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꼭 한 달 만에 칼럼에서 인사를 드립니다.

착한재벌샘정 2004. 9. 29. 21:07

모두들 잘 지내셨는지요? 추석도 잘 보내시고요?

저는 그동안 건강이 많이 좋지 않았습니다. 여름방학 시작과 함께 머리가 아프다던 것이 별 차도가 없다보니 많이 힘들었어요. 개학을 하고는 학교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 하다보니 자연히 일을 줄이게 되었고 칼럼에 글을 올리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밤을 새워가면서 칼럼에 글을 올리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럴만한 기운도 없었고 간혹 그런 마음이 생기다가도 다음 날 수업에 지장을 주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자신이 없어서 마음을 접곤 했었지요. 다행이 수업만큼은 열심히 할 수 있기에 그마나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한 달 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늘 그렇듯 때가 있는 법! 그 때가 지나면 많이 퇴색되어 버리는지라 대부분 제 기억 속에 묻어야 할 일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소식을 전하니 이야기가 참 많을 것 같습니다. 시간 나실 때 한두 개 씩 읽으시라고 이야기를 나누어 쓸게요. 

 

<이야기 하나>

지난 9월 14일, 교육과학연구원에서 학교상담자원봉사자들의 보수 교육에 강사로 갔었습니다. 강의를 들으러 오시는 분들이 학교에서 자원봉사로 학생 상담을 하시는 분들이라 기꺼이 강연을 하겠다고 했지만 그 준비부터 제게는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습니다. 독서 치료의 실제에 관한 주제였기에 저희 탁이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는 시댁에서 추석을 보낸 늦은 밤 - 이제 추석 다음날 새벽이 되었습니다 - 에 이글을 쓰고 있는 중입니다.(인터넷이 안 되는 곳이라 집에 돌아가서 글을 올리게 되겠지요) 20년도 더 된(82년 산) 돌아가신 아버님이 즐겨들으시던 카세트플레이어로 세븐의 문신이라는 노래를 듣고 있습니다.

 

                   0928-1

 

 

‘넌 마치 문신처럼 내안의 분신처럼’이란 노랫말.

지금 제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문화 혜택이 라디오랍니다. 테이프는 남편 차에 있는 것을 가져와 듣고 있는 중입니다.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산골이라 라디오는 거의 잡히지 않아 테이프만 늘어지도록 듣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는 수 십 번 계속 듣는 지라 질리는 줄 모르고 듣고 있는 중입니다.

 

할머니 주무시니 작은 소리로 들으라는 정빈이의 부탁이 있어 작은 소리로 듣고 있습니다. 외할머니 손에 자랐고 양가에 모두 어른들이 계셔서 그런지 이런 것은 가르치지 않아도 알아서 생각하는 것을 보면 어른들이 계심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답니다. 이런, 첫 이야기부터 옆길로 샜군요.

 

‘실제’라는 강의 주제에 맞게 아이와의 실제 독서 활동을 했던 모습들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틀어보며 필요한 부분들을 군데군데 잘라 편집을 하면서 화면 속 보이는 아이 모습에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요.

강의실 한 벽면 가득한 대형 화면에 나타난 아이의 얼굴과 목소리를 듣는 것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자료를 선택한 것은 바로 저희 아이가 세상에 왔던 이유를 한 번 더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서였습니다. 그리고 책이 얼마나 많이 사람을 변하게 하는 지도.

그곳에 오셨던 많은 분들이 저희 아이의 모습에서 마음속에 있던 ‘범죄 청소년’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는 말씀을 해주셨을 때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아마 그 분들도 학교에서나 사회에서 보호 관찰을 받고 있는 학생들을 만나게 되면 조금은 달라진 마음으로 대해주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추석이라 아이 생각이 많이 납니다. 절에서 알아서 챙겨주겠지만....

지난 일요일 시댁이 대구인 디자인하우스 편집장이 대구에 온 김에 얼굴이라도 보고 싶다기에 같이 아이가 있는 절에 다녀왔어요. 저의 원고를 퇴짜 놓은 것이 인연이 되어 언니 동생하면서 지내는 그 친구는 저희 아이를 만나 본 사람 중의 한사람이라 흔쾌히 같이 동행해주었어요. 아이의 사진을 가슴에 꼬옥 안아주고는 내려왔습니다.

