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햇살이 너무 좋은 날입니다.
이 좋은 가을을 여러분들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지난주에는 예슬이 학교에서 축제가 있었습니다.
학교 축제라면 학창 시절 참으로 열심히 쫓아다녔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화전 가서는 정작 시보다는 그 시를 쓴 남학생에게 더 관심이 갔었던, 그림 전시회에서도 그림의 주인이 누구일까를 두고 친구와 내기를 하던 추억을 가지고 있지요.
그 때는 왜 그렇게 남학생에게 관심이 많았던지.
제가 가끔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나중에 노인 대학 꼭 갈 거야. 내 인생에 제일 억울한 게 뭔지 아니? 왜 나 좋다고 따라 온 남자가 한 사람도 없느냐는 거야. 늘 내가 따라다녔으니…. 소설이나 영화에 그렇게 흔하게 나오는 그런 우연이 왜 내게는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느냐는 거야. 억울해서 이대로는 못 있어. 나중에 늙어 노인 대학에 가서라도 나 좋다고 따라오는 영감이라도 한 번 만나보고 죽어야지."
참으로 열심히 남학교의 축제를 찾아다닌 이유도 사실은 어찌 어찌해서 남학생이라도 한 번 사귀어 볼까 하는 마음이 제일 컸던 것이 사실인데 그게 마음만큼 쉽지가 않더군요.
나 좋다는 남학생은 없는데 왜 그렇게 내 눈에 드는 남학생은 많은지.
그리고 더 비극적인 것은 그 남학생들이 전부 제 친구들을 좋아하더라는 겁니다. 제가 언젠가 연애 소설을 쓴다면 그 제목을 '착각은 내 사랑의 힘'이라고 할거라던 말 기억하시는지요?
늘 저의 착각 내지는 짝사랑으로 끝나버렸으니, 흑흑흑.
예슬이 학교에서 축제를 한다는 말을 듣자 그 시절의 많은 기억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더군요.
남편과 연애할 적엔 제가 남편이 다닌 고등학교의 미술실이 어디에 있는지 강당과 도서관이 어디에 있는지를 너무나 상세히 알고 있다는 사실에 잠시 남편의 의심에 찬 눈길을 받은 적도 있답니다.
학교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열심히 드나들었으니 당연히 알 수 밖에요. 아마 대구 시내의 남학교는 안 가 본 곳이 없지 않을까 합니다. 호호호
이런 저이고 보니 예슬이 학교에서 축제를 한다니 제가 더 들뜨고 설레더군요.
"남학생들도 많이 오겠네?"
"글쎄요. 그건 모르지요."
"넌 왜 그렇게 남학생에게 관심이 없어? 엄마는 너만할 때는 남학생 생각 밖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친구들이 그러는데 저는 아마 대학을 가야 남자 친구가 생길 것 같다고 하던걸요. 지금은 솔직히 별로예요."
"거 이상하네. 너 혹시 내숭 아냐? 솔직히 엄마처럼 이렇게 드러내놓고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사람 치고 크게 문제되는 사람은 없어. 내숭떠는 것들이 문제지. 마치 전혀 관심 없는 척하면서 속으로 호박씨 까는 애들 말이야. 너도 그런 거 아냐? 야, 한창 사춘기인 지금 나이에 남자아이들에게 관심이 없다는 게 말이 되냐? 없다면 그게 도리어 이상한 거야.
너희 학교 가까이에 남자 학교 많잖아. 중학교도 두개나 있고 고등학교도 있고. 너는 또래가 좋으니 아니면 한 두살 많은 오빠들에게 관심이 가니?"
"친구들은 대부분 고등학교 오빠들과 사귀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2학년."
"그래? 넌 어때?"
"저는 아직 관심없다고 했잖아요."
"거 참, 왜 아직 관심이 없어? 넌 엄마 딸 아닌 가 보다. 엄마 아는 언니 중에 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인 사람이 있는데 그 오빠 우리 집에 초대해 볼까?"
"아직이라는데 왜 그러세요? 어머니하고 저는 달라요. 그것도 많이 달라요. 엄청 많이."
'축제=남학생'의 공식을 만드는 저와는 정말 다른 것 같더군요.
예슬이는 축제 준비에 너무나 열심이었어요.
댄스 파티에 입고 나갈 반 아이들의 옷을 디자인하고 손바느질로 직접 만들고, 컴퓨터 동아리를 위한 웹디자인을 해주기도 하고, 친구들과 팬시를 만들어 팔겠다며 밤을 새기도 하고.
이틀동안 직접 만든 팬시를 팔아 거금 8만원의 수입을 올렸다고 해 저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답니다.
1개의 가격이 100원에서 400원이었다는데 만든 원가가 워낙 비싸서 순이익은 별로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놀라울 따름이지요.
저와 많이 다른 예슬이지만 손재주만은 저를 닮았나 봐요.(이러면 제 자랑이 되는 건가요?^_^)
그림, 손바느질, 요리 등등 손으로 하는 것에는 관심도 많고 그 재주가 저를 닮은 정도가 아니라 저를 훨씬 능가해 저의 혀를 내두르게 하거든요.
게다가 저에게 없는 것을 가졌는데 바로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연결시킨다는 겁니다.
'기다리는 부모가 아이를 변화시킨다'에서도 예슬이의 자판기 이야기를 썼었는데 예슬이는 그런 쪽으로 관심과 재주가 있나 봅니다.
예슬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적 이야기입니다.
제 친구가 동네에서 빵과 과자를 만드는 재료를 파는 가게를 하다가 사정이 있어 가게를 닫게 되었는데 마침 케이크 구울 재료를 사러 갔던 예슬이가 그 이야기를 들고 뭐랬는 지 아십니까?
