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우리 1학년 5반 예쁜 공주님들에게
오늘 과학시간에 수업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 지 선생님이 감동 먹었었잖아. 선생님은 어떤 일에 몰입하는 사람을 볼 때 참 아름답구나, 라는 생각을 하는데 오늘 우리 5반 공주님들이 그런 아름다운 모습이었어. 그래서 많이 기쁘고 행복했고, 그리고 자랑스러웠어. 그 시간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 일에 온 마음과 정성을 쏟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거든. 역시 우리 5반 최고, 멋져 멋져.
오늘은 선생님 이야기를 좀 할게. 선생님은 아주 아주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어, 일면 촌놈이지.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2학년 올라오면서 대구로 전학을 왔는데 촌놈에게 대구에서의 학교생활은 정말 힘든 것들이 너무 많았어. 그 때 선생님을 촌놈이라고, 공부 못한다고 놀리고 괴롭히던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더 많은 친구들이 먼저 말을 걸어주고 도와주었기 때문에 조금씩 적응해 갈 수 있었어. 그 때 선생님을 도와주는 친구들이 너무 고마워 혼자 그런 생각을 했었어. 나도 전학을 오거니 내 도움이 필요한 친구가 있다면 누구보다 열심히, 마음을 다해 도와주겠다고 말이야. 그런 친구들의 도움 덕분에 선생님은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양보할 줄 알고, 다른 사람들이 귀찮아하거나 더럽다고 하지 않은 일을 나서서 하는 사람이 된 거지. 오늘도 학교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었단다. 밀대를 빨고, 손걸레로 세면대를 닦고, 바닥에 물을 뿌리는 일을 하면서 ‘내가 만약 그런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더럽다고, 귀찮다고 쉽고 편한 것만 하는 사람이 되었을 텐데... 새삼 그 친구들이 참 고맙구나, 하는 생각. 누구나 더러운 곳은 손에 대기 싫고 힘든 일보다는 편한 것을 하고 싶어.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쉽고 편한 일만 한다면? 우리 반이 청소를 맡은 화장실은 어떻게 될까? 며칠 지나지 않아서 화장실 휴지통은 넘쳐 날 테고, 냄새가 진동을 하고, 바닥은 찐뜩거려 발을 디디기 힘들어 질 거야. 결국 그 피해는 우리 모두에게 오는 것이지. 교실이나 복도 청소도 마찬가지야.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 곧 나를 위하는 길이라는 것을 기억해줘. 열심히 청소해 준 공주님들에게는 너무 많이 고마워. 그리고 아직 마음이 조금 덜 자라 쉽고 편한 것만 찾아 이리저리 선생님 눈을 피해 다녔던 공주님들은 조금만 더 마음을 키워주기 바래. 마음이 따듯하고 예쁜 우리 5반 공주님들이기를 바라는 선생님의 부탁을 외면하지 말아줘.
전학 온 뒤 이런 일이 있었어. 영어 선생님이 칠판에 ‘juice'라는 단어를 쓰고는 선생님 이름을 부르면서 읽어 보라고 하더구나. 선생님은 시골에서 파닉스를 배우지 못했었기에 그 단어를 이렇게 읽었어. ’주이쎄‘라고.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영어선생님은 화가 무지 많이 나셨어. 나를 앞으로 나오라고 하셔서는 매로 머리를 때리시면서 이러셨어.
“뭐, 주이쎄? 뭘 달란 말이고? 니가 거지가? 주이쎄? 그리고 너거 집은 주스도 한 통 안 사먹는 집구석이가?”
그리고는 엄청 맞았었는데 아픈 것은 손바닥이 아니라 마음이었어. 파닉스를 배우지 못한 것은 내 잘못이 아니고 우리 집은 너무 가난하여 그 때까지 주스라는 것은 한 번도 사먹어 본 적이 없었거든. 못 배우고 가난한 것이 그렇게 마음 아픈 줄 처음으로 절실하게 느꼈었지. 그 선생님이 미웠어. 정말 미웠어. 그래서 이런 선택을 했었어.
“에이씨이~~~ 내가 영어 공부 하나 봐라.”
