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아래에서부터 발등까지. 발톱은 빠졌다가 다시 난 것이다.
어릴 적 화상으로 인한 흉터이다.
내가 어릴 적에는 연탄 아궁이가 부엌 바닥에 있어 솥이나 냄비를 연탄불 위에 얹으면 솥뚜껑이나 냄비뚜껑이 부엌 바닥과 비슷한 위치가 되는 집이 많았다.
우리 앞집의 부엌도 그랬었다.
난 앞집의 나보다 한 살 많은 언니 겸 친구와 잡기 놀이를 하다가 그 부엌으로 뛰어 들어갔고 엉겁결에 연탄불 위에 얹어 둔 솥뚜껑을 밟았는데 내 오른쪽 다리가 국수를 삶으려고 얹어 둔 솥의 끓는 물에 빠져 버린 것이다.
그 사고로 나는 긴 시간을 병원 생활을 했고 오른 쪽 다리에 큰 화상 흉터를 얻게 되었다.
종아리 부분에는 앞부분만 손바닥만한 흉터가 있고 뒤쪽 부분에는 흉터가 없으니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지.
어릴 적에는 이 흉터 때문에 마음이 아픈 일도 많았었다.
초등학교 시절에 용의 검사를 한 적이 있었다.
겨울에는 뜨거운 물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하니 발을 씻지 않는 아이들이 많았기에 담임 선생님께서 발 검사를 하신 것이다.
나는 오른쪽에 앉아 있었기에 두 분단 사이를 걸어가면서 선생님이 "발"하면 양말 벗은 오른쪽 발을 선생님께로 내밀어야 했다.
나의 화상 흉터는 특히 발목과 발등 부분에 많다.
색깔도 마치 오래 된 때가 꼬질꼬질하게 붙어 있는 것 같이 거무칙칙하고 얼룩덜룩 무늬마저 있는 터라 선생님의 눈에는 아마 몇 년은 씻지 않은 발로 보였던 모양이다.
선생님은 가느다란 대나무 회초리로 내 발등을 때리시면서
"여자 발이 이게 뭐냐? 도대체 태어나고는 물 한 번 구경 못한 발 같구나. 이 때를 벗기려면 솥 씻는 수세미정도는 있어야겠네. 빡빡 밀어 씻고 오도록."
난 그게 화상 흉터라는 말은 차마 못하고 때 투성이의 내 발을 구경하려 고개를 빼는 친구들의 얼굴을 피하려 고개만 숙일 뿐이었다.
그 날 밤 나는 철수세미로 내 발목과 발등의 피부가 거의 다 벗겨지도록 문질러대며 엉엉 울었었다.
피가 베어 나왔고 딱지가 앉았다가 그 딱지가 떨어졌지만 내 발목과 발등의 흉터는 그대로 였다.
다음 발 검사 시간에는 그 딱지 흔적까지 남아 발은 더 더럽게만 보였고 선생님은 그런 나에게 긴 잔소리를 늘어 놓으셨다.
그리 길지 않은 겨울이었지만 겨울 방학을 할 때까지 선생님의 발 검사 때마다 나는 …….
난 왜 그때 씻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고 화상 흉터 때문이라는 말을 끝끝내 하지 못했을까?
중학생이 되던 해에는 막내 동생이 큰 화상을 입는 사고가 생겼다.
외아들에게 시집와 딸 넷을 내리 낳고 얻은 우리 어머니의 목숨과도 같은 막내 외동아들이 목숨을 잃을 지경의 큰 화상을 입은 것이었다.
그 일로 나는 참 많이 맞았었다. 그 당시 유행을 하던 보라색 반짝이 수술이 달린 먼지떨이의 자루로 어머니에게 참 많이 맞았었다.
내가 어린 시절 화상을 입은 날 어떤 고승이 우리 집 앞을 지나다가 이런 예언을 했었단다.
"맏이가 화상을 입었으니 이 집의 막내가 큰 화상을 입어 목숨을 잃거나 목숨을 건지더라도 크게 흉터가 남게 될 것이다."라고 말이다.
어머니는 막내 동생이 화상을 입은 것이 그 고승의 예언처럼 내가 화상을 입었기 때문에, 까불다가 남의 집 국수 솥에 빠져 다리를 데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이라면서 말이다.
