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예슬이 입학 선물 - 너 부회장 시켜 줄게!

착한재벌샘정 2003. 6. 9. 11:22
오늘 예슬이가 중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예슬이가 1996년 3월 4일에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3월 7일에 동생 정빈이가 태어나는 바람에 엄마의 손이 참 많이 필요하던 시기에 엄마와 가장 많이 떨어져 있어야 했었던 예슬이기에 오늘 예슬이의 중학교 입학은 저에게 또 다른 감회를 주었답니다.

퇴근길에 그 때를 생각하니 괜스레 눈물이 막 나는 거 있죠.

입학 준비라고 저 혼자 마음만 급했지 정작 예슬이는 평소의 그 느긋함 그대로였답니다.

며칠 전에 시내에 있는 큰 서점에 같이 갔었는데 한참 책을 고르던 예슬이가 제게 내민 책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귀여운 빵&쿠키』라는 요리 책이었답니다.

참고서에는 관심도 없고 그런 것들이 필요한지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하긴 초등학교 6년 동안 전과라는 것을 한 번도 사 본적이 없는 아이이니 그저 교과서만 있으면 되는 거라 생각하는가 봅니다.

어제는 케이크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고요. 덕분에 정빈이와 저는 맛난 케이크를 실컷 먹었지만요.

어제 예슬이가 만든 딸기 생크림 케이크입니다.

어때요? 먹음직스럽죠?

지금 예슬이는 거실에 있는 식탁에 앉아 내일 1교시에 든 영어 수업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첫 시간이니 아마도 자기 소개를 하지 않을까 하여 자신의 소개서를 영어로 작성하느라 열심입니다.

영어책장의 두 문이 활짝 열린 거 보이시죠?너무 평범한 소개는 그렇다며 나름대로 책을 뒤져가며 열심입니다.

이런, 정빈이의 의자는 넘어져 있고 식탁에 화분이 올라와 있고. 어머니께서 꽃이 활짝 피었다고 올려 놓으신 모양입니다. 이게 저희 집의 평소 모습입니다.

참, 정빈이의 책상 다리옆에 빨간 풍선 보이시죠?

요즈음 정빈이가 풍선 불기를 연습해서 아주 잘 불게 되었는데 그 바람에 온 집안에 색색이 풍선이 나뒹굴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오른쪽 식탁 의자 밑에도 노란 풍선이 두 개나 있답니다.

정빈이는 이 풍선 불기에서 많은 자신감을 얻었어요. 볼이 터질 것 같다며, 숨이 차 몇 번을 드러 눕기까지 하며 불게 된 풍선이거든요.

(에궁, 여기까지 쓰고 남편과 놀던 정빈이가 보채는 바람에 정빈이를 재우고 나니 새벽 2시가 되어 「오늘」에서 「어제」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예슬이는 그새 잠이 들었네요. 무슨 일이 있어도 10시면 잠자리에 드는 아인데 중학생이 된 첫날 10시를 훨씬 넘긴 시간에 잠자리에 드는 이변(?)을 났았는데 아침에 일어날 시간이 궁금합니다. 그럼 이야기 계속할게요.)

영어 일기를 매일 쓰기로 한 예슬이가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늦춰가면서도 약속을 지켰군요.

참, 여기서 예슬이의 캐나다 여행을 잠시 정리해 볼까 합니다. 한 번 해야지 하는 마음은 있었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거든요.

캐나다 여행은 예슬이에게 많은 것을 안겨 주었습니다. 요약을 해보면

그 첫번 째이면서 제가 가장 흐뭇해하는 것으로 표정이 밝고 굉장히 풍부해졌다는 것입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아이에게 가장 많이 부탁한 것이 밝은 표정과 웃는 얼굴이었거든요.

어두운 아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무심코 있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가끔 무표정해지곤 하는 아이인지라 늘 웃는, 밝은 표정을 의식적으로라도 지어보라고, 그곳의 사람들이 얼마나 표정이 풍부하고 잘 웃는지를 한 번 잘 살펴보라고, 의식적으라도 따라하다 보면 그것이 몸에 배게 될 거라 부탁을 했었거든요.