오랜만에 글을 올리면서 마음 아픈 이야기부터 하게 되었네요. 여기서 끝낼게요.

 

<이야기 둘>

예슬이는 요즘 인형에 푸욱 빠져있습니다.

지난 25일이 예슬이의 생일이었는데 이제까지 모아둔 돈으로 인형을 사도되느냐고 어찌나 졸래대는 지 정말 졸려 죽는 줄 알았습니다. 자기의 용돈으로 산다는데 왜 허락을 안 해주느냐고 엄마와 자기는 가치가 다르니 엄마의 가치 기준으로만 판단하지 말라면서요. 게다가 중고로 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얼마 전에도 중고로 인형을 2개나 샀었기에 허락을 해야하나를 두고 갈등을 많이 했지만 결국 허락을 했습니다. 먼저 산 인형 중 여자 인형은 정빈이에게 선물하기로 하고요. 물론 정빈이는 입이 귀에 가서 걸렸고 예슬이는 그 인형도 순전히 자기 힘으로 산 것이라며 펄펄 뛰었고요.

 

                     0928-10 


동생에게 물려주기로 한 인형입니다. 인형이 입고 있는 옷을 예슬이가 직접 만들었답니다. 솜씨가 대단하답니다. 입이 딱 벌어질만큼요. 제가 팔불출인거 아시죠?

하지만 새로 인형을 살 때의 조건으로 바느질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라고 했습니다. 바느질이 정말 너무 고된 중노동인 것을 알기에. 예슬이가 저를 꼭 닮은 것 중 하나가 엄청 엉덩이가 무겁다는 겁니다. 인형 옷을 만들겠다고 한 번 들고 앉으면 보통 그 일이 끝나야 엉덩이를 떼거든요.

 

제가 퀼트 한 작품에 걸리는 시간을 알고 있는 것이 하루에 조금씩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들고 앉으면 완성을 해야만 일어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거든요. 키홀더 같은 작은 소품은 3~4시간, 어깨에 메는 작은 가방은 9시간, 노트북 가방은 3일정도 등등.

 

남편을 만났던 스물 살 즈음 남편 생일 선물로 줄 스웨터를 뜨느라 며칠을 하루 평균 17시간씩 앉아 있었던 적도 있었답니다. 17시간은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며칠을 지켜보시더니 말씀해주신 시간이었어요. 그러면서 절보고 어찌 그리 엉덩이가 무거우냐고, 그 선물 받을 총각이 그렇게 좋으냐고 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겨울 방학 시작하자마자 잠자고 밥 먹고 화장실 몇 번 가는 것 말고는 옷이 완성 될 때까지 뜨개질만 했었거든요. 엄청난 꽈배기 무늬에 안감까지 손바느질로 넣어 만들었던 대작이었어요. 결혼 할 때까지 해마다 남편 생일에는 옷을 한 벌씩 떠서 선물했었어요. 결혼 후에는 왜 한 번도 안 해주느냐더군요.

“잡아 놓은 물고기에 밥 주는 것 봤수?”

에구구, 또 옆길로. 죄송합니다.

   

바느질이 생각보다 사람의 에너지를 많이 소모시키고 한번 손에 잡으면 놓기가 힘들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그렇게 말하기는 했는데 예슬이가 약속을 지킬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가지고 싶던 인형을 샀는데, 이 옷 저 옷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옷들을 만들어 입히고 싶은 마음을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싶습니다.

 

바느질 하는 사람들이 보통 자신의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옷을 돈을 주고도 살 수가 없다는 이유로 직접 만드는 경우가 많거든요. 정말 작은 차이지만 꼭 이것이어야 한다는 고집과 욕심이 결국은 다시 바늘과 천을 들게 만들거든요. 무리한 조건으로 아이에게 약속을 어길 상황만 제공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적지 않습니다. 엄마가 그렇게 까지 말했으니 스스로 조금 자제를 해주기를 바란다는 게 솔직한 마음일겁니다.

 

<이야기 셋>

정빈이는 개학을 하고 운동회를 했습니다. 올 해는 작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체조도 열심히 따라 하고요.

 

                   0928-4

 

그리고 정빈이는 개인 달리기에서 1등을 했답니다. 어찌나 시원시원하게 달리는 지 모두들 감탄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답니다.