막내는 정말 큰 화상을 입었고 회복하는데 해를 넘길 정도의 긴 시간이 걸렸다.
다행이 목숨은 건졌지만 두 팔과 두 다리, 허리, 엉덩이 부분에 큰 흉터가 남게 되었다.
무슨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
내가 화상을 입었는데 왜 막내가 나 때문에 화상을 입는단 말인가?
도대체 그 스님은 어떻게 그런 예언을 하셔서 나를 그토록 힘든 죄의식 속에서 사춘기를 보내도록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머니의 가슴 아파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동생의 몸에 있는 흉터를 볼 때마다 내 심정이 어떠했는가를 알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막내는 자신의 흉터를 남들이 보는 것을 싫어 해 대구의 그 더운 여름에도 긴소매에 긴 바지를 입고 땀을 비오듯이 흘리면서 여름을 보내곤 했었다.
한 번은 그런 동생의 모습에 너무 화가 나서 막내 동생을 한 번 크게 때린 적이 있었다.
"사내자식이 그 정도도 이겨내지 못한단 말이야?누나는 여자라도 이런 다리 훤히 내 놓고 다니는데."
하면서 동생의 뺨과 등을 때리고 또 때렸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막내의 팔다리에 있는 흉터는 거의 거짓말같이 희미해져갔고 조금씩 남아 있는 흔적도 막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짧은 옷들을 잘 입고 다니는 스물 일곱의 멋진 청년이 되어 지금은 자신이 긴 시간을 목숨을 걸고 투병 생활을 했던 바로 그 대학 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하느라 요즘 고달프고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화상 흉터로 인한 아픈 기억이 어디 이 것 뿐이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요즈음도 많은 사람들은 내 오른쪽 다리의 화상 흉터를 보면 조금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난 그들에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몸에 있는 이런 흠이야 뭐 그리 문제가 되겠어요. 마음에 이 정도의 흠이 있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 흉터가 어찌나 고마운 존재로 바뀌었는지.
"어머니 제 팔 좀 보세요."
"긁지마. 벌레에 물렸나 보다. 긁어서 덧나면 흉터 생겨. 팔에 흉터 생기면 안 되잖아."
정말 별 생각 없이 나눈 큰 아이와의 대화였다.
그런데 옆에서 우리의 말을 듣고 있던 작은아이가 갑자기 홱 돌아앉으며 하는 말에 가슴이 콱! 하고 미어져 왔다.
들릴 듯 말 듯 혼자서 중얼거리는 말.
"내 몸에는 흉터가 얼마나 많은데."
아이 가슴에 있는 수술자국.
잠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돌아앉은 아이의 작은 몸뚱이를 바라보는 내 눈이 젖어 오려했다.
"아니야. 이런 일로 울지 않기로 했잖아. 이 정도로 울면 이영미가 아니지."그러면서 나는 아주 쾌활하게 아이를 내 쪽으로 돌려 내 품에 안으며
"엄마 다리 한 번 봐. 엄마 다리에 있는 흉터 너 알지? 자 봐. 우와∼ 크다. 이 발 좀 봐라. 여기는 쭈글쭈글하네. 에구 얼룩덜룩 한 것이 발을 안 씻은 거 같다, 그지?엄마가 이거 어떡하다 생겼다고 했지?"
"다리미에 데어서."
아이가 다림질하는 내 곁에 오려할 때마다 내 다리를 쪽 펴 보이며
"어비야, 다리미 옆에 오면 안 돼요. 엄마 다리 좀 봐. 다리미에 데어서 이렇게 되었다."
라고 말을 하곤 했기에 우리 아이들은 엄마 다리는 다리미 때문인 줄 알고 있는 것이다.
"엄마는 이렇게 흉터가 많은데 이 것 때문에 속상해 하든?"
"그래도 흉터가 있는 건 싫어요."
"맞아. 없는 것보다는 못하지.
하지만 네 가슴에 있는 수술 자국은 너를 살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빈이가 엄마랑 살지 못하게 될 형편이었거든.
엄마는 널 그렇게 해서라도 엄마 곁이 두고 싶었거든.
그리고 정빈이가 건강해지고 밥 많이 먹고 쑥쑥 자라면 의사 선생님이 정빈이 가슴에 있는 흉터 없애 주신다고 약속했어."
"흉터 없어지게 할 수도 있어요?"
