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초보 학부모를 위한 조언

착한재벌샘정 2003. 6. 9. 11:22
3월이네요.
지금 대구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봄을 부르는 비인 것 같아 반갑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제 곁에서 정빈이는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정빈이가 쓴 일기 중의 하나입니다.

유치원도 다니지 않았던 정빈이는 제가 읽어주는 책을 통해 한글을 깨쳤습니다.
학교 갈 준비를 하면서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이 일기 쓰기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이면지에 네모 칸을 인쇄해 준 종이에 열심히 쓰고 있는 중입니다.
아이들의 글쓰기는 아이 자신이 글쓰기를 즐거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랍니다.

정빈이는 일기 쓰기를 시작하더니 이제까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던 "화가"라는 꿈이 "작가"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글쓰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바뀌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아이들의 글쓰기에 도움이 될 만한 책으로는 윤태규 선생님의 『일기 쓰기 어떻게 시작할까』가 있습니다. 정빈이는 이 책 속에 소개 된 아이들의 일기 읽기를 무척 좋아합니다. 또래 아이들의 일기라 좀 색다르게 다가오는 가봅니다. 틀린 글자가 책에 그대로 있는 것도 신기해하는데 그것은 아이의 글쓰기를 한결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1장 일기 쓰기는 왜 실패하고 있는가"의 소제목만 잠시 소개할게요.

1. 글쓰기나 국어 공부를 시키려고 하기때문에
2. 특별한 일을 쓰라고 하기 때문에
3. 길게 쓰라고 하기 때문에
4. 잠자기 바로 전에 쓰기 때문에
5. 반성하는 일기를 쓰라고 하기 때문에
6. 사실만 쓰지 말고 생각이나 느낌을 쓰라고 하기 때문에
7. 일기장에 있는 잡다한 틀 때문에
8. 일기 검사 때문에
9. 숙제로 쓰기 때문에
10. 대신 써주기 때문에
11. 그림 일기로 시작하기 때문에
12. 어른들이 일기 쓰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의 입학을 앞두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이제까지 거의 집에서만 지내던 저희 아이는 또래 아이들과 본격적으로 어울리게 되는 것이 학교가 처음인지라서요.

그러던 차에 마침 조선일보에서 '초보 학부모'를 위한 조언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달라는 연락이 와 저 스스로를 정리해 볼 겸 몇 가지를 적어 보았습니다.

아래 글은 제가 처음 썼던 초고인데 지면이 한정되어 있어 2월 23일자에는 절반 정도로 줄어 든 글이 나갔었습니다.