예슬이도 캐나다 공항에 내리면서부터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처음에 자신이 아무리 크게 웃고 밝은 표정을 지어도 그들에 비해 굳어 있는 것을 느꼈는데 이제는 거울을 보아도 자신의 활짝 웃는 모습이, 늘 입가에 띤 웃음이 낯설지 않고 자신의 표정이 많이 변했다는 걸 느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둘째는 영어에 대한 자신감입니다. 예슬이는 캐나다에서의 영어 공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영어만을 위해, 공부로서의 영어를 위해서라면 그 돈으로 한국에서 학원에 다니는 것이 훨씬 효과가 있을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같이 간 아이들 중에는 정말 영어 몇 마디 안하고, 내주는 과제조차 제대로 안하고 오는 아이도 꽤 있었구요.

그곳에서의 수업의 내용이나 양은 그렇게 많지 않았고 3주라는 시간도 그리 긴 것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 3주 동안 캐나다 사람들과 지내면서 만난 그 순간부터 영어만으로 의사 소통이 된다는 생각으로, 해보자고 마음먹으니까 어느새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더라구요.

전 어머니와 약속했었잖아요. 정말 열심히 하겠다고. 전 그 약속 지켰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문득 쇼핑을 하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영어에 관해서는 뭐든 자신 있게 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요. 제가 가지고 있는 이런 자신감은 그 누구가 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예슬이는 캐나다 선생님으로 부터 『보기 드물게 열심히 하는, 적극적이고 선생님을 아주 기운 나게 해주는 학생』이라는 평가를 받아와 저를 기쁘게 해주었습니다.

셋째는 참 많이 생각이 깊고 의젓해졌다는 겁니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고 왔고, 기회가 닿으면 고등학교 때부터 외국에 나가 공부를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과 계획도 가지고 왔더군요.

넷째로 돈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어져 돌아 온 것입니다.

제가 용돈으로 캐나다화로 400달러 주었는데 그 돈을 남겨 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저도 그 돈은 다 쓰고 와도 된다고 이야기를 했었구요.

그런데 130달러를 남겨왔더군요. 평소에 돈을 아껴 쓰고 규모 있게 쓰라는 이야기를 하기는 하지만 늘 제 눈에는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쓰는 것 같아 절 속상하게 할 때가 많았거든요.

그런 아이가 다 쓰고 와도 된다고 준 용돈의 ⅓이나 남겨 온 것도 놀랍고 기특한데 그 보다 더 놀라운 것이 있어요.

다음에도 기회가 있으면 꼭 다시 외국 여행을 가고 싶다는 아이는 돈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은 모양입니다.

교복도 친구 언니를 통해 몇 벌이나 얻어 와 새 교복 사는 비용을 저축해 달라고 하더니, 여름부터 교복을 입는다기에 입학식 날 입을 옷을 한 번 사줄까 해도입던 옷을 입으면 된다, 이모가 새 가방 사라고 준 돈도 저축을 하고 헌 가방을 그대로, 신발주머니조차도 집에 있던 수영 가방이면 되었다고 합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사라고 주신 외할머니, 큰어머니의 용돈도 모두 고스란히 남겨두었지요.

어제 예슬이가 입학식에 입고 간 옷은 제가 살이 쪄 입지 못하고 옷장에 걸어 두었던 저의 옷을 세탁하고 다린 것이었답니다.

이제는 제 키보다 커버려 바지와 소매가 모두 9부인 요즈음 유행(?)하는 옷처럼 되어버린 옷을 입은 아이가 얼마나 대견하던 지요. 에구구, 제가 팔불출인 거 아시니 이해하세요.

실내화도 밑창이 다 떨어지려고 하는데도 깨끗하게 씻으니 아직 충분히 신을만하다며 괜찮답니다. 공책 10권을 산 게 예슬이의 입학 준비의 전부였습니다.

필통 하나 새로 사지 않고 중학교 생활을 시작하는 아이는 그 돈들을 다음의 여행 경비로 쓰고 싶다고 하는군요.

예슬이는 일본을 참 가보고 싶어하고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예슬이가 큰 관심을 보이는 것 중 하나가 '기모노'랍니다. 한 번 입어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위해 필요할 때, 자신이 원할 때 쓸 수 있게 필요한 경비들을 모아두겠다는 아이, 이 번 캐나다 여행이 준 큰 선물인 것 같습니다.

