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열기 속에 하루가 어떻게 가고 있는 지 모를 지경입니다.
다들 건강하시지요?
저는 아직 손이 부실하여 오른손은 엄지와 검지만 사용하여 자판을 치고 있답니다. 생각보다 오래가네요. 그래도 요즘만 같으면 살 것 같습니다. 손톱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불편하다는 것을 절감을 하며 살고 있거든요. 건강하다는 것에 새삼 감사하는 하루하루랍니다.
휴가를 끝내고 다시 서울에 갔던 예슬이가 와서 모처럼 네 식구가 모였습니다. 예전에 제가 신문에 요리칼럼을 쓸 때 전가복을 요리하고 쓴 글이 있었는데 온 가족이 함께 모였을 때 만들어 먹는 음식이라고. 예슬이가 멀리 있으니 전 가족이 모여서 밥을 먹는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더군요. 예슬이는 엄마가 너무 바빠 집에 와도 엄마가 정성들여 만든 밥을 먹을 기회가 별로 없는 것이 큰 불만이라고 합니다. 손이 이러니 더더욱....
그래서 오늘 예슬이가 온다는 문자를 받고 모처럼 장을 잔뜩 보았습니다. 예슬이가 좋아하는 샐러드 재료, 다슬기 국 재료, 연어 데리야끼 재료, 새우 깐소네 재료 등등. 장만 잔뜩 보았지 내일, 모레, 글피까지 꽉 차 있는 강의 일정으로 언제 할 지 걱정이네요. 게다가 남편의 요리에 한 방에 KO패 한 상태거든요. 예슬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수육과 곰국인데 남편이 곰국이라는 비장(?)의 카드를 내놓는 바람에. 지금 이 더위에 찜통 가득 곰국이 끓고 있답니다. 남편의 예슬이 사랑에는 늘 제가 KO패랍니다. 밤잠을 설쳐가며 고아서 내일 아침에 먹이겠지요.
인천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도 그랬어요. 대구로 바로 와서 좀오면 될 것을 진주사는 동생네의 전어가 가을이 아닌 8월이 제철이라는 말에 동생와 함께 진주로 차를 달려 밤 8시가 넘은 시간에 바닷가에서 전어회와 전어 구이를 먹었답니다. 예슬이는 멀리 있어 시간이 안되 전어회를 먹일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면서요. 그날 전어회의 절반은 식성 좋은 정빈이가 먹었지만 늘 이런 상황이고 보니 정빈이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있답니다. 언니로 인하여.
그리하여 결국 며칠 전 밤 대성통곡(?)했지 뭡니까.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하라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싫다며 징징거리기에 뭔가가 있나 보다 싶어 이야기를 꺼냈더니 아니나 다를까 할 말이 어찌나 많던지요.
휴가동안 엄마가 언니 말만 들어주고 자신에게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과 그런 것에 삐치지 않고 시샘하지 않으려 애를 써보지만 되지 않는, 자신의 나약함이 너무 속상하다면서요. 예슬이가 계절 학기를 5학점이나 이수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고 저 또한 휴식, 푸욱~~ 쉬는 휴식이 필요한 상황이라 먼 길 가지 않고 경주에 있는 호텔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기로 했거든요. 남편 회사의 휴양지 중 하나였는데 다행히 저희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바람에 아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었어요. 예슬이는 정말 잠을 푸욱 자고 책이나 만화를 보며 뒹구는 휴식을 취하고 싶다고 해서. 그래도 정빈이는 좋아하는 사격도 하고 보문단지의 오리도 탔건만 수영장도 못가고 놀이기구도 못 타고 노래방도 못가고 등등 언니에 맞춘 휴가로 인해 마음이 많이 상했다는 겁니다.
“그 때 이야기를 하지 그랬어?”
“온 가족이 함께 하는 휴가인데 제가 그런 말을 하면 다른 식구들이 마음이 상할까봐서요.”
“그렇게 마음이 많이 상했어?”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는 거 알아요. 만화도 스무 권이나 빌려가서 실컷 봤고 새벽 2시까지 안자는 것도 해봤고, 식객 드라마도 봤고, 컵라면도 먹어 봤고.... 좋은 것도 무지무지 많았어요. 그렇게 좋은 게 많은데도 자꾸만 속이 상하니까... 어머니나 언니 때문이 아니라 저 때문에 저 스스로에 화가 난 거예요. 강해지고 싶은 데 그게 안 되니까....”
