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5반 예쁜 공주님들의 할머니, 부모님 그리고 언니께
첫 글이 좀 길죠?
제가 드리는 편지를 부모님이 읽으시는 가정도 많지만 부모님이 함께가 아닌 아버지 혼자, 어머니 혼자 또는 할머니나 언니가 읽게 되는 공주님도 있답니다. 10명이 넘으니 ⅓은 그렇다고 해야겠지요.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어떤 집은 엄마가 없을 수도 있고 어떤 집은 아빠가 없을 수도 있잖아. 그렇게 보면 어떤 집은 아빠가 둘일 수도 있다고 생갈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결손 가정하고 우리하고 같아?”
“결손 가정? 가족 구성원이 하나 없으면 결손 가정인 거야? 가족 구성원이 이래야 한다고 정해진 건 없잖아. 엄마나 아빠 중 하나가 없어서 결손 가정이면, 아이가 없으면 그것도 결손 가정이야? 그럼 할아버지, 할머니 하고 살면 과잉 가정인거야? 또 아이를 많이 낳으면 그것도 과잉 가정인거야?”
“그 얘기가 아니잖아. 초점 흐리지 마.”
“아니, 그 얘기야. 결손가정이이란 말에 편견이 숨어 있어. 가령 핵가족이나 확대가족 같은 용어에는 좋다, 나쁘다 하는 가치 판단은 들어 있지 않아. 핵가족이 일반적인 형태라고 해서 가족 구성원이 그 보다 많은 확대가족이 비정상적이라고는 생각하진 않잖아. 하지만 결손가정이란 용어는 그렇지 않거든. 뭔가 결여된 비정상적인 가정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말이잖아. 왜 꼭 다른 사람들을 비정상으로 만들어 놓고 자기는 정상이라며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남의 소중한 가정을 결손 가정이라는 말로 모욕하면 안 되지. 구성원이 덜 있건 더 있건 가정이면 그냥 다 가정인 거야.”
“그래도 어디 그게 그냥 나온 말이겠어? 다 가정이라는 환경이 중요하고 그 환경이 안정적이어야 한다는 얘기잖아. 아무래도 뭔가 결핍된 가정에서 자라면 안 좋을 거 아냐.”
“가족 구성과 안정적인 가정과는 무관해.”
“그게 왜 무관해? 부모 중 하나가 없으면 비뚤어지기 쉽지.”
“오히려 이혼한 가정의 자녀가 소위 정상적인 가정의 자녀보다 덜 비뚤어진다는 거 알아?”
“그게 말이 되냐?”
“당신도 대뜸 그게 말이 안 된다고 결론부터 내려 버리잖아. 그러니까 편견이라는 거지. 사람들 생각이 어떠하건 통계적으로는 그렇게 나와 있어. 비행 청소년의 배경에는 가족 구성원이 부족한 가정이 아니라 애정이 부족한 가정이 있는 거야. 이혼 때문에 아이들이 잘못되는 게 아니야. 이혼하기 전부터 문제가 있는 가정환경이, 혹은 이혼한 후에 아이에게 무관심하게 대하는 것이 나쁜 영향을 끼치는 거라고. 요는 가족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가족의 수가 몇 명인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가족 구성원들끼리 얼마나 서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가, 얼마나 화목한가가 중요한 거지.”
밑줄이 쳐져 있는 부분은 제가 그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쳐 두었던 것이랍니다. 가정의 형태는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가족의 일, 특히 어른들의 일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가정의 형태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은 ‘우리 전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 애는 부모님은 다 계시니?”
친구를 사귀었다는 아이의 말에 이런 질문을 받을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건 어른들의 문제로 아이들의 몫도, 아이들의 탓은 더더욱 아닐 겁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을 통해 세상을 봅니다. 아이들로 하여금 세상을 따듯하게, 편견 없이 볼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그것을 숨기고 싶어 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저에게 1학년 5반 공주님들은 그저 모두 귀하디 귀한 아이들일 뿐입니다. 어떤 형태의 가정에서 살고 있는 가가 문제가 아니라 지금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가 저에게 가장 중요하고, 제가 많이 사랑하고 도와주어야 할 공주님들일 뿐이지요.
제가 굳이 편지의 첫 줄을 ‘할머니, 부모님 그리고 언니’라고 적은 이유는 제가 드리는 편지를 부모님이 읽지 못하는 공주님들이 혹여 마음이 상할까봐 걱정이 되어서입니다.
선생님이 준, ‘부모님께’라고 적힌 편지를 누구에게 주란 말이야.... 하는 아이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안 되니까요. 그리고 늘 느끼는 것이지만 부모님이 두 분 다 계시다고 해서, 모양만 갖추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행복한 가정인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책의 글처럼 ‘가족의 수’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사랑하며’ 사느냐가 정말 중요하니까요.
세상은 급하게 변하고 있고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보니 어른들의 세계를 아이들에게 다 이해시키지는 못할 겁니다. 모두들 절박한 사정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아이들이 아프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기에 1학년 5반의 담임인 저도 저희 반 29명의 공주들의 엄마가 되어주고, 할머니는 저희 반 공주들 모두의 할머니가 되어주시고, 아버지는 저희 반 공주들 모두의 아버지가 되어주십시오. 어머니는 저희 반 공주들 모두의 어머니가 되어주시고 언니도 저희 반 공주들 전부의 언니가 되어 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내 아이라는 마음으로 동생에게 양보하고 배려하듯 친구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도록 해주시고, 혹여 아이들끼리 마음이 상한 일이 생겼다고 하면 내 아이만 생각하지 마시고 상대 아이도 내 아이라는 마음으로 품어주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은 1학년 5반에서 나름 분주한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어제는 학급 실장, 부실장, 서기와 총무의 선거가 있었고, 학습부, 미화부, 체육부, 바른생활부의 부원을 정하고 각 부의 부장도 선출이 되었습니다. 저는 공주님들이 민주적인 자치 활동을 통해 학급을 잘 운영해가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방치를 하겠다는 것은 절대 아니고, 아이들이 토론과 의논, 소통을 통해 학급의 일들을 결정하고 진행해 나가도록 이끌어 주고자 합니다.
저희 학급에는 29명 모두가 중심인물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소시민 한 사람의 귀함이 다르지 않듯이 저희 반 공주님 29명 모두는 저희 학급의 가장 중요한 인물들입니다. 아이들이 스스로의 참여를 통해 성장해 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처음 맞이하는 놀토입니다. 학기 초라 많이 긴장하고 힘들었을 공주님들이 주말을 잘 보내고 활기찬 모습으로 다음 주에 학교를 향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아 주십시오.
가족 모두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2011년 3월 11일 1학년 5반 담임 이영미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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