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수학책에서 빼기를 다 빼버릴까?

착한재벌샘정 2004. 6. 26. 14:55

“밥 안 먹을 거예요.”

“밥을 왜 안 먹어?”

“배 아프단 말이에요.”

“그래도 조금만 먹어 봐.”

“억지로 먹으면 배탈 난단 말이에요.”

“이상하네. 요 며칠 계속 그런 것 같아.”

 

며칠 째 밥 상 앞에만 오면 배가 아프다며 칭얼거리고 혼자서 척척 알아서 하던 숙제도 엄마가 옆에 앉아 있어야 한다며 징징거리는 아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 지 담임선생님께 전화해 의논해보라는 걸 보니 남편도 아이가 평소 같지 않다는 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학교에서 속상한 일 있니? 혹시 친구랑 사이가 좋지 않다던 지, 공부가 많이 어렵다던 지, 뭐 그런 일 말이야. 엄마가 늘 이야기 하지만 무슨 일이 있을 때는 혼자서 끙끙대지 말고 엄마와 의논할 수 있었으면 해.”

“…”

“엄마 눈에는 정빈이에게 고민이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 엄마의 느낌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 엄마에게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엄마가 모든 일을 해결해 줄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같이 생각해보면 해결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거잖아. 무엇이 정빈이의 배를 아프게 하고 숙제를 하기 싫게 하고 피곤하고 짜증나게 하는지 엄마에게 이야기 해주었으면 해.”

“빼기가 어려워요.”

“빼기가?”

“빼기가 빨리 빨리 안 된단 말이에요.”

“어제 숙제 할 때 빼기 잘 했었잖아?”

“빨리 빨리 안 된단 말이에요. 이렇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해야 되니까 그렇죠. 빨리 빨리 하고 싶은데.”

 

아이는 자신이 제일 재미있어하는 수학이 자기 마음만큼 안 된다는 생각에 속이 상하고 스스로에게 실망을 했다고 했다. 수학만큼은 자신 있다 생각하던 아이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에 아이의 상한 마음을 달래 줄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수학 책에서 빼기 부분을 다 빼버릴까?”

“네?”

“빼기 때문이라니까 빼기를 다 없애 버리는 거야.”

“어떻게요?”

“간단하지. 빼기가 있는 부분을 모두 찢어버리는 거야. 어때? 그러면 되겠지?”

 

엄마가 제시한 방법이 너무 어처구니없었던 지 아이는 한 동안 나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자를 대고 예쁘게 찢으면 되겠어요. 그냥 쭈욱 찢으면 울퉁불퉁해서 보기 싫으니. 자 대고 칼로 예쁘게 잘라내면 되겠어요.”

아이의 말에 나의 웃음소리는 커졌고 아이의 이마에 내 머리를 맞대고 한 마디했다.

“맞아.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정말 깨끗하게 빼버릴 수 있겠네.”

아이도 칼로 수학 책에서 빼기가 있는 쪽을 잘라내는 상상을 하는 지 깔깔 웃음소리가 커졌다.

우리가 진짜 수학 책에서 빼기가 있는 쪽을 다 잘라 없앴느냐고 묻는 눈치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이와 함께 책장에서 <행복한 청소부>를 꺼내 펼쳤다. 우리 집 책장의 책들은 우리 아이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작은 도서관 역할을 하고 있기에 한 번 나들이(?)를 간 책이 영 돌아오지 않을 때가 종종 있어 같은 책을 몇 번이나 새로 사는 일이 있는데 <행복한 청소부>도 그런 책 중의 하나이다.

 

지난 5월, 딸아이의 친구 생일 선물로 이 책을 사면서 우리 아이를 위해 다시 샀던 책으로 또 다시 사라진다면 그 책을 사기 위해 서점 나들이를 갈 수고를 아끼지 않을 정도로 많이 아끼고 늘 곁에 두고 싶은 책 중 한 권이다.

 

“치과에 갔던 거 기억하니?”

“언제요?”

“네가 치과 간판을 보고 목목 치과라고 읽었던 거 기억해?”

“나무 목(木)이 두 개 붙어 있어서 목목 치과냐고 물었던 거기 말이에요? 목목 치과가 아니고 임치과라는 거 이제 알아요.”

“맞아. 그 때 우리가 했었던 이야기 기억하지?”

“나무 목이 둘이 있으니 나무가 많다는 뜻이니까 수풀 림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목목 치과가 아니고 임(林)치과라고. 리을이 앞에 오면 이응으로 읽으면 된다고 했잖아요.”

“그 때 엄마가 정빈이에게 감탄했었잖아. 밀림이라고 하는 말에 쓰이는 것도 스스로 알았고 덕분에 빽빽할 밀(密)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말이야.”

 

“나무목이 세 개 있는 글자도 있느냐고도 물었어요.”

아이는 의기양양해진 얼굴로 말했다.

“그랬었지? 덕분에 나무목이 세 개인 나무 빽빽할 삼(森)도 알게 되었지. 그날 정빈이가 그랬잖아. 한자를 아니까 좋다고. 축구할 때 전반전 후반전이 무엇인 지 몰랐었는데 앞 전, 뒤 후를 알게 되니 쉽더라고. 엄마가 운전 할 때 말하는 좌회전 우회전도 모두 한자를 알게 되니까 저절로 이해가 되더라고 말이야.”

“동네 미장원 이름도 읽을 수 있으니 좋고요. 秀 미용실의 수가 빼어날 수잖아요. 간판에 한자로 된 글자가 참 많아요.”