그러면서 그동안 나름 속상했던 이야기를 털어 놓았습니다.
자기가 보기에 언니는 너무 완벽한 것 같다고 공부도 잘하고 키도 크고 사진도 잘 찍고 뭐든 잘하는 게 너무 부럽다고. 그리고 사람들마다 언니가 좋은 대학 갔으니 너도 열심히 좋은 대학가라는 말을 할 때마다 너무 부담되고 속이 상한다고. 그런 언니와 자신을 비교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게 잘 안된다고.
“누구나 자신의 삶이 있는 거야. 이모와 외삼촌, 모두 다섯 명인데 각자 다 다른 삶을 사는 거야. 물론 누군가에 의해 비교되기도 하겠지만 그건 비교하는 그 사람들의 문제라고 생각해. 외삼촌이 의사라고 해서 엄마가 외삼촌이 다보다 더 좋은 직장을 가졌다고, 그래서 속상하고 할까?"
"아니요."
"그렇다고 어머니보다 보다 더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요."
"우리 형제자매 중에도 공부를 많이 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고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어. 사는 아파트의 평수도 다 달라. 그것에 의해 누구는 더 행복하고 누구는 덜 행복하고 그런 것은 아닐 거야. 너도 알다시피 우리 네 자매는 키도 다 달라. 150대에서부터 170대까지. 키 작은 이모가 키 큰 이모보다 덜 행복할까? 자신의 삶을 멋지게 꾸려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 사람은 누구나 잘하는 것이 있는 반면 또 조금 부족하거나 못하는 것도 있어. 그것을 인정해주는 것도 중요하고 그런 것을 뛰어 넘어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자신을 키워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야. 사람들이 너보고 좋은 대학을 가라는 말을 하는 것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어. 하나는 그저 습관처럼 나오는 인사 일 수 있어. 정말 별 뜻없이 하는 인사말. 그 소리를 듣는 아이가 부담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하는 말인데 그건 정말 별 의미 없이 하는 말이라서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그렇지만 그런 말은 조금 생각을 해서 신중하게 해줬으면 하는 게 어머니 바람이지만 말이야. 그리고 또 하나는 너의 능력과 가치를 알기에 그런 기대의 말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거야. 어머니 생각에는 아마도 뒤가 많을 거라 생각해. 넌 정말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수학영재반 선생님이 저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보내는 거 처럼요?”
“바로 그런 거지. 넌 너희 학교 수학 영재반에서도 1등이라며? 그래서 영재반 선생님이 너만 바라보면 수업한다며?”
“그건 맞아요.”
“그 선생님처럼 네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보이니까 너는 참 잘 할 거라는 것을 아니까 그런 기대의 말을 하는 거라는 생각이야. 그런 기대를 아니까 솔직히 좋으니까 시키지 않아도 숙제도 예습까지 늘 척척 해가는 거고. 테솔 준비에도 영어선생님이 너에게 제일 큰 기대를 하고 있다면서?”
“그래도 그 말 들을 때 마다 가슴이 뛴단 말이에요. 못하면 어떻게 해요?”
“못한다고 뭐가 문제가 되는데? 너는 네가 가진 것으로 잘 살텐데 뭘.”
“그치만....”
“언니는 언니의 인생을 사는 거야.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언니의 인생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면 그만이야. 너는 네 인생이 있는 거야.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봐. 만약 네가 가진 능력을 전혀 몰라보고 아무도 너에게 기대를 안 해주면? 그건 어떨 거 같아?”
“비참하겠죠. 자존심 상하고.”
“예전에 어머니 반에 언니 오빠가 넷이나 있는데 모두 서울대를 나왔거니 다니는 아이가 있었어. 그 아이의 부모님은 막내딸이 너무 예쁘고 귀여워 멀리 보내 공부시키지 않고 곁에 두고 싶은 마음에 늘 그러셨대. 너는 서울대 가지 말고 경대 가서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 먹고 학교 다니자고. 그런데 그 아이는 그 말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모른대. 자신이 언니나 오빠처럼 서울대에 갈 능력이 없어서 자기에게는 기대조차도 안하는 거라고.”
