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전 쯤 우연히 친구의 사촌 동생과 식사를 같이 하고 돌아와 써 놓은 글을 오늘 다시 열어 보았습니다. 언젠가 그날 일을 이야기 할 날이 올 것 같아 정리를 해 두었는데 오늘이 그날이 되었네요.^^
약속 장소에 마주 앉아 마자 아이들 키우는 것이 쉽지 않다고, 아이들에게 고함지르지 않고 키울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는 그 사람에게 아이를 바라보는 눈길조차도 부드럽게 하려 노력하라고 했더니 이러더군요.
“선생님은 아이들을 방치하시는군요.”
그저 미소만 짓고 있는 저를 향하는 목소리가 조금 높아지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아이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면 그렇게는 안 될걸요. 아이가 숙제는 했는지 학습지는 다 풀었는지..... 아이들이 부모가 기대하는 것만큼 잘 하지 못할 때도 있고 그럴 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모라면 아이에게 실망하거나 속이 상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면 고함 소리가 나고 결국은 몇 대 쥐어박게 되고. 그런 거 아닌가요?”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이러는 겁니다.
“솔직히 아이를 잘 키우셨다고 해서, 학교 선생님이고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잘 한다고 사촌 언니가 꼭 한 번 만나보라고 해서.......”
적지 않게 실망을 한 모양이었어요.
“동생이 아이들에게 기대가 커. 그렇다 보니 아이들이.... 아이들이 학교나 친구들 사이에 어떤 일이 생겨도 지네 엄마한테는 이야기를 못하고 가끔 내게 이야기를 하는 거야. 엄마에게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 엄마가 알면 너무 걱정을 하거나 실망을 하기 때문에 못한다고. 동생은 늘 자랑을 하지. 아이들이 너무 잘 해줘서 고맙다고. 다른 건 몰라도 자기가 아이들을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는 알아주는 것이 다행이라고. 그거 모르면 이런 고생하며 뒷바라지 하는 거 너무 기운 빠질 텐데 아이들이 그걸 알아준다고. 며칠 전에 큰 애가 우리 소현이에게 그러대래. 자꾸만 지네 엄마에게 비밀이 늘어가고 있는 게 겁이 난다고. 진짜 자기와 엄마가 알고 기대하는 자기가 너무 달라지고 있는 게 무섭다고. 그러면서 소현이 보고 엄마와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고 엄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하면서 지내는 비결이 뭐냐고 묻더라는 거야. 동생은 내 말은 잘 안 들어. 늘 나보고 아이를 그렇게 방치하다가 후회한다고 도리어 나에게 충고를 하거든. 네가 한 번 만나보면 어떻겠니? 나 보다는 조금 더 공신력이 있지 않을까? 아이도 대학에 보냈고 교사이기도 하고 하니.”
그렇게 만나게 되었지요.
“학습지 뭐뭐 시키셨어요?”
“학습지는 아무 것도...”
“그럼 학원은 어디 보내셨는데요?”
“큰 아이는 고3때 사탐 학원 두 달 다녔고”
“네에? 진짜 아이를 방치하신 거 맞으시네요.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아, 학원 말고 과외 하셨구나. 그렇죠? 그럼 과외를 몇 개나 하신 거예요? 과외비 장난이 아니셨겠다. 좋은 선생님 아시면 저도 소개 좀 시켜 주세요. 큰 애가 이제 5학년인데 6학년 때는 중학교 과정 선행해야 한다면서요? 특히 수학은 꼭 해야 한다고. 참, 작은 애가 6학년이라고 하셨죠? 그럼 지금 하고 있겠네요. 어떤 선생님한테 해요? 몇 명이서 하고 얼마나 하나요? 엄마들로부터 정보를 얻기도 하지만 이런 기회에 조금 더 좋은 걸 얻을 수도 있으니까.....진짜 친하지 않음 이런 거 잘 말해주지도 않아요. 자기들 끼리 속닥속닥 거리고. 언닌 뭘 믿고 그러는 지 중학생인데도 아이들이 하기 싫어한다고 그냥 학교만 보내고 있는 걸요. 친언니가 없고 같은 아파트에 살고 해서 사촌이라도 친동기간처럼 지내는데 조금 먼저 아이 키우면서 도대체 보탬이 안 된다니까요. 중3이면 고등학교 선행을 과학까지 거의 다 한다고 하던데 어쩌려고 하는 지 제가 더 걱정이라니까요.”
“저희 아인 선행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어요. 그런 쪽은 제가 전혀 아는 것이 없어서.....”
“큰 아이 대학 갔다면서요? 어떻게 그게 가능해요?”
그 때 친구가 한 마디 했습니다.
“애가 이렇다니까. 넌 내가 한 이야기는 뭐로 들은 거니?”