7년 전 큰아이를 입학시켜본 엄마와 현직 교사, 두 입장에서 쓴 글입니다.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는 부모들은 설렘과 함께 적지 않은 걱정을 가지게 된다. 그런 예비 학부모들에게 늘 이야기하는 것이 '걱정할 것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학교와 선생님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갖자.
이것은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학교와 선생님에 대한 아이의 선입관에 따라 아이들의 학교 생활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해도 그리 틀리지 않을 정도로 아이들에게 있어 학교와 선생님에 대한 생각은 매우 중요하다.
'너 그러면 선생님에게 혼난다.', '1학년이나 된 아이가 행동이 이게 뭐야? 학교에서 이렇게 가르치든?', '1학년이 되었는데 아무거나 잘 먹어야지. 선생님께 혼내라고 해야겠다.' 등등 학교와 선생님에게 악역을 맡기지 말아주기 바란다. 아이가 작지만 긍정적인 행동을 보일 때 학교와 연관시켜 칭찬을 해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둘째, 학교에 가야하는 것, 배우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알게 하자.
예비 1학년인 정빈이는 피아노를 배우지 않았지만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한다. 시를 읽어 줄 때마다 배경 음악으로 피아노를 쳐 달라고 했더니 아이는 시에서 느낀 자신의 감정을 피아노로 표현하려 하면서 시와 함께 피아노와 친해졌다. 왜 배우느냐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중요하다. 아이들에게 배우는이유와 즐거움을 알게 해주자.
"학교에 가는 것은 공부를 하러 가는 것만이 목적은 아니야. 이제까지 가족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자라왔으니 이제는 네가 누군가를 도와줄 때가 된 거야. 학교에 가면 너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친구들이 많을 거야. 너는 수학을 좋아하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도 있어. 그 아이에게 네가 알고 있는 재미있는 수학을 가르쳐 줄 수 있잖아. 너는 그림도 잘 그리잖아. 만화를 그릴 때 눈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궁금해하는 아이도 있거든. 그걸 아주 다정하고 자세히 가르쳐 준다면 그 아이는 참 고마워할 거야."
학교에서 아이 자신의 역할에 대한 긍정적인 강화를 해주면서 학교 생활에서 자신이 주체라는 생각을 갖게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셋째, 7차 교육과정의 핵심을 알자.
'자기 주도적인 학습과 창의성'이라 정리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고력"이라 생각한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아이는 자신이 무엇을, 왜,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다양하고 창의적인 방법들을 생각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준비로는 "대화"와 "독서"를 들 수 있다. 아이의 생각을 열어 줄 수 있는 부모의 발문은 매우 중요하다.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오늘 어땠어?"라는 막연한 질문 대신
"오늘 수업 시간에 가장 재미있었던 일은 어떤 거야?", "선생님이 어떨 때 제일 좋은 것 같아?", "어떤 친구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 기억나는 거 이야기 해 줄래?" 등의 긍정적인 기억을 유도하는 질문을 하고, 연계적인 질문을 하여 아이가 상황을 제대로 전달하면서 자신의 생각도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도록 하자.
이렇게 아이와 대화를 하는 것을 글로 옮기면 일기 쓰기나 글쓰기로 쉽게 연결시킬 수 있어 쓰기에 대한 부담도 덜 수 있다. 이 때 국어사전을 옆에 두고 새로운 어휘들을 익혀 가는 것도 좋다.
또한 아이들에게 일정 시간 책을 읽어주는 것을 권한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면 선생님이나 다른 사람의 말에 집중하는 능력이 커진다. 영어 듣기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말 듣기는 그 수 십 배로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시간을 꼭 가졌으면 한다. 나는 중학생에게도책을 읽어주고 있다.
식탁에 마주 앉아 책을 읽어 주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하다보면 '매일 일정 시간 책상 앞에 앉기'에 대한 효과도 함께 얻을 수 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고 해서 자기 방에 책상을 사주고 혼자 앉아 있으라고 하는 것보다는 늘 앉던 식탁에 엄마와 마주 앉아 편안한 마음으로 서서히변화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좋다.
아이와 함께 하루일과표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다. 아이 스스로 생각하고 수정할 부분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얻는 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넷째, 아이에게 함께 하는 마음을 갖게 해주자.
학교라는 것은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생활의 작은 장을 경험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몸이 약한 우리 집 아이가 입학 준비물로 방석 대신 베개를 가지고 가겠다고 했을 때 한 말이다.
"만약 네가 베개를 가지고 학교에 가면 놀리는 아이가 있을지도 몰라. 그럴 경우에 속상해 할 필요도 없지만 그 아이를 미워하지 않기를 바래. 그 아이는 잘 몰라서 그런 거니까. 네가 왜 베개를 깔고 앉아야 하는지를 이야기 해주면 돼. 그런 것처럼 너도 다른 아이들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면서 화를 내거나 놀리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지. 다른 아이들이 왜 그런지를 알아보려 하고 친구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도 필요 해. 서로 이야기를 하다보면 좀 더 잘 알고 이해하게 될 거야."

다섯째, 준비물은 스스로 챙길 수 있도록 하자.
준비물에 대해서는 학교 앞 문방구에 완벽히 준비되어 있으므로 아이가 부모에게 제대로 전달만 해준다면 준비물에 대한 걱정은 거의 없다.
하지만 한 두 번 준비물을 챙겨가지 않아 난처한 경험을 하게 하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다. 아이가 준비물을 챙겨가지 않았다고 해서 중간에 갖다 주거나 문방구에서 외상으로 가져가게 하는 것은 멀리 내다보아 결코 좋지 않다. 학교 생활을 적어도 12년은 해야할 아이들이다. 그 첫 단추인 1학년에서 그런 단추는 잘 끼울 필요가 있다.

