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엄마와 응?, 어머니와 네

착한재벌샘정 2005. 8. 30. 02:17

 너무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잘 지내시고 건강하시죠?

가을의 문턱에서 드리는 인사라 가을 냄새가 풍기는 사진 선물부터 드릴게요.

지난 일요일 시댁에서 찍은 것으로 홍시가 되어가고 있는 감과 붉게 익은 고추입니다. 고추는 세 번째 수확을 한 것인데 아직도 나날이 붉게 익어가고 있는 고추들이 무척 많답니다. 이번 주에도 고추 따러 가야 할 것 같아요.

 


 


 

이미 홍시가 된 감도 있어 올 해 들어 처음으로 감나무의 감을 따먹어도 보았습니다. 고추 밭에서의 비지땀도 글로 다 옮기지 못하겠지만 마당에서 빨리 마르라고 꼭지를 짧게 자르면서 느꼈던 그 뿌듯함은 더더욱 옮기기가 어렵습니다. 이 고추의 모종을 심을 때 정빈이가 300백 포기가 넘는 것에다 주전자로 물을 주었었답니다. 그래서 그런 지 올 해 고추는 더더욱 살갑(?)기 까지 하답니다.

 

방학 하는 날 글을 올리고는 처음이죠?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8월 3일에 제가 손가락을 심하게 다치는 바람에 컴퓨터를 하지를 못했습니다. 마디 부분이었고 깊게 심하게 두꺼운 유리에 찔리는 바람에 지금도 손가락을 굽히는 것이 힘겹고 한번씩 통증에 깜짝 깜짝 놀란답니다. 하지만 이렇게 컴퓨터로 글도 쓰게 되었으니 거의 다 나은 거겠지요. 그리고 정빈이가 아팠답니다. 이번 여름 휴가 여행이 정빈이에게는 무리였던 모양이에요. 하지만 정빈이도 이제는 정말 많이 좋아졌답니다.

 

방학 하자마자 예슬이 보충수업 시작하기 전에 얼른 다녀와야 한다고 방학도 하지 않은 정빈이를 부모동행학습으로 휴가를 다녀왔고 휴가 다녀와서는 7월 25일부터 교육과학 연구원에서 있었던 대구시 고등학교 생물교사 실험 연수에 강사의 한 사람으로 강의를 했었습니다. 까마득한 선배님들부터 대학 동기, 후배에 제자, 그리고 지금 예슬이 반에 수업 들어가시는 선생님까지.... 그 부담감은 장난이 아니었지만 제게는 더 없이 좋은 경험의 시간이었습니다.

연수 받으시는 선생님들도 마지막에 시험을 치르시는데 그 날 마침 제가 오전에 강의가 있는 날이라 시험 칠 선생님들을 위해 그 전날부터 불려서 준비해 둔 쌀로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약밥을 50인분이나 했었답니다. 약밥을 가끔 하기는 하지만 한꺼번에 그렇게 많이 하기는 처음이었는데, 역시 누군가를 위해 한다는 건 제게 큰 기쁨을 주더군요.

 


그렇게 7월의 마지막 부분을 강의 때문에 정신이 없어 휴가 다녀 온 글을 8월에 올려야지 했었는데 그만 손을 다치는 바람에....

여행은 예슬이 보충 수업 전에 두 번, 보충 끝나고 한 번 갔었고 참 많은 이야기 거리가 있었는데 이제는 너무 지나버린 일이라 다음에 이야기 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오늘은 제목처럼 아이들의 말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지난 토요일에 저희 집은 좀 부산스러웠습니다. 저희 가족이 저와 두 아이가 함께 쓴 '요리로 만나는 과학교과서'로 인해 9월 9일에 EBS 교육방송의 <생방송>- 60분-부모라는 프로그램에 출연을 하게 되었는데 그날 방송에 필요한 자료 화면을 집에서 촬영했거든요. 책으로 인해 나가는 거니 남편이랑 아이들과 함께 요리도 하고 과학도 이야기 하는 것을 찍었는데 방송이라고 특별히 신경을 쓰지도 않은 성격이거니와 그저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는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으로 임했는데 너무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같이 장을 보는 것을 찍으러 동네 마트에 갔는데 장을 보러가면 카트를 제가 끌거든요. 남편 왈,

"저번에 서울 가서 보니까 서울에는 전부 남자들이 이거 끌던데... 내가 끌까?"

