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핸드볼 결승보며 훌라후프하다 저 녹초가 되었습니다.ㅎㅎ
가요를 좋아하는 지라 핸드볼 결승전 앞에 방송되었던
가요 프로부터 보기 시작했었거든요.
핸드볼 선수들에게는 턱없겠지만 정말 힘들었다니까요.
아쉬운 마음이야 어찌 말로 다 하겠습니까만은 참 열심히 잘 한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오늘의 글 제목은 <책나무 9월호>에 실린 글의 제목입니다.
참고로 사진을 먼저 보여드릴게요.
아래 글에 '파란 플라스틱 통에 가득한 자두'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자료(?)사진입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니 엄청난 양이었답니다.
8월의 마지막 잘 마무리하시고 좋은 9월 맞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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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제 배 좀 보세요. 마치 임신 한 것 같아요.”
“뭐? 그 정도야?”
요즘 들어 부쩍 성(性)에 관해 관심을 나타내는 아이는 많이 먹어 부른 배도 임산부의 배와 비슷하다고 표현한다. 짝꿍 남자아이가 귀여워 보이는 걸 보니 자신이 어른이 되어 가는 것 같다는 아이.
“그렇다니까요. 이것 좀 보세요. 너무 먹어 배가 막 아프려고 해요.”
“뭐 하러 그렇게까지, 배가 아프도록 먹어.”
“국수를 제가 다 먹으려 억지로 먹었더니…그래도 다는 못 먹었어요. 국물도 못 먹었고요.”
성장한다는 것이 남자아이들이 귀여워 보이는 것만이 아닌 ‘나 아닌 타인’에 대한 넉넉한 마음을 가지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이는 언제쯤 알게 될까?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아닌 타인도 함께 생각하는 이타적인 마음을.
모처럼 정빈이와 둘 만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 갑자기 짬뽕이 먹고 싶다고 졸라댔다. 자장면이 낫지 않느냐고 해도 자기는 매운 짬뽕이 먹고 싶단다. 짬뽕 하나만 시키려고 하니 배가 많이 고파 다 먹을 거니까 엄마 먹을 것도 따로 시키라고 고집을 부려 짬뽕과 자장면을 시켰는데 아이는 한 젓가락 먹어보려는 내게 참 매정하게도 한 마디 한다.
“어머니는 자장면 드시면 되잖아요. 짬뽕은 제거예요.”
그래도 몇 젓가락 먹는 엄마가 못마땅한 모양인 지 인상을 찡그렸지만 예전처럼은 아니었다.
작년 ‘홍시 사건(?)’ 전이었다면 아이는 이랬을 것이다.
“어머니 그만 좀 먹으세요. 어머니가 자꾸 먹으면 제가 먹을 것이 줄어들잖아요. 제 것을 어머니가 왜 먹어요?”
하면서 그릇을 손으로 가리거나, 아님 돌아앉아 먹거나 아예 그릇을 들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을 텐데.
그러면서도 그것을 다 먹을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못하다. 양이 워낙 적은 아이이다 보니 결국은 반도 먹지 못하고 남기면서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먹는 것에는 인색하게 굴던 아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자기 것이니 다 먹겠다며 배가 아프도록 먹었다는 저 욕심을 어찌 할까?
정빈이가 가장 좋아하는 홍시.
그러다 보니 감으로 유명한 고장인 청도까지 홍시를 사러 가곤 했는데 바쁘다 보니 집에 홍시가 떨어지게 되었고 친정에 다니러 간 길에 여섯 개를 얻어 왔었다.
집에 오자마자 정빈이 두 개를 먹었고 그 다음 날 아침 정빈이가 또 두 개를, 예슬이가 한 개 먹고 마지막 남은 하나를 출근 직전에 내가 먹었었다. 그런데 그 날 오후 휴대폰으로 전화 한 정빈이는 무척 화가 나 있었다.
"어머니, 왜 홍시가 하나도 없어요? 홍시 먹으려고 달려 왔는데 홍시가 하나도 없어요. 어떻게 했어요?"
"홍시 없어. 다 먹었어."
"그런 게 어딨어요? 어제 할머니께 많이 달라고 했단 말이에요."
"그래. 여섯 개 얻어 왔잖아."
"저는 네 개밖에 안 먹었어요. 어제 밤에 두 개, 아침에 두 개."
"언니도 먹었잖아."
"언니는 한 개 먹었어요. 그러니까 한 개가 남아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어머니가 먹었어."
"왜 먹었어요? 제가 먹으려고 했는데. 난 몰라요."
