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사랑, 결혼하면 끝일까?

<연재18>사랑, 결혼하면 끝일까?>

착한재벌샘정 2009. 8. 3. 00:06

 

 

완소남 이야기 8 - 명절, 그 절호의 기회를 놓칠쏘냐!

 

 

평소에 시간을 잘 낼 수 없는 직업이라 연애를 할 때부터 집사람은 늘 그게 불만이었죠. 주중에는 밤 10시 전에 집에 들어가는 일이 드물고 주말에도 여전히 시간을 내는 것이 힘들어요. 일중독이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어쨌든 상황이 그런 걸 어쩔 수 없잖아요. 집사람의 불만을 잘 알고 있지만 방법이 없는 걸 난들 어쩌겠습니까. 내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모르고 결혼한 것도 아니고.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다 알면서 왜 이러나 싶은 것이. 난들 뭐 이러고 싶은 가 싶은 생각도 들고. 그렇다고 마누라와 놀기 위해 직장을 그만 둘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런 나에게 큰 힌트를 준 사람은 바로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결혼 1년 차 여직원이었습니다. 추석 연휴를 지나고 온 다음 날 점심시간. 결혼 한 두 여자와 결혼을 앞 둔 한 여자가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명절, 지긋지긋해. 명절마다 신문에 방송에 명절에 주부들 고생한다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거 알지? 어쩐 이렇게 세상이 안 변하냐? 아이구 허리야, 아이구 팔이야. 정말 명절만 되면 여자로 태어난 게, 아니 결혼한 게 제일 후회된다니까. 명절 때문에 교회 나가는 여자들 이야기 나 백프로 공감해.”

“전 결혼해서 첫 명절이었잖아요. 하도 난리여서 사실 잔뜩 겁을 먹은 게 사실이거든요. 그런데 저희 집은 이번 명절에 좀 웃기는 일이 있었어요.”

“웃기는 일?”

“웃긴다는 표현이 그렇기는 한데.... 둘째 시숙이 무척 공처가시거든요. 저희 집 남자들이 다들 공처가라는 말을 듣기는 하지만 둘째 시숙이 가장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남자만 넷이냐 그 집? 대단하다.”

“시누 둘 있어요. 남편하고 시동생은 연년생으로 뚝 떨어졌고요 위에 분들은 모두 나이가 많으세요.”

“둘째 시숙은?”

“큰 시숙, 둘째 시숙 그 다음에 누나 둘 있고 그 사이에 두 분 더 계셨는데 어릴 때 놓치셨다나봐요. 그러니 나이 차가 많아요. 남편이랑 12살 차이니까 마흔 여섯?”

“그런데 뭐가 웃겼다는 거야?”

“이번 추석이 일요일이었잖아요. 그래서 토요일 많이 바빴어요. 저희는 종택이라 제사 음식을 많이 하더라고요. 저녁 먹기 전에 대충 끝냈다고 생각했는데 빠진 게 몇 가지 있어 저녁 설거지를 한 뒤 삼동서가 모두 주방에 모였는데 아 글쎄 둘째 시숙이 주방에 들어오시더니 이러는 겁니다. 형수, 한 집에 한 사람만 나와 일하면 되는 거죠? 이 사람 대신 제가... 뭘 할까요? 시키기만 하면 잘할게요. 제가 요리 잘한다는 건 형수도 잘 알잖아요. 왜 그러냐는 큰형님말씀에 둘째 시숙 말씀이 참나... 이 사람 주말 드라마 꼭 봐야 하는데... 지금 드라마가 막 시작하려고 해서요. 너무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오는 거예요. 제가 이런데 큰 형님은 어떠실까 싶대요.”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예요. 큰형님이랑 둘 째 시숙, 그리고 저는 주방에서 일하고 작은 형님은 드라마보러 방에 들어 가셨죠.”