"그냥 평소 하던대로 해요. 우리 사는 거 그냥 보여주는 건데 있는 그대로만 하면되요."

"그래도 이거 방송 나가면 저 위쪽(서울) 남자들 고개를 갸우뚱하고 위쪽 아줌마들은 놀랄텐데."

"거참, 놀라는 건 위쪽 사람들 몫이고 우린 우리대로 살아가는데 뭐가 문제에요? 늘 이건 기운 센 내가 끌잖아요. 아닌 걸 꾸며서 하는 건 우리 성격에 안 맞으니 그냥 해요. 내가 끌테니 당신은 평소대로 그냥 따라와요."


그런데, 그런데요 촬영하러 너무 일찍 오는 바람에 저는 세수도 못한 채로 찍혀야 했답니다. 주5일제 수업으로 모두 집에 있는 토요일이라 조금 늦게 까지 자는 바람에...양치질만 하고 아침 먹고 머리 감으면서 세수해야지 했는데 아침 먹은 뒷정리도 덜 끝내서 오시는 통에 어쩔 수 없이 그냥 세수도 머리도.... 딴 식구들 저만 아침 준비하게 두고 자기들은 전부 말끔하게 씻었더구만요. 흑흑


학교가 개학을 해 수업을 바꾸어야 하는 상황이라 많이 갈등을 하다가 출연 결정을 했는데 인터뷰라면 고개를 젓는 두 아이들도 이번에는 같이 촬영을 하겠다고 해 무척 고마웠답니다. 자료 화면에는 네 식구가 모두 나오지만 학교 때문에 스튜디오에는 예슬이를 뺀 남편과 정빈이와 함께 갈 예정입니다.


촬영을 모두 마치고 난 다음에 정빈이가 이러는 겁니다.

“어머니, 오늘 저 잘했어요?”

정빈이가 그렇게 묻는 데는 까닭이 있었답니다. 그날 촬영을 하면서 어찌 된 일인 지 평소하고는 달리 예슬이와 정빈이 모두 제가 부르면 ‘네’라고 대답할 때 보다 ‘응?’이라고 대답을 하는 겁니다. 글로 표현하려니 많이 어렵네요. 물음표 보이시죠? 아이들이 저에게 대답은 하는데 응도 아닌 것이 엉도 아닌 것이 너무 어색하고 어정쩡하게 ‘응과 엉’ 사이를 발음하면서 ‘네’ 할 때처럼 끝이 내려가지 않고 질문을 하듯이 그 끝이 올라가는 겁니다. 그리고 저를 부를 때도 ‘어머니’보다는 ‘엄마’라는 말을 더 자주하고 특히 PD나 작가의 질문에 대답을 할 때는 전부 ‘엄마’라고 하더군요.

정빈이도 그 부분을 느껴졌던 모양이라 자신이 잘 했느냐고 물었던 겁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더군요.

“카메라가 있으니까 긴장되고 어색해서… .”

긴장되고 어색해서이기도 했겠지만 저는 그 날의 일을 곰곰 생각해보고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아이들과 대화를 할 때는

“정빈이가 어머니 도와줘.”

“예슬이가 어머니 대신에 정리 부탁해.”

그런데 피디나 작가가 아이들에게 물을 때는

“엄마하고 요리 하는 거 재미있어?”

“엄마가 언제 제일 신나하는 것 같아?”

“엄마에게 점수를 준다면?”

차이를 아시겠죠?

엄마 어떤 사람이야, 라는 질문에 대답을 하려니 긴장 된 상태에서 질문한 사람의 말을 따라 엄마는 이런이런 사람이에요, 라고 말을 하게 되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물론 저희 아이들이 저를 부를 때 절대 엄마라고는 하지 않고 100% 어머니라고만 부르지는 않지만 그 날 아이들의 말은 저도 좀 놀랐고 아이들 스스로도 그랬던 모양이었습니다.