“진짜 속상했겠어요, 그 언니.”
“정말 큰 상처를 받았다면서 얼마나 힘들어 했는지 몰라. 그러니까 이제부터 다른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
“별 생각 없이 하는 인사다, 아니면 제 능력을 알고 기대하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라는 말씀이죠?”
“역시 넌 천재야. 처음 딱 낳았을 때 느낌이 왔거든. 아, 내가 천재를 낳았구나, 하고.”
“또 그 소리. 들을 때마다 웃겨요. 표정이 더. 웃기지 좀 마세요, 진짜.”
“웃기다니, 천만에. 진짜였다니까. 어머니가 너를 부를 때 천재 박사, 또 뭐라고 부르지?”
“전국 수석요.”
“어머니가 그렇게 부를 때는 어때? 부담 팍팍 스트레스 왕창이니?”
“아니요. 그저 그러려니 하죠, 뭐.”
“왜 그럴까?”
“그거야 어머니는 저를 잘 알고....”
“바로 그거잖아. 어머니는 네 안에 있는 능력이 보이고 너는 어머니가 그걸 볼 수 있다는 것을 믿으니까 아무렇지 않은 거잖아.”
“그런 건가..... ”
“지난번에 부모 교육 강의를 갔을 때 아이의 별명을 만들어 불러줘라 뭐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너를 전국수석이라 부른다고 하니까 많은 엄마들이 아이가 부담스러워하지 않느냐고 그렇게 부를 때마다 짜증내지 않느냐고 묻는 거야.”
“그래요?”
“그래서 그렇지 않다고 했더니 놀라워하더라고. 아이와 엄마 서로의 믿음이면 가능하다고, 오로지 성적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 아이의 인생에 대한 기대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더군. 언니 때문에 조금은 힘들 거라는 거 알아. 그리고 그건 당연한 거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너 스스로가 강하지 못하다고 자책하거나 할 필요는 없어. 조금씩 자라면서 생각이 넓어지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 단단해지면 사라질 테니까. 커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생각하면 돼. 그리고 사과할게.”
“뭘요?”
“네가 엄마가 언니 말만 들어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나는 안 그런 것 같아도 그랬을 수도 있잖아. 언니는 가끔 오니까 같이 있는 시간에 몰입해서 해주려고. 그리고 이런 이유도 있지 않을까? 언니 대학가고 너 혼자 집에 있다 보니 우리의 관심과 시선이 너에게만 집중되는데 익숙해져서”
“마치 외동딸이 된 것 처럼요?”
“응. 그래서 언니가 오니 뭔가 빼앗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있을 거야.”
고개를 끄덕끄덕이던 정빈이가 이러는 겁니다.
“많이 울어서 눈은 따갑고 잠은 오는데 이렇게 이야기 하니 너무 좋아서 밤 새워 이야기 하고 싶어요.”
“밤새워 하면 되지 뭐.”
“잠을 자서 건강이냐 안 자고 엄마와의 이야기냐가 문제네요.”
“당연 엄마와의 이야기를 선택해야지. 잠은 하루쯤은 늦게까지 자도 되는 거니까.”
“오늘 정말 정말 이야기 많이 할 거예요. 듣다가 지칠지도 몰라요. 난 책임 안 져요.”
“걱정하시 마삼, 아가씨.”
그렇게 새벽이 가까워지도록 정빈이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친구들 이야기에서부터 만화책, 컴퓨터 게임, 친구들과 노래방 가서 부른 노래에 관한 너무나(?) 세세한 이야기까지... 솔직히 나중에는 비몽사몽이 되어서리....
그렇게 긴 이야기를 풀어 놓고 다음 날 점심때가 다 될 때까지 자고 난 정빈이가 제 목을 감으며 한 마디 하더군요.
“엄마 내꺼.”
“음 나도 정빈이가 제일 좋아. 아버지보다 더. 어머니는 정빈이꺼.”
정빈이가 언니때문에 맘 상하지 않고 언니의 인생에 열력한 박수만 보낼 수 있는 날이 곧 올 거라 믿어요. 이렇게 아이는 또 한 뼘쯤 크나 봐요. 그 후 매일 밤 정빈이의 이야기는 밤 늦게까지 이어지고 있답니다. 아, 잠와. 잠만보 엄마 힘듭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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