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일요일에 세 모녀가 한 일을 알고 있다!

착한재벌샘정 2003. 6. 9. 11:22
주말이면 쉬어야 한다.

주말이면 철저한 잠만보가 되자. 아니, 정빈이 말처럼 슬리피 잠만보가 되자.(엄마는 잠만보 이야기로 바로 갑니다.)

이렇게 외쳐대지만 오늘처럼 남편이 없는 주말은 잠만보가 되는 것은 포기를 해야합니다.

일이 많이 밀려 일요일에 학교에서 일직을 하며 일을 좀 하려고 했었는데 남편의 출장으로 일직도 바꾸어서 아이들과 지내게 되었지요.

일도 못하게 되었고

아, 일요일에 쉬지도 못하겠구나, 하고 속상해 하실 줄 알았죠?

아니랍니다.

저의 특기가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즐기자." "상황을 바꿀 수 없으면 그걸 최대한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라." 라는 거 아시죠?

일단 저의 습관인 메모하기

① 내가 쉴 수 있어야 함

② 아이들도 재미있어야 함

스케이트장에 갈까? 놀이공원은?

내가 쉴 수 없어 안되겠다.

③ 아이들 목욕시키기

목욕탕엔 꼭 가야겠네. 그렇다면, 바로 그거야. 이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자.

내린 결론은 "온천 가기"와 "시댁 가기"

물론 이건 "딸만 있는, 시댁 가까이에 온천이 있는, 시댁이 시골인" 저만이 할 수 있는 계획이지요.

이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새벽에 온천에 가면 조용하니 아이들이 물에서 노는 동안 1시간 정도는 충분히 쉴 수 있고 아이들은 물에서 노는 것 좋아하니 더 할 나위 없고.

시댁에 가면, 일단 어머니께서 반가워하실 테고

'아범 출장 가고 없는데 저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오다니'하면서 좀더 점수를 주실 지도 몰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얼마 전 강아지가 태어났다며 강아지 보러 가자고 그렇지 않아도 졸라대던 차에, 날씨도 따뜻하고 하니 밖에서 놀기도 좋겠어.

남편에게도 점수를 좀 딸 수 있지 않을까?

같이도 잘 가지 못하는 시댁에를 자기 없을 때 나 혼자 아이들 데리고 간 걸 알면 ……

오!!!! 이렇게 머리를 굴리다니.

그렇게 계획을 세우고 나니 기분이 엄청 좋은 거 있죠!!

안개가 낀 도로를 달리는 기분, 그 거 참 말로 좋더군요.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더라니까요.

이제는 폐교가 되어버린 남편이 다녔던 초등학교가 보이는 곳에서 바라 본 마을 뒷산의 가을 풍경은 저절로 감탄을 자아내고요.

지난 일요일에 앞산 등산을 할 때는 앞산 정말 좋다 라는 제 말에

"제가 보기에는 화왕산이나 앞산이나, 그게 그거구만. 뭐가 좋다고 그러세요."

하던 예슬이도 안개 속에 몇 줄기 햇살을 받은 가을 산의 풍경에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더군요.

정빈이가 요즈음 "홀딱 벗은 그림"에 정신이 팔려 있던 차에 목욕탕에 온지라

"너 오늘 홀딱 벗은 사람 실컷 보겠네."

했더니 좀 쑥스러운지 씨익 웃더군요.

예슬이가 성경에 관심이 많아 산 책이었는데 정빈이와 제가 더 자주 보는 책이 있어요.

【명화로 읽는 성서】

이 책에 있는 마솔리노의 『유혹에 빠진 아담과 하와』를 보고는 이런 관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제가 책장 접는 걸 싫어하는데 정빈이가 책마다 자기 표현으로 "홀딱 벗은 사람이 있는 그림"이 있는 페이지는 한 귀퉁이를 조금씩 접어놓았지 뭡니까?

얼마 전까지 남편을 따라 남탕에 갔었던 정빈이인지라 별로 관심을 끌만하지도 않을 것 같은데,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덕분에 그림이 있는 책들을 끼고 삽니다.

오늘의 목적은 때를 미는 것이 아니라 나는 쉬고 아이들은 물놀이를 하는 것이니 '때를 미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기로 하고 1시간 넘게 저는 쉬고 아이들은 물에서 신나게 놀았지요.

바나나 우유도 하나 씩 마시고.

예슬이는 거금 만원을 투자하여 - 스케이트장 간 셈치고 - 아주머니께 때를 밀고 정빈이와 저는 대충 흉내만 내고 말았지요.

그렇게 온천을 나와 시댁으로 갔습니다.

강아지들을 낳은 어미 개가 아이들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 아쉽지만 강아지는 만지기는 커녕 가까이 에서 보지도 못했어요.

그래도 아이들은 따스한 햇살 아래 신나게 놀더군요.

【거실에서 바라 본 풍경】

저희 시댁 전경이 정말 끝내줍니다. 앞에 가리고 있는 것 없이 훤히 앞산이 보이거든요.

가을이 듬뿍 느껴지시죠?

【해리포터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

강아지를 만지지 못하게 되자 곧 찾아 낸 놀이가 해리포터가 빗자루를 타고 나는 걸 해본다며 대나무 막대로 재미있게 놀고 있습니다.

【정빈이가 떨어뜨린 책을 꺼내고 있는 예슬이】

정빈이가 들고 간 책을 말리고 있는 벼 위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꺼내느라 노력 중 입니다.

벼를 왜 말리느냐는 질문에 가정 시간에 배웠던 기억을 떠올려 식품 보관하는 방법에 대한 긴 강의가 있었습니다.

식품을 오랫동안 보관하는 방법에는 건조법, 산 저장법, 하면서…….

예슬이는 제대로 듣지도 않고 '알았어요, 알았다니까요.'를 연발하더군요.

【벼를 한 알씩 줍고 있는 아이들】

벼 몇 알이 깔아 놓은 비닐 밖으로 퉁겨 나온 걸 정빈이가 줍고 있는 중입니다.

할머니와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게 농사를 지었는지를 다 알지는 못하여도 조금은 느끼는 모양인지 한 알 한 알 주워 담더군요.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돌아 온 저는 드디어 잠만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카레라이스를 먹고 싶다는 정빈이의 말에 그렇잖아도 요리하고 싶다고 노래를 하던 예슬이가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 내려 장을 봐서 저녁을 해준다지 뭡니까?

예슬이는 감자를 깍고 당근을 썰고 하면서 오늘 저녁을 맛있게 해, 이모까지 초청을 해 요리 솜씨 자랑을 했답니다.

【카레라이스를 만들고 있는 예슬이】

옷도 갈아입지 않고 요리를 하느라 정신없습니다.

저희 세 모녀의 일요일 하루, 부럽지 않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