“이야, 난 드라마 보러 들어가는 자기 작은 형님이 더 대단하다. 남편이 그런다고 들어 가냐? 자기는 여자 아니래니? 그럼 남은 사람은 뭔데? 진짜 웃기는 짬뽕이다 야. 우리 동서가 그랬단 봐라. 난 확 엎어버린다.”

“그게요.... 저도 엄청 당황스러운 거예요. 그런데 큰형님은 생각이 다르시더라고요. 둘째 시숙에게 이거이거 하라시며 별 말씀이 없으신 거예요. 저보고는 억울하면 작은 형님이아 시숙 탓하지 말고 우리 남편에게 그러래요. 나도 드라마 보고 싶으면 남편보고 나와서 일하라고 하고 들어가라고.”

“자기 형님 진짜 속 넓다. 그런 말이 나온대? 나 같음 눈이 다 뒤집히겠구만. 그리고 시어머니는 뭐라셔? 시어머니도 계시잖아.”

“어머니도 별말씀 없으시던걸요. 같이 드라마 보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시고.”

“진짜 웃긴다 그 집. 시어머니도 여자고 둘째 동서라는 사람도 자기도 여자면서 그래, 큰형님이랑 자기는 주방에서 알하는데 도란도란 이야기까지 하면서 드라마를 봐? 이야~ 이거 내가 이만한 게 막 올라오네. 그 집 어떻게 된 집이야?”

그 때 결혼을 앞 둔 여직원이 한마디하더군요.

“그래도 둘째 시숙분 너무 멋지다. 아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볼 수 있도록 대신 일을 한다? 우리 자기도 그래줄까? 남자가 자기 여자를 위해서는 그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꿈 깨시게 이 사람아? 집에서 잘하던 사람도 시댁 근처만 시댁 동네만 가도 변하는 게 대한민국 남자들이야. 언제 봤냐는 듯이, 시댁에서 마주치면 이런 표정을 하지. 아줌마 혹시 저 아세요?”

“설마요? 그럼 나 결혼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야. 안 그런 남자도 있어. 우리 집 남자들은 안 그렇다니까. 텔레비전에 보면 남자들 명절에 먹기만 하고 일은 하나도 안한다고 나오잖아. 나도 첫 명절이라 어떤가 정말 그러가 궁금했는데 안 그렇더라니까. 큰 시숙은 집안 청소를 싹 다 하시고 우리 진 남자는 주방, 냉장고 안까지 깨끗하게 청소하던걸. 어머니 연세 많으신데 자식들 모두 따로 사니까 이참에 대청소한다면서. 시동생은 화장실. 뭐 이렇게 나누어서 청소하더니 연신 주방 들락거리며 도울 일 없나 묻고 시키는 일 군말 없이 잘 하던걸.”

“그래? 그런 집이 있어? 자기 집 혹시 국보 몇 호 뭐 그런 거로 지정되어 있지 않던?”

“아니요. 국보는 무슨.... 아이, 김대리님 농담도 참. 순간 정말 그런 게 있나 싶었잖아요.”

“내 들어보는 게 처음이다. 남자들이 방 청소는 몰라도 냉장고에 화장실까지 빡빡 청소한다는 소리는. 그것도 명절에 시어른들 두 분 번히 뜨고 있는데.”

“제사 지내고 나니까 제기도 남자들이 깨끗하게 닦고 신문지로 하나씩 다 싸서는 박스에 묶어 보관하는 장소에 딱 갖다 두고... 하여튼 그런 일은 당연히 남자가 하는 건지 형님들은 신경도 안 쓰시던 걸요. 음식만 따로 정리하시고.”

“그집 사람들 들으면 들을수록 대단하네. 아참, 그래서 자기도 드라마 봤어? 남편보고 나와서 일하라고 하고?”

“아니요. 저는 원래 텔레비전 잘 안 보는데다가 주방 상황이 훨씬 더 재미있을 거 같아서요.”

“뭐라고 하든? 그 대단한 두 사람?”