“아니, 언니가 대충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솔직히 그냥 하는 이야기겠거니 했지. 언닌 늘 나 보고 너무 유난스럽다고 그러니까. 그냥 나 들으라고 한 소린가 보다 그렇게.... 얼마 전에 미장원에서 아줌마들이 그러대. 사교육 없이 특목고 갔네 명문대 입학했네 하며 인터뷰 하고 신문에 나고 한 애들도 알고 보면 할 건 다 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어떤 선생한테 뭘 얼마주고 배웠는지도 다 아는데 신문에는 책 많이 읽고 학교 공부만 열심히 했다고, 다른 애들은 학원이다 과외다 특목고 준비 따로 하는 거 보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도 합격해서 너무 기쁘다고 적힌 것을 보니 기가 막히더라고. 정말 안면 있는 사람만 아님 신문사에다 전화 해버리고 싶더라고. 그러니 언니 말도 그런 거려니 했지. 진짜 그렇다면.... 우리 언니 말고도 아이를 이렇게까지 방치는 사람이 또 있다는 게 너무 놀라워요. 저는 아이는 부모의 관심과 사랑만큼 자란다고 생각해요. 부모가 얼마나 아이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지는 너무 중요한데....하아~~ 한숨이 다 나오네요. 부모가 최소한 부모의 역할은 다 해야 한다고..... 언니에게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이야기 했는걸 새삼 하려니.... 하긴 언니 절친한 친구라니까 언니와 같을 거고... 제가 이야기 해봐도 소용이 없겠네요. 소현이가 반에서 몇 등 하는지 아세요? 1학기 기말 등수가 12등이래요. 그런데도 저렇게 태평인 거 보면 제가 다 속이 터져요. 저 같으면 숨이 넘어 갔거나 몸 져 누웠을 텐데. 소현이 그것도 그래. 지 엄마가 태평이면 지라도 좀 열심히 하던지.”
“소현이 열심히 하고 있어.”
“열심히 한 성적이 그거.... 아니아니 말을 말자 말어. 언니하고는 도저히 말이 안 통하니까. 고등학교 선생님이라고 하셨죠? 중학교에서 반에서 12등 하면 고등학교 가면 거의 꼴찌 아닌가요? 대학 가기도 어려운 거 아니에요? 우리 언니에게 말 좀 해주세요. 정신이 번쩍 들게.”
그 이야기를 하는 동안 친구는 저를 향해 고개를 살레살레 흔들더군요. 그리고 묵묵히 셋이서 열심히 먹고는 헤어졌습니다. 제 블로그 주소를 적어주면서 기회가 되면 한 번 들러 주십사 부탁을 했었는데 보름이 지난 오늘 문자가 한 통 왔어요. 긴 칼러 문자가.
<아이를 방치했다는 말 죄송해요. 블로그 글이 넘 많아요.ㅜ 열흘째 읽고 있어요. 갑자기 방향을 잃은 것 같아 혼란스럽지만 우선 사과부터 해야겠다 싶어서요.>
예슬이를 기차역에 데려다 주고 돌아오는데 이런 문자가 왔더군요.
어젯밤 11시가 넘어 집에 온 예슬이는 오늘 오후 3시 기차로 서울로 가버렸습니다. 주말에 가족 여행을 가려고 잔뜩 기대하고 있던 저희 부부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어 버렸지 뭡니까? 주말에 봐야할 전시회도 많고 만나야 할 친구들도 많고 가야할 곳도 많다네요. 중간고사가 다가오고 있어 시험 끝날 때까지는 못 온다고. 10월 가족 여행은 물 건너가 버린 것 같아 많이 서운하답니다.
다시 그 이야기로 가서....
메일 주소 알려달라고 해 집에 돌아와 보름 전에 썼던 글을 메일로 보냈습니다. 이 글을 블로그에 올려도 되겠느냐고. 메일 대신 문자가 왔습니다.
<허걱! 저 한테 압박 맞죠? OK! 어쩜 기억력도 좋아요. 그걸 다 글로.... 글고 글 올려도 되느냐 물으심에 더욱 깜짝>
그리고 한 통 더 왔어요.
<아이들 사진 올려주시면 안될까요? 절대 방치 아닌 두 따님 얼굴 보고 싶어요. 제가 힘을 얻을 수 있게>
그 문자보고 혼자 껄껄 웃었습니다. 오늘 점심 먹으면서 제가 아이들 사진을 찍었거든요. 블로그에 올려 자랑하고 싶다면서. 팔불출 또 발동입니다. ㅋㅋㅋ 복고풍으로 멋을 낸 예슬이도 너무 예쁘고 터프걸의 정빈이도 엄청 예뻐 찍지 않을 수가 없었다니까요.
며칠 전에 정빈이가 뜸금 없이 이러는 겁니다. 우리 집 부자냐고. 그래서 아주 부자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증거를 대 보라는 겁니다.
“우리 집에는 아주 큰 보물이, 그것도 두 개나 있거든. 그게 증거야.”
“보물요?”