하면서 으앙,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왜 먹었냐니? 당연히 먹고 싶으니까 먹었지."
"그런 게 어딨어요? 제가 먹으려고 했는데. 저 지금 홍시 너무너무 먹고 싶단 말이에요?"
"니 입만 입이니? 어머니 입도 입이야. 어머니도 먹고 싶었어. 그래서 먹었는데 뭐가 잘못 됐니? 너는 네 개나 먹었잖아."
"그래도 지금 홍시 먹고 싶단 말이에요. 왜 먹었어요?"
"말했잖아. 어머니가 먹고 싶어서 먹었다고. 어머니 입도 입이라는 말을 또 해야 돼? 너만 먹고 싶은 거 아니야. 어머니도 먹고 싶어. 나도 너처럼 네 개 먹고 싶었는데 달랑 하나 밖에 안 남아 있어서 하나만 먹고 참았어. 어머니도 더 있으면 더 먹고 싶어."
"그래도 남겨둬야지요? 제가 먹을 게 없잖아요!"
"어머니는 먹고 싶은 걸 꾹 참고 너 먹으라고 줘야된단 말이야? 어머니는 그렇게 못해. 나도 먹고 싶었으니까. 너는 어머니 위해서 먹고 싶은 거 참고 나 주는 일 잘 없잖아. 너 먹다가 남겨놓은 거 먹으라고 할 때가 대부분이지."
"그래도 저는 지금 홍시가 너무 먹고 싶단 말이에요. 어머니가 먹지 않았으면 지금 먹을 수 있잖아요. 어머니 나빠. 정말정말 나빠!"
"나쁘기는 뭐가 나빠. 어머니 먹고 싶은 거 참아가며 너 먹으라고 남겨둬야 착한 엄마야? 그런 거라면 어머니에게 기대하지 마.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어 머니 입도 입이야. 맛있는 거 알고 먹고 싶은 거 많은 것은 너랑 똑같애."
"몰라요. 어머니 나빠!"
아이는 울면서 전화를 끊었고 나의 마음도 편치는 않았다. 착잡한 마음을 친구에게 털어놓았더니 친구는 무척 흥분하며 나를 몰아 세웠다.
"넌 역시 계모야.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그럴 수 있니? 내 입에 들어가는 것 보다 아이 입에 들어가는 거 보는 게 더 즐거운 게 엄마들 마음인데 어찌 그리 모지냐? 니 입도 입이라고? 어이구, 그 입 한 번 대단하시네. 그래, 그 홍시 맛있든? 잘 넘어 가든? 아이가 건강하면 말도 안 해. 게다가 뭐든 잘 먹는 아이 같으면 또 몰라. 지 입에 들어갔던 것도 빼줘야 할 판국에 뭐 엄마 입도 입이라고?"
선천적인 심장과 혈관의 기형으로 한 쪽 폐가 거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아이인지라 우는 것이 몸에 좋지 않다는 의사 선생님의 부탁이 있었는데도 별거 아닌 홍시 하나 때문에 아이를 이렇게 울려야 하나 하는 생각, 크면서 철들고 하면 바뀔 텐데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 지금이라도 전화를 해 홍시 사 가지고 가겠다고 달래야 하나 하는 갈등으로 힘든 마음을 누가 알까, 하는 생각에 그 친구마저 야속했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달래지도 않았고 홍시를 사 가지도 않았었다.
이것이 긴 ‘홍시 사건’의 전모이다.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아이에게 나눔의 기쁨과 의미, 음식이라는 것이 혼자 먹을 때 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먹는 것이 더 가치 있고 그로 인해 함께 더 행복해 질 수 있는 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려 선택한 책. 그날 이후 우리 집에서 가장 많이 읽혀지는 책 중하나이다.
지나 간 여름 남편은 아이가 홍시 다음으로 좋아하는 자두를 사기 위해 시골의 과수원을 직접 찾아다녔었다. 가끔 아홉 살 정빈이가 들어가 목욕을 하기도 하는, 우리 집의 가장 큰 플라스틱 통에 옮겨 담고도 남을 만큼의 엄청난 양을 사 가지고 온 남편. 정말 산더미 같이 쌓인 자두를 보며
“이러니 꼭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의 한 페이지 같다, 그지? 정빈이가 보면 좋아할 거야. 그 책 이야기 또 한 번하면서 윗집 아래 집 옆집에 두루 두루 나누어 먹자.”
