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은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었죠? 어떻게들 보내셨어요?
저는 어제 대구 KYC 회원들과 함께 합천 원폭피해자 복지관을 다녀왔습니다.
예슬이도 같이 가고 싶어했지만 시험이 코 앞이라 같이 가지를 못했습니다. 예슬이가 가지 못하니 예슬이 뒷바라지(?) 하느라 남편도 같이 가지 못했답니다.
"거기 가면 동물 농장 못 보잖아요."
"동물 농장은 못 보지만 다른 것을 경험할 수 있잖아. 동물 농장은 매주 일요일이면 언제든 볼 수 있지만 이런 일은 기회가 잘 주어지는 것이 아니야. 너에게 어떤 것이 더 의미있는 일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네가 꼭 가야한다고 강요는 안 하겠지만 엄마 생각에는 일요일 오전을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것 보다는 의미있고 가치 있을거라 확신해. 작년에 할머니 할아버지들 만나뵈었을 때 너 무척 예뻐하셨던 기억하지? 내일은 그 분들이 살고 계시는 곳으로 우리가 만나러 갈 거야. 어떤 곳에 사는 지 궁금하지 않니? 엄마는 정빈이가 같이 갔으면 좋겠는데."
정빈이는 작년 가을 경주의 평화 캠프에 참가를 했었기 때문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두 번째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정빈이와 같은 아이가 행사에 참여를 하면 좋은 점이 많답니다.
이번에는 "좋은친구만들기"의 멘티들도 함께 참가를 했는데 저의 친구는 연락이 안되어 같이 가지 못했습니다. 휴대폰도 집의 전화도 없는 상황이라 연락하기가 아주 어렵거든요. 지난 번 만났을 때 같이 가기로 약속을 했었는데...
많이 아쉬웠지만 어제 같이 간 친구들 중에는 멘토 누나가 바빠서 혼자 온 친구들이 있어 일일 파트너를 정해 하루를 같이 했습니다. 공동 프로그램에서는 '니 멘티 내 멘티'라는 개념보다는 '우리'이거든요.
어제 같이 간 멘티들도 제가 학교 선생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는데 전부다 '불량기'가 줄줄(?) 흐른다며 도대체 어느 학교 쌤이냐고?
제가 아무래도 요즘 이미지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엉뚱한 곳으로...ㅎㅎㅎ
정빈이가 같이 가면 서먹해 하는 친구들 사이를 누비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기 만들어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거든요.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오빠들도 애교많고 사교적인 정빈이와는 금방 친해지거든요. 그리고 어르신들도 아주 예뻐해주시고요.
복지관에 가기 전에 먼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촬영지를 구경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었지만 좋은 경험이었답니다. 마침 토요일이 6.25 이기도 해서 아이들과 같이 전쟁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고.
세트장 구경 좀 하세요.
경치가 너무 멋있었어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기차 안에는 사용된 소품들도 전시되어 있었어요.
세트장을 구경 한 뒤 임진왜란 때, 합천 출신인 정인홍의 지휘 아래 큰 공적을 세웠다는 의병들의 넋을 기리는 <임란창의기념관>도 구경했습니다. 아주 많은 계단을 올라가야 했는데 정빈이도 같이 간 친구들도 빗속에도 불구하고 아주 잘 올라가더군요. 역시나 제가 제일 꼴찌로 헉헉거리며 올라갔지 뭡니까?
복지관에 도착을 해 우리나라 유일의 '원폭피해자 복지관'에 관해 설명도 듣고 점심을 먹은 뒤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처음 간 사람들도 있고, 특히 어제는 청소년들이 많아 어르신들께 큰절로 인사를 드렸답니다. 아이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노래도 부르시고 덩실덩실 춤도 추시는 어르신들을 보며 마음이 쨘~~~해왔습니다.
역사의 그늘속에서 고통받으며 살아오신 분들 앞에 다음 세대인 저희들이 해드릴 수 있는 것이 너무 없어서.....
어제는 특별히 독일에서 한국의 원폭피해자에 관해 취재를 온 기자 두 사람도 동행을 했었습니다. 전쟁을 일으켰던 나라 독일, 그러나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하며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나라, 독일에서 온 기자들과의 동행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 두 사람입니다. 여자는 라디오 방송국 기자이고 남자는 잡지사 기자라고 하더군요.
한국 사람들 중에도 한국인 원폭피해자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먼 나라에서 그곳까지 와 준 사람들....
정빈이는 그들과 같이 온 통역하는 아가씨가 너무 멋있었던 모양입니다. 자기 것을 누군가에게 주는 것에는 아직도 조금 인색한 정빈이가 일부러 타고 간 버스에 가서 자두 하나를 꺼내와서는, 단 한 사람 통역하는 아가씨에 준 것을 보면요. 기자들에게도 '하이' 하며 예의 그 싹싹한 웃음으로 먼저 손을 흔들며 인사도 하고.
현재 복지관에는 79분의 어르신들이 계십니다. 그 분들을 위해 토마토를 준비해 갔는데 아주 맛있게 드셔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일 어리다는 이유로 대표로 인사를 하라고 했을 때 싫다며 뒤로 숨었던 정빈이입니다. 그런 정빈이에게 제가 들려 준 이야기 입니다.
"봉사라는 것은 네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게 아니야. 이곳에 온 것은 너의 선택이었어. 물론 어떤 일을 하게 될까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왔지만 일단 온 이상은 이곳에서 필요한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마이크 들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인사를 하는 것이 싫을 수도 있어. 하지만 네가 <하기 싫다>는 생각에 앞서 <해야 한다>는 생각을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어른신들께 인사를 드리는 것은 당연한 거잖아. 예의를 갖추는 일 중의 하나니까. 잘 생각해 봐.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 되는 건 지, 아니면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면 싫고 좋고를 떠나서 해야하는 것인지 말이야. 봉사라는 것이 억지로는 안된다는 거 알아. 그 어떤 일보다 마음을 담아서 해야하지만 그 마음도 결국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렸다고 생각해."
제 말을 받아들였는 지 어르신들의 간식을 차리는 일도 열심히 거들더니 어르신들이 토마토를 다 드시자 빈그릇과 포크를 챙겨 부엌으로 옮기는 일을 시키지 않았는데도 어찌나 열심히 하던지요. 뒷정리를 하는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열심히 빈그릇을 나르는 정빈이의 모습입니다.
뒷정리는 다 하고 제 곁으로 와서는 이러는 겁니다.
"봉사는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렇지. 그릇 치우는 일이 어땠어? 힘들었어?"
"아니요. 어머니가 시키지 않아도 제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던걸요. 봉사는 이런 거지요?"
"그렇지. 그렇게 네가 하고 싶은 마음으로 하는게 중요해."
다음에 또 오겠다는 약속을 한 뒤 대구로 돌아 왔습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정빈이는 그새 친해진 언니 오빠들과 노느라 제 옆에는오지도 않더군요.
정빈이와 함께 한 어제 하루는 참으로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린 정빈이이지만 그 마음속에는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대해, 자신의 시간과 수고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쓸 때 어떤 느낌인가를 조금은 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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