“그냥요. 마치 작은 형님이 일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웠어요. 형님도 시숙도. 그렇게 시숙이 맡은 일을 다 하고 방으로 가고 난 뒤 형님이 제게 물으시대요. 이 상황이 어떠냐고. 솔직히 좀 당황스럽다고 했더니 형님이 그러세요. 이건 다 큰시숙으로 인해 이렇게 된 거라고.”

“큰 시숙? 큰형님 남편 말이야?”

“네. 형님 말씀에 의하면 저희 집 남자들이 집안일을 잘 하게 된 건 다 큰시숙 때문이래요. 몰라서 그렇지 우리 집 제일 공처가는 둘째 시숙이 아니라 큰시숙이래요. 큰형님은 결혼한 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 당시 어른들이나 사회적인 분위기가 어디 남자들이 했겠어요. 그런데 큰시숙은 형님이 종가집 맏며느리로 와서 명절에 그 큰 살림해야하는 게 그렇게 안쓰러웠던 모양인 지 본인도 일을 하면서 그 당시 먼저 결혼했던 큰시누만 빼고 다른 동생들에게도 집안일을 돕도록 한 모양이에요. 어른들에게는 이렇게 말씀을 드렸다는군요. 보험을 드는 거라 생각하라고. 지금은 따로 살지만 나중에는 큰며느리와 살아야 하는데 서로 같이 살게 될 때를 생각해 매달 보험금을 넣는다 생각하고 이쁘다 참아주고 보듬어 달라고.”

“보험? 그거 너무 멋진 표현이다.”

“어른들도 처음에는 많이 황당하셨겠지만 솔직히 며느리와 사이가 좋아서 손해 볼 건 없잖아요. 서로 정을 내며 사는 게 어른들에게 더 이득인거고. 물론 형님에게도 부탁을 했대요. 시댁에 와서는 정말 잘 하기로. 종택이다 보니 제사 많고 명절에 어른들 생신에 가지가지 일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그런 일로 시댁에 와 있는 동안만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얼굴 굳어지지 않고 가족들 끼리 의 상하는 일 없도록 노력해 달라고. 대신 집에서는 그렇게 잘 하신대요.”

“멋지다. 자기 큰시숙. 현명해. 지혜로와.”

“큰 시숙은 평소에 시간이 많아요. 작은 시숙이나 우리 남편보다는요. 직업이 여유가 있는 거라. 그래서 시댁에서는 어른들 계시고 하니 적당한(?)선까지만 도와주시고 집에 가셔서 진짜 잘해주신대요. 작은 형님네는 아주버님이 평소에 많이 바쁘시니 이런 명절에 집중 투자를 해야 하는 거라 그런 거라고. 어른들도 그걸 아시고 그렇게라도 아내를 위하는 걸 다행이라 여기신다고. 시어머니는 며느리들과 사이가 안 좋다는 집은 이해를 못하신대요. 두 분 형님도 남편들이 그렇게 잘해주니 시댁에 오는 일로 인해, 시어른들 때문에 크게 맘 상하시는 일이 없다고.”

“어른들과 아내 모두를 위해 진짜 잘 한다 그 집 남자들.”

“작은형님이 방으로 들어가자 남편이 주방으로 와서 물어요. 드라마 안 봐도 되느냐고. 눈치가 보였던 모양이에요. 큰형님이 그러시대요. 당신도 드라마 보고 싶은데 큰시숙은 묻지도 않는다고. 동서들 부럽다고. 큰소리로 방안에 다 들리도록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다들 들어오라고 이거 보고 다 같이 나중에 하라고. 큰 시숙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당신은 꼭꼭 챙겨보는 것도 아니니 그냥 얼른 끝내고 쉬라고. 큰 형님이 그 드라마를 꼭 봐야 하는 거였으면 형님 댁의 비디오가 열심히 녹화를 하고 있을 거라는 건 쉽게 짐작이 가던걸요. 큰 시숙 작은 시숙 두 분 참 현명하신 것 같았어요. 나름의 방법으로 해결방법을 알고 계시니까요.”

