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당신은 우량아 몸매라도 이뻐

착한재벌샘정 2006. 12. 25. 23:56
정빈이는 거실에 만들어 둔 크리스마스 트리에 산타할아버지에게 간절한 마음을 담아 쓴 카드를 달아두었습니다. 

 

 

선물 꼭 달라는, 두 가지를 콕! 집어 말하면서 그것을 선물로 받고 싶은 이유까지, 정말 간절한 마음을 담아 둔 카드랍니다. 하지만 저희 집에는 올해 산타가 오지 않았답니다.(저희 집에는 해마다 산타가 오지 않고 가끔 온다는 건 몇 해 전 크리스마스에 살짝 이야기 해드렸었죠?)

“산타, 정말 마음에 드네.”

“왜요?”

“정빈이에게 선물 안 주셨잖아.”

“네에~~~~?”

“어머니는 산타 존경하기로 했어.”

“존경씩이나요?”

“올해 우리는 정말 큰 선물을 많이 받았어. 우리가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이 많은데 선물까지 받는다는 건 너무 욕심이야. 산타할아버지 선물을 필요로 하는 곳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에게까지 신경 쓰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산타할아버지 정빈이의 간절한 편지에도 이성적일 수 있다는 거 존경스럽지 않니? 솔직히 넌 실망했을지 모르지만 어머니는 산타할아버지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해.”

산타의 존재를 굳게 믿고 편지를 써 둔 정빈이는 많이 실망했겠지만 저희 집에는 산타가 오지 않았답니다. 저희는 여름에 이미 너무 큰 선물을 받았잖아요. 정빈이의 건강이라는 세상에서 제일 큰 선물을.  

 

얼마 남지 않았지만 메리크리스마스 여러분!!!

연휴 잘 보내셨는지요? 저희 집에는 산타는 오지 않았지만 대신 가족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12월 24일이 18번째 결혼기념일이거든요.

여행에서 돌아와 정말 오래 된 문집을 꺼내 펼쳐들었습니다. 1991년에 학교 아이들의 축제에 끼여 만들었던 문집입니다.

 

 

 

그 문집 중의 한 페이지에서 저의 눈은 오래도록 멈추어 있었답니다.

 

 

‘추억의 한 장면’

기차를 보면 난 그리움을 갖게 된다.

내 기억속의 기차는 언제나 두 칸짜리 무궁화호.

대구 역, 미끈거리는 바닥, 개찰 안내방송, 소란함, 여러 개의 통로가 주는 산만함, 긴 계단, 그리고 기차.

‘에게게, 두 칸짜리잖아’ 아, 실망 ‘긴 것은 기차인데.’

‘걱정 마. 내가 다음에는 열 칸짜리 기차를 태워줄게. 아주 긴 걸로.’하는 그대의 다정한 목소리.

아~~~, 내게 이런 남자가 있었구나.

어느 해의 1월 21일. 부산 행 기차를 타기 위한 기다림 중의 한 장면.

겨울바다. 태어나 처음 보는 겨울 중간의 바다.

해운대 모래사장, 오후 5시. 플라스틱반지에 이름을 새겨 끼워주던 남자.

그래, 바로 그 남자. 지금 내 곁에 있습니다.


1984년 1월에 남편과 함께 간 기차여행에 대한 글입니다.

제가 이렇게 이 순간을 지금도 행복하게 추억하는 이유가 있답니다. 사실 저는 그 순간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1988년 12월 24일 결혼식 날짜를 잡은 남편은 신혼여행을 꼭 부산으로 가야한다는 겁니다. 그 당시에 신혼여행지로 최고였던 제주도로 가고 싶었던 저는 솔직히 많이 서운했지만 남편은 부산으로 가야한다고 고집을 부렸고 할 수 없이 저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지요.

지금은 제가 남편보다 몇(?)㎏ 더 무거운 몸이 되었지만 결혼식장에서는 남편에게 번쩍(솔직히 번쩍은 아닙니다^^) 안기기도 했었는데...푸하하하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시내 한 복판에 있던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하고 그 주변에서 피로연을 했는데 크리스마스이브다 보니 거리는 정말 너무나 혼잡했고 그 당시만 해도 귀하던 남편 친구의 자가용으로 동대구역까지 갈 계획이었지만 주차장은 만원이었고 친구의 자가용은 꼼짝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지 뭡니까? 기차 출발 시간은 다가오고 이리저리 앞 뒤 차의 주인을 찾던(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라...) 친구는 도저히 안 되겠다며 택시를 잡아주었고 기차 출발 시간에 맞추기 위해 택시는 일명 총알택시가 되어야 했었답니다. 그렇게 겨우 정말 슬슬 출발하고 있는 기차에 올라 탄 저희들.

