지가 직접 농사지은 쌀로 만든 밥이야. 농약 걱정도 없고 카페인과 같은 물질 걱정 안 해도 되고. 공부를 잘하고 싶다면 아침 밥을 꼭 먹어야 해." 학교의 아이들에게도 아침밥을 꼭 먹으라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아참, 어제는 저희 반 종례 시간에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길게 했습니다. 시험 기간이라 웬만하면 나중에 하라는 동료의 충고를 듣지 않고요. 월요일 학급 주번에게 교실 휴지통을 깨끗하게 씻으라고 했다는데 저희 반 주번은 주감 선생님의 전달을 제대로 듣지 않아 선생님이 검사를 하러 갔을 때 휴지통에 쓰레기가 가득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주번 중 한 사람은 집에 돌아 간 상태이기에 주변에 있는 몇 몇 아이들에게 그 아이를 도와 함께 일을 하라고 했다는데 조금 뒤에 보니 남아 있던 주번 혼자서 휴지통을 비우러 가고 있더라는 겁니다. 고등학교와 함께 쓰고 있어서 저희 반 교실이 5층에 있는데 쓰레기가 가득 찬 큰 휴지통을 혼자서 운동장 구석에 있는 곳까지 가져가는 것은 정말 힘이 들거든요. 그 이야기를 전해 듣자 제가 몹시 화가 났습니다. 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한 것을 뻔히 알면서도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5층에서 휴지통을 가지고 운동장으로 내려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보다 여러분들이 잘 알 겁니다. 선생님이 이렇게 화가 난 것은 그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돕지 않았다는 것이에요." 이렇게 시작된 저의 잔소리는 좀 길게 이어졌습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엄마가 시험 기간이니까 참지만 너 시험 끝나면 보자." 아이들이 쉽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시험이, 공부가 자신의 일이 아니라 부모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아이들 머릿속에 많이 자리한다고 합니다. 시험 기간이라 특별히 용서가 되고, 시험 기간이라 특별히 허용되고, 시험 기간이라 특별히 배려가 된다면 그 아이는 시험이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요? 물론 아이들에게 있어 시험은 큰 부담이고 스트레스입니다. 아이를 평소보다는 편안하게 해주어야 하겠지만 시험 기간이라 하여 <특별히>는 너무 많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오늘 아침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시험치는 아이의 엄마 노릇, 이거 쉽지 않네요. 아니군요. 정빈이가 문을 열어줬으니 시험치는 아이의 동생 노릇하기가 쉽지 않은 거겠죠? 정빈이가 조금 더 자라서 언니와 놀고 싶어 투정을 부리지 않는다면, 그래서 예슬이가 집에서 공부를 한다면 문 열어주는 것으로 인한 고민은 없어질텐데. 우리 꼬맹이 언제쯤 크나? 두 아이의 나이 차가 많으니 이런 것도 고민거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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