선생님이 싫다는 이유로, 나는 그 선생님에게 복수하는 방법을 영어공부를 하지 않는 것으로 선택한 거지. 그리고 수업 시간마다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심지어는 다른 교과공부를 하기도 하면서 나는 그 선생님에게 진짜 제대로 된 복수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그 결과는 어땠을까? 통쾌한 나의 복수는 이루어졌을까? 아니 아니. 결과는 비참했어. 나의 영어 시험 점수는 꼴찌. 그 선생님에게 복수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으로 복수는 커녕 나만 비참한 결과를 얻은 거지.
“보세요, 쌤~~~ 내가 당신이 싫어서 영어 공부 안 해서 영어 점수가 꼴찌에요. 마음 아프시죠? 속상하시죠? 진짜 쌤통이에요.”
이럴 수가 있을까?
나는 정말 어리석은 선택을 한 거였다는 것을 그 때서야 깨달은 거야. 그 선생님은 내가 당신에게 상처받은 마음에 복수하고 싶어 한다는 것도 모르고, 내 영어 점수가 꼴찌라고 해서 하나도 마음 아프지 않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은 거지.
그 선생님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이 영어를 그 선생님보다 잘해버리는 것이라는 것을 늦었지만 그 때서야 깨닫고는 얼마나 울면서 후회 했는지 몰라. 그리고 이를 악물고 영어 공부를 했지. 통쾌한 날을 상상하면서.
‘영어 선생님이 해석하지 못하는 문장을 내가 아주 멋지게 해석해버리는 거야. 영어 선생님은 아이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고 얼굴이 빨개지는 거야.’ 이런 상상.^^ 아니면
‘길을 가다가 미국 사람을 만났는데 영어 선생님은 미국사람 앞에서 쩔쩔매는데 내가 쏼라쏼라 유창하게 영어로 말을 해서 영어 선생님 코를 납작하게 해주는 거야.’ 뭐 이런 상상을 하니까 어찌나 통쾌하고 기분이 좋던지. 영어 공부를 할 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더구나.
그래도 세월이 지나고 나니 그 선생님은 내게 정말 좋은 것을 선물(?) 주셨어. 그 선생님과의 일로 인해 공부는 선생님이 내 마음에 들고 안 들고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말이야. 물론 선생님이 잘 가르치고 나와 마음도 잘 맞으면 더없이 좋겠지. 하지만 내가 좋은 선생님이 친구는 별로라고 하고, 친구가 좋다는 선생님이 나는 별로일 때도 많잖아 그치? 선생님들은 다양해. 그 선생님들이 모두 내 입 맛에 딱딱 맞을 수는 없어. 그러니 혹여 중학교 2학년 시절의 선생님처럼 교과목 선생님이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 과목 공부를 포기하거나 하는 어리석은 일은 하면 안 돼. 수업 시간에 잘 알아듣고 이해를 하지 못한다면 그 선생님의 탓도 있지만 기초 학습이 잘 되어 있지 않거나 예습이 안 되어 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거든요. 선생님은 중3 딸에게 예습은 꼭 하라고 하고, 수업 시간에 잘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으면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께 꼭 물어보라고 부탁을 해. 그래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면 공짜인 ebs 강의를 들어보라고 하지. 그렇게 언니야는 스스로 예습하고 수업 시간에 최대한 집중해서 들으면서 학교생활을 하고 있어. 학원에 다니지 않는 이유는 공부는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학교 공부가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는 대신 학교 마치고 난 뒤의 시간은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하고 있지. 선생님 집에서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텔레비전을 아예 켜지를 않아. 주말에만 필요한 것 몇가지만 골라서 보고 인터넷도 토요일과 일요일 각각 2시간씩만 하고 있어. 그것만큼은 강제가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지켜주고 있어. 언젠가 학교 수업과 혼자서 하는 공부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면 학원을 가거나 과외를 해서 도움을 받게 될 수도 있겠지.
오늘도 편지가 많이 길어졌구나. 우리 예쁜 공주님들, 스스로에게 물어 봐. 선생님의 수업이 어떠하다 이야기하기 전에 나는 그 수업을 받기 위한 기초 학력을 탄탄히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부족하다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 지.....그리고 누구를 위해 공부하는 지를. 선생님은
‘이번에 성적을 올려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라는 말을 들으면 솔직히 마음이 아파. 열심히 해서 실력 있는 내가 되고 싶어야 하지 않을까?
사랑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서 오드리 될뻔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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