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입니다. 제가 그동안 많이 바빴습니다.^^
기분 좋은 월요일을 위한 따뜻한 이야기 하나 전할게요.
제가 이 학교에 처음 와 담임을 했을 때 저희 반에 현미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기억하시는 분들 있을 겁니다. 몸이 불편한 아이인데 수학여행을 다녀와 제게 참기름 두 병을 선물로 가져 왔던 아이.
http://blog.daum.net/rhea84/762703 (혹시 모르는 분들을 위해 그 이야기가 있는 글 입이다.)
그 해 겨울방학을 하고 현미는 저에게 참기름 보다 더 큰 선물을 주었습니다. 의젓해지고 생각이 깊어진,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고 준비하는 아이로 자라 있었거든요.
그리고 이 선물을 들고 저희 집에 왔더군요.
현미는 굳어진 손을 위한 재활활동으로 십자수를 배우고 있었는데.... 이 선물을 보는 순간 제 몸이 굳어져 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십자수를 해 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한 땀 한 땀 얼마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 힘든 작업인지. 작은 바늘을 쥐기도 힘든 현미는 수학여행을 다녀 온 다음 날부터 저에게 줄 쿠션을 만들기 시작해 6개월이 넘는 시간과 정성을 들여 이것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예쁜 강아지가 그려져 있는, 제가 해바라기를 좋아하고 노란색을 좋아한다는 것 까지 생각해 만들었다는 아이.
"이거 만드느라 얼마나 힘들었는 지 알아요?"
라며 큰소리를 치며 이 선물을 내밀던 아이.
그리고 졸업을 하고 전문대학교에 진학을 했던 현미였습니다. 그리고 올 2월에 졸업을 했지요.
어떤 일을 하게 될까 궁금했지만 현미 스스로 그 길을 찾아 가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끔 전화와 문자를 주고받기도 하고 학교 근처로 와서 제게 점심을 사 주기도 했어요. 물론 제가 사달라고 했고요. ㅋㅋㅋ
"쌤 뭐 하세요?“
“현미 전화 받고 있지.”
“그런 대답하면 안 되지요. 제가 묻는 건 지금 전화 받고 있는 거 말고 그 전에 뭐 하고 있었느냐, 아이참 진짜 왜 그래요?”
현미와의 전화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요즘 저 뭐하는 줄 아세요?”
“글쎄다.... 우리 공주가 뭘 할까? 모르겠는데.”
“모를 거예요.”
“그럼 말을 해야지 왜 물어?”
“그래도요. 제가 뭐 하게요?”
“또 물어 이 사람이? 얼른 말하시오, 공주. 스승의 날에도 온다고 하더니 안 오고, 어쭈 심하게 튕기시고. 뭐 하느라 그리 바쁘신가요?”
“궁금하죠?”
“응. 무지무지 궁금해. 궁금해서 성질 사나운 선생님 숨 넘어 갈 것 같아. 윽윽, 봐라 넘어간다, 넘어가.”
“엄살떨지 마요. 숨이 넘어가긴 뭐가 넘어가요. 안 넘어 가는 줄 내가 다 아는데.”
“이야, 우리 공주 너무 잘 아는 거 아냐? 그러니까 얼른 말하라고.”
“저 학원 다녀요.”
“학원?”
“네, 학원. 그것도 두 군데나.”
“뭘 배우러 다니는데?”
“편입 시험 준비하고 있어요.”
“편입? 그래? 어디 가려고?”
“계대 중국어과요.”
“우와~~~ 멋지다.”
“근데요 너무 웃겨요. 중국어과 편입하는데 영어 시험쳐요. 그래서 영어 배우러 학원에 다녀요. 중국어 배우러도 다니고요.”
“그렇구나. 그럼 영어로 말 해봐. 영어 배우러 다닌다니 이제부터 현미랑 전화는 영어로 하자.”
“뭐라고요? 영어로요.”
“그래. 영어로.”
“으음..... 음.... 헬로오우~”
“와우, 발음 좋다. 그 다음?”
“그 다음에는..... 근데요 영어학원에서는 말은 안 배우고 문법만 배워요. 중국어로 말할게요.”
“중국어는 선생님이 모르는데?”
“선생님은 중국어 못해요? 못하는 것도 있어요? 에그그그 중국어 공부 좀 해요”
“알았어, 알았어.”
“근데요. 제가 요즘 하루에 5시간 밖에 못자요.”
“5시간? 왜?”
“영어 단어가 얼마나 많은 지... 제가 다른 사람에 비해 잘 못 외우잖아요. 그래서 그거 다 외우느라고.”
그 순간 제 가슴이 울컥하더군요. 뭐라 한 마디 칭찬을 해주고 싶은데 목이 메어서 말이 안 나오는 거예요. 제가 아무 말 안 하고 있자 현미가 전화기 너머로 선생님 선생님을 부르고.... 겨우 한 마디 했습니다.
“응... 말해”
“전화 끊어진 줄 알았잖아요. 근데요 많이 힘들어요. 금방 금방 잊어버려서.”
제 눈에는 눈물이 고여 왔어요. 근사한 칭찬을 해주고 싶었는데 목은 자꾸만 메이고....
“그래.... 우리 현미..... 진짜 대단하다.”
“참나, 대단하긴 뭐가요. 노력 없이 얻어지는 건 하나도 없잖아요. 알면서....”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말은 제가 현미에게 참으로 많이 했었거든요.
“맞아. 노력 없이 얻어지는 건 하나도 없지. 근데 그거 말로는 하면서 제대로 안하는 사람이 많아. 그런데 진짜 노력을 하고 있는 우리 공주가.... 그래서 눈물이 나도록 이쁘고 자랑스러워. 우리 현미 진짜 대단해.”
“다음 주에 바쁘세요?”
“왜? 금요일 출장 빼고는 별 일 없는데?”
“보고 싶어요.”
“선생님도 현미 보고 싶어.”
그래서 목요일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동안 배운 중국어를 어찌나 유창(?)하게 잘 하는 지.... 비록 제가 못 알아들어 맞장구도 못치고 무슨 말인지도 못 알아들었지만 현미의 중국어는 귀가 아닌.... 가슴으로..... 따뜻하게 제 가슴으로 느꼈습니다. 중국어가 참 좋다는 아이. 중국어를 못 하는 저에게 어찌나 뻐기며 우쭐해 하던지요.
이번 주는 현미를 기다리는 설레임만으로도 무지 행복할 것 같습니다.
'학교 아이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근 선물 좋아하는 선생이라는 거 광고하는 거 아니니? (0) | 2008.08.18 |
---|---|
옥세진님께 쓰는 편지 (0) | 2008.08.15 |
이 단원의 학습 목표는 무엇일까요? (0) | 2008.05.26 |
제자에게서 받은 감동의 생일 선물들 (0) | 2008.05.07 |
학생들에게 후리지아를 선물했어요 (0) | 2008.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