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종이 봉지 공주>와 <엄지 공주>

착한재벌샘정 2003. 6. 9. 11:22
지난 화요일에 친정의 막내 동생이 의과 대학을 졸업을 하고 언니의 딸이 의대 본과 4학년에 올라갔다.

막내 동생은 남자라는 이유로 인턴 자리 구하는데 별로 어려움이 없다는데 입학부터 지금까지 줄곧 1등만 해오고 있는 언니의 딸은 단지, 정말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자신이 원하는 "안과"를 지원할 수 없어(안과는 처음부터 여자를 뽑지 않는단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 하지만 엄연한 사실!!)엄청난 마음에 상처를 받고 있다.

언니는 "꼴찌를 해도 아들을 보내야지…"하면서 분을 삭이지 못하고.

그 걸 지켜보는 나는 괜히 막내 동생에게 눈을 흘기며 목소리를 높이고. 그런게 어디있느냐고?

그러나 엄연히 있는 걸 어찌할거나?

학교에서 내 업무중의 하나가 "교과서 담당"이라서 오늘 선생님들께 새 교과서를 나눠드리기 위해 지하의 책 창고에서 5층 교무실까지 50여권의 책을 들고 낑낑거리며 올라갔더니 새로 오신 여자 교감 선생님

"이런 일은 남 선생님이 해야지, 이런 힘쓰는 일을 어떻게…"하시는게 아닌가?

물론 날 위해 하신 말씀인 줄 알지만 고마운 마음은 접어두고 난 이렇게 말했다.

"학교 업무중에 남자 여자 일이 따로 있겠어요. 전 기운이 세기 때문에 이런 일도 잘해요."

난 아이들을 "여자"가 아닌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데…

세상에는 "여자"와 "남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여자"와 "사람"이 있다던 누군가의 말이 오늘 하루종일 내 머리 속을 채우고 있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의지를 나타내지 못하고 행복해지는 "엄지 공주"

오늘은 나와 우리 집 아이들이 참 좋아하는 "종이 봉지 공주"의 원문 전체를 올리는 것으로 내 심정을 전하고 싶다.

[서점에 가면 이 책 한 번 보세요.]

###종이 봉지 공주###

<본문 전문을 올립니다.>

엘리자베스는 아름다운 공주였습니다.

엘리자베스 공주는 성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 성에는 비싸고 좋은 옷들이 많았습니다.

공주는 또, 로널드 왕자와 혼인해서 행복하게 살 참이었습니다.

어느 날, 무서운 용 한 마리가 나타나 공주의 성을 부수고, 뜨거운 불길을 내뿜어 공주의 옷을 몽땅 불사르고 로널드 왕자를 잡아가 버렸습니다.

공주는 용을 뒤쫓아가서 왕자를 구해 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옷이 몽땅 타 버려서 입을 것을 찾아야 했습니다.

공주는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그 때에 종이 봉지 한 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공주는 종이 봉지를 주워 입고 용을 찾아 나섰습니다.

용을 찾기는 아주 쉬웠죠.

용이 지나간 길목에 있는 숲은 모두 타버리고, 그 자리엔 말 뼈들만 뒹굴고 있었으니까요.

마침내, 공주는 어느 동굴 앞에 다다랐습니다.

동굴엔 굉장히 큰 문이 달려 있었고, 문 두드릴 때에 쓰는 쇠붙이도 커다랬습니다.

공주는 쇠붙이를 잡고 문을 쾅쾅 두드렸습니다.

용이 문밖으로 삐죽이 코를 내밀었습니다.

"와아, 공주님이시로군! 난 공주를 좋아하지. 그런데 오늘은 이미 성 한 채를 통째로 삼켜서 배가 부른 걸. 난 지금 몹시 바빠. 그러니 내일 다시 와."

용은 문을 왈칵 닫았습니다.

그 바람에 공주는 하마터면 문에 코를 찧을 뻔했습니다.

공주는 쇠붙이를 잡고 다시 문을 쾅쾅 두드렸습니다.

용이 도 문 밖으로 삐죽 코를 내밀었습니다.

"가, 가라니까. 난 공주를 좋아해. 그런데 오늘은 이미 성 한 채를 통째로 삼켰다니까. 난 지금 몹시 바빠. 그러니 내일 다시 와."

공주가 물었습니다.

"잠깐만, 네가 이 세상에서 가장 머리가 좋고, 가장 용감한 용이라던데, 정말이니?"

"그럼 정말이지."

"네가 불을 한 번 내 뿜으면 숲 열 군데가 한꺼번에 타 버린다던데, 정말이니?"

"그럼 정말이지."

용이 숨을 깊이 몰아 쉬더니 활활 불을 내뿜었습니다.

숲 쉰 군데가 한꺼번에 불에 타버렸습니다.

공주가 말했습니다.

"너 정말 멋지구나."

용이 다시 한 번 큰숨을 들이쉬고 활활 불을 내뿜었습니다.

이 번엔 숲 백 군데가 타 버렸습니다.

공주가 말했습니다.

"너, 참 무시무시하구나."

용은 또다시 숨을 깊이 들이쉬었으나, 이번엔 헛바람만 나왔습니다.

이제 용에게는 달걀 한 알 익힐 만큼의 불씨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공주는 또 물었습니다.

"용아, 네가 하늘로 날아오르면 십 초 안에 세상을 한 바퀴 돌아올 수 있다던데, 그것도 정말이니?"

"아 참, 정말이라니까."

용은 훌쩍 뛰어 날아서 꼭 십 초 만에 세상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용은 몹시 지쳐서 돌아왔습니다.

공주가 말했습니다.

"너 참 멋지구나. 한 번 더 해 봐!"

용은 훌쩍 뛰어 날아서 세상을 또 한바퀴 돌고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이십 초 걸렸습니다.

이제 용은 너무 지쳐서 말도 못하고 픽 쓰러져 곯아 떨어졌습니다.

공주는 작은 소리로 "얘, 용아!" 하고 불렀습니다.

용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공주는 용의 귀에다 머리를 들이밀고 목청껏 소리쳤습니다.

"얘, 용아!"

용은 너무 지쳐서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공주는 훌쩍 용을 타넘어 동굴로 가서 문을 열었습니다.

로널드 왕자가 안에서 튀어나왔습니다.

왕자는 공주를 보더니 대뜸 이렇게 말했습니다.

"엘리자베스, 너 꼴이 엉망이구나!

아이고 탄내야.

머리는 온통 헝클어지고, 더럽고 찢어진 종이 봉지나 뒤집어쓰고.

진짜 공주처럼 챙겨 입고 다시 와!"

공주가 말했습니다.

"그래 로널드, 넌 옷도 멋지고, 머리도 단정해. 진짜 왕자 같아.

하지만 넌 겉만 번지르르한 껍데기야."

결국, 두 사람은 혼인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