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르치는 공통과학에 이런 단원이 있습니다. ‘용액속의 이온은 어떻게 확인할까?’
단원의 제목이 조금 낯설게 느껴지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단원명이 문장이네, 하면서요. 저도 처음 이 교과서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이 단원의 학습 목표 옆에 사진이 한 장 있습니다. 한 꼬마가 강가에 쭈그리고 앉아 떼죽음 당한 물고기를 바라보고 있는 사진입니다. ‘생각해 보기’라는 제목과 함께 공장의 폐수로 인한 피해가 늘고 있는데 공장 폐수 속에 들어 있는 유해한 이온들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두고 있지요. 저는 이 단원의 수업을 하면서 영화 괴물 포스터를 보여주고 한강을 오염시켰던 물질이 무엇이었던 가를 묻습니다. 그리고 그 물질의 이름과 쓰이는 곳을 이야기 하지요. 그러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 포장지와 참치 캔 통조림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방부제가 수업의 작은 주제가 되고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라는 책의 곳곳을 읽어 줍니다. 그리고 광우병에 관해서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저의 수업의 가장 큰 목표를 이야기 합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스스로 생각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많은 자료들과 정보들 중에서 왜곡된 것을 골라 낼 수 있는 지혜, 바르고 옳은 것이 무엇인 지 판단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한 것을, 옳다고 생각한 것을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과자가 몸에 해롭다는 판단도 여러분의 몫입니다. 선생님은 근거를 가진 다양한 정보들을 제시해줄 수 있지만 그것에 대한 판단은 여러분들의 몫이고 용돈을 써가며 과자를 사서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실천으로 옮기는 것도 여러분의 몫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여러분들이 자신의 생각과 판단, 그리고 행동할 수 있는 실천력을 기르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이 단원의 학습 목표는 무엇일까요? 어떤 알 지 못하는 용액에 질산은수용액을 떨어뜨렸더니 흰색 앙금이 만들어지는 것을 통해 알지 못하는 용액 속에 염화이온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면 이 수업의 목표는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용액속의 이온을 어떻게 확인할까를 묻고 있는 단원의 제목에 대한 답을 말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앙금이 만들어 지는 것을 통해 특정 이온을 확인할 수 있다고.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단원은 앙금을 만드는 이온을 달달 외우게 하여 것이 목표가 아니라 아이들이 용액 속에 들어 있는 유해한 이온들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통해 유해한 이온들로 강물을 오염시키는 일이 없도록 감시할 수 있고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잘못되었으니 그렇게 하지 말라는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아이가 그런 일을 하지 않는 건강한 사고와 가치관을 가진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압니다.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한강이 오염되지 않도록 주말에 쓰레기를 줍고 폐수가 흘러드는 지를 감시하는 자원봉사를 하는 것보다 학교시험에서 앙금을 만드는 이온의 이름을 잘 외워서 정답을 찾는 것이 더 절실한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그래서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는 책을 읽으면서 저의 가슴에 낙인처럼 내려앉는 것이 <‘공부’로부터 ‘배움’으로의 전환>이라는 작은 제목이었습니다. 늘 저의 화두이기도 한 것이거든요.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것을 새롭게 배웠습니다. 화들짝 놀라 가슴에 손을 가지고 가는 대목도 많았는데 그 중 하나가 <‘좀 더 큰소리로’ ‘좀 더 확실하게’ 는 교실에서 교사가 아주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확실하고 명석하게 발언해야 한다는 신념에 의문의 여지가 없는 교사는 아이들의 더듬거리는 발언의 훌륭함을 이해할 수 없다 미묘하게 흔들리는 애매모호한 사고나 모순 그리고 갈등을 안고 있는 복잡한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중략) 더듬거리는 말이 다른 아이들의 마음에 깊게 와 닿으며 정확한 설득력을 가진다는 것을 교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교사들은 더듬거리는 말보다는 확실한 말을 요구하고 작은 소리의 발언보다는 큰 목소리의 발언을 요구하며 애매한 표현보다는 명확한 표현을 요구해 버린다.>
이 책의 표현처럼 교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면서도 저도 가끔은 아이들에게 ‘조금 더 큰소리로, 친구들이 다 들을 수 있게 이야기 해 주면 좋겠는데’ 또는 ‘조금 더 정확한 단어로 표현해 보는 것은 어떻까? 를 말하곤 하거든요. 그리고 이 대목에서는 밑줄을 긋다 못해 빨간 별표까지 하게 되더군요.
<재미가 없거나 무의미한 과제에 대해서 흥미를 보이지 않거나 활발하지 못한 아이들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건강하다고 하는 당연한 감각을 우선 교사 자신이 되찾을 필요가 있다.>, <쉬는 시간 아이들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해보기 바란다. 과연 발표력과 표현력이 부족한 아이가 있을까?>
그리고 새로운 교육과정을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학교교육에서의 단원은 ’목표 - 달성 - 평가‘의 단위로 조직되어 왔다. (중략) 앞으로의 학교교육의 단원은 ’주제 - 탐구 - 표현‘을 단위로 하는 ’등산형‘교육과정으로 디자인 할 필요가 있다>
저는 책을 한 권 한권 읽지 않고 서너 권을 많을 때는 대 여섯 권을 동시에 읽을 때가 많은데 한 권을 읽다보면 그것과 관련된 책이나 한 권의 책으로 인해 생각해야 할 것이 생긴 것을 나름 풀기 위해 또 중간에 또 다른 책을 펼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같이 읽은 책 중 하나가 <위험한 마음>입니다.
책에 둘러진 띠에 적힌 글이 보입니까?
