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방학동안 퀼트의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나의 필통까지 만들어주더니 개학 날 담임 선생님께 드린다고 엄청난 대작(?)인 가방을 만들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카키, 브라운, 베이지 색깔의 예쁜 조각 천들로 만들어진 가방은 내가 봐도 걸작이다.
"윤쯜(가끔 이렇게 부른다.), 그 가방 엄마 주라, 응, 응?"
"안돼요. 우리 선생님 드릴 거라고 했잖아요. 어머니께는 필통 만들어 드렸잖아요."
"필통하고 그 가방하고 비교가 되냐?
엄마 개학하는 날 그 가방에 이 필통 넣고 가서 자랑하고 싶단 말이야.
그럼 5000원에 팔아라. 이만한 가격이면 엄마 수준에 너 엄청난 돈이라는 거 알지?"
"그렇게 갖고 싶으세요? 그래도 안돼요."
"그럼 6000원? 어때?"
"안 된다니 까요. 아휴, 진짜 이 가방이 갖고 싶으시긴 한가봐요.
짠순이 어머니께서 6000원이나 주신다는 걸 보니. 그래도 안돼요.
정말로 갖고 싶으시면 제가 만들어 드릴게요.
이제 만드는 방법도 다 아니까 제가 만들어 드리면 되잖아요.
진작에 제가 좀 도와달라고 했을 때 조금이라도 도와 줬으면 선생님 꺼 완성하고 어머니 것도 만들어 드렸을 거 아니에요.
어떻게 한 땀도 안도와 주셨으면서."
"그래도 나도 개학날 들고 가고 싶단 말이야."
"진짜 어린애처럼 왜 이러세요?
제가 우리 선생님 드리고 싶다고 몇 번이나 말씀 드렸잖아요.
스승의 날에도 돈이 별로 없어서 선물도 제대로 못해드렸는데.
그럼 진작에 스승의 날에 큰 선물 사드리게 돈을 좀 주시지 그랬어요?
스승의 날 마다 내가 알아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라고만 했으면서.
그래서 저는 맨 날 1000원 짜리 2000원 짜리 밖에 못했단 말이에요.
다른 얘들은 얼마나 큰 선물을 하는지 아세요?
엄마들도 진짜로 선물을 많이 갖고 온다구요.
어머니는 선생님이면서 한 번도 큰 선물 안 해주시면서."
아이에게 선생님께는 저번에 만든 바구니 갖다드리고 가방은 엄마를 달라고 졸라도 아이는 고개만 살래살래 흔든다.
이런, 효녀 쯜이라더니….
아이가 그 가방을 내게 준다고 한들 처음부터 담임 선생님 드리려고 온 정성을 다 해 만드는 걸 알고 있는 내가 정말로 받겠는가마는 아이 고집이 이렇게 까지 일 줄 몰랐기에 새삼 속으로 고마웠다.
선생님에게 드릴 선물.
샛별이 생각이 났다.
'샛별'이란 이름은 그 아이와 나만 아는 이름이다.
몇 해 전 담임을 하고 있던 스승의 날 눈물로 얼룩진 편지를 내게 주어 나를 참 많이도 아프게 했던 아이 샛별.
내가 아직도 곱게 간직하고 있는 샛별이의 편지이다.
선생님 미워요.이 세상에서 선생님이 제일 싫어요.
선생님 때문에 제 꿈이 깨져 버렸어요.
저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그래서 스승의 날 선물을 많이 받고 싶었는데.
그래서 정말로 착하게 살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이제 다 틀렸어요.
선생님은 진짜 나쁜 사람이에요.
난 영문을 몰랐고 내 앞에 앉은 아이는 하염없이 울기만 하고.
샛별이의 꿈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샛별이네 집은 너무나 가난하여 샛별이는 친구와 사귀는 것도 겁이 난다고 했다.
혹여 친구의 생일 파티에라도 초대될까, 그래서 선물이라도 사야 할까봐서. 난 그렇게까지 어렵다고는 생각을 못했었다.
그러니 친구들로부터 선물을 받아 본 적도 없고 먹고살기에 너무나 빠듯한 살림이다 보니 부모로부터의 선물도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고, 그래서 선물 받아 보는 것이 최고의 소원란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난 역시 선생 자격이 없어. 그 때의 난감함이란.
