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열등감, 내가 키우는 나무랍니다

착한재벌샘정 2009. 3. 4. 11:31

‘오드리 될뻔.’
학생들이 지어준 별명 중 내가 참 좋아하는 것입니다. 오드리 헵번이 되려다 말았다는 의미지요. 아이들은 왜 나에게 이 별명을 선물로 주었을까요.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 새로 담임을 맡게 된 우리 반 아이들은 자신들이 딱 한 가지는 정말 복 받았다고 생각한대요.
“선생님, 진짜 얼굴이 커요.”
처음 교실에서 만나는 순간 아이들은 겁(?)도 없이 진실을 말해버립니다. 내가 엄청 큰바위 얼굴이거든요. 아직 나보다 얼굴이 큰 아이를 만나지 못했을 정도죠. 담임 옆에만 서면 자신의 얼굴이 주먹만 하게 보이니 얼마나 기쁘겠어요. 정말 복 받은 거죠. 갑자기 담임이 너무 친근해 보이고 자꾸 옆에 서보고 싶어진다나요.

방송 활동을 2년 정도 한 적이 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녹화 날이 되면 우리 반 아이들의 조언은 끝이 없습니다.
“머리를 좀 올려보는 건 어떨까요?”
“녹화 때는 안경을 쓰세요. 큰 걸로요. 그러면 좀 가려져요.”
“카메라 아저씨보고 옆얼굴만 잡아달라고 하세요.” 등등.
그러면 이렇게 대답하죠.
“녹화하다가 카메라감독이 ‘옆에 앉은 분이랑 같이 나오게 하려니 선생님 얼굴이 잘려요, 어쩌죠?’ 그러면 난 이렇게 말해요. 넘쳐나는 내 얼굴을 카메라에 다 담을 수 있어야 진짜 실력 있는 카메라감독이라고요.”

아이들은 그리 큰 얼굴로 어찌 그리 당당하냐고 묻곤 합니다. 그러면 또 이렇게 대답하죠.
“내 얼굴을 잘 봐요. 눈 크죠, 코 크죠, 입도 크죠. 이걸 작은 얼굴에 담았다고 생각해봐요. 눈은 옆으로 넘치고 입도 넘칠 걸요. 내 눈, 코, 입에는 이 얼굴이 딱 맞다니까요. 그런데 왜들 난리인지 정말. 이렇게 예쁜 선생님 봤어요?”
아이들은 배를 잡고 깔깔 웃습니다. 매일 자신을 예쁜 담임이라 이야기하니 자신들도 모르게 세뇌를 당했다는 아이들. 누가 “너희 담임선생님은?”이라고 물으면 자신들도 모르게 “저희 쌤 예쁘죠?”라고 대답하곤 자신들의 입을 쥐어박는다는 아이들. 세뇌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예쁜 것까지는 인정을 해주겠는데 얼굴 크기만큼은 도저히 용서가 안 된다는 아이들. 그래서 오드리가 될 뻔했다 하여 붙여진 별명이 ‘오드리 될뻔’이랍니다.

“선생님, 얼굴 크기로 인한 굴욕, 많으시죠?”
정말이지 나의 얼굴 크기는 아이들의 관심에서 멀어지지가 않네요.
“얼마 전에 옷을 사러 갔어요. 목이 넉넉하게 디자인 된 옷이라며 지퍼 없이 그냥 끼면 된다고 하기에 얼굴을 쑥 밀었죠. 근데 이게 눈 있는 곳까지 내려오더니 끼여서는 아, 그 옷 벗느라…. 상상이 가죠? 결국 판매하는 아가씨의 도움을 받아 억지로 벗었지 뭡니까. 그런데 조금 있다 나보다 별로 얼굴 크기가 작은 것 같지도 않은 아가씨가 그 옷을 입고는 탈의실을 나오는 거예요. 그러자 판매원 아가씨 급 당황하며 한 마디 한다는 게, 저분은 얼굴은 크신데 머리가 작아서, 이러는 거예요. 참나.”
아이들은 안 봐도 비디오라는 말과 함께 책상을 두드리며 한바탕 난리를 치더군요. 아이들의 작은 얼굴에 대한 열망은 대단해요. 현장학습 가서 사진을 찍을 때도 아이들은 두 주먹을 턱 부근에 갖다 대고 찍더군요. 하나같이. 그렇게 하면 얼굴이 작아 보인다나요. 그런 아이들 틈에 큰바위 얼굴의 나는 두 팔 내리고 차렷 자세로 사진을 찍었으니 단체 사진이 아니라 거의 나의 독사진처럼 나왔더군요.

작은 얼굴뿐만 아니라 쌍꺼풀 있는 큰 눈에 대한 열망도 대단해요. 아침마다 쌍꺼풀을 만들기 위해 테이프를 잘라 붙이거나 풀을 바르는 아이들도 있으니까요. 매일 그렇게 하면 언젠가는 정말로 쌍꺼풀이 생길 거라는 희망과 함께.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동화 속 요술 거울은 아니지만 매일 작은 손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조금 더 예뻐지기 위한 주문을 외우고 있는 아이들. 이 아이들이 “야하, 너 참 못생겼구나!”라는 말을 듣는다면 어떨까요.

소설 『나는 못생겼다』(생각의나무)는 그렇게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한 말인 줄 모르고 있는 주인공에게 한 마디 덧붙입니다.
“야하, 너 참 못생겼다구! 쿠쿠. 진짜 너 되게 못생겼다!”
미용실에서 들고 온 잡지책에 나온,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쁘다는 여배우의 사진을 자신의 얼굴 옆에 갖다 대고 비교해보는 주인공 후남이. 그리고 알게 된 사실. 나는 진짜 못생겼구나.
『얼굴 빨개지는 아이』(열린책들)에는 두 아이가 나옵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이 빨개지는 마르슬랭과 끝없이 재채기를 해대는 르네.
세월이 지나도 후남이의 쭉 찢어진 눈과 납작한 코, 커다란 입은 그대로이고, 어른이 된 마르슬랭과 르네도 여전히 이유 없이 얼굴이 빨개지고 쉴 새 없이 재채기를 해대는데도 그들이 행복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후남이는 자신의 이름이 딸만 있는 집에서 남동생을 보라는 이유만으로 지어진 이름이라는 걸 알고, 그 이름 속에 나는 없고 아들에 대한 어른들의 바람만 들어 있다며 억울하다고 펄펄 뛰지만 그 이름도 사랑하게 됩니다.
마르슬랭과 르네는 자신들의 아들들도 얼굴이 빨개지고 재채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잘 이겨낼 거야.”
“그럼, 잘 이겨내겠지.”

후남이도 마르슬랭과 르네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에 행복한 거라 생각해요. 그들은 주변 사람들보다 못생기고 숨기고 싶을 만큼, 외톨이가 될 만큼 힘든 외모로 아파하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곁에 있는 사람의 비슷하거나 혹은 더 큰 상처를 지켜보면서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사랑하게 되었겠지요.
그들을 만나본 아이들은 말합니다. 텔레비전이나 잡지책에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과 같아지고 싶어하는 자신들을 보게 되었다고. 이제는 자신만의 매력을 찾고 싶다고.
오드리 될뻔. 나는 그 별명이 참 좋습니다. 내 얼굴의 크기는 줄어들 수 없겠지만 내 마음의 크기는 얼마든지 커질 수 있으니까요. 여러분도 자신만의 매력 속으로 빠져들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