"어머니, 이 가게 제가 한 번 해 봤으면 좋겠어요."
입을 다물지 못했었지요.
제가 축제에서 가장 기대를 한 것은 예슬이의 춤 솜씨를 보는 것이었어요.
춤 연습을 하고 지쳐 돌아와서 하는 말이 이랬답니다.
"어머니, 다른 아이들은 모두 몸이 이렇게, 웨이브지게 일어서는 데 저만 안돼요. 그래서 혼자서 벌떡 일어난다니까요."
키는 얼마나 큽니까? 그 큰 키에 다른 애들 전부 앉았다 일어설 때 몸을 살랑살랑거리며 일어나는데 혼자서 그게 안되어 벌떡 일어난다며 학교에 절대로 오면 안 된다며 손사래를 치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연습하는 게 기특하기도 하고 더 열심히 해서 남들처럼 유연하게 되도록 하지,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있고.
어쨌거나 꼭 봐야지 하는 마음에 정빈이까지 데리고 댄스 파티가 열린다는 강당으로 달려갔지만 너무나 애석하게도 제가 도착했을 때는 예슬이 반의 춤이 막 끝난 순간이었습니다.
1반이라 맨 처음으로 한데다가 예슬이가 가르쳐 준 시간보다 훨씬 앞당겨 행사가 시작된 탓에 결국 예슬이의 춤은 보지 못했답니다.
또 백일장 때 상을 받은 시를 액자에 넣어 전시했는데 그것도 너무 늦게 가서 이미 철수를 한 뒤라 어제 집에 가지고 온 것을 보았습니다.
예슬이 담임선생님께서는
"아는 사람들이 많은 학교에 아이가 다니고 있어 신경 쓰이고 그런 것은 아니죠? 모든 선생님들이 인물로 보나 뭐로 보나 엄마보다 예슬이가 훨씬 낫다고들 하는데 기분 나쁘시지 않죠? 칭찬 맞죠?"
하시더군요. 예슬이 학교의 선생님들 중 많은 분들이 저와 아는 사이거든요.
축제 준비에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탓에 축제를 향해 있던 눈과 마음을 공부로 돌리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거라고 걱정도 해주셨어요.
하지만 요 며칠 시험 준비를 하는 예슬이는 늘 하는 말인 '알아서 한다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를 연발하고 있는데, 믿어야지요.
예슬이의 축제 준비를 지켜보면서 우린 참 많이 다르지만 또 한 편으로 너무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을 느꼈답니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지독스러울만치의 몰입.
예슬이와 저의 가장 닮은 점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답니다.
오랜만에 예슬이 이야기를 쓰고 있어서 그런지(며칠에 걸쳐 조금씩 쓰고 있는 중이거든요.^_^)이 번 주 방송을 위해 읽고 있는 책의 한 부분에서 제 눈과 마음이 오래 머물더군요.
'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 2권' 중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대중을 이끄는 사람은 자녀 교육에 남다른 신경을 써야 한다. 예전에 목회자들이 자녀교육에 관한 고민을 홀로 감당하기 어려워 모임을 만든 사정을 신문보도로 접한 일이 있었다.
자식들은 목사인 아버지가 교단 위에서 하는 말과 집에서 하는 행동이 다르면 위선자인 아버지 때문에 반항아가 되고, 아버지가 교회에서나 집에서나 한결같은 훌륭한 인격자이면 자신이 그렇지 못한 정신적인 부담감에 짓눌려 탈선하게 된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부자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대목에서 나온 글인데 '이래도 탈, 저래도 탈'이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학창시절 학교를 도중에 그만 둔 친구가 있었는데 부모님이 모두 선생님인 아이였어요. 그 친구는 집에 가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했었어요. 학교에서도 선생님들 때문에 숨통이 막혀 죽을 판인데 집에서도 귀가 따갑도록 훈계 밖에 듣는 것이 없다고.
그리고 종종 이런 말도 들었고요. 문제아들 중에 선생 자식이 생각보다 많다고.
가끔 예슬이를 보면서 학창시절의 그 친구 생각을 하곤 합니다.
예슬이도 저로 인해 숨통이 막힐 것 같은, 질식할 것 같은 시간들을 견디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그래서인지 위의 글이 적혀 있는 페이지를 펼쳐두고 새벽까지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지요.
아마 많은 부분에서 저는 예슬이를 힘들게 하고 있을 겁니다.
지난 번 새로 이사 온 위층 가족을 초대해 저녁을 먹을 때 일이었어요.
그 집에도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둘이라 자연스레 공부 이야기가 나왔는데 제가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을 했었습니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예슬이가 이러더군요.
"그래서 저는 저희 어머니를 싫어해요. 저는 공부를 싫어하거든요."
저는 무엇을 하면 정말 끝장을 보아야 하는 성격입니다. 남들이 옆에서 혀를 내두를 정도로 그 일에 몰입을 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일은 거의 없는 편이에요. 그런 저의 성격도 예슬이를 참으로 부담스럽게 만들 겁니다.
가끔 '에이, 안되겠다. 포기다.' 뭐 이러는 적이 있어야 주변의 사람들도 편안할 텐데 말입니다.
예슬이가 자주 하는 말 중에 하나입니다.
"저희 어머니와 한 번 살아보세요."
그 한 마디 속에 참으로 많은 의미가 들어 있다는 것이 느껴지시죠?
그러면서도 이 말을 하고 싶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뭘 하나를 해도 제대로 하면 좋잖아. 하겠다 마음을 먹었으면 끝을 봐야 할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