여섯째, 선생님을 편안하게 대하자.
나는 전적으로 선생님에게 아이를 맡겨두는 편이다. 직장 일로 바쁜 것도 사실이지만 1년 동안 아이의 공개 수업 참관 때를 제외하고는 선생님을 따로 찾아 뵌 적이 거의 없다. 스승의 날이나 학년말에도 아이 스스로 선물을 준비하게 했는데 아이가 준비하는 선물의 정성을 보면서 아이의 선생님에 대한 마음을 짐작하곤 할 따름이었다. 대신 아이와의 대화에서 선생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긍정적인 부분을 강화시켜주려 한 것이 전부였다.
선생님에게 보내는 가장 큰 촌지는 아이가 선생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학부형들에게서 아이가 선생님 이야기를 자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행복하다. 엄마의 선생님에 대한 믿음은 아이에게 엄청나게 많이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일곱째, 학교에 학부모의 의견을 전달하자.
맞벌이 부모가 늘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지역 주민의 참여라는 이름 아래 학교에서는 부모들의 학교 행사 참여를 늘리고 있는 약간의 모순적인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보조 교사나 1일 교사 등 학교의 학습 활동에서부터 그 외 많은 부분에서 학부모의 참여를 권하고 있지만 나 또한 직장인이고 보니 아이의 학교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 예로 급식 당번을 학부모에게 부탁하는 학교가 있다면 이런 방법을 제의해 보는 것은 어떨까?처음 얼마간은 상급생들이 도와주고 아이들 스스로가 해결 할 수 있도록 하자고 말이다. 우리 아이가 받은 도움은 그 아이가 상급생이 되어 또 다른 후배에게 돌려주게 하여 아이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자고.
함께 생각해 볼 문제라고 생각되면 선생님, 학부모회, 학교 홈페이지 등을 통해 의견을 제시해 학교와 학부모들이 함께 해결 방법을 찾아보자.

여덟 번째, '학교장 재량 휴업일'과 '체험학습'제도를 잘 이용하자.
아이들에게 여행만큼 좋은 것은 없다는 것에는 누구나 입을 모으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부모동행 여행학습을 이용하는 것이다. 멀리 있는 친지 방문에 이용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고 여행이라고 해서 굳이 멀고 이름난 유적지를 찾아 가야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면한결 폭이 넓어진다.
부모의 친구 집에 데리고 가는 것으로도 충분한 현장학습이 된다. 교통수단 찾기와 그 중 하나 선택하고 경험해 보기, 그 지역의 지도를 이용해 지도 사용법, 도로 안내판 보기, 그 집을 찾아갈 수 있는 약도 그리기 등으로도 좋은 현장학습이 된다.
카메라를 들고 우리 동네 탐험도 좋은 현장학습이다. 카메라 작동법, 동네 지도 그리기, 관공서의 종류와 그 역할 알기 등도 좋다.
'학습보고서 제출'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다는 사람이 많은데 간단한 내용을 요하는 것이므로 아이들과 함께 부담 없이 쓰면 된다.

아홉째, 선행학습은 너무 많지 않은 것이 좋다.
'너무 많이 가르쳐 보내지 말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러다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뒤쳐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의 소리를 자주 듣는다. 학교는 장거리 경주이다. 그것도 너무나 긴.
학교라는 곳이 '배우는 곳'이라는 인식을 갖는 것은 참 중요하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곳'이 되어버리면 그 아이는 그렇게 준비된 상황이어야 한다는 힘겨운 짐을 지게 되고 교실 수업은 지식을 교환하고 습득하는 곳이 아니라 순간적인 확인과 긴 지겨움을 가지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선생학습은 아이들의 학습 의욕을 떨어뜨리고 산만하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아이가 학교에서 배울 몫은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을 꼭 당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