“맞아. 그럴 때 읽을 수 있는 글자가 있으면 참 기쁘지. 그리고 모르는 글자는 어떻게 읽을까 어떤 뜻일까 궁금해지니 찾아보고 알게 되는 기쁨도 생기고.”

“한자는 너무 재미있어요.”

“한자만 그러겠니? 네가 처음 한글을 알게 될 때도 그랬었잖아. 그림책의 글자들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 너 정말 좋아했었어. 이렇게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지.”

 

“그래도 빼기 때문에 속상하단 말이에요.”

“누구나 다 그런 과정을 거쳐. 처음 배우는 것을 척척 이해하고 빨리빨리 해낼 수 있는 사람들은 많이 없어. 엄마는 예전에 두 자리 수 빼기 할 때 엉엉 울었던 적도 있는 걸.”

“어머니가 울어요? 왜요?”

“틀린 문제가 너무 많아서.”

“왜 틀려요? 천천히 해보면 다 되는데.”

“그러게 말이야. 정빈이는 천천히 하면 다 풀 수 있잖아. 단지 빨리 빨리 안 되어서 속상한 거잖아. 그런데 엄마는 천천히 해봐도 아주 많이 틀렸었거든. 그래서 속상해서 막 울었던 거야.”

“운다고 문제가 풀려요? 천천히 생각하면서 풀어야지?”

“정빈이는 이미 해결 방법을 알고 있네. 천천히 생각하면서 풀면 되는 거잖아. 빨리 풀리지 않는 것 때문에 속상해 하지 않아도 돼. 많은 문제를  풀면서 연습을 하다보면 문제를 푸는 속도는 빨라 질 거야. 네가 이제까지 수학을 좋아하고 어려운 것 없이 오다 처음으로 이런 경험을 하게 되니 힘들었던 거야.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모든 사람들이 처음 배우는 것에 대해서는 힘들어 해. 하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고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우리를 많이 기쁘게 한다는 것은 너도 경험해 봐서 알잖아. 이 책의 아저씨가 알지 못하던 것을 공부하면서 빨리 안 된다고 짜증을 내거나 공부할 것이 너무 많다고 힘들어하든?”

“아니요. 아저씨는 공부하는 거 너무 재미있어 해요.”

“이 아저씨가 행복한 것이 유명한 사람이 되어서 일까?”

“아니요. 그렇다면 대학 교수가 되라고 할 때 그럴게, 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어요.”

 

“우리가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은 그것을 알게 되면서 우리에게 큰 기쁨이 되어 주기 때문이야. 가끔 이런 이야기하잖아. 이거 배워서 어디 쓸거냐고.  물론 배운 것을 어딘가에 써 먹을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거지. 너는 빼기가 생각만큼 빨리 안 되어서 속상하다고 했지? 하지만 그렇게 빼기를 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풀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하고 너 나름대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는 데 그런 과정은 수학 문제 풀이를 잘 하게 해줄 뿐 만 아니라 너의 생각주머니를 쑥쑥 크게 해주는 거야. 조금 느려도 괜찮아. 조금씩 조금씩 너만의 탑을 쌓아갈 테니까. 성급히 요령만을 익히는 것 보다는 느리지만 탄탄한 기초를 쌓아가는 것이 더 좋아.”      

 

▣ <행복한 청소부>는 어떤 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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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의 아저씨 얼굴을 보면 나도 모르게 따라 빙그레 웃게 된다.

동글동글한 얼굴과 너무나 총명해 보이는 두 눈. 마치 아저씨와 마주 보고 있으면 삶의 진리를 깨달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면 내가 오버하는 걸까? 책 표지의 아저씨 얼굴만 바라보아도 이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이 그림책을 나는 정말 아끼고 소중히 여긴다.

 

책 속의 아저씨는 언제나 웃는 모습이다. 일을 하러 갈 때도 잠자리에 누워서도 책을 읽을 때도, 걸어가면서도 아저씨는 미소를 띠고 있다. 양 입가가 위로 쑤욱 당겨져 올라간 아저씨의 그 미소만으로도 이 책은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이 책 속의 아저씨는 독일의 작가와 음악가들의 거리 - 바흐 거리, 베토벤 거리, 괴테 거리 등등 -를 청소하는 청소부. 청소부로서는 최선을 다하는 그래서 자신도 즐겁고 타인에게도 인정받는 사람이었지만  아저씨는 그 이름 속의 사람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도서관을 찾아 자신이 청소하고 있는 거리 표지판의 주인공인 작가와 음악가들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무엇인가를 알아간다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고 배움을 통한 내면의 성장으로 인한 환희를 느낀다.

 

“참 안타까운 일이야.”

어느 날 아저씨는 동료 청소부들에게 말했어.

“좀 더 일찍 책을 읽을 걸 그랬어. 하지만 모든 것을 다 놓친 것은 아니야.”

(중략)

이렇게 아저씨는 멜로디를 휘파람으로 불며, 시를 읊조리고, 가곡을 부르고, 읽은 소설을 다시 이야기하면서 표지판을 닦았다.


아저씨는 일하는 자기 자신에게 음악과 문학에 대해 강연을 했고 그 것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듣게 되어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 강연을 하게 되고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타인들과 나누고 공유하면서 더 큰 행복을 느끼게 된다.  청소부라는 자신의 일을 너무 사랑하고 만족하며 끊임없이 공부하는 아저씨를 만나면, 나 역시 행복한 아줌마가 된다.

 

                                                              2004년 <책나무> 7월호에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