다섯째로 저와의 친밀감이 더욱 커졌다는 겁니다.

떨어져 있는 동안 저에 대한 그리움이 저와 더욱 가까워지게 한 것 같아요.

태어나서 아직 그렇게 오래 떨어져 있어보기는 처음이었는데 막 사춘기에 접어들어 저와 많은 부분에서 삐꺽거리기 시작했던 감정들이 이 번 여행 동안 엄마가 보고 싶다는 걸 절실히 느끼는 바람에 엄청난 "효녀"로, 예전 아기 적 어리광쟁이로 돌아와 있더군요.

하지만 전 그 것이 단순한 퇴행이라 생각지 않습니다. 절실한 그리움을 통한 내적 성숙(너무 거창한 가요?)에서 오는 친밀감은 아기 때의 그것과는 정말 다르고 제게 또 다른 기쁨을 주더군요.

예슬이와 저는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더욱 절절해졌다면 적당한 표현이 될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이 번 여행을 결정하게 되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점을 노린(?)거였는데 저에게도 예슬이에게도 그 결과는 기대 이상이랍니다.

(에궁, 여기서 또 잠시 멈춥니다. 정빈이가 깨서 찡찡거리며 안아달라 보챕니다. 에구구.....

정빈이 안아 재우고 다시 돌아왔네요. 잠시가 아니라 날이 새려고 합니다. 일요일에 혼자 산에 갔다 온 남편이 일찍 잠이 드는 바람에 제가 글쓰기가 쉽지 않습니다.^_^)

예슬이 입학 이야기를 하다가 옆길로 많이 새버렸군요.

제가 예슬이의 입학 선물로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제 꿈 중의 하나가 '장학 재단'을 가지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아주 작게 지만 그 꿈은 이루었고요. 제가 도움을 받은 적이 있기에 그것만큼은 사회로 돌려주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거든요.

자꾸 미루면 안되겠다 싶어, 미약하나마 시작을 했지요.

『네잎 클로버』라는 장학재단(달리 부를 것이 없어 이렇게 부르지만 이 거참, 부끄럽고 난감합니다.)으로 스승의 날과 졸업식 때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어요.

남을 돕고 싶으면 소리 없이, 이름 없이 할 수도 있는데 굳이 이름까지 거창하게 지어 티를 내는 이유가 무어야 묻는다면 바로 저의 두 아이에게 물려 줄 저의 유산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이들을 위해 마련해 둔 유산 1호가 바로 『네잎 클로버』거든요.

소리 없는 선행도 좋지만 남도 도우면서 저희 아이들을 도울 수도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이들에게 엄마가 저희에게 남겨 줄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다는 걸 보여 주기위해서지요. 남을 돕는 마음, 함께 살아가는 마음을 준비해 주고 싶거든요.

제가 이 이야기를 엄청 쑥스러워하며 꺼내는 이유는 제가 준비한 선물이 이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에요.

물론 나중에 유산으로 물려줄 생각이지만 이제는 함께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제가 준비한 입학 선물은 "남을 돕는 마음", 바로 예슬이를 『네잎 클로버』의 한사람으로 동참시키는 것입니다.

매달 용돈 중 일부분을 떼어 네잎 클로버 통장에 저축을 하게 함으로서 저와 함께 네잎 클로버의 일원이 되어 함께 꾸려나가려 합니다.

예슬이의 용돈이 얼마 되지 않으니 예슬이가 보탤 수 있는 금액도 그리 크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 아이의 마음만큼은 그 누구보다 크다는 생각입니다.

"엄마가 회장이고 넌 부회장 시켜줄게."

『네잎 클로버』의 부회장 자리가 제가 준비한 예슬이 입학 선물이랍니다.

늘 바쁘다 엄살부려 죄송해요. 부디 용서하시기를.

2, 3월은 유난히 더 바쁘네요.

모든 분들 늘 건강하세요.그리고 3월 7일이 정빈이의 여섯 번째 생일입니다.

제게 있어 1년 중 가장 큰 행사(?)라는 거 이해하시죠?

요즈음은 정말 잠이 다 오지 않을 지경입니다. 좋아서요.

그러고 보니 오늘 결국 한잠도 못자고 밤을 골딱 새워버렸네요. ^_^

많이 많이 축하해주세요.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