<나는 머리가 아프고, 엄마는 가슴이 아프다>
중학교 3학년인 주인공이 담임의 수학시간에 만화책을 보다가 들킨 일에서 시작되는 이 책은 474쪽에서 끝이 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덮고 난 지 며칠이 지났건만 이 책은 지금도 너무나 큰 무게로 제 가슴을 누르고 있답니다. 제 앞에 앉은 선생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오늘도 참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답니다. 우리 아이들과 교사인 우리 자신에 대해. 그리고 이 책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하면서 제 나름 정리가 되면 빌려드린다 약속을 했지요.
아들이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아빠 아들이 장차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느냐고. 아이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부모는 당연히 자식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기를 바라지. 하지만 마음이 무척 복잡하단다.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윽박지르면서도 너희들이 지금 즐겁지 않으면 어쩌나 두렵고, 공부하라고 재촉하지 않으면 장차 너희들에게 미안한 일이 되지 않을까 두렵고."
제가 예슬이를 키우면서 가장 많이 고민하고 갈등했던 것이 그곳에 문장으로 터억하니 있는 것을 보니 가슴이 먹먹하더군요. 사람들은 저에게 말합니다. 엄마가 중심을 잘 잡는다고. 오늘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나는 큰 행사가 있었습니다. 인사가 예슬이 대학 입학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따라오는 말이 ‘다들 신문에 나야하는 거 아닌가 하는 이야기 많이 해요. 비결 쫌....’ 제가 어정쩡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랬습니다. ‘우리 아이 공부 잘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으니 그런 말을 할만도....’ 제가 심하게 꼬인 거 다 표 나죠?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 볼 수 있다는 마음에 들떠서 간 자리였는데 20분 정도 있다가 슬쩍 행사장을 빠져 나와 집으로 와 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슬이에게 많이 미안했습니다. 현실이 그렇기는 하다지만 예슬이의 지나온 세월은 모두 소중한데.... 순간순간 예슬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열심히 살아 왔는데 그 시간들에게 대한 평가는 없고 오로지 대학만으로....
‘공부 못한다더니 어떻게....’라는 말에 초등학교 때 예슬이의 말이 생각나더군요.
“명절에 가면 친척들은 왜 늘 몇 등하느냐고만 물어요? 나는 공부 말고 잘하는 것이 참 많은데.... 바느질도 잘하고 장구도 잘 치고 노래도 잘하고 만화도 잘 그리고 쿠키도 잘 굽고... 그런데 왜 그런 건 하나도 관심을 안 가져줘요?”
제가 고민이 없고 흔들리지 않았을까요? 저도 책속의 아버지와 똑같은 고민과 갈등하면서 왔고 아이의 지금이 조금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힘든 선택을 하면서 왔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랍니다. 그리고 제 선택은 여전하여 정빈이도 그렇게 지켜보고 있는 중이고요.
그리고 제가 보호관찰 청소년들의 멘토를 하면서 학교를 떠나온 아이들을 많이 만나서인지 이 책에서 나오는 자퇴한 아이들의 이야기도 많은 부분에서 공감이 되더군요.
저 스스로가 학생이었고 교사의 길을 걷고 있으며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입장에서 이 책은 일주일 내내 제 손에 잡혀 있고도 모자라 제 가슴을 누르고 있습니다.
이 책이 6년이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글을 읽고 기운이 좌악 빠지는 것을 느낀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변화에 대한 기대를 하고 있지만 아직도 여전히 이 상황이 진행형이라는 의미일 테니까요. 하지만 분명 희망은 있을 겁니다. 제가 많은 학교와 교육청으로 강의를 가는데 그곳에서 만나는 많은 선생님들에게서 희망을 보거든요.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서도요.
올해 저와 같이 가고 있은 아이들은 조금 더 이쁘답니다. 저에게 조금 더 천천히 가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소중한 아이들이에요. 그 아이들과 조금 더 천천히 가는 지금이 힘들 때도 있지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또 더 많은 감동을 느낄 수 있어 고맙고 소중한 시간들입니다.
5월 한 달 내내 생각이 많았습니다. 1차 지필고사(중간고사를 지금은 이렇게 말한답니다)를 친 뒤 제 옆에 앉은 선생님의 반 아이들이 ‘과학 선생님이 저희들에게 너무 기대하고 저희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고 말하더라는 것을 전해 듣고 제게 무엇이 문제일까를 탐색하고 있는 과정이거든요. 아이들에게 칭찬과 기대를 표현했는데 그것이 부담으로 전해졌다면 분명 제게 문제가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함께 읽은 책이 <칭찬과 꾸중의 힘>입니다.
제가 혹여 아이들을 칭찬하는 것에서 잘못 된 것은 없었나, 칭찬과 꾸중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데 조금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에서요. 초등학생 이하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제 상담 사례의 책인데 칭찬도 너무 갑자기 한꺼번에 받으면 당황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너무 열심히 해주니까 그저 고마운 마음에 기특한 마음에 자꾸만 칭찬을 해주었는데... 제 흥에 너무 겨웠을까요? 아이들은 그 칭찬에 부응을 하지 못할까봐 불안해 할 수도 있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이래서 책은 참 고마운 것이에요. 제가 또 눈높이를 못 맞춘 거지요. 아, 한 20년 넘게 했으니 어떤 아이들을 만나도 그저 그저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착각이고 욕심이었나 봐요. 아이들과 걸음을 맞추면서 칭찬도 조금 더 천천히 아이들이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답니다. 늘 공부하고 있지만 늘 부족한 것이 많은 것을 느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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