 

                   0928-5

 

달리기가 무리였던 지라 그 후유증은 적지 않았지만 내년에는 청백 계주 선수로 나가보자며 저나 정빈이 모두 신나했습니다.

2학년들은 한복을 입고 꼭두각시 춤을 추었습니다. 그래서 저고리 고름 매는 방법을 익히느라 진땀을 꽤나 흘렸답니다. 운동회 날 옷을 스스로 입어야 하니 고름도 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한복을 입을 일이 종종 있을 테니 알아두어야 할 것 같아서요. 수십번 연습의 결과로 정빈이는 아주 예쁘게 고름을 맬 수 있게 되었습니다.

 

                  0928-3

 

덕분에 운동회 날 옷 입는 거 도와주러 가지 않아도 잘 입고 나왔더군요. 그런데 다음 사진 속의 정빈이가 화난 모습이죠?

 

                                 0928-8


바로 양 볼에 붙인 연지곤지 때문이었답니다. 얼굴이 바르거나 붙이는 것을 너무 싫어하는 아이인지라 골이 잔뜩 난 채로 다른 친구들은 모두 서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데 결국은 주저앉아버렸답니다. 

 

                   0928-6

 

이와 비슷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거 기억하는 분 계시죠?

작년 학예 발표 때는 머리 때문에 바이올린 연주도 못 할 뻔 했었지요. 머리를 묶거나 핀 꽂는 걸 싫어하는데 장식까지 해놓았다고요.

 

“네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용이야. 아무리 내 마음에 안 들어도 목표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참고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 했었잖아. 꼭두각시 춤을 추는데 연지 곤지를 붙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결정했을 거야. 이걸 붙이고 매일 있으라는 것도, 운동회 하는 내내 그러고 있으라는 것도 아니잖아. 춤을 추는 동안만이라면, 그리고 꼭 필요한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도 있어야 해. 정말 싫다면 붙이지 않아도 되겠지만 이 춤은 너 혼자 추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야 해. 같이 힘들게 연습한 친구들이 너 때문에 마음이 상할 수도 있잖아. 모두들 같이 하는 것이니 만큼 따라줘야 하는 것도 있어.”

 

물론 가장 큰 이유가 힘들어 트집 잡아 무용을 안했으면 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지만 모른 척 했습니다. 무용 연습 중간에도 선생님에게 말해서 안하게 해달라는 걸 하는데 까지 해보자며 달래며 왔거든요. 사실 갈등을 안 한 건 아니었어요. 바지가 줄줄 내려 걸을 수가 없다고 할 정도로 없는 살이 쑥쑥 빠질 정도로 힘들어했었으니 하루에도 몇 번씩 갈등의 반복이었답니다. 하지만 끝까지 왔고 막상 춤이 시작되니 정빈이도 열심히 춤을 추더군요.

 

                  0928-7

 

아이가 지금 당장은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참고 이겨낸 시간들이 자신의 삶에 큰 거름이 되어 주리라 믿습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기억.


<이야기 넷>

추석 연휴에 저희는 월요일 아침 일찍 시댁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모두 돌아가고 저희 가족만 어머님 곁에 남아 있습니다. 이유를 아시겠죠? 제가 가장 어머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친정 식구들 서운하겠지만 친정에는 주말에 가기로 하고 저희는 오늘 하루 어머니와 같이 있다가 저녁까지 먹고 집으로 갈 계획입니다. 자주 못 오니 이왕 온 김에 최대한 있다 가려고요. 명절 때야 음식도 많으니 일 할 것도 별로 없으니 이 때라도 점수를 좀 따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버님 산소에 성묘를 가는 길에 메밀꽃이 밭 가득 피어 있었습니다. ‘메밀꽃 필 무렵’을 읽는 아이들의 마음과 머리 속에는 어떤 정경이 떠오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메밀꽃이 가득 핀 들판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그 책을 펼치는 가슴이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아이들이, 그 중에서 예슬이가 가장 심심해합니다. 텔레비전은 일찍 주무시는 할머니 방에 있으니 볼 수도 없고, 저의 노트북이 있기는 하지만 인터넷이 안 되니 무용지물이고 좋아하는 인형도 만화책도 없는데다가 휴대폰까지 터지지 않으니 심심할 수밖에요. 읽으라고 가지고 온 책은 재미가 없다네요. 심심하다고 몸부림치는 것 보다는 그 책이라도 읽으면 좋을 텐데.

