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보너스를 주는 사람이고 싶다.

착한재벌샘정 2003. 6. 9. 11:22



며칠 전 한 달만 쉬겠다고 했으면서 이렇게 또 글 하나를 올립니다.

대구에 있는 사회복지재단 에데원에서 1년에 두 번 발행하는(작년까지는 1년에 네 번 발행을 했었는데 올해부터 두 번으로 줄여 발행을 한다고 하네요) "에덴의 아침" 봄호가 도착을 했습니다.

"에덴의 아침" 봄호에 실을 글을 부탁 받고 쓴 제 글이 있어 올려 봅니다.

이 글을 쓰면서 kbs네티즌 리포터의 제 칼럼방의 이름을 정하기도 했었지요.

제게 참 소중한 글인지라 칼럼의 식구들과도 함께 나누고 싶은 욕심에....

많은 분들이 한달만 휴가를 달라는 제 말씀에 건강하라, 하고 있는 일 잘 마무리 하라 등등 많은 격려의 메일까지 보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더 좋은 모습으로 찾아 뵐께요.

보너스를 주는 사람이고 싶다

3년 전 겨울 태백산에서 나는 너무나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났었다.

앞사람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겨울의 새벽, 눈은 쌓여 발이 푹푹 빠지고 불어오는 세찬 바람에 얼굴을 제대로 들 수조차 없었던 태백산 어귀.

"내가 뭐 하러 이런 등산을 한다고 했을까? 지금쯤 집에 있었다면 따뜻한 방에 누워 단잠을 자고 있을 텐데."

나는 몇 발자국 떼지 않아 지쳐버렸고 되돌아 내려가려 마음을 먹었다.

"도로 내려가서 여관방에서 한잠 자고 일행들이 모인다는 곳으로 콜택시를 타고 가면 될 거야."

이런 생각을 하며 앞서 걷고 있는 남편을 부르려 했다.

그런데 내 곁을 지나가는 부산한 사람들.

나는 그들의 모습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열 댓명 쯤 되는 뇌성마비 아이들과 그 아이들과 함께 보조를 맞추어 걷고 있는 젊은이들.

멀쩡한 나도 걷기가 힘든 길을 저 아이들이?

혼자서도 힘겨워 하는 이 길을 저 아이들을 돌보면서 아이들 몸 만한 배낭까지 메고?

나는 내려가자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들과의 6시간의 산행은 내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 있다.

입김으로 눈썹에는 고드름이 달리고 목이 마르면 먹겠다고 배낭에 넣어둔 귤이 얼어 돌덩이가 된, 그 추운 날의 태백산 등반을 난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나를 포기하지 않게 해준 것은 바로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자꾸만 넘어지는 자신을 안간힘을 다해 일으키고 이를 악물고 한 발 한 발을 떼던 아이들.

넘어져 긁힌 손바닥을 후후 불며 씨익 웃던 그 아이의 눈에 고여오던 눈물. 그토록 아름다운 눈물이 어디 있으랴.

힘에 겨워 엄마보고 싶다며 칭얼거리는 아이의 뺨을 감싸 안고 이마에 입을 맞춰 주며 용기와 격려를 아끼지 않던 젊은이들.

한 사람이 힘겨워 하는 아이는 등에 업으면, 또 한 사람은 그 사람이 메었던 배낭을 넘겨받아 양쪽 어깨에 하나씩 메고도 아이의 손을 잡고 노래까지 불러 주며 걷던 그 젊은이들.

나는 그들과의 산행에서 나 아닌 다른 이를 도우면서 느끼는 기쁨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고 신체적인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는 의지와 용기를 보았었다.

나는 힘겨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들, 그 아름다운 얼굴들을 떠올리며 나를 격려한다.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사람이 되자고 말이다.

그리고 남에게 작은 기쁨이라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을 하곤 한다.

아침 뉴스의 기상 캐스터가 한 말이 생각난다.

"오늘 하루는 기온이 높아서 벌써 봄이 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겁니다.
추운 한 겨울에 따뜻한 하루, 이건 겨울만이 줄 수 있는 보너스겠죠?"

보너스란 뭘까?

뜻밖의 기쁨, 기대하지 않았던 감동이 아닐까?

내가 그들에게서 받았던 것이 바로 그런 보너스였다. 그것도 너무나 큰 보너스.

내가 그들에게서 남을 돕는 마음과 용기와 의지라는 보너스를 받았듯이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보너스를 주고 싶다.

내 한 마디의 말에 용기가 솟고, 내 따뜻한 눈길에 마음이 풀어지는 이가 있다면.

나도 보너스를 주는 사람이고 싶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이런 보너스를 줄 수 있다면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