"그럼, 당연하지. 엄마가 몇 번이나 말 했었잖아. 없앨 수 있고 말고."
"그럼 왜 어머니 다리에 있는 흉터는 없어지게 안 했어요."
"이거? 다 쓸모가 있어서 그냥 둔 거야.
엄마가 이 흉터 그대로 두지 않았으면 너희들이 화상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모를 거 아냐.
엄마가 그냥 다리미에 데면 큰일나, 해도 어떻게 큰일이 나는지 잘 알 수가 없잖아.
그런데 엄마 다리에 이렇게 흉터가 턱하니 있으니 얼마나 설명하기 쉬워. 다리미가 닿으면 엄마 다리처럼 이렇게 된다, 이러면 금방 알 수 있으니까."
"그럼 어머니는 우리 낳을 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언니랑 저한테 쉽게 설명해줄려고 안 없애고 그냥 둔 거예요?"
"그렇지, 그렇지!
엄마는 너희들을 낳을 줄 따악 알고 있었지. 그래서 이렇게 너희들에게 보여주려고 안 없애고 그냥 둔 거야. 지금도 당장 없앨 수 있어."
"그럼 의사 선생님께 없애 달라고 하세요."
"싫어."
"왜 싫어요."
"정빈이랑 더 비슷하니까. 언니와 아버지는 없는데 엄마와 정빈이만 흉터가 있잖아."
"우리 둘이 똑 같은 거예요?"
"그렇지."
"어머니, 저랑 똑 같아 지려고 일부러 다리미에 데었어요? 내가 흉터가 생길 줄 알고?
우와∼∼, 어머니는 정말 요술 망원경이 있군요. 그걸로 다 보고 알았죠? 진짜 우리는 똑같네요. 아버지와 언니는 없는데. 으음, 제가 어머니께 뽀뽀해드릴게요."
아이는 갑자기 내 뺨에다 뽀뽀를 쪽쪽 해대며 우리 정말 똑같아요, 하며 박수를 짝짝 치기까지 한다.
"그런데 제 흉터는 언제 없게 할 수 있는데요?"
"정빈이가 크면."
"얼마큼 크면요?"
"정빈이가 언니만큼 키가 크면."
"그럼 우리 같이 없애면 되겠다. 그럼 우린 또 똑같아 지겠네요."
"아니, 엄마는 안 없앨 거야."
"왜요?"
"나중에 우리 정빈이가 결혼해서 예쁜 아가 낳으면 그 때 보여주려고."
"아아, 우리 아가가 다리미 옆에 갈까봐서 그러죠. 그 때 보여주려고 그러죠?"
아이는 갑자기 허리를 굽히고 한 손을 지팡이 짚는 흉내를 내면서
"아가야, 다리미 옆에 가다가 데이면 이렇게 된단다."
하며 목소리까지 할머니처럼 꾸며 말하고는 까르르 웃는다.
그 웃음에 난 또 눈시울이 젖어 오려한다.바보같이 왜 이러는 거야.
그러면서 내 다리의 흉터를 내려다본다.
아, 이게 없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천국의 열쇠♥
【본문 중에서】
물밀 듯이 추억의 물결이 밀려온다.
고지식하고 무뚝뚝한 젊은 신부가 중국 소년 하나만을 데리고 화로 앞에 앉아 있다.
그 옛날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다. 까만 색의 양철 트렁크를 제대로 해서 복사도 없이 홀로 그 최초의 감격적인 미사를 올린 것도 그였다.
그는 그대로 그 자리에 부자유스러운 몸으로 서툴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탄원했다.
"제발 행위로서가 아니라, 그 의도를 보아 내 생애를 심판하소서……."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1986년도 판이다.
아마도 그 해 늦가을에 만나 겨울 내내 내 손끝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누렇게 변해 버린 406쪽의 깨알같은 글씨 하나 하나에 내 눈길이 수없이 닿았던 책.
난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 일이 많은데, 오늘 같은 날 아이가 잠든 사이 책장 앞에 서면 늘 손이 가곤 하는 책이 바로 이 <천국의 열쇠>이다.
16년째 나는 이 책 속에서 누구를 몇 번이나 만난 것일까?
아는 이의 결혼식 말고는 성당이라고는 가 본 적이 없는 나.
하지만 나는 이 책 속에서 나를 따뜻한 마음으로 격려해주는 누군가를 만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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