 

숨이 턱에 차서 좌석을 찾아 앉는 순간 남편이 제게 그러더군요.

“약속 지켰다.”

“무슨 약속?”

“내가 그 때 그랬었잖아. 열 칸짜리 아주 긴 기차 태워준다고.”

‘열 칸짜리 기차?’

아직도 턱에 찬 숨을 몰아쉬며 기억을 더듬어 본 저는 정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남편은 그 때 대구 역에서 했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기차를 타야한다고 고집을 부렸건 겁니다. 84년 1월의 약속을 88년 12월에 지켜준 거지요.

“이게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기차야. 새마을호. 어때? 빠르지? 너 그 때 기차가 너무 짧다고, 그리고 너무 느리다고 투덜거렸었잖아?”

부산에서의 1박 2일의 신혼여행. 남편은 취직 후 첫 월급도 못 탄 상태에서 결혼을 했기에 솔직히 3박 4일, 뭐 이런 신혼여행을 하기에는 여유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랬기에 남편은 제게 또 하나의 약속을 해 주었습니다.

“신혼여행은 이렇게 짧지만.... 매년 결혼기념일에 여행가자.”

그 후 남편은 매년 그 약속을 지켜주었어요. 정빈이가 태어나기 전까지요. 11년 전 정빈이가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태어나고 거의 매년 12월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병원에 다녀야했기에 올해처럼 긴(금요일 퇴근해서 떠났으니 3박 4일), 그리고 여유있는 여행을 다녀올 수 없었어요. 올해는 다행이 병원 검진일이 1월로 잡혀서 남편이 큰 맘먹고 여행을 계획했답니다. 

이렇게 늘 제게 했던 약속을 지키려 노력하는 남편이 너무 고마워 오늘 저는 오랜만에 기차 여행에 관한 추억이 있는, 남편의 약속이 있는 글에 눈과 마음이 한동안 머물러 있었던 겁니다.

 

올 여행에서 참 기뻤던 것은 여행지에 도착하자 예슬이가 결혼기념일 선물로 준 커플 티였답니다. 저희 부부 너무 감격해 3박 4일 동안 그 티셔츠만 입고 다녔답니다. 남편은 좀 쑥스러워하긴 했지만요.ㅎㅎ 한달에 얼마 안되는 용돈,  커플 티 입고 싶어하는 엄마 소원들어 주려고 몇 달 무지 아꼈던 모양입니다. 사진 찍는 거 좋아해 열심히 찍어대는 편인데 이번 여행은 온 가족이 정말 편안하게 지내자는 마음에서 카메라조차도 거의 꺼내들지 않았습니다. 입장료 비싸다고 박물관 밖에서 기다린 남편을 위해 박물관 전시물(사진 촬영 허락되는 것만)만 찍었거든요. 그래서 저희의 커플룩을 보여줄 수 없어 너무 아쉽습니다. 저의 취향이 좀 특이해 찾아가는 곳도 좀 그런데(남편의 표현입니다.^^) 싫다는 소리 안하고 그 앞까지는 데려다주고는 저와 아이들만 들여보내고 밖에서 기다릴때가 종종 있거든요. 울 남편의 절약 정신은 노벨상감이랍니다.

 

 

깨끗하게 빨아 거실의자에 거꾸로 널어놓은 거라도 자랑을 해야겠어요. ㅎㅎ 앞쪽 자주 빛이 도는 것이 남편 거, 뒤의 갈색 빛이 도는 것이 제 것인데 예슬이가..... 남편은 95, 저는 100 사이즈를 산 거 있죠?

 

저희가 결혼할 때 텔레비전을 사지 않았던 이야기는 친구들 사이에도 참으로 오랫동안 이야기가 되었어요. 지금처럼 텔레비전을 안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때는 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랍니다. 그렇게 시작한 신혼생활이었지만 참 행복했었어요. 물론 마음 아픈 일도 있었어요. 제가 남편에게 잘해주려 애를 쓰는 이유도 남편과 함께 지내온 시간들이 쉽고 순탄하기만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제일 마음 아픈 기억은 예슬이를 가졌을 때인데.... 제가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해서 집을 나섰는데.... 꽤 좋아 보이는 고기집이 있기에 들어갔었는데.... 물까지 마시고 남편이 뭔가를 시킬 것을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이 너무 난처한 표정으로 말을 못한 채 저를 바라만 보는 겁니다. 제가 눈치가 빠른 게 어찌나 다행인지요. 남편 주머니 사정이 도저히 안 되었나 봐요. 말을 못하고 있는 남편의 얼굴을 마주보며 씨익 웃고는 제가 그랬죠.