아이의 손을 잡고 친구들에게 옆집 할머니에게 경비 아저씨에게 두루 두루 나누어주었고 마침 일본에서 오신 손님들에게도 나누어주며 그림책 속의 ‘나눔의 기쁨’을 경험하게 해주려 했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변화가 참으로 느리기에 한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새삼 가르쳐 주듯 정빈이의 변화는 느리기만 하다. 그렇게 나누어주고도 김치 냉장고 야채실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자두이건만 아이는 그릇에 담아오는 자두를 세고 그 속에 자신의 몫을 정확하게 차지하려고 했다.
“몇 개에요?”
“궁금하면 네가 세려 봐.”
“하나, 둘 … 여덟, 아홉. 그러면…. 이렇게 가지고 오면 어떡해요?”
“왜?”
“둘로 나누니까 안되잖아요. 어머니 네 개 저 네 개하고 나니까 한 개가 남잖아요.”
“그래서?”
“그럼 제가 다섯 개 먹어도 되요? 제가 먹을 거니까 어머니는 네 개만 먹으세요, 알았죠?”
먹는 속도가 훨씬 빠른 내가 네 개를 다 먹을 동안 두 개도 못 먹은 아이. 급기야 손이 달싹달싹 한다. 엄마가 더 이상 먹지 않도록 그릇의 뚜껑을 덮고 싶지만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갈등하던 아이.
그렇게 갈등하며 손을 달싹이는 아이를 보며 고마운 것은 조금씩조금씩, 느리기는 하지만 분명 변화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 것을 다른 사람들과 기쁜 마음으로 나눌 수 있는 넉넉한, 손 큰 할머니의 그 넉넉함이 아이의 마음에 많이많이 자리하기를 기도하며 기다린다.
결국은 다 먹지 못할 짬뽕이면서 엄마에게 몇 젓가락 주는 것을 아까워하는 아이가 언젠가는 기꺼이 덜어줄 아이가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번 가을에 작년의 ‘홍시 사건’과 같은 일이 생긴다면 정빈이는 어떤 말과 행동을 보일까 궁금하다. 호기심 많은 엄마가 그냥 넘어갈리 만무하다. 6개의 감으로 다시 한 번 ‘제2의 홍시 사건’을 일으킬 음모(?)를 계획 중이다.
▣ <손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는 어떤 책일까?
책표지만으로도 충분히 정겨운 책이다. 입가가 쑤욱 당겨져 올라가고 눈가에 주름이 잡히도록 웃고 있는 넉넉한 몸집의 할머니와 호랑이, 뱀, 여우 등의 동물들도 즐거워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으로 할머니 곁을 걷고 있는 그림.
이 책을 읽다보면 아이들과 만두를 만들고 싶어진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두런두런 옛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책 속의 만두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 집 가장 큰 냄비에 겨우 들어갈 만한 큰 만두를 만들고 싶은 억누를 수 없는 충동을 느끼는 나는 아직 철이 덜든 것일까?
할머니가 만두 빚을 준비를 하는 동안 부엌 문턱에 모인 동물들의 기대에 찬 표정, 함께 만두를 빚는 동물들이 익살스러운 표정을 보면서 내 아이의 얼굴이 겹친다. 헛간 지붕으로 쓰는 커다란 함지박보고 놀라는 모습, 만두를 빚으며 장난치는 모습 등등에서도. 함께 만두 빚으러 오라는 말에 아이들을 따라 오는 엄마 아빠의 게슴츠레한 눈과 하품하는 모습에서는 푸하하, 폭소를 터트리지 않을 수 없다.
엄청난 만두소를 보고 한 달은 더 걸리겠다며 놀라는 동물들에게 ‘나 혼자해도 하루아침에 다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할머니, 졸고 있는 다람쥐에게 저 멀리 나무 위에서 망원경으로 지켜보며 ‘만두소에 코 박겠다’며 호령하시는 할머니. 하지만 할머니의 입은 늘 웃고 있어 정겹기만 하고 달려가 안기고 싶을 정도이다. 어릴 적 나를 등에 업어주시던 내 할머니 같아 괜시리 눈가가 촉촉해지고 나도 나중에 늙으면 저런 할머니가 되어야지 저절로 다짐하게 만들어 주는 할머니의 매력이의 비밀은 바로 넉넉한 그 마음리라.
함께 나누어 먹을 것에 대한 행복에 찬 기대가 느껴지는 한 마디.
‘만두 빚는 일은 재미있습니다.’
나도 정빈이도 남과 함께 하는 일이 재미있고 즐거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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