샛별이가 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지를 알고 난 참 마음이 아팠다.
바로 선물 때문이었다.
스승의 날 마다 선생님들에게 주어지는 그 많은 선물들.
샛별이는 스승의 날 마다 넘치는 선물을 받는 선생님의 모습이 너무도 부러워, 1년에 한 번은 꼭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선생님이 되기를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아인 그 꿈이 너무도 절실했기에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나름대로 무척 노력을 한다고 했다.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스승의 날 마다 가득 가득 선물을 받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아이 샛별이.
그랬는데 스승의 날 선물을 가지고 오면 혼을 낸다는 나의 말에, 선생님에게 혼이 날까 아이들이 정말 아무 것도 가져오질 않아 스승의 날 아침의 텅 빈 나의 책상을 보고 자신의 꿈이 나 때문에 깨져 버렸다며 나를 원망하는 편지를 갖다 놓은 것이었다.
선물이 받고 싶어 선생을 꿈꾸는 아이.
선물을 하나도 받지 못해 아이의 꿈을 무참히도 깨 버린 나.
나도 스승의 날 선물을 받으면 참 기쁘고 고맙다. 하지만 아무 것도 받지 않는 것이 더 기쁘고 더 고마운 우리의 현실을 어떻게 아이에게 설명을 해야 하나.
샛별이와 난 요즈음도 가끔 서로에게 선물을 하곤 한다. 아이는 늘 자신의 이야기가 적힌 편지로, 나는 내 나름의 선물로.
샛별이의 꿈은 여전히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이제는 더 이상 선물 때문은 아니다.
난 샛별이가 참 좋은 선생님이 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우리 예슬이 선생님이 무지무지 부럽다.
우리 예슬이가 그 가방을 만드는데 쏟은 정성이 얼마인지 과연 아실 까?
하루에 보통 여섯 일곱 시간씩 해서 꼬박 일주일이 걸린, 오늘은 거의 10시간을 그 가방 마무리한다고 붙들고 있었는데.
그리고 그 보다 더한 아이의 마음이 담긴 선물이라는 걸.
야, 1학년 5반 공주들 나도 저런 가방 받고 싶다!!!!!!
엥, 또 한 번 절감을 하는구먼. 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을!
###뜨개질 할머니###
<본문 중에서>하지만 할머니는 어디선가
분명히 뜨개질을 하고 계실 거예요.제일 처음 뜨는 건
웃으면서 뛰노는 귀여운 아이들이겠죠.
그리고 계속해서 만드실 거예요.
침대랑 커튼이랑 주전자랑 요강이랑.털실로 뜬 아이들을 귀여워해 줄
착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서
걱정 없이 편안하게 뜨개질을 하고 계실 거예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난 이 책을 어른들을 위한 아이 책이라 말하고 싶다.
무채색의, 4B 연필로 스케치를 한 듯한 그림에서는 정겨움이 느껴진다.
털실로 만든 아이들과 함께 살 수 없다는 비정한 어른들에게 항거하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뜨개질로 만든 집과 털실로 짠 아이들을 구경거리로 만들려는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모든 걸 풀어 버리는 할머니의 용기에서 삶의 기운이 불끈 불끈 솟는 듯하다.
그리고 마음이 싸아하다.
나는 털실로 만든 아이들을 밀어낸 적은 없는지….
***진짜 과격(?) 엄마***
나 : Where's 예슬?(예슬이 어딨니?)
예슬 : I'm having a bath.(목욕하고 있어요.)
잠시 후
Please give me a towel.(수건 좀 주세요.)
나 : Here you are.(여기)
Did you shampoo your hair?(머리도 감았니?)
머리 감는 걸 싫어하는 예슬, 아니나 다를까
예슬 : No. I didn't.(아니요.)
나 : What? Have you seen scissors?(뭐라고? 가위 어디 있는지 봤어?)
예슬 : Why? (왜요?)
나 : I'll cut off all your hair. Do you want to have a skinhead?(너 빡빡 머리되고 싶어?)
목욕한다면서 머리도 안 감고. 다 깍아 버릴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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