 

밤이 되자 정빈이도 심심하다고 하기에 달력을 찢어 한자 쓰기를 시켰더니 열심입니다.

 

                 0928-2

 

정빈이가 무지 좋아하는 책 중의 하나가 바로 <만화로 즐기는 한자 오디세이>입니다. 

 

0928b-10928b-20928b-3

 

모두 세 권인데 세 권 모두 거의 매일 펼치는 책으로 시골에 올 때도 최근에 나온 3권을 가지고 와서는 달력 뒷면에 열심히 한자 쓰기를 연습 중입니다. 아직은 한자를 쓸 줄은 몰라도, 읽을 줄만 알아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아니 그저 어려워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아이 나름대로 익히는 방법이 있나 봐요. 정빈이는 한글은 읽을 줄 알기 전에 쓰기부터 했는데 한자는 눈으로 먼저 익히더니 이제야 써 보고 싶다고 하네요. 
연휴가 끝나면 정빈이와 같이 한자 공부를 할 계획입니다. 특별한 것은 없고 하루에 다섯 글자씩 같이 쓰고 익힐 생각입니다. 정빈이가 하루에 다섯 글자가 딱 맞다고, 그 이상은 어렵다고 하네요.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제가 가장 많이 안타까운 것 중 하나가 아이들로부터 ‘책에 나오는 말이 너무 어려워요’라는 소리를 들을 때랍니다. 한자가 많은 부분을 해결해준다 싶어 한자로 의미를 설명 하다보면 과학 시간이 마치 한문시간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거든요. 그래서 책을 많이 읽기를, 그리고 한자 공부도 게을리 하지 말라는 부탁을 하곤 한답니다.

 

정빈이는 한자를 무척 재미있어 하는데 지난 번 쇼핑을 갔다가 스웨터를 잃어버렸을 때는 이러는 겁니다.

“어머니 물건 사는 동안 제가 책을 읽고 있었잖아요. 제가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느라 스웨터가 없어지는 줄도 몰랐어요.”

‘독서 삼매경’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힘주어 말하는 아이 얼굴 가득 번져 오던 뿌듯함. 이렇게 자신이 알고 있는 한자어들을 써보는 재미가 적지 않나 봐요.

 

이곳에서의 시간은 제게는 참으로 좋은 휴식의 시간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제사 준비로 몸이 고단하기는 했지만 시골에서의 시간은 마치 하루를 48시간을 사는 듯 느리게 그리고 편안하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마당에 날아 와 앉은 까치의 모습이 정겹고 그 까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 쫒아가는 정빈이의 모습, 그 별거 아닌 모습에 편안한 웃음이 지어지는.

어머님께 점수 좀 딸 마음이었는데 제가 도리어 많은 것을 얻고 있어요.

정빈이가 골목 어귀까지 쫓아가 찍은 까치 사진입니다. 까치는 행운을 가져다준다죠. 사진 속의 까치가 여러분들께 행운을 많이많이 가져다 줄 거라 믿습니다. 


                  0928-9


나무 가득 달린 감도 선물로 드릴게요.

 

                   0928-11

 

이 사진도 정빈이가 찍은 것입니다.

특히 올 첫 열매가 달린 단감나무 덕분에 저희 가족이 무지 행복합니다. 감을 좋아하는 지라 하루 종일 감을 입에 달고 있을 정도입니다. 홍시는 홍시대로 단감은 단감대로 맛이 짱! 입니다요.

 

<이야기 다섯>

그동안 제가 건강이 그리 좋지 못하다 보니 저희 2학년 9반 공주들에게 조금 소홀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개학하고 편지 한 장 쓰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저희 반 공주들은 부쩍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답니다. 요사이 다른 교과 선생님들로부터 2학년 9반 공주들 많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답니다. 얼마나 고맙고 이쁜지요. 그런 칭찬의 이야기들을 전하니 공주들도 무척 좋아하더군요. 아이들의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아마 교사로서의 큰 기쁨이 아닐까 합니다.  

 

얼만 전에는 이순원씨의 자전적 성장 소설인 ‘19세’를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는 저희 반만의 과제를 냈었는데 35명의 공주 모두가, 단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냈답니다.