엄마는 안 되고 어머니만 된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라는 거 아시죠? 하지만 저는 아이들에게 저에게 ‘어머니’ 남편에게 ‘아버지’라고 말하기를 권합니다.


제가 예전에 쓴 책에서 친정어머니께 존댓말을 쓰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한 것이 있는데 그 일부분을 옮겨 와 보았습니다.


<엄마라고 부른다고 존경하는 마음이 없는 게 아니다. 하지만 난 우리 마음속에 있는 마음들을 매일 하는 말로서 표현하기를 권하고 싶다. 말이란 마음가짐을 다잡는데도 참으로 큰 도움을 준다. 가끔 서운하고 속상한 일이 있어도 ‘아이, 엄마는’하면서 꺼내는 감정과 ‘그런데 어머니’하면서 꺼낼 때 내 감정이 참으로 다르지 않겠는가. ‘엄마’와 ‘어머니’ 사이에는 겨우 한 글자 차이 밖에 없지만 그로 통해 나오는 감정의 깊이와 넓이는 엄청난 것이다. 아이들도 존댓말을 쓰면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많은 감정이 걸러진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엄마에게 뭔가 불만이 있어 그 불만을 이야기 할 때 ‘아이씨, 엄마는’이라고 쉽게 뱉어지지만 ‘아이씨, 어머니는’이라고는 잘 하지 않으니까. ‘어머니’라고 말하는 과정에서 차올랐던 자신의 감정이 한숨 누그러지면서 부드럽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난 우리 아이들에게 좀 엄하게 강조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존댓말 사용이다. 두 아이 모두 참으로 잘 따라주지만 요즘 세태가 ‘엄마’, ‘아빠’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고 그 말 뒤에는 쉽게 반말이 따라 오게 되니 우리 아이들도 가끔 ‘엄마, 이게 잘 안 돼.’, ‘아빠, 저 인형 사주면 안 돼?’라고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친구처럼 말하면 안 되지.’라는 한마디를 꼭 한다.>

 


이번 촬영을 끝내고 촬영 동안 제가 느낀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예슬이와 정빈이에게 다시 한 번 ‘엄마’ 대신 ‘어머니’라는 말을 썼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했습니다. 그리고 새삼 아이들의 언어는 어른들의 몫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지요.

그날 아이들이 그렇게 말을 한 것이 ‘엄마’라고 말을 했었던 PD나 작가의 탓이는 이야기도 그리고 그분들이 잘못했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랍니다.(혹여 그 분들 이 글 보시고 오해하시고 맘 다칠까 걱정이 되네요. 소심한 저의 모습 보이시죠?)

‘엄마’라고 부르면서도 저보다 어머니를 더 많이 사랑하고 더 존경하는 분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도 압니다.


제가 오늘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언어 환경의 중요성입니다. 정빈이 말처럼 긴장되고 어색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물어져 오는 말들을 무의식중에 따라하게 된 다는 거죠. 그날처럼 특수한 경우도 그렇겠지만 아이들의 일상에서의 언어는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거든요.

‘인성 교육’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저는 인성은 <의도된> 교육에 의해서보다는 그저 ‘젖어드는 것’이 훨씬 크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큰 환경은 부모, 가족일 겁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또래 친구들의 영향도 크게 받고요.

아이들에게 부드럽고 따뜻하게 말해 주기로 해요. 우리가 아이들에게 해주는 말투가 그대로 아이들을 통해 우리와 세상을 향해 되돌아 나온다는 것을 기억하기로 해요.

정빈이의 톡 쏘는 말투에 저를 되돌아봅니다.

예슬이의 짜증 섞인 말에 저를 되돌아봅니다.

그 아이들은 곧 저의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아, 거울.

어떤 아이의 싸이 홈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웃기기 힘든 것은 거울일 것이다. 거울은 내가 먼저 웃기 전에는 절대로 웃지 않기 때문이다.’

참 가슴에 남는 글이라 학교 컴퓨터 모니터 가장자리에 이렇게 적어 붙여 두었습니다.

‘거울을 웃길 수 있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