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5일 학교로 온 편지 한통.
보낸 사람의 주소가 ‘남인천 우체국 사서함 343-****’이었다.
인천? 인천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없는데?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인데?
그리고 떠오른 생각은 ‘방송국’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사서함을 쓰는 곳은 방송국이 가장 익숙하니까. 한 때 방송 프로그램에, 특히 라디오 프로에 편지 쓰는 재미로 살았던 적이 있었기에. 내가 쓴 글이 방송을 통해 읽혀지기도 하고 덤으로 받는 선물도 만만치 않아 남편까지 가세를 했을 정도였다.
전자 피아노에 29인치 텔레비전, 심지어 주방 칼까지 집안 구석구석 방송국으로부터 날아온 선물들이 적지 않게 보이지만 이제는 그것도 추억 속의 일이 되었다.
사서함?
내게 있어 사서함 몇 호는 ‘편지 보내실 곳’이었는데 보낸 사람의 주소가 사서함이라니? 도대체 누구지?
이상하게 선뜻 열어보지 못했던 그 편지.
편지의 주소지는 너무나 뜻밖에도 ‘인천 구치소’였다.
그 즈음 내가 쓴 책에 관한 기사를 신문을 통해 읽고 학교 주소로 보내온 편지. 편지를 쓴 사람은 삼십대 초반의 전문 일식 요리사라고 했다. 일본에 가서 공부를 하고 온 뒤 퓨전 일식집을 여는 준비를 하는 동안 불의 사고로 구치소에 있게 되었다는 사연. ‘요리와 과학의 접목’이라는 주제에 눈길이 끌려 편지를 보냈다며 나의 책으로 인해 자신이 다시 사회에 나왔을 때 어떤 일을 해야 할 지에 대한 계획이 생겨 큰 용기와 희망이 생겼다고 적혀있어 나를 감동시켰었다. 나는 그에게 사인을 하지 않은 책을 선물로 보냈다. 나중에 사회에서 만날 이유를 남겨두기 위해.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편지가 오고가면서 작가와 독자에서 친구로, 이제는 나의 ‘요리 스승’이 되어 주었다.
여름에 시원하게 온 가족이 즐기라며 메밀국수 요리법을 적어 보내더니 이번에는 퓨전 일식에 많이 사용된다는 드레싱 만드는 법을 선물로 보내왔다. 나중에 사회에 나오면 나와 내 가족을 위해 꼭 직접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불량(?) 제자인 나는 스승님의 요리법에 내가 좋아하는 파슬리 가루를 넣어 보았다.
‘스승님, 제가요 뭐든 시키는 일을 그대로는 못하는 성미거든요. 부디 용서하소서.’
◇재료= 양상추 200g, 브로콜리 30g, 양파 ½개, 당근 5㎝, 방울토마토 15개, 무순, 그 외 좋아하는 야채나 과일, 드레싱 소스(올리브유 4큰술, 식초 2큰술, 미림 2큰술, 간장 2큰술, 설탕 2큰술, 파슬리 가루 1큰술, 핫소스 ½큰술, 당근3㎝, 사과 ¼개, 양파 ¼개)
◇만들기=①양파는 채 썬 뒤 물에 담가 매운 맛을 빼준다.
②브로콜리는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물기를 빼준다.
③당근은 모양 칼로 꽃모양을 만든 뒤 얇게 썬다.
④드레싱 소스 재료 중 당근, 사과, 양파를 간 뒤 나머지 재료들과 섞어준다.
⑤준비한 야채와 과일을 냉동실에 넣어 차게 한 그릇에 담아 드레싱과 함께 낸다. 참치 회나 날치 알과도 잘 어울린단다.
2004년 8월 10일 매일신문 요리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