“응. 진짜 대단한 보물들이지. 건강하고 따뜻한 두 아이가 있거든. 예슬이 정빈이라고. 이 정도면 아주 대단한 부자라고 할 수 있지, 그지?”
정빈이는 이제 부터 우리 집이 부자라는 걸 증거까지 대며 말할 수 있다며 좋아하더군요.
여러분들께도 말씀드리는데 저희 부자 맞아요, 맞다니까요.^^
이러는 절 보면 정빈이가 그럴 겁니다.
"우기시기는!!!!"
(아, 드디어 새로운 거 하나 알아냈습니다.ㅋㅋ 추천하기 버튼 어떻게 다는 지 늘 궁금했었는데 일요일 오전 딴 날과 달리 잠만보 일찍 일어나는 바람에..... 오늘 드디어 맘 먹고 앉아 해 보았습니다. 기념으로 여기 한 번 달아 보았답니다. 모르던 걸 알게 되니 이렇게 기쁠 수가 없어요.ㅋㅋ 혹시 저처럼 궁금하신 분을 위하여 방법 알려주는 주소를!!! http://blog.daum.net/bloggernews/13062447
근데 저는 그곳 설명을 이해하는데 한참 걸렸지 뭡니까.ㅎㅎㅎ )
<10월 4일 영남일보에 인터뷰 기사가 났어요!>
<과학실에 있는 재량수업을 위한 책장 앞에서 찰칵!>
최근 '십대, 지금 이 순간도 삶이다'(랜덤하우스)를 펴낸 이영미 경북여자정보고 교사(45)는 과학선생님이지만 과학수업 못지않게 학생들에게 책 읽기를 권하고, 학생들을 위한 책도 많이 펴내고 있다. 몇 권은 베스트셀러가 될 만큼 인기도서 목록으로 자리잡았다.
'십대, 지금 이 순간도 삶이다'는 22년째 교사로 살아오면서 그동안 학교에서 지도했거나 학교 밖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만난 아이들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다른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내용들을 담았다.
부모의 이혼으로 힘들어하는 학생, 장애학생의 고통, 하기싫은 공부를 해야하는 학생, 외모에 불만인 학생, 친구간의 갈등, 오르지 않는 성적, 진로문제, 이성교제, 청소년기의 반항끼 등 성장하면서 아이들이 느끼는 주제들을 아이들의 목소리로 담아냈다. 아이들의 글에 이어서 이 교사가 직접 쓴 선생님의 편지가 이어진다. 시험을 치를 때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학생들에게 편지를 자주 쓰는 이 교사가 아이들의 글과 어울리는 편지들을 함께 담았다. 학생들이 겪고 있는 갈등에 대해 이 교사가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그 주제와 어울리는 책이나 영화를 같이 소개했다. 학생들의 고민이 자기 혼자만의 고민도 아니고, 이를 슬기롭게 풀어가고 세상을 잘 이해하기 위하는 마음에서다.
이 책은 벌써부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오는 20일 대구시교육청이 초·중·고교 교장들을 대상으로 주최하는 워크숍에 이 교사가 강좌를 할 예정이다. 또 21일에는 불로중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할 계획이며, 전남교육연수원과는 겨울방학 프로그램을 짜고 있다.
책 내용도 탁월하지만 이 교사가 그동안 수업진행이나 학생과의 관계형성 등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교사는 학생들에게 꼭 경어를 쓴다. 목소리도 높이지 않는다. 항상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자기잘못, 과거의 실수를 솔직히 이야기한다. 최대한 학생들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많은 이야기를 들어준다. 첫 중간고사 때는 편지와 함께 빵을 구워 나눠 준다.
"초임 교사시절의 반성입니다. 교사는 옳고, 학생들은 잘못했으니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학생들을 지도했으나 3년이 지나도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게 아니다. 문제는 제게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1987년 교단에 첫발을 내디딘 이 교사는 사명감에 불탔다고 한다. 커닝하거나 수업시간에 떠드는 학생들을 호되게 나무랐다. 심지어 회초리까지 든 일도 있다고 한다. 그러다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됐다고 한다. 바로 '소통부재'. 학생들 마음을 알아야 하는데 그런 노력은 없고 자신의 처지에서만 학생들을 대한 것을 반성했다고 한다. 그 이후 노력한 결과가 지금 이 교사의 모습이다.
이 교사는 저서로 '기다리는 부모가 아이를 변화시킨다' '나에게 행복을 주는 비결' '요리로 만나는 과학교과서' 등이 있으며, 최근에도 '십대, …'와 함께 두 권의 책을 더 펴냈다.
지난해에는 지역교사에게 최고의 영예인 대구시교육상을 수상했으며, 2003년부터는 한국청년연합회 대구지부의 '좋은 친구 만들기' 프로그램을 통해 보호관찰 대상 청소년과 결연을 맺고 멘토가 되어주고 있다. 인터넷에 '모성애결핍증 환자의 아이키우기' 블로그(http://blog.daum.net/rhea84)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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