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을 손꼽아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다. 추석에 받은 양말로 그 해 겨울을 나던 시절이. 하지만 이제는 선물을 받기 보다는 이리 저리 챙겨할 곳이 많아진 나이. 고마운 분들 챙겨 주고 싶은 사람이 많은 걸 보니 저절로 나오는 말. ‘난 참 복도 많아.’
마음을 담아 드리는 것이니 무엇인 들 어떠랴 싶지만 막상 내가 받고 보면 이건 참 요긴한 거, 이건 좀….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다 피식, 씁쓸한 웃음을 짓게 된다. 어쩌다 이렇게 이해타산을 따지게 되었는지, ‘선물’이라는 그 자체만으로 마냥 즐겁고 행복하던 시절은 어디로 가버렸나, 싶은 것이. 주는 마음이 즐겁고 받아 행복하기만 하면 좋으련만 난 이미 너무 속물이 되어 버린 모양이다.
요즘 많이 오가는 선물 중 하나인 ‘햄 선물 세트’.
“냉장 보관해야 하고 유통기간도 짧은 걸 여러 개 한꺼번에 세트로 만들어 파는 이유는 뭐야? 그리고 이걸 선물로 사는 사람도 참 생각도 없지. 분명 살림 안 사는 남자가 고른 걸 거야. 이걸 유통 기한 내에 다 먹으려면 거의 매일을 햄과 소시지만 먹어야겠네. 차라리 캔에 들어 두고 두고 먹을 수 있는 거라도 주지.”
이러며 투덜거리는 나를 본 사람이 있다면 유명 연극배우를 흉내 내며 혀를 찰 것이다. ‘이러어언~ 싸가지.’
햄을 본 순간 떠올린 부대찌개. 부대찌개를 ‘퓨전 요리’의 시작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고추장과 햄의 어울리지 않을 듯한, 그러나 매력적인 조화의 맛으로. 많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우리네 세상, 부대찌게처럼 멋진 퓨전을 만들 수 있다면 조금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부대찌개를 먹으며 뒤늦게 깨달았다. 그분은 ‘나누는 마음’을 선물하셨던 게다. 유통기간 안에 다 먹으려 욕심내지 말고 작은 것이지만 나눠 먹으라는 그 깊은 뜻을 담아 주셨던 것이다. 이럴 땐 인사도 퓨전으로. “땡큡니다요!” 근데 이걸 퓨전인사라 할 수 있나?
◇재료=햄 200g, 비엔나소시지 15개, 가래떡 100g, 통조림 콩 150g, 신 김치 150g, 양배추 200g, 양파 1개, 풋고추 1개, 붉은 고추 1개, 팽이버섯 1봉지, 콩나물 60g, 두부 ½모, 대파 1대, 쑥갓 조금, 육수 3컵, 후추가루 약간, 양념장(고춧가루 2큰술, 고추장 2큰술, 다진 마늘 1큰술, 간장 1큰술, 육수 2큰술)
◇만들기=①햄, 양파는 5㎝ 길이로 길쭉하게 썰고 비엔나소시지에는 칼집을 넣는다.
②양배추는 사방 5㎝ 정도로 넓적하게 썰고 팽이버섯도 밑 둥을 잘라 준비한다.
③고추와 파는 어슷하게 썬다.
④준비된 재료로 양념장을 만든다.
⑤전골냄비에 햄, 소시지, 가래떡, 콩, 김치, 양파, 양배추, 팽이버섯을 돌려가며 넣고 육수를 부은 후 양념장을 얹어 끓인다.
⑥한소끔 끓은 뒤 두부와 콩나물, 파, 고추를 얹고 한 번 더 끓이다가 쑥갓과 후추 가루를 넣는다. 이 때 싱거우면 소금으로 간을 한다. 라면이나 스파게티 국수사리를 넣어먹어도 좋고 아이들과 함께 먹을 때는 마지막 끓일 때 치즈를 한 장 넣는 것도 별미.
2004년 10월 5일 매일신문 요리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