 

0928b-4

 

다른 반 친구들은 안 하는데 왜 나는 하필 9반이 되어, 별 이상한 숙제를 줄줄이 내주는 이런 담임을 만나 이렇게 고생을 하나 생각한 공주들도 적지 않을 텐데도 모두가 과제를 해 주어 저희 반 공주들이 너무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이 책은 저의 좋은 친구 ‘요술램프 지니’군을 위해 선택한 책이었는데 저희 반 공주들과 같은 나이이고 같이 실업계 학교 학생들인지라 저희 반 공주들도 함께 읽게 되었습니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 빨리 돈을 벌고 싶다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기에  도움이 될만한 책으로 고른 것이었어요.

 

남자 아이의 13세에서 19세 시작 즈음까지의 이야기인지라 남자 아이뿐만 예슬이와 저희 반 공주들도 읽어 보기로 했습니다. 책의 초반부에 주인공 아이의 성(性)에 관한 호기심과 해결 방법 등이 아주 직설적인 표현으로 나와 있어 ‘읽기가 민망했다’, ‘처음에는 선생님이 왜 이런 책을 읽으라고 했을까 궁금했다’는 말들이 적지 않게 독후감에 쓰여 있더군요.

 

저희 반 공주들의 독후감은 모두 읽어 보았지만 지니가 책을 다 읽었는지, 책을 읽은 소감이 어떤 지에 대해서는 아직 모릅니다. 책을 전해 준 이후 제가 지니를 만날 여건이 되지못했고 지니도 수학여행을 다녀오는 등 바빴거든요. 전화로 책을 다 읽었느냐고 물어볼 수도 있지만 다음에 직접 만나 얼굴을 마주하고 길게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남겨 두고 있답니다.  

지니와는 문자뿐만이 아닌 전화 통화도 가끔 하는, 좋은 친구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목소리를 들으면서 전화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며 시작한 만남이었는데 말입니다.

 

10월에 있을 ‘원폭피해자와 함께 하는 평화의 캠프’에는 중간고사 바로 직전이라 참가하지 못해 아쉽지만 11월에 KYC 좋은 친구 만들기에서 마련한 ‘청년층 직업지도프로그램’에도 참가할 것을 약속 받아 놓았답니다. 5일동안 20시간에 달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하는데 학교 졸업 후 진학이 아닌 취업을 하게 될 지니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어 줄 것 같습니다. 제가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우리고 제가 권하는 것에 처음에는 ‘모르겠어요’라고 하다가도 저를 믿고 따라주는 지니도 참으로 고맙답니다.

 

얼마 전 전화에서 강아지를 키우게 되었는데 샘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하더군요. 강아지가 크면 샘보다 더 커질 텐데 무서워 할 거라고 걱정도 하고. 시내에서도 지나가는 애완견, 특히 덩치가 산만한 개를 보면 좋아 어쩔 줄 몰라 하던 아이였어요. 그렇게 원하던 강아지를 키우게 되어 무척 기쁜 모양이었어요. 전화기를 통해 전해오는 아이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달리 많이 들떠 있었거든요. 


작년에 평화의 캠프에 자원봉사자로 저희 탁이가 참가를 했었어요. 선생님에게 도움을 받으니 자기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면서요. 그리고 그 1박 2일 동안 아이는 참으로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자라서 돌아왔었습니다. 그 때 같이 캠프에 참가했던 탁이의 친구는 지금은 KYC 회원이 되어 원폭 피해자들의 생애 구술활동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합천에 있는 복지관을 찾아가 그 분들과 시간을 같이 보내며 그 분들의 생애를 이야기로 전해 듣고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 아이는 탁이를 통해 만나게 되었지만 제게는 참으로 자랑스러운 또 한 명의 아들입니다. 부정맥이 있어 가끔 병원을 간다던 아이, 기억하시죠? 그 아이 또한 저의 자랑이랍니다. 

올해 지니도 꼭 참가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시험이 딱 가로 막아 아쉽지만 다시 기회가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 이야기로 함께 기뻐해주실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요리로 만나는 과학 교과서>가 과학 기술부 인증 우수 도서로 선정되어 과학기술부 장관명의 인증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출판문화협회 청소년 교양도서로도 선정되어 출판사가 상도 받았다는 소식도 좀 늦었지만 함께 전합니다.

 

그리고 한 동안은 칼럼에 소식 전하는 것이 지금처럼 가끔이 될 것 같습니다.

모두들 건강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