“나가요. 꼭 여기 아니어도 돼요. 얼른요. 여기서 너무 비싼 거 먹으면 체할지도 몰라요. 임신 중에 체하면 약도 못 먹고 큰일이니 얼른요.”

“........”

“괜찮아요. 대신 나중에 맛있는 거 많이 사줘야 해요, 알았죠? 얼른 나가요.”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 고기 집은 아직 있답니다. 그 앞을 지날 때면 예전의 그 일이 생각나서....마음이 찌르르하곤해요. 그 때 남편이 얼마나 속상하고 마음 아팠을까 싶어서요. 

그래서 그런 지 남편은 저에게 너무 많이 먹이는 경향이 있어요. 그저께 저녁에 여행지에서 라면을 끓여 밥 말아 먹었는데 자꾸만 제 그릇에 밥을 덜어주는 거예요. 마침 텔레비전에서 52세의 몸짱 아주머니가 소개되고 있기에 제가 그랬지요.

“왜 자꾸 먹으라는 거예요? 이래가지고 몸매 관리가 되겠어요? 저기 텔레비전 좀 봐요. 52세 아주머니가 22세 같은 몸매를 가지고 있대잖아요.”

“괜찮아. 당신은 우량아 몸매라도 이뻐. 3세 우량아면 저 아줌마보다 훠~~얼 젊은 거 맞지?”

“3세 우량아요?”

“그래, 3세 우량아면 저 아줌씨랑은 게임이 안 되지. 그러니까 많이 먹어.”

“아휴~~~ 내가 정말.....”

아마도 그 때 그 고기 못 사 준 거 땜에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러니 제가 이렇게(?) 되어 예슬이가 티셔츠 100을 남편 아닌 저에게 주고.  ㅎㅎ 결혼식에서 남편의 두 팔에 번쩍은 아니지만 안기기까지 했던 제에게 남편의 '우량아'아라는 말은 충격이어야 하는데 그저 즐겁기만 하니.... 아무리 동안이 열풍이 분다하지만  3살 우량아라 해준 남편이 그저 고마우니, 이거이 정말 정신없는 아줌마 맞습니다요. 

이사도 꽤했지요. 단칸방에서도 살았었는데 그 방이 너무 더워 어린 예슬이가 집에 가기 싫다고, 여름 내내 집에 오지 않으려고 해 친정집에 두어야했었던 적도 있었어요. 남편 친구 집에 놀러 갔었는데 왜 아빠는 이 집처럼 좋은 집을 사지 못하느냐고 해 남편이 밤새 울기도 했고요.

처음으로 마련한 자가용 중고 포니가 비 오는 날 갑자기 윈도우 브러시가 안 되어 제가 얼굴을 차창 밖으로 내밀고 신호등을 봐주느라 귀에 빗물이 들어가고 집에 도착하니 목이 뻣뻣하게 굳어 한동안 고생을 하기도 했었어요. 이렇게 적고 보니 남편이 너무 무능해 보이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절대 아니랍니다. 너무 없이 출발했고, 남편의 일이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 일이라 기복이 심했던 건 사실이지만 남편은 늘 열심이었고 제가 보기에는 능력도 대단하답니다.

두 번의 유산도 정빈이의 건강도 저희 부부를 힘들게 했지만 그럴 때일수록 저희들은 서로를 걱정하며 잘 이겨왔다고 생각해요.

처음엔 둘이었는데 이제는 넷이 되어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앞으로 힘든 일이 또 있을지 모르지만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면서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이 번 여행은 결혼기념 여행이라는 것 외에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답니다. 야간자습해야하는 예슬이를 조퇴까지 시켜 여행을 간 것은 올 한 해 '너무 고맙다'는 이야기가 저절로 나오도록 열심히 해준 예슬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오랫만에 가족과의 여행으로 휴식의 시간을 가졌으면 해서요. 그리고 이제 고3이 되는 예슬이에게 늘 힘이 되어 주고 싶어하는 가족이 있다는 거, 힘들고 지칠 때 기대고 의지해도 되는 가족이 있다는 것, 어떤 경우에도 늘 예슬이의 편이 되어주는 가족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해주고 싶었답니다. 저에게 남편이, 남편이 저에게 그랬듯이 말입니다.

연이어 남편과의 이야기를 하게 되니 좀.... 그러네요. 솔직히ㅎㅎ. 그래도 쓰지 않을 수 없으니, 이해해주세요,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