“자기는 어떻게 했어? 드라마 봤어?”

“아니요. 저도 한 수 하는 사람이잖아요. 너무 보고 싶은 드라마 참아가며 일한 며느리로 남아야 남편에게 다음 명절 때까지 큰소리 칠 수 있는데 뭣하러요.”

“자기도 대단한데. 그럼 작은 형님만 이상하게 된 거 아냐?”

“아니요. 작은 형님은 애교가 참 많아요. 그래서 어른들이 작은형님이랑 있는 것을 좋아하신대요. 특히 무뚝뚝하신 아버님은 그런 작은형님을 아주 좋아하신대요. 큰형님말씀으로는 작은형님이 일안하고 노는 것 같아도 어른들과 같이 있어주는 거, 그게 제일 큰일을 하는 거래요. 큰형님 같으면 그저 입 다물고 텔레비전이나 쳐다보겠지만 작은형님은 이런저런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 이야기나 그와 관련된 다른 일상의 이야기들로 어른들을 즐겁게 해주신대요. 어른들은 마누라대신 일하러 간 아들 힘들겠다는 생각보다 드라마 보며 같이 놀아주는 작은며느리를 고맙고 기특하다 생각하실 거라나요. 같은 상황을 이렇게 뒤집을 수도 있는데 말이에요. 평소 돈 버느라 힘든 남편, 시댁에 와서도 주방에 나가 일하라고 하고 여편네라는 게 방안에 편히 앉아 드라마나 쳐다보고 있다니 괘씸하고 고약한 거, 어때요?”

“어휴우~ 꿈같은 이야기다. 자기네 집 이야기는.”

과장님 들어오시고 여사원들의 수다도 끝이 났지만 그 이야기는 오후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본가에 가자는 말만 나와도 얼굴색이 변하는 아내.

명절 며칠 있는 동안 뭐가 그렇게 화가 났는지 잔뜩 부어 있는 아내.

돌아와서도 그 후유증은 정말...

일이 바빠 같이 못가 아내 혼자 갔다 온 뒤의 아내는.....

명절에 나요? 다른 남자들과 비슷하죠 뭐. 물론 이야기에 나오는 여직원네 남자들 빼고. 이렇게 말하면서요.

명절 그거 저 같은 직장인에게는 황금 같은 휴가잖아요. 쉬로 가는 거죠. 맛있는 거 먹고 오랜만에 낮잠 늘어지게 자고. 와이프요? 그거냐 며느리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 거잖아요. 제사지내는데 제사 음식 만들어야 하는 거 당연한 거죠. 그럼 그 일을 남자가 합니까? 남자들이 본가에만 가면 자기들을 아는 척도 안한다는데 난 참 여자들 이해하기 힘들어요. 그럼 어른들 다 계시는데 거기서 마누라 마누라 우리 마누라 할까요? 뭘 어떻게 아는 척을 해달라는 건지. 그리고 어머니하고만 이야기를 한다는데 그것도 당연하죠. 오랜만에 만났는데... 어머니도 할 이야기가 좀 많겠어요. 매일 같이 사는 마누라도 늘 나보고 이야기 좀 하자면서 명절 때나 되야 보는 어머니 자식에게 좀 할 말이 많겠어요? 그걸 가지고 왜 그 난리들인 지.

그리고 돌아와서는 이러고요.

당신 도대체 왜 우리 집에 가자는 이야기만 나오면 이러는 거야?

같이 모시고 사는 것도 아니고 그 며칠 달랑 가 있는데 꼭 그런 불어터진 얼굴 해야겠니? 같이 살자고 했다가는 무슨 일 나는 거 아냐?

다른 집 며느리들은 잘만 한대더라. 이거 어른들이 며느리 눈치 보게 생겼으니....

평소에 잘 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과 명절 때문에 늘 티격태격하는 것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드디어 찾아 낸 거였습니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롬부스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더군요. 명절, 그게 나에게는 답이었습니다.